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날 미국 전화 '씹기'→ 브래드 셔먼→ 김어준 폭로가 의미한 것
[인터뷰] 외교부 장관 '전화 패싱' 최초 거론 김준형 "2차 탄핵 표결 앞두고 미국 움직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12월 3일 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엄 사태 이후 미국이 공개적으로 드러낸 강한 거부감을 감안하면, 그날 골드버그 대사의 전화에는 미국 측의 '계엄 반대' 의사가 담겨있지 않았겠냐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조 장관은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잘못된 정세·상황 판단으로 미국을 미스 리드(mislead: 잘못 이끌다)하고 싶지 않았다"(11일)라고 해명했다.
계엄군이 국회로 몰려갔던 그 급박한 밤에, 외교부 장관이 주한미국대사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다는 의혹을 처음 거론한 이는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었다.
문재인 정부 국립외교원 원장 출신인 김 의원은 지난 10일 한 유튜브에 출연해 "제보를 하나 소개하겠다. 12월 3일 계엄 당시 골드버그 대사가 조태열 장관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안 받아서, '윤(석열) 정부 이 사람들 상종 못 할 종자들이다'라고 미국에 보고했다고 한다"고 최초 발언했다.
김 의원은 다음날인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했고, 그날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조 장관이 실제 3일 밤 미국 측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 8일 만에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주한미국대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 아직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상태다.
김 의원은 18일 국회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조 장관은 계엄 직전 국무회의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했지만, 정말 쿠데타를 막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더더욱 미국 측의 전화를 받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했다"라며 "조 장관이 계엄 반대가 분명했을 미국 측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는 것은, 혹여 쿠데타가 성공했을 시 본인이 윤석열에게 밉보일 수 있음을 우려했던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주한미국대사 전화 제보의 출처가 미국 쪽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김 의원은 자신이 받은 제보(10일 최초 폭로) → 브래드 셔먼 미국 연방하원 의원의 MBC 라디오 자청 인터뷰(12일) → 방송인 김어준씨가 국회에 출석해 '한동훈 사살 계획' 제보 의혹을 제기한 것(13일) 등이 모두, 2차 탄핵안 표결(14일)을 앞두고 미국이 계엄 세력에 반대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알리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김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 8월부터 싸늘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의 계엄 가능성을 지속적이고 공개적으로 언급해 온 것 역시, 미국 측의 정보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외교부 장관, 계엄 날 주한미국대사 전화 안 받았다" 최초 거론… "우방국 제보"
- 11일 국회 외통위에서 "골드버그(주한미국대사)가 김태효 차장, 조태열 장관한테 (전화했지만) 전부 다 전화를 끄고, 답하지 않아서, 본국에 '윤석열 정부 사람들하고는 상종을 못 하겠다'고 보고 했다"고 발언했다. 그 근거는 무엇이었나.
"저는 평소에 미국과 관계가 있어 정보를 받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제보가 있었고, 추후 여러 가지를 검토해 본 결과, 외통위에서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 주한미국대사관은 11일 "외교 대화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지만, 김준형 의원이 언론에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의 발언이라고 주장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utterly false)"라고 부인했는데.
"외교적으로 부인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중요한 것은 실제 제가 폭로한 것처럼, 조 장관이 계엄 당일 밤 미국 측 전화를 '씹었다'는 게 사실로 확인된 점이다. '상종 못 하겠다'는 표현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패싱' 당했으니 본국에 비판적으로 보고했을 것 아닌가."
- 16일 국회 외통위에서 여당과 외교부 측은 '상종 못 하겠다'는 게 영어로 어떤 표현이었느냐고 물으며 제보의 진위를 따져 물었다. 정확히 어떤 표현이었나.
"제가 받은 건 '상종을 못 한다'는 표현이었다. 제보는 한국말로 받았다. 저도 이 사안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곧바로 영어 원본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반응을 받지는 못했다."
- 그렇다면 제보를 문서 형태로 받은 건가.
"그것까지 확인해 줄 수는 없다."
- 제보를 받은 쪽이 미국 측이었나.
