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작은 파우치’에 담긴 대통령의 불안감

道雨 2024. 2. 15. 09:52

‘작은 파우치’에 담긴 대통령의 불안감

 

 

 

윤석열 대통령에게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은 ‘실체 없이 잘못 부풀려진 허상’이다.

그러니 “그것(목사의 면담 요청)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좀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저 역시 그럴 때가 많다”며, 대수롭지 않은 사안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하다못해 “경위야 어떻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형식적 사과 한마디가 없다.

군사독재 시절을 빼고, 최고 권력자 가족의 부패 의혹에 이렇듯 무모하게 대응하고 넘어가는 대통령이 또 있었을까.

 

‘실체 없이 부풀려진 권력형 스캔들’의 대표적 사례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옷 로비 의혹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참으로 해괴한 사건이었다. 모 회장의 부인이 구속됐는데, 그 회장 부인이 남편의 구명을 위해 법무부 장관의 부인 등 고위 공직자 부인들에게 옷을 선물했다는 의혹이었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 썼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별검사제가 처음 도입됐다. 국회는 청문회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그렇게 국회 청문회와 특검 수사를 진행했지만, 밝혀진 건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성과는 없었다.

 

지금 김 여사의 명품백 스캔들을 수사하고 청문회를 해도 결과는 그때와 똑같을까.

윤 대통령 자신도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을까. 알 수 없다.

정치적 의미를 담은 대국민 사과를 끝내 거부한 건, 검사 출신의 본능적 자기방어로 읽힌다.

 

김대중 대통령은 ‘해괴한 사건’이라 생각하면서도 국민 의혹을 풀기 위해 특검을 수용했다. 윤 대통령은 아내를 둘러싼 의혹의 수사 또는 조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국민 모두가 사실을 아는데도, 오직 대통령 부부만 자기 확신의 모래성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옷 로비 스캔들이 한창일 때 김대중 대통령은 몽골을 방문했다. 국내가 시끄러우니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참모들의 건의에도, 김 대통령은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외교 성과를 알리고 싶었겠지만, 간담회는 예상대로 흘렀다. ‘김태정 법무부 장관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조사 결과 혐의가 없으면 법무부 장관을 퇴진시키지 않을 생각입니까?’ ‘이전부터 김태정 장관 임명에 비판이 많았는데….’ 세번 연속해서 옷 로비 사건을 묻는 질문이 대통령을 파고들었다.

요즘은 대통령 탓인지 아니면 언론이 부드러워선지 의혹을 추궁하는 잇따른 질문 공세를 볼 수가 없다.

 

그러고도 김 대통령은 성남공항 입국장에서 마중 나온 기자들을 또 만났다. 어김없이 옷 로비 질문이 나왔다. 좀 격앙된 대통령은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의 가족 문제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철저히 밝히겠지만, 마녀사냥은 안 된다.”

여론의 비판에 대통령은 ‘마녀사냥’ 발언을 재차 사과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눈엔 명품백 공세도 순진한 아내를 겨냥한 ‘마녀사냥’일 것이다. 새해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건, 마녀사냥에 편승한 언론의 화살을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일 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깨닫지 못한 게 있다.

과거 대통령들은 수많은 권력형 게이트를 ‘부당하다’ 여기면서도 국민에게 걱정을 안긴 점을 사과했고 진실 규명 의지를 내보였다. 윤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건 당당함이 아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허장성세로 보인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언론과 만나는 걸 피하지 않는 대통령과, 입맛에 맞는 방송사를 골라 단둘이서 대담하는 대통령은 분명 차이가 있다.

현안을 피하지 않고 날 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서도 똑같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을 흔히 ‘최고 사령관’이라 부르는 건 국군 통수권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말 아닌 행동으로 용기와 담대함을 보여줄 때 국민은 믿고 따르게 된다.

 

한국방송(KBS) 대담에서 국민이 본 건, 권력 스캔들에 대응하는 대통령의 자세였다. 아내를 위한 항변이든 대국민 사과든 왜 떳떳하게 국민 앞에 나서지 않고, 사흘이나 지난 녹화방송에서 일방적으로 말하고 끝내버리는가 하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명품백을 ‘파우치’란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다. 집권 여당은 ‘김건희 리스크는 우리가 안고 가겠다’며, 뜬금없는 살신성인 자세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참모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 권력자를 ‘진솔하다’고 추켜세운다.

 

이런 우군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자신이 알몸인 줄 모른 채 계속 거리를 활보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까지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가.

 

 

 

박찬수│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