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반도’라는 유리병 속의 개미

道雨 2021. 5. 4. 11:07

‘한반도’라는 유리병 속의 개미

 

갈등의 정치

 

개미에 관한 이런 얘기가 있다. 검은 개미와 불개미를 각각 100마리씩 모아서 유리병 속에 함께 넣어두면 처음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유리병을 세차게 몇번 흔들어놓고 다시 관찰해보면 개미들이 서로를 죽이면서 싸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포와 스트레스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불개미는 검은 개미를 적으로 생각하고, 검은 개미는 불개미를 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정작 유리병을 흔들어놓은 것은 사람이지만, 개미들은 진짜 적이 누군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여러 갈등이 존재한다. 세대갈등, 젠더갈등, 남남갈등사회적 통합과 의견 수렴을 방해하는 여러 층위의 갈등이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갈등이 실제로 그 대상 자체의 문제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식의 틀이 왜곡되어서 눈앞에 보이는 대상에 문제를 투사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발전 속도가 유난히 빠른 한국에서는 ‘세대갈등’이 큰 문제다. 농경시대로부터 급속한 산업화시대를 거쳤나 싶더니, 어느새 정보화시대를 넘어 이젠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고 있다. 비교적 근대를 일찍 경험한 서구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전근대적 문화가 남아 있다.

반면 새로운 세대는 그런 세상이 존재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여러 세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대신, 서로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지나친 세대갈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젠더갈등’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극단적 성향을 가진 일부의 문제라고 여겼던 현상들이 이젠 사회 여러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남녀차별과 역차별,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병역의무의 남녀차등 여부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4월7일 지자체장 재보궐선거에서 드러난 20대 남녀의 정치적 성향 차이도 젠더갈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젠더갈등이 사회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의도되거나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남남(南南)갈등’도 큰 숙제다.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는 북한이라는 대상을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극단적 공포와 적대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젊은 세대는 북한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무조건적 혐오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사실 북한도 세대가 바뀌면서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있지만, 우리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빠르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보면 과거보다 더욱 괴리감을 느끼는 듯하다.

남남갈등은 우리 사회 내부 문제를 넘어 남북한의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기 쉽다. 북한 이슈는 선거철마다 쟁점으로 떠오르곤 하는데, 과거 어떤 정권은 선거에 북풍을 활용하기 위해 북한에 무력도발을 사주하기까지 했다.

오늘날에는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남남갈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미-중 간 대립은 한국 내에서 정치적 성향 차이에 따른 갈등을 유발한다. 어떤 가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냉철한 국제 관계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전략적으로 조장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언론 보도와 인터넷 댓글마저도 ‘한반도’라는 유리병을 흔들어놓는 게임의 일부일 수 있다.

 

모든 갈등은 개인·집단·국가의 이익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비록 갈등의 원인은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인간 사회의 이익 구조가 이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한 갈등을 느낄 때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유리병을 자꾸 흔들어 갈등을 심화시키는 배후가 누군지, 혹시 우리 주변의 이웃을 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 진짜 적은 누구일까.

눈앞에 보이는 가짜 적과의 싸움을 잠시 멈추고, 이 갈등으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보고 있는 배후가 누군지 생각해볼 일이다.

 

 

민경태 ㅣ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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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93714.html#csidxd79f2510f8eeb01871293975b5500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