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카이스트 ‘입틀막’이 환기하는 선택의 엄중함

道雨 2024. 2. 21. 09:21

카이스트 ‘입틀막’이 환기하는 선택의 엄중함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에서 벌어진 졸업생 ‘입틀막’ 사태는 여러모로 ‘징후적 사건’이다. 예외적인 일회성 사건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만큼 우리가 봉착한 위기의 실상을 다층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첫째, 권위주의의 부활과 민주주의 규범의 퇴행이다.

대통령경호처의 강제 입틀막은 불과 한달 만에 재현됐다. 지난 1월18일엔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한 뒤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집니다”라고 소리치다, 입이 틀어막혀 끌려나갔다. 그때도 과잉 경호, 권위주의적 폭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엔 그때처럼 근접한 상태도 아니었는데, “알앤디(R&D·연구개발)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자마자, 입틀막과 함께 들려 나갔다.

윤 대통령이 국민 입을 틀어막는 경호 방식에 대해 일말의 문제의식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경호처는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처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아무 말이 없다. 앞으로도 국회의원이건 보통 국민이건 윤 대통령을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입이 틀어 막히고 팔다리가 들려 내쳐질 것임을 침묵으로 예고하는 것이다. 공포를 심어 입을 막겠다는 묵시적 사인이다.

권력자가 국민의 목소리를 물리력으로 틀어막는 곳에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

 

* 16일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도중 한 석사 졸업생이 “알앤디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둘째, 국가 미래에 암운을 드리운 윤 정권의 유례없는 무능과 뻔뻔함 또한 환기된다.

이번 입틀막은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이 입을 막아서라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뭔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끌려 나간 카이스트 졸업생이 외친 건 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뜬금없이 “나눠먹기” 운운하며 연구개발 예산을 5조2천억원(16.6%)이나 잘랐다. 국회에서 야당 반대로 겨우 6천억원을 늘려, 최종 감액률은 14%가 됐다.

그 결과는 카이스트를 포함한 이공계 대학과 연구소의 무수한 프로젝트 중단과 축소다. 수많은 대학원생과 석박사들이 커리어가 끊기고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과학기술은 연속성이 중요하다. 한번 연구가 끊기면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기 십상이다. 설령 한두해 걸러 예산이 복원된다고 해도 이미 인재들이 떠나 황폐해진 연구 생태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중장기 국가 경쟁력에 치명상을 입힌 것과 같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퀀텀 점프’ 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가 연구개발 투자다. 특히 중진국 함정을 탈출하게 한 핵심 동력이었다.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맨 1997년 외환위기 때조차 연구개발 예산만큼은 10.9% 늘렸다. 아무리 배를 곯아도 새봄에 심을 씨앗은 남겨두는 농부의 심정으로, 국가 미래를 위한 종잣돈만큼은 조금이라도 키워가려 했다. 그걸 별다른 근거도 없이 대통령이 툭 던진 한마디에 싹둑 잘라먹었다.

 

윤 정권의 무능은 도를 넘은 지 오래고, 구석구석 폐해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중에서도 연구개발 예산 축소는 압권이요 금자탑이다. 그래놓고 윤 대통령은 졸업식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고 했다. 이런 걸 흰소리라고 하는 걸 게다.

윤 대통령 자신은 일방적으로 아무 말이나 툭툭 던지면서, 국민 쓴소리는 강제로 틀어막았다. 독재자라는 영어 단어 ‘딕테이터’(Dictator)는 ‘혼자 말하는 사람’을 뜻한다.

 

셋째, 우리가 맞이할 선택의 엄중함에 대해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여당에선 이번 입틀막을 두고 “교통사고 유발하고 보험금 뜯어내는 보험사기범 행태”(윤재옥 원내대표)라며 피해자를 비난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는 일엔 늘 그랬듯 입을 닫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과 ‘명품 백’ 추문에 대해 침묵과 맹종 모드로 전환한 행태의 재판이다.

