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우리가 빼앗아갈지 이재명이도 몰랐다"
[정영학 녹취록 보고서②] '시장님'은 그들을 싫어했고... "유동규에겐 본업 됐어"
<뉴스타파>가 12일 공개한 '대장동 정영학 녹취록'에는 대장동 개발업자 김만배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2020년 3월 13일 오후 6시 30분 ∼ 오후 9시 분당 ○○○]
김만배 "옛날에 이재명 시장이 MDM하고 이거를 남 변호사(남욱)나 시행업자들 걸 뺏어서 MDM하고 호반하고 공동 컨소시엄, 본인 있으니까 해라,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이게 시작이 된 거야. 그런데 이거를 우리가 뺏어갈지(빼앗아갈지) 이재명이도 몰랐고, 호반에 김상열(전 호반건설 회장)이도 몰랐고, MDM도 몰랐어. 응? '우리 것을 뺏어야지'라고 그랬는데, 뺏긴 거야."
'이거'는 대장동 사업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애초에는 부동산개발그룹 MDM과 호반건설을 사업에 참여시키려고 했는데, 이와 같은 구상이 대장동 일당에 의해 바뀌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맥락대로라면 이 대표가 대장동 일당에게 속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녹취록은 '우리'를 김만배+유동규로 지목하고 있다. 녹취록대로라면,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까지 이재명 대표를 속였다는 말이 된다. 김만배의 이 발언은 과연 사실에 얼마나 부합할까.
"시장님이 X라 싫어하지, 니네"
▲ 대장동 정영학 녹취록. 김만배의 말 "우리가 뺏어갈지 이재명이도 몰랐고..."
우선 MDM이나 호반건설이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호반건설의 경우, 앞서 진행된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에는 자회사를 통해 공동 컨소시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위례신도시 사업 특수목적법인(푸른위례프로젝트) 자산관리회사가 위례자산관리였는데, 이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 호반건설의 자회사인 티에스주택이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대장동 일당은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장동 일당이 보다 많은 시행이익을 가져가기 위해 대장동 사업에서 호반건설을 컨소시엄 구성에서 제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거를 우리가 뺏어갈지 호반에 김상열도 몰랐다"라는 김만배의 위 말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또한 '정영학 녹취록'에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에 남욱·정영학 등을 대장동 사업에서 가급적 배제하려 했던 정황도 확인할 수 있다.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욱은 정영학과의 통화에서 유동규와의 대화 내용을 전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2층'은 당시 성남시장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3월 21일 오전 11시 37분]
남욱과 정영학 통화 "시장님이 X라 싫어하지, 니네"
남욱 "(유동규가) 이거는 2층도 알아서는 안 되고, 그 다음에 너말고는, 니 부인도 알아서도 안되고, 라고 얘기를 하면서, 우리 둘만 평생 갖고 가."
정영학 "맞죠. 예, 예."
남욱 "그 정도 신뢰는 있어서 내가 얘기하는 거다 여태 지켜봤고, 그래서, '형님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했는데, 그리고 나서 이제 그런 사업적인 얘기를 쭉 하고 대장동 관련 얘기를 하면서 차 타고 올라오면서 제가 그랬어요. 시장님이 그런데, 형, 그런데, 시장님이 진짜 왜 이렇게 싫어하세요? 그랬더니, 졸라 싫어하지 니네."
정영학 "하하하."
남욱·정영학의 공통점
▲ 대장동 정영학 녹취록. 2013년 3월 21일 오전 11시 37분 통화에서 남욱은 "유동규가 시장님(이재명)이 X라 니네를 싫어한다"고 했다고 정영학에게 전했다.
녹취록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시장님이 남욱·정영학을 X라 싫어했던' 이유는 대장동 공영 개발이 무산됐던 과정을 돌아보면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10월 20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은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현 LH공사) 사장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신영수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공람이 끝나고 토지공사에서는 이것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전부터 대장동 주민들은 민간에서 추진하자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고 사장님께서 취임하시면서 '민간하고 경쟁하자는 사업은 안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국회 속기록 중)
대장동 공영개발을 문제삼는 이 같은 발언이 나오고 얼마 후였다. 신 의원 동생이자 특별보좌관이었던 신아무개씨에게 LH공사 사업 철회에 힘써달라며 지역 부동산 개발업체 '씨세븐' 이강길 당시 대표가 1억5000만 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이강길 대표의 자문역으로 함께 일했던 변호사가 바로 남욱이었다. 2010년 6월 28일 LH공사는 결국 공영개발을 포기하는데, 다음해 8월 남욱은 씨세븐 대표로 취임한다.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로서 그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정영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시기 그는 2009년 12월 1일 설립된 판교AMC(옛 대장AMC)에 몸을 담고 있었다. 이 회사는 대장동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의 자산관리사였는데, 이 회사에 남욱 또한 이강길 전 대표와 함께 이사로 그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남욱과 정영학, 이들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장동 민간 개발에 공을 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녹취록에서 두 사람은 대장동을 자신들의 '사업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2014년 11월 5일 오후 1시 15분]
남욱과 정영학 통화 "원래 우리 사업지 아니었나"
남욱 "(유동규가) 4천억짜리, 4천억짜리 도둑질하는데 완벽하게 하자. 야, 이거는 문제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거다. 그렇죠, 형. 4천억짜리 도둑질인데,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정영학 "아, 뭐, 그냥 뭐... 원래 우리 사업지였지 않습니까."
남욱 "아이, 그러니까요. 몇 년을 버텼는데."
정영학 "그럼요, 예."
당초 대장동 사업을 100%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이재명) 시장님'과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던 셈이다. 시장님과 남욱 등 사이에서 유동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녹취록으로 살펴볼 차례다.
