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친일’ 논란에 최재형이 답하지 않은 것들
애국자 집안? 조부의 친일 행적부터 해명해야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조부에게 제기된 독립운동 의혹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소위 말하는 물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 후보는 <오마이뉴스>가 조부 최병규의 독립운동 의혹을 보도하자 “일제 시대 당시 지식인들은 각자 위치에서 고뇌하며 살아왔다. 특정 직위를 가졌다고 해서 친일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며 반박했습니다.
이어 “그런 식이라면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의 조부를 거론했습니다.
최 후보의 주장에 대해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최 후보 측이 본인의 논란을 해명하면서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은, 대선후보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최재형 후보가 조부 친일 논란에 대통령을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부의 친일 행적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① 독립유공자라 한 적 없다?는 황당한 해명
최 후보 측은 <오마이뉴스>가 ‘[단독검증] 최재형의 할아버지 ‘최병규’는 진짜 독립 유공자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고인의 유족들은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했을 뿐, ‘독립유공자가 됐다’고 주장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기사를 보면, 최 후보의 부친 최영섭은 회고록에서 “(최병규가)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은 받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또한, <미수복강원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최영섭 전 백두산 함장이 회고하는 선친 최병규 독립유공자’로 나옵니다.
회고록에 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고 쓰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유공자라고 말해 놓고, 이제 와서 '독립유공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국민의 지적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제15호(2021. 6. 25)에 실린 “독립유공자” 최병규... 최근 발간된 의 “우리고장 인물열전(10)”에 “최영섭 전 백두산함 함장이 회고하는 선친 최병규 독립유공자”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최영섭의 책 에 실린 최병규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그대로 나온다.ⓒ 미수복강원민보
② 국방헌금 20원 헌납은 왜 해명하지 않았을까?
최재형 후보 측은 <오마이뉴스>가 제기한 독립유공자 의혹 보도에 대해 해명하면서도, 조부가 일제에 국방헌금 20원을 헌납한 친일 행적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938년 최 후보의 조부 최병규는 아버지의 회갑 축연비를 절약하여 20원을 국방헌금으로 헌납해, <매일신보>에 미담 기사로 소개됐습니다.
최 후보 측은 조부 최병규가 조선을 떠나 만주로 건너간 이유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라며, 해림에서 해림가 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945년 <매일신보>를 보면 당시 해림에서 애국기2기에 해당하는 금액을 헌납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일제강점기에 국방헌금이나 애국기(비행기)를 헌납한 사람들은 대부분 친일파라고 봐야 합니다. 일제의 침략전쟁이나 부역에 적극 협조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최 후보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최병규가 왜 일제에 국방헌금을 헌납했는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합니다.
▲최병규의 국방헌금 "미담" 기사(매일신보, 1938. 6. 30) 최병규는 아버지 “회갑 축연비를 절약하여 일금 20원을 국방헌금에 헌납”(1938. 6. 30 매일신보)하기도 한다. 회갑 축연비를 알뜰히 쓰고 돈을 남겨 국방헌금에 헌납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에 일제에게는 “미담 중의 미담”이었다.ⓒ 매일신보
③ 애국자 집안? 조부의 친일 행적부터 해명해야
최재형 후보는 가족이 명절에 모여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까지 하는 모습을 담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 사진에 대해 한 언론은 “최재형 선친 자서전 보니… 병역 명문가 ‘찐 애국’은 가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합니다.
“최 전 원장은 5일 ‘나라 사랑’이라며 당당해했다. 독립운동가 최병규 선생의 손자로 ‘병역 명문가’에서 자란 최 전 원장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 후보는 대선 후보로 출마하면서 '애국자 집안'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며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에 활용했습니다.
병역 명문가에 조부가 독립운동까지 한 애국자 가문이라는 이미지는, 그동안 보수정당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병역 미필, 친일파 출신이라는 약점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최 후보의 이런 점을 높게 사 윤석열 후보보다 더 낫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캠프에 속속 참여하는 인사들도 늘었습니다.
