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기나? 중러와 미일의 동남아·남태평양 확보전쟁
ASEAN 10국 절반 이상이 브릭스 가입 움직임
“중진국 벗어나려면 중국이 필요”
올 가을 러시아 브릭스 회의 때 가입 잇따를 전망
OECD 가입 대 브릭스 가입
일본의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또다른 대항장치
미국도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개최로 맞대응
미국과 중국을 두 축으로 한 대립구도가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지역까지 확장되면서 이들 지역 국가들을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는 진영간 세력확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25일부터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외교장관회의에서,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다수의 아세안 가입국들이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국들 협력기구인 브릭스(BRICS)에 가입할 의사를 밝혀 주목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일본이 남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도쿄로 불러들여, 최근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남태평양 지원 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지원방안들을 제시했다.
ASEAN 10국 절반 이상이 브릭스 가입 움직임
이들 지역 소식에 밝은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의 일본 언론 매체들에 따르면,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 아세안 외교장관회의를 처음 개최한 라오스는, 중국, 러시아와 3국 외교장관회의를 따로 열어 “라오스의 브릭스 참여”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
태국 정부는 이미 지난 6월에 브릭스에 가입 신청을 했다. 마릿 태국 외교장관은 6월 11일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개도국 대화’ 모임에 참석해 “세계가 다극화 쪽으로 근본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가운데, 브릭스는 신흥 개도국들의 이익을 증대시켜 준다”고 치켜세웠다. 마릿 장관은 그에 앞서 중국과 인도를 방문해 브릭스 가입과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번 외교장관회의에 동행한 태국 외교관은 “브릭스 가입은 중국에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로도 경제협력 틀을 넓히고 다각화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중진국 벗어나려면 중국이 필요”
말레이시아도 브릭스 가입을 위한 절차를 곧 시작한다고 말레이시아 국영 <베르나마 통신>이 지난 6월 보도했다.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장기간에 걸쳐 중소득국(중진국)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 말레이시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의 다니구치 유키코 연구원은 “비약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세안에서는 이들 나라 외에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도 브릭스 가입 의욕을 보여, 아세안 10개국 중 반수 이상이 가입의사를 나타냈다.
아세안 가입국의 한 외교관은 “글로벌 사우스(개도국)에게는 주요 7개국(G7)이나 주요 20개국(G20)의 경제 패권에 대한 대항축으로서의 브릭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언론 매체의 한 기자는 “브릭스에 들어가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대국 지도자와 논의를 하게 돼, 국제적인 발언력이 커진다”는 기대가 있다고 했다.
올 가을 러시아 브릭스 회의 때 가입 잇따를 전망
지난해 8월의 브릭스 정상회의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초대를 받았으나 가입하진 않았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브릭스 신규 가입이 이어지고 있으나, 동아시아 쪽에는 아직 정식 가입국이 없어, 아시아로의 브릭스 확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가 브릭스 확대에 적극적이어서, 올 가을 러시아에서 개최될 브릭스 확대 정상회의 때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잇따라 가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매체들은 내다봤다.
OECD 가입 대 브릭스 가입
인도네시아의 외교관은 “브릭스 가입을 검토하고 있는 나라들은 중국과 관계가 깊은 나라들이다. 경제적인 관계 강화는 결국 정치적인 관계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 대해 브릭스 가입을 찬성하는 나라의 한 외교관은, 인도네시아가 태국과 함께 구미 주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신청을 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브릭스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자국의 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은 어느 나라에게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라며 반박했다.
일본의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또다른 대항장치
한편 이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도쿄에서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가 열려, 솔로몬 군도와 나우루, 팔라우, 바누아투 등 남태평양지역 섬나라 정상들이 참석했다.
브릭스의 아시아 확대에 적극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한 또 다른 대항 장치인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개최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도서국들을 어떻게든 미국 일본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일본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아사히>는 25일 기사에서 지적했다.
18일 회의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는 “(일본과 도서국들은)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가치,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남태평양지역에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회의에서 처음으로 정상들 선언 속에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한 반대”가 명기된 것도, 일본 쪽의 그런 계산이 작용한 결과다.
일본은 1997년부터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열어 오면서, 개도국에 대한 정부 개발원조(ODA)를 통한 지원으로 태평양 도서지역을 포섭해 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면서 일본과 미국에서는 위기감이 커졌다.
미국도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개최로 맞대응
지정학적으로 남태평양 지역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일 두 나라가 충돌한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이 이들 지역 섬을 보급로로 확보해 전쟁에서 이겼다. 중국에게도 이 지역은 자국 해상운송로로 중요한 곳이다. 중국이 최근 이 지역에서 과감한 개발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 가자, 미국 바이든 정부는 2022년 9월에 처음으로 미국-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열었다. 그때 미국이 내세운 ‘태평양 파트너십’ 전략은 “중국의 압력과 경제적 위압이 이 지역과 미국의 평화와 번영, 안전을 해칠 위험성이 있다”고 명기해 이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선언했다.
