‘진짜뉴스’ 위해서도 ‘가짜뉴스’ 퇴출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일, 허위·왜곡 정보를 악의적으로 퍼뜨려 피해를 줄 경우, 일반 손해배상의 최대 3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언론과 포털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힌 다음날, 리얼미터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의 징벌적 손배제 포함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61.8%가 찬성했다. 반대(29.4%)의 2배를 넘었다. 찬성 가운데서도 ‘매우 찬성’이 65.7%였다. 연령·지역·이념성향을 불문하고 찬성이 많았다.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유력 언론’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징벌적 손배제를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 “언론자유 유린” “국민 알권리 침해”라며 맹비난했다. 국민들의 생각과는 천양지차다.
지금 언론 불신이 유례없을 정도로 심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짜뉴스 같은 ‘나쁜 기사’보다 ‘좋은 기사’가 훨씬 많다. 일부의 잘못 때문에 언론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는 꼴이다.
지난 한주 국가인권위원회의 ‘제10회 인권보도상’ 심사를 했다. 모두 80편이 출품됐는데, 어느 하나 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사들이었다. 수상작 발표일이 아직 며칠 남아서 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지만, 출품작들은 관련 정부 부처도 모르는,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그래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문제들을 발로 뛰어 발굴했다. 접근이 어려운 현장을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해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실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꼼꼼하고 세밀한 기획을 바탕으로 심층 취재를 통해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냈다.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법 개정과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취재윤리도 어기지 않았다. 취재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용어 하나, 표현 하나, 사진 하나 인권보도준칙을 지키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기사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담기지 않도록 이해관계자들의 다른 주장을 충실히 전했고, 오보를 막기 위해 ‘크로스 체크’도 빠트리지 않았다. 충격적인 현장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인권의 지평을 넓힌 역작들이었다.
솔직히 언론상 심사를 했다기보다 많은 공부를 했고 감동을 받았다. 언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본분을 다하는 ‘기자 정신’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금요일 본심사를 위해 모인 심사위원 8명의 한결같은 소감이었다. ‘기레기’니 ‘기더기’니 하고 언론이 조롱받는 현실에서, 이런 좋은 기사들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이 모아졌다.
가짜뉴스의 폐해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중 하나가 언론 전체가 싸잡아 욕을 먹으면서 좋은 기사, 그리고 좋은 기사를 위해 분투하는 좋은 기자까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불신받고 독자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유다. 좋은 기사, 좋은 기자들이 빛을 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가짜뉴스는 퇴출돼야 한다.
언론도 징벌적 손배제에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차고 넘친다. 다만 징벌적 손배제가 지금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못 본 체하면서 언론자유를 강변하는 마당에,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언론 스스로 성찰하고 바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다.
“오늘 자유언론실천선언 46주년을 맞아, 우리는 현역 언론인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언론의 기본을 지키고, 언론 본래의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지금의 언론 상황에 대해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성의 시간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진 언론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추락한 한국 언론을 제대로 된 언론으로 되돌리는 노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폭압 속에서 자유언론 운동을 벌이다 해직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6주년 기념사 중 한 대목이다. 기념사를 들으며 송구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대선배들의 고언을 후배 언론인들이 부디 흘려듣지 말았으면 한다.
안재승 ㅣ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4028.html?_fr=mt2#csidx7de2e985e0ca32283e94c4150e7f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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