최 후보의 조부가 독립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친일을 했다면, 그가 해왔던 ‘애국 마케팅’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덧붙여 그의 대선 출마 자체도 ‘애국심’보다는 출세를 위한 권력욕이라는 의심도 받게 됩니다.
최재형 후보는 대선 후보 검증을 위해서라도 조부의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조부의 친일 행적을 숨긴다면, 최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2019년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가족이 명절 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최재형 캠프 제공
[ 임병도 ]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360
******************************************************************************************************
민족문제연구소 "최재형 증조부 조선총독부 표창 받았다"
최재형 증조부, 1932년 총독부 직원으로 '국세조사기념장' 수상
최재형 대선 후보 가문의 '친일 논란'과 관련해, 친일인명사전을 집필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처음 입장을 밝혔습니다.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오늘(12일) JTBC 인터뷰에서 "최재형 조부와 증조부의 행적은 독립운동가의 삶으로 볼 수 없다"면서 "이완용처럼 1급 친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부역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최재형 캠프는 입장문을 내고 "독립유공자는 아니지만, 조부가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반박했는데, 이를 다시 반박한 겁니다.
*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최 후보의 증조부인 고 최승현은 1918년부터 1936년까지 강원도 평강 지역의 면장으로 재직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10년 넘게 면장으로 일한 건 그만큼 일제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증조부가 조선총독부의 표창을 받은 사실도 처음 확인됐습니다. 조선총독부 관보(1933.7.7 발행)에 따르면, 총독부 상훈국은 평강군 유진면 면장인 최승현에게 1932년 10월 1일자로 '국세조사기념장'을 수여했습니다. 상훈 이유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통상 기념장은 일제의 통치 행위에 적극 협력했을 때 내려지는 상이라는 게 연구소 측 설명입니다.
* 조선총독부 관보에 최재형 후보자의 증조부 최승현의 표창 사실이 기재돼있다. 출처=민족문제연구소
조부 최병규의 독립운동 여부도 쟁점입니다. 최재형 후보 측은 "조부가 춘천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당시, 일제에 맞서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을 당했다"면서, 독립운동이 맞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러나 "최병규가 참여한 동맹휴학 사건은 여태까지 항일운동으로 인정된 사례가 없다"면서 "백번 양보해 항일로 인정하더라도, 최병규의 20대 이후 행적은 친일에 가깝다"고 평가했습니다.
* 조선쇼와5년국세조사기념장을 조선총독부 상훈국이 표창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관보에 실려 있다. 출처=민족문제연구소
이번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에 대해 최재형 후보 측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어떤 자격과 근거로 친일이냐 아니냐를 재단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조부 최병규의 독립운동은 지역 언론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봉지욱 기자
********************************************************************************************************
최재형 조부 생전에는 '만주독립운동' 언급 없었다
1999년 보도에 '독립운동' 아닌 '동포 정착 돕기 운동' 서술... 사후에 '만주 독립운동' 첫 등장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조부 최병규는, 생전에 과거 자신의 만주시절 행적을 독립운동이 아니라,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이라고 밝혀왔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확인됐다. 이는 독립운동과 엄연히 구분되는 일이다.
또한 현재까지 확인이 가능한 '독립운동'이라 서술하는 자료는 사후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병규의 만주독립운동 이력이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해방 이후 조부 최병규에 대한 언론보도는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각 시기 최병규의 만주 행적에 대한 보도 내용엔 큰 차이가 있다.
