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모해위증사건, 법무부장관의 신속한 지휘를 기대한다
지난 2일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조남관 대검 차장의 지시로, 자신이 맡고 있던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사건 수사에서 배제됐다. 당시 공판에서 위증 혐의를 받고 있는 검찰 쪽 증인들의 공소시효가 각각 4일과 20일 남은 시점에서 나온,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틀 뒤 윤 전 총장은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사퇴했다. 곧이어 대검 감찰3과는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으나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사건을 입건조차 하지 않고 공람 종결 처분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인들이 오랜 기간 취재하고 확인해서 보도한 사안을 단기간에 뭉개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한명숙 정치자금법 위반’ 재기가 아닌, ‘수사와 공소유지 단계에서 일어난 검사 등의 범죄행위’, 즉 모해위증 혐의를 다루는 사건이다. 모해위증이란 피고인이 유죄 선고를 받게 할 목적으로 거짓 증언을 한 경우를 말한다.
노골적 수사 방해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검의 이번 사건 처리 과정은,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검찰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을 무마한 경찰 간부에 대해, 부하 경찰관들의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사건을 다른 경찰관서로 이첩하게 해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2010년 1월 유죄를 확정했다.(대법원 2008도7312)
직무이전 지시 역시 불법성이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검사의 해당 사건 처리를 원칙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서 악용될 경우 그 폐해가 크므로, 해당 검사의 전출, 보직변경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행사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13구합12454)
모해위증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최아무개씨의 공소시효는 지난 6일 이미 끝났다. 수사 의무를 방기하고, 수사를 방해한 윤석열, 조남관, 허정수 등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씨의 시효는 끝났지만, 증언 대부분이 위증으로 확인된 또다른 증인 김아무개씨의 시효는 아직 2주 정도 남았다. 김씨는 한명숙 전 총리가 건설업자 한만호로부터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검찰 쪽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인물이다.
사기 등 전과 7범인 그는 동료 재소자들에게 “난 코스닥 상장회사를 여러개 가지고 있고, 부친은 기무사 장성 출신으로 퇴역 후 군인공제회의 산하기관장”이라 으스대거나 “방송국과 헬리콥터도 소유하고 있다”는 황당한 얘기를 자주했다고 한다. 확인 결과,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
여성들에게 이름과 직업을 속여 성관계를 맺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된 김씨는, 한만호 등 다른 수감자들에게 수영장을 운영하다 잘못돼 구속된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물론 상습 사기범이라고 해서 모든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한만호와 한명숙을 수감 전 직접 보았다는 등의 김씨의 법정 증언은 시작부터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그는 “증인이 2007년 12월 주최한 콘서트장에서 한만호의 부탁으로 정동영 의원, 한명숙 의원 등이 대선유세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정동영 의원, 한명숙 의원 등이 다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정동영 전 의원 쪽으로부터 당시 일정과 사진 등을 모두 확인해본 결과, 공연 당일 정 후보 쪽은 다른 곳에서 유세하고 있었고 저녁에는 한국방송에서 선거방송을 녹화했다. 또한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옷은 노란색이 아닌 주황색이었다. 김씨가 주최했다고 주장한 해당 콘서트의 주최사도 김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 조사에서 김씨는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11억5천만원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법정 증언에선 9억원으로 말을 바꾸고,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선 “한명숙에게 직접 돈을 줬다는 얘긴 들은 바 없다”며, 그 진술도 뒤집었다. 증언의 뼈대마저 허물어진 형국이다.
판례상 ‘모해할 목적’이란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목적을 말하고 허위진술의 대상이 되는 사실에는 공소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실은 물론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든 사실을 포함한다.
김씨는 왜 이렇게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을 했을까. 출소 직후 또다른 범죄를 저지른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한명숙 사건의 중요 증인’이라며 검사와 친분을 과시했다고 한다. 실제 해당 경찰서에 관할 검찰청이 아닌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차례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 사건은,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으나 검찰이 최종 무혐의 처분했다.
훗날 김씨는 경찰서에 나타나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느냐”며 비웃고 갔다고 한다. 김씨와 수감 생활을 같이 한 재소자들은 이런 김씨를 ‘검찰 프락치’라고 부른다.
지난 5일 대검의 증거부족 발표는 수사결과가 아닌 민원처리처분 미입건 공람종결이기 때문에 기속력이 없다. 김씨를 기소하면 공범인 검사들의 시효가 정지돼 향후 이들을 수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김씨의 시효는 22일까지다. 법무부 장관의 신속한 지휘를 기대한다.
전필건ㅣ언론인·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86247.html#csidxd25365386385c47924e7da33b27ad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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