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세계챔피언들
2000년대 복싱 헤비급은 우크라이나의 클리치코 형제가 양분했다. 형 비탈리(50), 동생 블라디미르(45). 1999년 형의 WBO 타이틀 획득을 시작으로, 동생 블라디미르가 타이슨 퓨리(미국)에게 패해 WBA 타이틀을 잃는 2015년까지, 2년여 정도를 제외하곤 세계챔피언 명단에 클리치코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2008~12년은 형이 WBC, 동생이 WBA, WBO, IBF, IBO 등 5대 기구 타이틀을 모두 확보한 클리치코 천하통일 시대였다. 형이 203㎝, 동생이 196㎝ 거구로, 긴 리치를 활용한 아웃복싱을 하며 원투 콤비네이션으로 경기를 끝낸다. 비탈리는 47전45승(41KO)2패, 블라디미르는 69전64승(53KO)5패의 전적을 남겼다.
동생이 2003년 코리 샌더스(남아공)에게 2회 케이오로 타이틀을 잃자, 이듬해 형이 8회 케이오로 되갚아줬고, 반대로 형의 타이틀을 뺏어간 크리스 버드(미국)를 동생이 2006년 7회 케이오로 앙갚음하기도 했다. 형제는 각각 41살이던 2012년, 17년 링을 떠났다.
은퇴 이후, 비탈리는 정계로 진출해 2014년부터 키예프 시장이다.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하자, 시장은 시민들에게 집에 머물며 패닉에 빠지지 말라고 진정시키면서, 자신은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나섰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그의 모습이 외신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블라디미르도 자원입대해 키예프 수도 방위에 나섰다.
블라디미르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도시, 가족, 이웃, 딸(8)에 대한 사랑”을 말하며, 외교적 해결을 희망하면서도 “만일 그리되지 못한다면, 총을 들고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는 또 한명의 현직 헤비급 챔프가 있다. 지난해 9월 올렉산드르 우시크(35)는 블라디미르를 은퇴시킨 앤서니 조슈아(영국)를 꺾고 타이틀을 우크라이나로 되가져왔다. 영국에 머물던 우시크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자원입대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한 기마족 코사크의 후예다. 소설 <대장 불리바>의 무대가 우크라이나다. 몽골 침략 이후 비옥한 옥토를 탐낸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렸으나, 늘 처절히 항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 대통령부터 노인, 여성까지 13만명이 자원입대해, 화염병과 맨손으로 러시아 탱크에 맞서려 한다. 거리 징집소마다 자원입대자 줄이 길게 늘어선다.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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