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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방통위 흔들기인가

道雨 2022. 6. 28. 09:41

누구를 위한 방통위 흔들기인가

 

“설마 2008년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해임 같은 일이 반복되겠나.”

대선 직후 만난 방송계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정 전 사장에게 배임죄를 씌우기 위한 검찰·감사원·국세청 등의 집요하고 치졸한 행태가 재판에서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젠 방송보다 포털이 뉴스와 여론을 좌우한다. <티브이(TV)조선>이 한국방송에 이어 메인 뉴스 시청률 2위일 정도로 방송 판도도 달라졌다. 그러니 한국방송 사장을 쫓아내고 보수지에 종편을 안기며 방송 지형을 바꾸던 이명박 정권 시절 같은 무리수가 필요하겠냐는 얘기였다.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최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사퇴 압박에 기시감이 들었다. <조선일보> 보도가 신호탄이었다. 사퇴 뜻을 밝히지 않는 기관장들에게 “몰염치” “알박기” 제목을 쓴 9일치 기사는 자신들의 독자권익위원회로부터도 “선정적”이고 “제도 결함을 개인 공격으로 돌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공기관장들과 대통령 임기 불일치는 정권교체 때마다 논란이었으니 여야 합의로 풀면 된다. 다만 방통위 흔들기는 그런 차원을 넘는 문제다.

방통위 설치법은 방송 자유를 위해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며, 위원장이 방송정책과 인허가 관련 업무는 국무총리에 보고도 않고 감독도 받지 않도록 했다. 대통령 임명과 여야가 추천하는 위원장 포함 상임위원 5명에겐 안건을 각각 대면 보고할 정도로, 위원들 간 독립성 또한 강조되는 ‘합의제’ 기구다. 위원장 해임은 국회 탄핵소추 외엔 직무상 의무 위반 같은 결격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 위원장이 공동상속 받은 땅에 있는 농막이 사실상 ‘별장’이라는 의혹을 조선일보가 15일 제기한 다음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 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의 결격사유 공격에 나섰다. 2년 전 인사청문회 때는 논란도 안 된 사안인데다, 부친이 생전 신고·설치한 농막 그대로라는 해명엔 눈감았다.

번지수도 틀렸다.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사에 ‘주의’ 처분을 준 것을 ‘정치 편향성’ 사례로 들었는데, 심의와 결정을 하는 기구는 방통위가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조선·중앙이 정정보도 했던 사안까지 끌어들인 건 심했다. 2020년 두 신문은 권경애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을 바탕으로 한 위원장이 <문화방송>의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첫 보도를 미리 알았다는 등 의혹을 제기했지만, 통화 시각 공개로 근거가 무너졌다.

이들의 인식은 문재인 정부에서 비판 언론이 탄압받았다는 데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 강행이 그런 이미지를 씌웠을지 몰라도 무산된 시도다. 기자 2014명이 답한 2021년 언론자유도 조사에선 2007년 조사 개시 이래 가장 점수가 높았다. 얼마 전 언론노조가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4년치 정부광고 내역을 보면, 동아, 중앙, 조선 순으로 많았다. 무슨 탄압이 이런가.

한 위원장이 새 정부로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 정권의 공공기관장 사퇴 압박 수사를 벌이는 지금 정권에서 위법 논란을 감수하며 방통위를 흔들 이유일까 싶다. 5기 방통위의 추진 과제는 인수위 국정과제와도 별 차이가 없다.

일정이 공교롭다. 한 위원장 임기 내인 내년 4월 티브이조선 재승인 심사가 돌아온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종편 심사가 3~5년으로 잦아 방송 경쟁력을 해친다고 콕 집어 말했다. ‘법정제재 처분 연간 5회 이내 유지’ 같은 재승인 조건은 종편의 공공연한 불만 사항이다.

지상파는 사장 임기가 있다. 문화방송 박성제 사장은 내년 2월까지다. 사장을 뽑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 임면권은 방통위에 있고 행정감사도 가능하다. 임기가 한참 남은 김의철 한국방송 사장과 이사들에 대해선 보수적인 한국방송노조가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한국방송·문화방송의 보수 노조들은 27일엔 한 위원장도 서울남부지검에 방송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형사고발 했다.

역사가 돌고 돈다 할지 모르겠다.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해임은 보수단체의 감사원 감사 청구가 시작이었다. 탄핵과 촛불, 방송사 구성원들의 수십일 파업이 있었다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방통위가 노조 청구에 따른 감사원 감사를 내세워 강규형 이사를 찍어 해임한 것 역시 절차적 공정성을 잃은 일이었다.

방통위 흔들기가 ‘방송 장악’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결국 방송사 지배구조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고 이용마 기자는 사장 선출에 시민참여 방안을 내놨었다. 지난달 조선일보에 ‘그래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개혁하는 게 옳다’는 칼럼을 쓴 보수적 언론학자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통화에서 “정치적 후견주의가 있는 한 어떤 공영방송 이사든 국민보다 자신을 뽑아준 정치진영의 목소리만 내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내 기득권층과 달리 이런 논란을 끊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사안만큼은 “이전 정부도 그러지 않았냐”는 말이 나오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