[1999년] 독립운동 아닌 '동포 돕기 운동' 또는 '한국인 지원사업'이라 서술
▲ 최병규의 명예졸업 소식을 전하고 있는 강원일보(1999) 1999년 <강원일보>는 1938년 이후의 행적에 대해 “해림에서 한국인 지원사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보도했고(강조는 필자), 비슷한 시기 <중앙일보>는 “(최병규는) 고향집에서 3년 동안 거주 제한조치를 받은 후 만주로 가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확인 과정은 엉뚱하게 최재형 후보 측에서 조부의 독립운동 증거로 제시한 1999년의 <강원일보> 보도 기사(<춘천고 최초 항일운동 불지핀 최병규옹(1회) "73년만에 고교졸업장">, 1999. 2. 12)에서 시작되었다. 최재형 후보 측은 해당 기사를 1926년 춘천고보 시절 조부 최병규의 활동이 '항일운동'임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했지만, 논란이 되는 1938년 이후 만주에서의 행적에 대한 단서가 이 기사에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1938년 이후 최병규의 행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은 "해림에서 한국인 지원사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한 부분이다. 표현이 모호하지만, 비슷한 시기 <중앙일보>가 보도한 <항일운동 퇴학고교생 73년만에 졸업장 받아>(1999. 2. 13)라는 기사를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중앙일보>는 만주 해림에서의 행적을 "고향집에서 3년 동안 거주 제한조치를 받은 후, 만주로 가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최병규가 만주로 가서 한 일을 '동포들의 정착 돕기 운동'이나 '한국인 지원사업'이라는 알듯 모를듯한 표현을 동원하여 포장한 점은 있지만, 두 기사 모두 분명한 것은 최병규가 자신의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앞서 보도한 두 기사에서 줄곧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간 것이 아니라, 일제의 만주 식민 정책에 호응해, 만주에 정착할 조선인으로 구성된 만주개척단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1999년의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동포들의 정착돕기 운동', '한국인 지원사업'이라는 표현은 최 후보 측의 '독립운동'보다는 기자의 의혹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만주에서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는가'라는 의혹 제기의 정당성은, 그가 편집위원장을 맡아 1984년에 발간한 <평강군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엔 최병규의 춘천고보 시절 맹휴를 주도하다 퇴학당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만, 1938년 이후의 만주 행적에 대해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자신이 편집위원장을 맡아 제작한 <평강군지>에 맹휴 사건만 싣고 만주 독립운동 행적은 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사망 이후에 등장한 '만주 독립운동'
반면, 최병규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 내용은, 2008년 최병규의 사망을 알리는 <강원도민일보> 등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강원도민일보>에는 "고인은 만주로 건너가 조선거류민회장을 맡아 독립자금 확보와 전달 등의 역할을 담당하며,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되기까지 20여년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보도됐다.
최재형 후보의 부친 최영섭 대령이 쓴 <바다를 품은 백두산> 역시 2021년 5월에 출간된 점을 고려하면, 최병규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은 모두 최병규 생전이 아닌 사후에 나온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선 "아버지(최병규)는 7년간 해림에서 살면서 해림가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아 독립자금 확보와 전달 역할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돼 있다.
최병규의 만주 행적에 대한 내용이 생전과 사후를 경계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는 만주 독립운동 주장이 최재형 후보의 조부 최병규가 아니라 부친 최영섭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은 본인 저서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조부의 87년 회고록 <사려와 조화> 공개해 논란 종결해야
그동안 최재형 후보 측은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은 모두 사실"이라는 주장만 반복할 뿐, 근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최 후보 측은 최병규가 1938년 이후 만주에서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조부의 만주독립운동 주장이 2008년 이전에는 등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마당에, 최 후보가 그 사정을 직접 밝히지 않는다면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소모적 논란은 신속히 종식될 필요가 있다. 최영섭의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 따르면, 최병규는 1987년에 <사려와 조화>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고 한다. 현재 이 회고록은 오래전 절판되어 일반인은 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최병규가 이 회고록에 7년 간의 만주 행적을 남겼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최재형 후보나 그 가족은 당연히 조부의 회고록을 소장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재형 후보 입장에선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 사실은 모두 거짓없는 사실"이라는 해명을 입증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김학규(hkkim21)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익’으로 포장하지 말라 (0) | 2021.08.18 |
---|---|
20년 만의 탈레반 재집권, 아프가니스탄의 교훈 (0) | 2021.08.17 |
정경심 교수 측 포렌식 담당 IT전문가 "조민 표창장 의혹 진실은 언론파쇼와 검찰의 사기극" (0) | 2021.08.10 |
벼랑에서 추는 춤, 공갈과 협상의 앙상블 (0) | 2021.08.10 |
당신은 나의 고통을 알고 있습니까 (0) | 2021.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