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급하다더니…말 바꿔 무산시킨 윤 대통령
정부 출범 초기 “모수개혁 초당적 합의”
야당서 국힘 절충안 받자 “구조개혁 동시에”
두 개혁 동시 추진은 연금개혁 말자는 것
구조개혁 이해당사자 많아 부지 하세월
노인 빈곤율 낮추고 기금고갈 늦추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수개혁부터 끝내야
국민연금 개혁이 결국 물 건너 갔다. 여야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인 28일까지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하지 못했다. 22대 국회로 넘겨 논의하기로 했으나 합의 실패가 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어깃장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전망은 불투명하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국민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이중성을 보였다. 말로는 개혁이 시급하다면서 핵심 사안이자 연금 개혁의 출발점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제시한 보험료 13% 인상, 소득대체율 44% 안을 수용하겠다고 했는데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구조개혁’ 논의가 빠졌다며 모수 개혁 기회를 막았다.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달랐다. 시간을 되돌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인 2022년 8월로 가보자. 당시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대 정부는 연금제도 전반을 재조정하는 구조개혁을 아직 못했다. 그 이유는 굉장히 다양한 제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에 시간이 걸리는 시간이 선진국의 예를 보면 10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반면 보험료율 인상이나 소득대체율 상향 등 수치 조정을 통해 재정 균형을 맞추는 모수 개혁 정도는 초당적으로 합의할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있다. 지난 정부(문재인 정부)가 세 가지 안을 냈고, 국회에서 한 가지 안을 더해서 떠돌다가 표류 끝에 아무 개혁도 없이 지나간 첫 번째 정부가 됐다. 국민연금의 모수 개혁에 대해선 조만간 보건복지부가 중심을 잡고 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안 전 수석은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도 구조개혁보다 모수 개혁에 중점을 두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1대 국회에서 모수 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요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더욱이 국민의힘 안을 100% 수용하겠다고 했다. 만약 대통령실의 말이 진심이었다면 이 대표 제안을 즉각 받아들였어야 했다. 역대 정부가 못했던 연금 개혁의 추진동력을 얻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말을 바꿨다. 연금 개혁이 민주당 주도로 진행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 특위)는 2022년 10월 첫 회의를 시작으로 1년 7개월 동안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했다. 여야는 재정 안정성을 담보할 보험료율 인상과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위한 소득대체율 상향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특위가 실시한 연금 개혁 공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갔고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최종 협상안으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민주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를 각각 제시했다. 보험료율은 합의안이 나왔고 소득대체율은 단 2%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앞두고 평행선을 달리자 이재명 대표가 지난 25일 국민의힘의 ‘소득대체율 44%’ 절충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1대 국회에서 모수 개혁을 마무리하고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논의하자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기 제시했던 방향성과 일치하는 제안이었다. 국회 연금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도 우선 모수 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 여야 국민연금 최종 개혁안. 연합뉴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절충안의 부대 조건인 구조개혁 없이 21대 국회에서 모수 개혁만 추진하는 방안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면서 22대 국회에서 모수 개혁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자며 이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를 꾸리자고 민주당에 역제안했다. 이 방안이야말로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연금 개혁 방향성과 결이 다른 의견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주었다. 여야가 합의점을 도출하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22대 국회에서 충실히 논의해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은 29일 CBS라디오에 나와 21대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이 무산된 것이 전적으로 여당인 국민의힘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김 의장은 “과거에는 여당이 먼저 그거(모수 개혁)라도 하자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채상병 특검’ 때문이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다”며 불편함 심기를 토로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사회수석비서관인 안 전 수석이 지적했듯이 연금 구조개혁은 공무원과 군인 등 각종 특수직역 연금 통합과 기초연금 간의 관계 설정까지 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이해당사자들이 너무 많아 합의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연금제도를 수십 년 연구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구조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전문가마다 다 다르다. 다소 과장해 말하면 ‘백인 백색’이다.
구조개혁에 대한 합의는 22대 국회는커녕 23, 24대 국회에서도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국민의힘이 22대 국회에서 모수 개혁과 구조개혁을 같이 논의하자는 것은 연금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더욱이 ‘채해병 특검’을 비롯해 사사건건 여야가 싸우는 상황에서 연금 논의가 진전될 리 만무하다. 2026년 지방선거에 이어 202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선거를 앞두고 연금 가입자들이 반발이 뻔한 연금 개혁을 추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공적 연금 월별 수급액. 연합뉴스
지난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1998년과 2007년 단 두 차례 개혁이 이루어졌다. 1차 개혁 때는 소득대체율이 70%에서 60%로 떨어졌고 2차 개혁 때는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낮추기로 했다. 보험료율은 1998년 9%로 인상된 뒤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국민연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난해 3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현행 제도대로 유지된다면 2041년부터 국민연금 재정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55년 기금이 바닥난다. 소득대체율 상향도 시급한 문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의 약 3배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빈곤율을 낮출 수 있다. 이처럼 시급한 사안인데도 대통령실은 말을 바꾸고 국민의힘은 억지를 부려 연금 개혁을 무산시켰다.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장박원 에디터jangbak6219@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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