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사법부 보수화의 끝…대법까지 윤미향 마녀사냥 가담

道雨 2024. 11. 15. 12:25

사법부 보수화의 끝…대법까지 윤미향 마녀사냥 가담

 

 

 

대법원,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원심 판결 확정

앞뒤 안 맞는 2심 재판부 판결 그대로 인정해준 대법

여가부·문체부 국고금 같은데 하나는 유죄 하나는 무죄

장례조의금 모으는 게 사회 상규에 맞지 않는다는 법원

3만원도 안되는 할머니 간식비 등 무더기로 횡령 유죄

그렇게 마녀사냥 하더니…8개 혐의 중 3개만 겨우 인정

김복동의 희망 "역사부정 세력에 동조한 부당한 판결"

윤미향 "위안부 피해자에게 한 약속 지키며 살아갈 것"

 

 

* 2019년 1월 30일 당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입관식을 마친 뒤 조문하고 있다. 2019.1.30. 연합뉴스

 

 

 

지난 4년 검찰의 집요한 '먼지떨이' '표적 수사'와 언론의 '마녀사냥'은 결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30여 년 거리에서 투쟁한 활동가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친일·극우 세력이 대놓고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 속에, 보수 사법부가 내린 판단은 치명적인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4일 업무상횡령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윤 전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사기죄, 보조금법 위반죄, 업무상횡령죄, 기부금품법 위반죄 등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윤 전 의원이 지난 2011∼2020년 위안부 피해자를 돕기 위해 모금한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서울시 보조금 등을 허위로 수령하거나 관할관청 등록 없이 단체 및 개인 계좌로 기부금품을 모집했다는 혐의를 씌워, 2020년 9월 재판에 넘겼다.

 

이후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윤 전 의원에게 적용된 8개 혐의 가운데 7개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고, 1718만 원에 대한 횡령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해 철퇴를 가하며, 윤 전 의원에게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린 셈이다.

 

이에 2심 재판에서 윤 전 의원은 법원이 횡령으로 판단한 금액과 관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간식비와 식비까지 일일이 확인해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오히려 횡령액 범위를 대폭 늘리고, 유죄 혐의를 추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2심 재판부는 후원금 횡령 액수를 1718만 원에서 7958만 원으로 대폭 늘린 한편, 김복동 할머니 시민사회장(葬)을 위한 1억 2967만 원 모금과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6520만 원의 국고보조금 등에 대해서도 유죄 판단을 내렸다. 1심보다 2개의 혐의가 유죄로 추가된 것이다.

 

이날 대법원이 2심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윤 전 의원은 검찰이 기소한 8개 혐의 중 3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게 됐다. 검찰과 윤 전 의원 측은 모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양쪽의 상고를 전부 기각했다.

 

* 윤미향 전 국회의원 대법원 선고 보도자료. 1심과 2심 판단. 2024.11.14. 대법원

 

 

 

마녀사냥만 드러난 대법원 선고

 

그러나 대법원이 확정한 2심 판결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재판부의 판단이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첫째, 여성가족부(여가부)에서 받은 국고보조금을 편취했다는 혐의는, 여가부 국고보조금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들의 인건비로 지급하고, 활동가들이 받은 인건비를 다시 정대협에 기부한 것이 사기 및 보조금 관리 위반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무죄 판단을 했던 1심 재판부는, 활동가가 기부를 위해 단체 계좌로 이체한 데 대해 "강제로 보조금을 기부 내지 반납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보조금 사업을 수행한 기간 동안 (활동가들이) 월급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던 적은 없다"며, 보조금이 이상없이 집행됐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국세청 소득신고 누락, 기부금 영수증 미발급, 회계장부 허위 기재 등 검사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처음부터 보조금을 인건비가 아닌 정대협의 운영비 등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기망 및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시민단체 특성상 미숙한 회계처리를 문제삼아 처벌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해자 대한민국을 기망해 국고보조금을 교부받음과 동시에 거짓 신청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았다"고 판단을 완전히 뒤집었다. 낮은 임금을 받는 활동가들이 기부까지 하며 사회운동에 헌신한 행위가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2심 재판부의 판단의 납득이 어려운 점은, 검찰이 여가부 보조금과 똑같은 문제를 제기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국고보조금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2심 재판부는 문체부 국고보조금에 대해 "전문회계 인력을 갖추기 어려운 시민단체의 특성상 회계담당자의 업무 미숙으로 인해 (…) 일련의 회계처리를 정확히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회계부정 또는 기망이 있다고 평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판단을 했음에도 여가부 보조금만 유죄 판단을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당시 조의금과 장례위원을 모으던 웹자보, 이런 시민사회장이 모두 불법과 범죄라는 말인가?