미국과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 등의 산호초들을 인공적으로 확장해 군사 거점을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실효지배를 강화하자, 남태평양 지역에서도 뒤늦은 대처로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미일은 호주와 함께 중국의 해양진출 막기 위해 태평양 도서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2023년에는 ‘정부 안전보장능력강화 지원(OSA)’의 첫 사례로 피지 해군에 경계 감시용 경비정 등을 공여하기로 했다. 최근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솔로몬 군도에 대해서도 현지 경찰에 불발탄 처리 능력을 구축하기 위한 지원 등 안보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발표된 ‘공동행동계획’에는 해상자위대 함선의 기항 등을 통한 군사교류 강화책도 명기됐다.
일본의 고민은 중국과의 경제력 격차 확대
하지만 일본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중국과의 경제력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2023년에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독일에도 뒤져 세계 4위로 떨어졌다. 조만간 인도에도 뒤져 세계 5위로 내려간다. 이런 현실에서 “지원 규모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어렵다”고 일본 외무성 간부는 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번 회의 정상선언에서도 도서국들의 관심이 높은 기후변동 문제를 “유일 최대의 위협”으로 설정하고, 방재능력 강화 등으로 “도서국들의 대처를 지원”하겠다고 명기했다.
남태평양 확보를 위한 팽팽한 줄다리기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가 열리기 바로 며칠 전인 지난 12일, 솔로문 군도의 마넬레 총리는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고 “대만 독립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시진핑 주석과 회담한 바누아투의 살와이 총리도 대만문제뿐만 아니라 “신장, 홍콩, 티베트, 인권,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은 아무런 정치적 조건 없이 경제와 기술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일본이 주최한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가 열리기 바로 전에, 주요 도서국 총리들을 베이징으로 불러 이렇게 선수를 쳤다.
중국은 2006년에 ‘태평양 도서국 협력포럼’을 처음 열어 경제 지원과 인프라 투자에 나서면서, 태평양 섬나라들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오키나와에서 대만, 그리고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제1 열도선 바깥으로 일본 혼슈에서 필리핀 바깥, 괌, 뉴기니 섬으로 이어지는 제2 열도선을 설정해, 남태평양 주요 도서국 해역들을 자국이 확보해야 할 해상 교통로 중시하고 있다.
미국이 한일 및 필리핀과 각기 동맹관계를 맺고, 영국 호주와는 오커스(AUKUS)라는 안보협력체제를 만들어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은 이에 대항해 2022년 솔로몬 군도와 안전보장협정, 2023년에는 경찰협력협정을 체결했으며, 2024년 1월에는 파푸아뉴기니에 경찰과 안전보장 분야 지원을 제안했다.
솔로몬 군도에는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중국 지원’(CHINA AID)으로 만들어졌으며,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는 솔로몬 군도의 소가바레 당시 총리가 2011년 3월 대지진 때 쓰나미로 폭발사고를 일으킨 일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핵 오염수의 해양 투기 조치를 비난하면서 중국의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
다수의 태평양 도서국들이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 투기를 비판하는 것은, 그들 나라의 친중국 자세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중국 접근을 더욱 촉발시킨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2019년에 솔로몬 군도는 키리바시와 함께 잇따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2024년에는 나우루도 이 대열헤 합류했다.
팔라우와 마샬 군도, 투발루 등 3국은 지금도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이 지역 정세는 ‘친중국 정권’이 늘어나면서 중국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이 협력해서 도서국 지원을 강화하면서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대 일로’를 앞세워 이 지역에도 과감하게 대형 인프라 건설 투자를 발빠르게 전개해 온 중국의 전략은, 이 지역 도서국들에 새롭고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공했다.
“중국의 투자 확대로 섬나라들의 경제 기회가 확대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세가와 노리유키 긴키대 교수(국제정치)는 말했다.
두 경쟁자들을 자극해 더 많은 지원 받아내기
게다가 최근에는 그런 중국에 대항해 서방 쪽도 지원을 늘리고 있어, 이 지역 도서국들에 대한 원조가 질과 양 모두 향상되고 있고, 그 만큼 미중 중심의 대립구도가 강화되면서, 도서국들은 이를 더 많은 지원을 더 효과적으로 얻어내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대립(구도)에 말려들지 말고 그 사이를 요령있게 헤엄쳐 가겠다는 것이 속내”라고, 솔로몬 군도의 언론 관계자가 자국의 외교방침에 대해 얘기한 것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솔로몬 군도는 2019년에 소가바레 총리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지원과 인프라(기반시설) 투자를 받아냈다.
2022년 4월에는 안전보장협정을 체결해 ‘친중파’로 주목받으면서 장차 중국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거기에 포함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이는 “중국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다른 나라를 자극해, 양쪽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노림수”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전략은 효과를 발휘해, 솔로몬 군도와 중국이 급속히 접근하는데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2022년 9월에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불러들인 회의를 처음으로 열고, 그 지역에 8억 1천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조 53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30년만에 솔로몬 군도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지난 5월 소가바레 뒤를 이은 마넬레 총리는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우리의 개발목표는 어느 한 파트너에만 의존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며, 여러 나라들과 두루 제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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