"우리 둘만 평생 갖고 가자"고 했던 유동규의 바람과 달리 남욱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계속 정영학에게 전달한다.
▲ 남욱과 정영학은 오랫동안 대장동 민간 개발 사업에 공을 들였다. 좌측은 부동산 개발업체 '씨세븐' 법인등기부, 남욱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측은 역시 대장동 민간개발 추진 관계사 판교AMC 등기부다. 정영학도 비슷한 시기 이 회사에 재직중이었다.
키맨?
[2013년 4월 17일 오전 12시 12분]
남욱과 정영학 통화 "시장님한테 던져만 주면 된다"
남욱 "(유동규가) '죽어도 둘이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이제 평생',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형님 그랬더니, 그래, 니 알아서 잘 해라 그렇게 얘기하고. 그 다음에, 일 얘기를 꺼내더라구요. 니 동업자가 얘기하는데 내가 답을 안 해 줄 수가 없어서, 그 날 만배형이 가고 나서 얘기를 한참 했다. 그런데 이거는 그 날도 내가 명백하게 얘기했지만, 대장동에 관심 없다, 그런데 내가 시장님 설득할 수 있고,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결정할 문제 아니냐, 최종적으로. (중략) 거기서 나는 갭을 어떻게 할 건지 너랑 나랑 상의해서 하면 되고, 포장해 갖고 시장님한테 던져만 주면 된다."
최종 결정권자로 표현할 정도로 자신감을 나타냈던 유동규는 얼마 후 대화에서는 "대장동 사업이 무조건 성공해야 나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남욱은 정영학에게 유동규와의 대화를 이렇게 전한다.
[2013년 4월 30일 오후 1시 51분]
남욱과 정영학 통화 "무조건 성공시켜야. 나를(유동규) 위해서도"
남욱 "나(유동규)도 대장동 사업이 성공을 해야, 무조건 성공을 해야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다. 대장동 사업은 어떤 방법이든 무조건 성공을 시켜야 된다. 그런데 자, 내년 6월 선거를 앞두고 그 전에 터뜨릴지, 대장동을, 그 후에 터뜨릴지 고민을 같이 해서, 어떡하면 니네, 너도 돈벌이가 되고, 돈을 많이 이익을 극대화하고, 너도 이익을 극대화하고, 시장님 재선을 위해서 어떤 식의 도움이 되는지 서로 상의해서 조율을 하자.
우리 둘이 바운더리 딱 쳐놓고 아주 세밀하게, 그 저기 블록을 하나씩 하나씩 쌓으면서 완벽하게 일을 진행하자. 죽을 때까지 너하고 나 이제 한 몸 아니냐. 나도 너도 못 빠져나가고, 너도 나 죽으면 같이 죽는 거 아니냐. 예, 형님, 맞습니다, 그러니까, 너 일 문제에 대해서 걱정 있어? 없죠 형님. 그래 뭘 걱정을 해? 형이 다 알아서 할 건데, 너 원하는 대로 해줄 거고,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언제든지 얘기하면 내가 방향 잡아서 해줄 거고, 일 문제는 걱정하지 마, 딱 이거거든요."
"시장님 재선을 위해서"가 단순히 어떤 '충심'으로만 비치지는 않는다. 당시 유동규는 성남시 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대장동 사업'에서 유동규 본인이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녹취록에서 남욱은 유동규가 다음과 같이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무조건 성공시켜야 된다. 자기를 위해서도. 너도, 너야 무조건 올인한 놈이니까 당연한 거고. 자기도 마찬가지다."
남욱 "(유동규에게) 대장동은 본인 사업 됐어, 본인 사업"
녹취록에서 남욱의 전언에 따르면 유동규는 '키맨'으로서 '시장님이 남욱·정영학을 X라 싫어하는' 상황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4월 30일 오후 1시 51분]
남욱과 정영학 통화 "다 남욱이가 한 겁니다, 시장님"
남욱 "시장님 선거를 어떻게 우리가 당선시킬거냐에, 너랑 나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야 된다, 무조건. 그 다음에 은밀하게 선관위쪽 라인을 좀 대봐라, 너만, 아무도 모르게. 오늘 그 얘기까지 하더라고요. 선관위쪽 라인을 한 번 대서 라인을 하나 갖고 있어라. 요점은 그래서, 요점은 뭐냐면, 결국은 내가 이거 다 남욱이가 한 겁니다, 시장님, 이렇게까지 했습니다. 너 절대 안 죽일 거니까 걱정하지 마. 형이 다 해놓을 테니까 너 할 수 있는 것만 딱 해 놔. 나도 살고 너도 산다, 그래야."
이어지는 남욱의 대화 소감이 인상적이다.
남욱 "아이∼진짜, 형. 진짜 일은 이 정도까지 둘이 얘기하면. 야, 형이, 형이... 언제 한 번 내가 녹음해서 들려줘야 되는데, 진짜."
정영학 "아니, 아니예요."
남욱 "아니 진짜로 일은 막 그 본인(유동규)이 그, 진짜 너무 편한 사람들끼리 얘기하는 것처럼 얘기해요. 둘이 앉아갖고. 저는 대화를, 저는 대화를 거의 안 하니까요. 예예만 하니까. 그런데 본인 사업이야, 이게 지금. 대장동은 본인 사업이 됐어, 본인 사업."
정영학 "좋죠."
남욱이 보기에 대장동 사업은 유동규, 자신의 일이었다는 뜻이다. "우리(김만배+유동규)가 뺏어갈지 이재명이도 몰랐다"는 김만배의 그 말이 다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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