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논문 앞에서 머리 처박은 대학들
숙대, 조사한다 해놓고 2년 가까이 감감
표절했는데 연구부정이 아니라는 국민대
두 대학을 기다리고 있는 건 국민 특검
매화.
숙명여대의 교화(학교 꽃)다.
‘깨끗한 마음과 결백을 뜻하는 꽃이 바로 매화’라는 게 이 학교의 설명이다.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겸비한 직업인을 육성한다.”
이 대학의 교육목표 가운데 하나다.
현실은 어떤가?
국민대가 교육이념으로 내세우는 덕목 가운데 하나도 윤리의식이다.
“윤리의식을 갖추어 타인을 배려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대 교가에도 “진리를 찾아 광명한 세계로 나가는 우리”란 노랫말이 들어 있다.
수풀에 머리 처박은 두 마리 꿩의 윤리의식과 진리
이런 숙명여대와 국민대.
이 나라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무더기 표절 의혹 논문 앞에서 정말 ‘진리를 찾아 광명한 세계’로 나갔는가? 아니면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지 머리만 수풀에 쑥 처박은 꿩 신세로 전락했는가?
나는 ‘김건희 허위 이력과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기사를 2021년부터 최근까지 수백 개를 썼다. 이 사건을 무척 가까이에서 취재한 내가 볼 때, 지금 숙명여대와 국민대의 모습은 ‘진리의 상아탑’이 아닌 ‘머리 처박은 꿩’이라고 생각한다.
진리의 상아탑이란 말은, 속세의 이익을 떠나 오로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학문을 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이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들 두 대학에 대해서는 가당치도 않은 표현이다.
먼저 숙명여대 상황부터 보자.
이 대학은 김건희 논문에 대한 검증을 예비조사 시작 뒤 22개월째 계속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이 전국 대학의 검증규정을 살펴본 결과, 검증기간이 평균 4.7개월이었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숙명여대의 경우는 여느 대학의 5배 가까이 검증 기간이 비정상으로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숙명여대가 김건희 석사논문 ‘파울 클레(Paul Klee)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에 대해 예비조사를 시작한 때는 지난 2022년 2월이었다.
이어 이 대학은 2022년 12월 15일쯤 본조사에 늑장 착수하더니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이 대학 연구윤리진실성위 규정이 조사시한을 ‘3개월’로 못박아놨지만, 연기와 연기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22년 8월, 기다리다 못한 숙명여대 일부 교수들과 민주동문회는 김건희 논문 자체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표절률이 48.1%~54.9%가 나왔다.
학계에서 표절률이 15% 이상만 되어도 논문으로 간주하지 않는 관행으로 봤을 때 “이것은 표절 빼박”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숙대 학생과 동문, 교수들은 그 동안 ‘김건희 논문 검증 결과를 발표하라’는 1인 시위와 집회를 이어달리기 식으로 최근까지 이어왔지만, 이 대학은 꿈쩍도 않고 있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27일 논문 검증 관련 숙명여대 입장을 대변하는 관계자한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김건희 논문 검증 결과 발표를 아직도 안 하다니,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답변은 다음과 같다.
“이전에 말한 것 그대로다. 검증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연구윤리진실성위 상황에 대해서는 저희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이 대학 교수한테 전화를 걸어보았다. 숙명여대 동문이기도 한 이 교수는 “원래 논문 검증이 상식적으로, 통념적으로는 끝나야 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시간만 질질 끄는 것은 국민과 숙명인들을 기만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다음처럼 걱정했다.
“숙명여대 장윤금 총장도 임기 끝나면 교수로 오실 텐데, 나중에 학생 논문지도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 표절률이 50%가 넘는 논문에 대해 검증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건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럼 이 교수는 숙명여대가 시간을 끄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볼까?
예상한 대로 “용산 때문”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 쪽은 학교의 이익을 위한 길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그것이 몇몇을 위한 사익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건 숙명여대가 치명상을 입는 길일 뿐”이란 말도 함께 덧붙였다.
그렇다면 숙명여대는 앞으로 계속 버티기에 나설 것인가?
‘김건희 논문 검증 결과 발표’를 요구하며 몇 년째 1인 시위와 집회를 이끌어온 유영주 숙명여대 민주동문회장은 “장 총장 임기가 내년에 끝나는데, 그 때까지 버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실에서 김건희 논문 표절 내용을 많이 찾아낸 한 관계자도 “발표하지 않고 버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가 독특했다.
“대학 거덜 나고 문을 닫을 수도 있지 않겠나”
“‘시간 끌기’ 부끄러움은 순간이다. 숙명여대가 김건희 논문을 부정이라고 판정한 뒤 그 후폭풍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사학운영이 뻔한데 자칫하다간 대학이 거덜 나고 문을 닫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 논문 검증 결과를 이미 내놓은 국민대는 발 뻗고 자고 있을까?
2021년 7월 7일자 기사. <[단독] “김건희 박사논문 상황 엄중”…국민대, '연구윤리위' 조사 착수>.
내가 이 기사를 단독으로 쓸 때만 해도 ‘그래도 국민대가 살아있네’ 하고 생각했었다.
표절했는데 연구부정이 아니다?
그런데 국민대는 검증 결과 발표를 질질 끌었다. 그러더니 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5개월 뒤인 2022년 8월 1일 ‘김건희 면죄부 검증결과’를 내놨다. 2021년 7월 예비조사를 시작한 뒤 12개월 만이었다.
특허 내용 표절 논란을 받은 박사학위 논문(「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연구: '애니타' 개발과 시장적용을 중심으로」)과 황당한 영문 제목을 쓴 이른바 'Member Yuji' 논문(「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등 3편에 대해서는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한 학술지 논문(「온라인 쇼핑몰 소비자들의 구매 시 e-Satisfaction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검증 불가’ 판단했다.
하지만 국민대는 박사학위 논문 판단 이유에서 “일부 타인의 연구내용 또는 저작물의 출처표시를 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고 내용상 표절을 인정하면서도 연구부정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또한 특허권 문서 도용 의혹에 대해서도 “(제3의) 특허권자가 특허 관련 내용으로 학위논문 작성에 동의하였다는 사실 확인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봐줬다.
출처표시를 하지 않고 내용을 도둑질해도 표절이 아니고, 특허 내용을 논문에 갖다 썼는데도 특허권자가 동의했다면 표절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였다.
이 당시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다음처럼 개탄했다.
“국민대가 남이 특허를 낸 아이디어를 도용해 학위 논문을 쓴 것마저 다 괜찮다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문 윤리나 학위 논문에 대한 밑바닥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28일, 국회는 ‘김건희 특검’을 놓고 한 판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이 특검 수사대상엔 아쉽게도 김건희의 논문 표절 의혹과 국민대, 숙명여대의 방조 혐의는 들어 있지 않다.
두 대학을 기다리고 있는 것…국민 특검과 교육부 특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한다.”
우리 조상인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런 기상을 무척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반면, “진리를 찾아 광명한 세계로 나가는 우리”란 교가를 갖고 있는 국민대와 ‘결백’을 뜻하는 매화를 교화로 갖고 있는 숙명여대, 두 대학의 모습은 어떤가.
머리를 처박고 있는 꿩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쓴웃음을 줄 뿐이다.
두 대학은 끝내 피하지 못 할 것이다.
꽃 피는 춘삼월이 왔을 때, 다시 진행될 국민 특검과 교육부 특감(특별감사)을….
윤근혁 교육의 창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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