 

이런 집권 세력이 총선에서 이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 뇌 속 도파민은 기대하지 않은 보상이 주어질 때 가장 많이 분출한다. 이러고도 심판받지 않았다는 자신감에 도취된 윤 대통령은, 남은 3년 국정을 지금 이상의 무능과 무책임, 무도함으로 채워갈 가능성이 크다. 그땐 나라가 어떤 꼴이 날지 상상조차 두렵다.

검찰은 야당·언론을 털고, 경찰은 집회를 강제 진압하고, 경호원은 국민 입을 틀어막는 지옥도가 펼쳐질지 모른다.

지금이 윤 대통령의 무능과 전횡에 브레이크를 걸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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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틀막’, 과잉 아닌 실패한 경호

 

 

* 지난 16일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도중 한 석사 졸업생이 “알앤디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근데 왜 하필이면 입부터 막았을까요?”

 

지난달,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사지가 잡혀 끌려나가는 일이 벌어졌을 때, 직장 동료는 의아해하며 지적했다. 위험한 행동을 제압하려고 할 땐 보통 상대의 팔이나 몸통부터 잡기 마련이지 않냐며.

맞는 말이다.

다른 경호원들이 힘을 보태러 달려오기 전까지, 가장 가까이 있던 경호원은 강 의원 입을 틀어막는 일부터 했다.

 

이번 카이스트 졸업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경호원의 억센 손은 제일 먼저 대통령에게 큰 소리로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졸업생의 입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경호처는 대통령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행위가 ‘가만히 서서 말하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심기 경호’라든지 ‘과잉 경호’라는 비판이 잇따르는 건 무리가 아니다.

 

물론 대통령실은 “경호 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고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소란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먼저 자제를 요청하고, 부득이할 때 두 팔을 잡고 끌고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어떤 경고와 제지 절차도 없이 엄연히 국민의 선출을 받은 국회의원의, 졸업식의 주인공인 졸업생의 팔 다리를 들어올려, 말그대로 안에서 밖으로 옮겨 버렸다.

마치 보기 싫은 물건을 대통령의 눈 앞에서 신속하게 치워버리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입틀막’으로 요약되는 장면이 보는 이들에게 주는 불쾌감과 모욕감도 있다. 나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경호원이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 너무 비위생적으로 느껴져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떤 국민도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진 않다.

욕설을 한 것도 아니다. 대통령을 향해 국정 기조를 바꾸시라고, 본인이 없앤 과학 연구 예산을 다시 복원하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마이크를 쥘 수도 없으니 멀리 떨어진 대통령에게도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을 뿐이다. 그런데 입이 막혔다.

잠시 들어주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국 대통령이 국민을 하대한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미지 관리도 엉망인데 메시지 관리도 마찬가지다. 여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은 바쁜 일정에도 특별히 과학기술계를 독려하고 축하하기 위해 학위 수여식에 간 것”이라며 “순수한 자리를 정치로 얼룩지게 하면 안된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곧 정치다. 수많은 대학 졸업식 중에 카이스트를 선택한 것부터가 이미 정치의 작동일 수밖에 없다. 순수한 자리 운운은 가당치도 않다. 더 화가 나는 건 이 세상에 정치로 얼룩지는 일이란 애당초 없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사리사욕이, 권력의 오작동이 국민들의 삶을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지게 할 뿐이다.

 

지금 여야 의원들은 과잉 경호다 아니다를 두고 말다툼을 하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것은 ‘실패한 경호’다. 경호처와 대통령이 합심해서 만든 민주주의의 실패다.

경호원들은 위험에 빠진 대통령을 안전하게 지킨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감하고 소통 의지가 없는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부각시켰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늘상 외치지만, 실제로 민주적 소통에는 매일 실패한다. 대통령이 자신과 부인의 안위만 지키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는 이때,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 실패에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가 국민의 몫이다.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