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업종별로 최저임금 낮춘다?" 경영계 주장은 '거짓'
[팩트체크] 업종별 차등적용 가능하지만 더 많이 지불하는 방식... "독일은 2배 이상 높아"
[검증대상] "선진국에선 업종별로 최저임금 낮출 수 있다" 경영계 주장
2025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지난 21일 시작된 가운데, '업종별 차등 적용'이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편의점과 택시운송업, 숙박·음식점업 등 3개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경영계 요구는 부결됐지만, 올해는 돌봄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쪽에서 나왔다.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은 지난 3월 5일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서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해당 업종에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20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월) 100만 원 정도에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내 법 한계로 200만 원 이상 지출해야 해 아쉽다"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와 육아 부부가) 윈윈할 수 있는 적절한 보수의 절충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2017년 대선 당시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공약했다. 지난해 10월 3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ILO(국제노동기구) 조항에서 탈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자영업자 목소리를 대신 전하기도 했다.
경영계는 업종별, 지역별,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주요 선진국 사례를 들어, 일부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에서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하향 적용한다는 경영계 주장이 사실인지 따져봤다.
[검증내용]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국가, 법정최저임금보다 상향 적용
우리나라도 법적으로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은 가능하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최저임금법 제4조 제1항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 도입 첫 해인 1988년에만 제조업을 2개 그룹으로 나눴을 뿐, 1989년 이후 지금까지 '전국 단일 최저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2023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전 세계 41개국 가운데 지역이나 업종, 직종,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국가는 22개국이었고, 우리나라처럼 전국 단일 최저임금제인 나라는 19개국이었다.
▲ 최저임금 차등 적용 국가 비교 * 자료 : 최저임금위원회 <2023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리의 허구성> 등 자료 취합 ⓒ 김시연
연방제 국가인 미국을 비롯해, 중국,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은 지역별 차등을 두고 있었고, 일본, 브라질, 멕시코, 필리핀 등은 지역 내에서 업종별, 직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었다.
독일, 호주, 벨기에 등은 업종별, 산업별 단체협약을 통해 국가최저임금(법정최저임금)과 동일하거나 이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었고, 아일랜드는 계약청소와 보안, 조기교육 및 보육, 루마니아는 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 한해 국가최저임금보다 상향 적용하고 있었다.
이밖에 그리스는 직원과 장인, 코스타리카는 사무직과 비사무직 등 직종별로, 영국은 23세 미만 노동자에 연령별 차등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농업과 화훼업에 한해 주 최저임금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스위스 제네바주를 제외하면, 특정 업종에 대해 국가최저임금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국가는 없었다.
프랑스, 폴란드, 라트비아, 헝가리, 튀르키예, 대만 등 19개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국 단일 국가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경우 가사노동과 농촌노동자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도소매와 계약직 청소 노동자 등 일부 분야에 국가최저임금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었고, 스페인도 임시직과 가사근로자에 최저임금을 가산하고 있었다.
오세훈 시장이 예로 든 싱가포르는 최저임금제도가 없고, 홍콩은 ILO에 가입돼있지 않아 외국인 대상 하향 차등 임금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경영계 주장처럼 이미 법정최저임금을 적용한 상태에서 특정 업종에 한해 '하향' 적용한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ILO "업종별 최저임금, 국가최저임금보다 낮으면 차별금지 협약 위배"
국제노동기구(ILO)도 지난 2016년 8월 발표한 '최저임금 정책 가이드((Minimum Wage Policy Guide)'에서 업종별 최저임금이 국가최저임금보다 낮게 책정할 경우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제111호)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지난 1998년 ILO 차별금지 협약을 비준했다.