 

 

 

둘째, 김복동 할머니 장례조의금 모금이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1심 재판부는 김 할머니의 시민사회장을 위해 장례비를 모집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며 무죄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장례위원회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이자 상주인 윤 전 의원의 계좌와 현장 조의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 장례식과 다르지 않고, 남은 장례비로 할머니의 유지에 따라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록집을 출간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 역시 수단, 방법 등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장례비를 시민들이 모금한 데 대해 "쉽게 기부금품법상 규제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해 성숙한 기부 문화 조성을 방해할 수 있다" "자칫 모든 시민사회장이 기부금품법의 규제를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유죄 판단했다. 장례의 특수성과 긴급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증빙을 했음에도 횡령 액수가 늘어난 부분 역시 상식적인 판단인지 의문이다. 회계기준이 미흡하던 시절, 활동가들이 '선(先) 지출'한 뒤 '후(後) 보전' 받는 방식에 대해 법원은 모두 횡령으로 문제 삼았는데, 이는 일반 회사에서도 이뤄지는 회계처리 방식이다. 이를 모두 횡령이라 판단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그뿐 아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지출 내역에 대해서도 무더기로 유죄(횡령)로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윤 전 의원이 할머니들과 함께 해외나 지방 등을 순회하며 사용한 경비나 식사 비용, 간식 비용 등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된 비용들을, '납득할 만한 설명과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무더기 유죄 판단했다. 심지어 결제 장소 등을 통해 유추가 가능함에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유죄라 판단했다.

 

* 1심에서 무죄였다가 2심에서 유죄로 바뀐 횡령금액. 2심 재판부는 결제 장소 등으로 유추가 가능함에도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1만원대 할머니들 사용 경비까지 횡령이라 판단했다. 2024.11.14. 대법원

 

 

 

진보성향 주심인데도 이런 결론이라니

 

윤 전 의원은 비록 유죄를 확정 받았지만, 이번 선고를 통해 지난 4년간 윤 전 의원에게 행해진 검찰의 표적수사와 언론의 여론몰이가 얼마나 불편부당했는지는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안성쉼터를 비싸게 매입했다는 혐의(업무상 배임) ▲안성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소로 운영했다는 혐의(공중위생관리법 위반) ▲치매를 앓는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 중 일부인 5000만 원을 포함해 7920만 원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게 했다는 혐의(준사기) 등, 검찰과 언론이 주장한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과 언론의 침소봉대는 지난 2020년 언론이 윤 전 의원을 '마녀사냥'하던 시기, 검찰이 제기한 혐의들이 무더기로 불기소된 데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정의연 등 단체 자금을 유용해 딸의 유학비를 지출하고 아파트를 사들였다는 의혹 ▲남편이 운영하는 신문사에 정의연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 ▲맥줏집에서 3300만 원을 지출했다는 의혹 등 11개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다만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렸던 1심을 고려했을 때, 8개 혐의 중 3개를 유죄로 인정한 이번 대법원 선고가 합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윤 전 의원에 대한 수사는 시작 단계부터 특정 정치인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가 뚜렷했지만, 사법부는 검찰을 견제하지 못한 채 무기력했다. 아울러 대법원 재판부 주심이 진보 성향인 김상환 대법관이었음에도 1심보다 후퇴한 2심을 확정한 것은, 현 사법부가 얼마나 보수화, 우경화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 윤미향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가 촛불 대행진에서 연사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2024.8.10. 이호 작가 

 

 

 

'김복동의 희망'은 이날 <정의와 양심을 저버린 부당한 판결>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파렴치한 역사부정세력에 동조한 명백히 부당한 판결"이라고 논평했다.

이어 "활동가들이 자신의 인건비 보조금마저 정대협 활동에 기부한 그 사심 없는 양심을, 김복동 할머님의 유지에 따라 장학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 명예로운 활동을, 20년 넘게 한결 같이 할머님들 곁에서 할머님의 손과 발이 되어준 가장 가까운 벗이고 동지였던 고 손영미 대표의 헌신을, 역사부정세력들이 감히 훼손할 수 없음을 단호히 선언한다"며 "대한민국 사법부가 다시 한번 정의와 양심 저버린 오늘, 우리는 다짐한다. '희망을 잡고 살아, 내 뒤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던 김복동 할머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일본 정부를 향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라'며 외쳤고, 생이 다하는 그 순간에 곁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면 우리가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믿음을 전해주었던 김복동 할머님의 정신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며 "그것이 할머님들의 용기로 시작된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운동의 역사를 지켜내는 것이며,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지키고,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참된 정의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윤 전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1심 재판과정, 항소심 재판과정, 그리고 상고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 여 동안 검찰이 기소한 8개 항에 대해 무죄를 다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며 "무엇보다도 정대협의 활동은 검찰이 주장하듯이 '윤미향 개인'의 사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헌신해 온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수많은 선후배 활동가들이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과정을 통해 입었을 상처를 재판 과정과 무죄 판결을 통해 회복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늘 대법원 판결로 사법적 판단은 끝났지만, 유무죄 판결과 관계없이 이 사건에 있어서 허물이 있다면 제 개인이 앞으로 안고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해 온 분들이 저로 인해 입었을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하지 못한 오늘의 결과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공격, 인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들, 활동가들에 대한 공격을 보며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 공격을 멈춰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했다.

 

윤 전 의원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 뒤, "대법원 결정으로 인해 지난 4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죄'의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했지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저와 제 동료는 무죄"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저를 포함해 정대협의 4~5명의 활동가들은 정대협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표부터 사무처장, 상근활동가들이 1인 몇 역을 감당하면서 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사익을 추구하거나, 그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모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저는 담대하고 당당하게 피해자들의 죽음 앞에서 드렸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나갈 것이다. 오늘의 결과로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제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성진 기자mindle1987@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