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미국의 동맹 중심 블록화는 전세계에 피해”
‘2023년 연례보고서’ 보호주의 질타
미국 vs 중국·러시아 양대 진영 블록화
세계 안보 불안과 빈곤·불평등 심화시켜
“재세계화로 자유무역 시스템 복원해야”
“세계 자유무역의 파편화(블록화)로 몇몇 나라는 이익을 보겠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패배자로 전락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12일 발표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파편화’라고 규정하고, 이에 따른 위험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보고서는 “더 안전하고, 포용적이며, 지속 가능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파편화를 멈추고,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교역하는 ‘재세계화’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동맹 중심 파편화 전략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도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다.
보고서는 1945년 이후 세계 평화와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유무역 시스템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빠른 속도로 파편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을 추종하는 블록과 중국과 러시아 우호 블록으로 분절돼 이전의 자유무역 시스템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제기되는 불만이 늘고, 정부 보조금을 받은 수입품을 겨냥해 관세를 부과하는 사례가 2020년부터 급증하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격화될수록 두 블록의 탈동조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처럼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등 전략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서는 국가도 늘고 있다. 문제는 그럴수록 자유무역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두 블록 간 무역 성장률은 동맹국 내부의 무역 성장률보다 4~6% 낮았다. 다만 이를 ‘탈세계화’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난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급감했던 세계 교역량도 꾸준히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 간 대결로 무역의 탈동조화가 심해지면, 자유무역 시스템에서 작동했던 세계 안보와 빈곤·불평등 퇴치, 기후 위기 대응 등 세계가 당면한 문제 해결이 힘들어질 수 있다.
자유무역은 안보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한 국가에서 특정 제품이나 자원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면 교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동맹국 간 교역에만 의존하는 ‘프랜드쇼어링’은, 교역 범위가 한정돼 위기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정치·외교적 갈등이 촉발되는 안보 위기 역시 자유무역이 활발하면 타협점을 찾기 더 쉽다.
자유무역은 빈곤과 불평등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무역을 통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이 부유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과 빈곤율의 상관관계를 보면, 교역량이 증가할수록 극단적 빈곤율은 감소했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되며 국가의 부가 증가하고, 빈곤 퇴치에 쓸 재정 여력이 생긴다. 수출을 통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편화된 세계에서는 자유무역 시스템에서와 달리 국가 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WTO의 시뮬레이션 결과, 자유무역이 제한됐을 때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선진국과의 격차도 더 벌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와 소득 수준이 낮은 가계에 더 큰 피해를 준다.
보고서는 “교역이 두 블록으로 분할되면, 전 세계의 실질소득이 5%가량 감소할 것”이라며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았던 개발도상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맹국 중심으로 무역이 블록화하면 기후 위기 대응에도 구멍이 생길 수 있다. 환경 문제는 블록 내 있는 동맹국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모든 국가가 협력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블록으로 두 진영이 대결하는 상황에서는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응집력 있는 정책과 환경 관련 기술을 확산시키기 위한, 세계적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랄프 오사 WTO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도전을 극복하려면 자유무역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자유무역 복원을 통한) 재세계화는 수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구하고 생활 수준을 높이는 강력한 수단”이라며, 이번 보고서의 작성 취지를 설명했다.
장박원 에디터jangbak6219@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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