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더러운 손 감싸기’
미국 법무부 감찰관실이 깨알같이 공개하고 있는 검사 비위 조사 결과들 중 최근 사례 몇가지다. 범죄 행위는 물론이고, 그에 미치지 않는 윤리규정 위반, 언뜻 사소해 보이는(?) 비위로도 검사들이 직을 떠난다.
이원석 검찰총장의 말마따나 법집행자는 “내 손이 깨끗해야 남의 죄를 단죄할 수 있다.”
미국에선 수사·기소·재판 과정에서 검사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알고도 감추거나, 보복 기소 등으로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에도 검찰에 남아있기 힘들다. 나아가 변호사 자격 박탈 등의 무거운 징계를 받기도 한다.
미국 법무부는 이런 유형의 비위를 다루는 별도의 감찰기구인 법조윤리실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비위를 저지른 ‘제 식구’를 검찰 스스로 엄정히 징계·수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울며 겨자먹기로 징계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진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성매매 현장에서 적발된 검사는 정직 3개월 징계에 그쳤고, 길거리에서 성추행하는 장면이 보도됐던 검사는 승진했고, ‘99만원 술접대’ 검사들도 아직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이 없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에 독자들도 신물이 날 것이다. ‘더러운 손 감싸기’로 바꿔 부르면 지겨움이 좀 덜어질까.
지난 9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안동완 검사는, 간첩으로 조작됐다가 누명을 벗은 유우성씨가 검찰을 비난하자, 그를 보복성으로 다시 기소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미 대법원이 2021년 이 기소를 ‘공소권 남용’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후 안 검사는 징계를 받기는커녕 승승장구했다. 탄핵소추 전날에도 주요 보직인 부산지검 2차장검사로 인사발령이 났다.
현재 탄핵소추 대상으로 거론되는 손준성 검사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 야당으로 하여금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기문란급 의혹이다.
그러나 대검찰청은 지난 4월 비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감찰을 종결했다. 손 검사는 이어 9월에는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재판도 끝나기 전에 감찰을 무혐의로 덮고 승진까지 시키는 것은, 다른 공무원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 모두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이 제일 싫다”던 이원석 총장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역시 탄핵소추가 추진되고 있는 이정섭 검사는, 자신이 수사했던 대기업의 부회장한테 리조트 접대를 받은 혐의, 처남이 운영하는 골프장 직원과 가사도우미 등의 범죄기록을 불법 조회해줬다는 혐의 등에 이어, 처남의 마약 혐의 수사가 석연찮게 무마된 데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그런데 지난달 17일 국정감사에서 이 검사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국회의원에게 신봉수 수원지검장은 “(의혹 제기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인지는 의문이 있다”고 했다.
이 또한 경악스럽다. 검찰이 얼마나 도덕적 무감각 상태, 국민 눈치조차 보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는지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검찰은 한달여 만인 지난 20일에야 압수수색을 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의혹 제보자인 이 검사 처남 부인의 실명 인터뷰가 공개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요즘 수사의 ‘기본’처럼 된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없었다.
‘선출되지 않은 최고의 권력’이라 할 검찰을 감시·견제하는 건 사실상 검찰 자신밖에 없다. 공수처도, 경찰도 지리멸렬하다. 그렇다면 남는 외부 견제기관은 국회뿐이다. 사실 모든 권력기관을 최종적으로 감시하는 것이야말로 주권자를 대표하는 국회의 역할이다. 미국 법무부 감찰관실이 비위 조사 결과를 의회에 보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의회가 직접 검사를 탄핵할 수도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구현하는 당연한 과정이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썩는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검찰이, 내부 비위에 대한 처리 권한까지 독점한다면 특권계급에 다름 아니다.
‘더러운 손’으로 법집행을 하는 공직자를 쫓아낼 수단조차 없다면, 국민이 그런 공직자한테 계속 수사·기소를 당해야 한다면, 더이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헌법의 탄핵소추권은 자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뻔뻔하게 국민 눈치도 보지 않는 권력이 등장할 경우,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직접 응징하도록 만들어놓은 안전판이다. 검찰의 자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해도 이 안전판에 기댈 필요는 없다.
미국 검사단체(National District Attorneys Association)가 만든 규약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검사는 정의를 추구하는 직분이라는 데 유념해야 한다. 검사가 이런 직분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시민의 신뢰를 잃었을 때는 스스로 사임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다시 확인하는 원칙, 법집행을 하는 손은 깨끗해야 하고 신뢰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정섭 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휘하는 위치였다는 점을 들어 “수사에 대한 보복과 압박”(한동훈 법무부 장관), “방탄 탄핵”(이원석 총장)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 검사처럼 의혹에 휩싸인 검사라면, 야당 대표 아니라 그 어떤 시민에 대한 수사라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목이 집중되는 수사일수록 손이 깨끗한 검사에게 맡겨야 한다. 야당 수사를 하는 검사이니 의혹이 있어도 그냥 놔두라는 주장이야말로 ‘깨끗한 손’ 원칙과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특권 논리다.
그러니 검사 탄핵을 두고 저렇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이런 검사가 그 직을 유지하는 것을 국민이 용인해야 하는가’라는, 명징하고도 민주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면 된다.
박용현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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