2022년 9월 고려대 법학연구원 학술지 <고려법학>에 실린 논문 '최저임금의 산업·업종별 차등적용에 관한 법이론적 검토'에서 이재현(부산대 법학연구소) 박사는 "다른 국가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산업·업종별 차등 최저임금은 법정 단일 최저임금을 보완하고, 산업·업종의 특성을 고려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형성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정 단일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산업·업종별 차등 최저임금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아울러 사용자의 지불여력 등을 고려해 업종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경영계 주장에 대해서도 "산업·업종별 차등 최저임금을 정하는 목적과 취지가 분명해야 하고, 이것이 헌법과 최저임금법에서 정하는 제도의 목적·취지에도 부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업종별 최저임금 낮춘 사례 없어" vs. 경영계 "지불여력 차이도 고려해야"
▲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 출범' 한국노총, 민주노총, 전국여성노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실질임금 하락으로 저임금 노동자 생존권이 위협 받음에 따라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전 사회적 운동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 지원이 시급하다"며 "현대판 신분제도 업종별 차별 적용 저지 및 최저임금 사각지대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대상 확대를 위해 최저임금 운동본부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출범선언을 발표했다. ⓒ 이정민
지난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돌봄서비스업을 비롯해 농림어업과 숙박음식점업 등에서 법정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이 다른 업종보다 높은 이유는 최저임금의 일률적 인상 때문이라며 "업종에 따른 경영여건 및 지불여력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현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1일 <오마이뉴스>에 "가사노동과 같은 특정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국가최저임금보다 낮춘 사례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단체협약을 통해 정한 업종별 최저임금이 국가최저임금보다 2배 이상 높고, 루마니아도 숙련노동에 대해 더 높은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법정최저임금보다 더 낮출 수 있게 하자는 우리나라 경영계 주장과 정반대"라고 했다.
그는 "경영계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업종에 차등 적용하자고 주장하는데, 최저임금 도입 취지 자체가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이 정도는 줘야 한다는 하한선을 정한 것이어서, 사용자의 지불능력을 가지고 따지자는 건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양근원 경총 경제조사본부 임금HR정책팀장은 이날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사용자의 지불 능력이 명시되진 않았지만, 사업주가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일자리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근로자 사정만 고려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우리나라는 최근 최저임금이 너무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최저임금 미만율도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에, 최저임금 수용능력이 떨어진 업종별 구분 적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일부 업종의 경우 생산성에 맞게 내릴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외국의 경우 처음부터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인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정된 경우이고, 우리나라처럼 단일 최저임금을 하다 (차등 적용으로) 바꾼 사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증결과] "선진국에선 업종별 최저임금 하향 차등적용" 경영계 주장은 '거짓'
경영계에선 주요 선진국에서도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돌봄서비스업 등 특정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ILO에서는 업종별 최저임금이 법정최저임금보다 낮을 경우 차별 금지 협약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고, 주요 선진국에서도 업종별 최저임금을 법정최저임금보다 상향 적용하고 있다.
경영계 주장은 마치 선진국에서 업종별 최저임금을 더 낮추고 있는 것으로 왜곡하고 있어 '거짓'으로 판정한다.
"선진국에선 돌봄서비스 등 업종별 최저임금 더 낮출 수 있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거짓
- 주장일
2024.03.05
- 출처
한국은행,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출처링크
- 근거자료
최저임금위원회, '2023년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2023.8.7.)자료링크최저임금위원회, '2022년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2022.8.8.)자료링크민주노동연구원 워킹페이퍼,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리의 허구성'(2024.4.29.)자료링크한국경제연구원, 최저임금의 쟁점과 경제적 영향(2023.11.23.)자료링크한국경영인총협회(경총), '2023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발표(2024.5.16.)자료링크이재현, '최저임금의 산업·업종별 차등적용에 관한 법 이론적 검토'(고려대 법학연구원, '고려법학', 2022.09)자료링크ILO, 'Minimum wage policy guide'(2016.8.)자료링크조현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오마이뉴스 인터뷰(2024.5.21.)자료링크양근원 경총 경제조사본부 임금HR정책팀장, 오마이뉴스 인터뷰(2024.5.21.)자료링크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오마이뉴스 인터뷰(2024.5.21.)자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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