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파괴왕’ 윤석열 2년의 징비록

道雨 2024. 4. 29. 10:15

‘파괴왕’ 윤석열 2년의 징비록

 

 

기하학에서 무게중심은 지구의 중력이 질량을 가진 물체에 작용할 때 물체가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무게중심 같은 존재다. 진보의 꼭짓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회라는 도형이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다.

진보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앞으로 이끌지만, 보수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사회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국가의 품격을 최종 심급에서 결정하는 건 보수의 수준이다.

 

다만 사회는 정물이 아니라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체의 총화여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사회는 움직이는 도형과 같다.

정지 상태의 도형은 무게중심이 힘의 중심보다 낮을수록 안정적이지만, 동적인 상태에서는 무게중심이 힘의 중심(예를 들어 양력이 발생하는 공력중심)보다 높아야 안정적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강할 때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낮게 잡으면 도형이 엎어진다. 역사학에서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반면 근대의 미국이나 영국, 일본처럼 보수가 무게중심을 높여 변화(혁명을 예방하는 혁명)를 이끌면 큰 혼란 없이 나라의 안정과 부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의 보수는 변화와 안정을 선도하기는커녕, 정의와 책임 같은 보수의 전통적 가치마저 무시한다.

나라의 기본 토대인 세금을 ‘폭탄’으로 치부하여 조세저항을 부추기고, 법과 원칙을 휴지처럼 가볍게 여기고, 거짓말을 화장실 가듯 예사로 한다.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박근혜 정부의 폐허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했던 한국의 보수는, 때가 되면 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또 다른 ‘바지사장’을 찾아 나섰고, 민주당 정권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정의와 공정의 표상으로 둔갑시켜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국정농단의 악몽을 떠올릴 만큼 처참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한국의 보수가 이렇게 허약한 이유는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보수의 근본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2년은 보수 스스로 징비해야 할 전쟁 같은 재난이다.

윤 대통령은 불과 2년 만에 국가의 거의 모든 영역과 유무형의 기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뜨렸다.

 

윤석열 정부가 파괴한 목록을 10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①해병대 채 상병의 죽음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은폐와 축소를 통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를 무너뜨렸다. 핵심 피의자를 호주 대사로 빼돌렸다가 호주 상원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공영방송이 보도하는 등 나라를 국제적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②총선 전 대대적인 민생토론회 개최를 통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라는 헌법 규정을 조롱했다.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흔드는 초법적 행태를 비롯하여 헌법과 법률 무시가 일상이 됐다.

③여당을 대통령실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시켜 정치를 무력화했다.

④새만금 잼버리 행사,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국격을 실추했다.

⑤미·일 편중외교로 불필요한 지정학적 긴장과 대결을 자초했다.

⑥낡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맹신해 재정과 경제를 망쳤다.

⑦연구개발(R&D) 예산을 제멋대로 삭감해 과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미래 역량을 훼손했다.

⑧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에 대한 천대와 무시로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⑨검찰권의 편파적 남용을 유도하고 방조했다. 검찰이야말로 윤 대통령의 집권을 위해 동원된 가치(공정과 상식)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 수사와 기소 기능 분리는 필연적이다.

⑩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로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짓밟았다. 국정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파괴할 것은 자기 자신과 아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리적 보수의 관점에서 보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실무에 개입한 대통령실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국가와 군에 대한 의무를 다한 박정훈 대령이 보수에 걸맞은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박 대령 같은 사람을 투사로 만든다.

 

총선 참패 뒤에도 여당 안의 합리적 보수가 숨 쉴 공간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여야의 극단적인 대립을 비롯하여 우리 현대사가 노정한 불행의 대부분은 보수가 보수답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양비론으로 뭉갤 사안이 아니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청년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을 바꿔야 한다. ‘보수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이재성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