"그것 역시 확인해 줄 수는 없다. 저는 우방국으로부터 받았다고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고 본다. <조선일보>는 13일 사설까지 실어서 저를 향해 '외국 대사 말 날조가 습관이 될 지경'이라고 썼다. <조선일보> 지적처럼, 외교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국 대사 측의 정보는 추후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본질을 보라. 결과적으로 저의 제보 내용이 틀렸나? 조 장관이 3일 밤 미국 측 전화를 받지 않은 게 실제로 확인되지 않았나. 나도 그게 사실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조태열, 쿠데타 성공 걱정해 미국 전화 안 받았을 수도… 김태효도 주목해야"
- 조 장관이 계엄 당일 밤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조 장관은 쿠데타가 실패한 뒤, 그러니까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뒤에야, 자신이 국무회의에서 계엄에 반대했었다고 밝혔다. 저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정말 조 장관이 계엄에 반대하고 있었다면, 그날 미국 측의 전화를 받아서 윤석열에게 미국의 의사를 전달했어야 한다. 미국 측의 반대가 얼마나 큰 근거가 되겠나. 그러나 조 장관은 오히려 미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조 장관이 진심으로 계엄에 반대했다고 믿을 수 있을까?"
- 조 장관이 미국 측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보나.
"쿠데타가 실제로 성공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계엄에 반대한 본인이, 미국에까지 얘기해 쿠데타를 막으려 한 장본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 살길만 궁리한 것이다. 공적 마인드가 아니다. 외교 장관으로서 짊어져야 했을 책임을 내뺀 것이다.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 조 장관은 "미국을 '미스리드'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을 '미스 리드'한 꼴 아닌가? 계엄 직후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윤석열이 '심한 오판'(badly misjudge)을 했다고 했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 장관은 방한을 보류했다. 외신들은 저한테 하나같이 'Who is the boss?(누가 한국의 책임자냐)'고 묻는다. 외국에선 '누가 쿠데타 세력과 대화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겠냐'고 손을 젓는다. 이것보다 어떻게 더 나빠질 수 있겠나? 참담하다."
- 애초 제보 내용을 밝힐 때 조 장관뿐만 아니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미국 측 전화를 안 받았다고 말했다.
"김태효 차장은 제가 폭로한 이후로 아직까지 부인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김 차장은 조 장관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윤 정부 외교의 거의 모든 것에 관여한 실세였다. 그런데 이번 계엄 사태에서는 완전히 그 자취를 감췄다. 정말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을 필두로 한 군부 쪽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배제된 건지, 아니면 모종의 연관이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아직 드러난 흔적은 없는 것 같다."
"일련의 정보 흐름, 14일 2차 탄핵안 표결 앞두고 미국 측이 움직인 것"
- 지난 13일 방송인 김어준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계엄 세력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사살을 계획했다는 제보를 "우방국"으로부터 받았다고 발언했다. 논란이 되자 이보다 앞선 12일 저녁 브래드 셔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MBC 라디오에 인터뷰를 자청해 "미국 역시 미국만의 정보 수집 능력이 있다. 만약 대한민국 국군이 남한 내 한 장소를 공격해서 사건이 발생했다 해도 미국은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이를 공개해 북한이 당시 그러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국과 미국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렸을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뒤늦게 조명을 받았다. 미국은 김어준씨 주장의 출처가 미국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했지만, 항간에서는 김씨 주장과 브래드 셔먼 의원 인터뷰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어떻게 보나.
"시점을 잘 봐야 한다. 모두 윤석열에 대한 2차 국회 탄핵안이 예정된 14일을 직전에 둔 때였다. 좁은 시차 간격으로 일종의 정보의 흐름이 보인다. 조 장관이 미국 측 전화를 무시했다는 제보도 과연 저만 받았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힐 순 없지만, 저 외에도 정보를 접수한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론을 형성하는 길목에 미국 측이 활동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 내용상으로도 김어준씨의 주장과 브래드 셔먼 의원의 인터뷰가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건가. 민주당조차 "상당한 허구가 가미됐다"며 선을 긋고 있는데.
"저도 김어준씨가 말한 계획에 군이 동원될 수 있었다는 내용까지는 지나친 과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러 경로로 미국이 움직였다는 방증은 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관측 아닌가?"
그러면서 김 의원은 사무실 책상에 쌓인 서류 뭉치 속에서 한 파일을 꺼내 보였다. '12/12 브래드 셔먼 의원 더빙 원고 파일'이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12일 브래드 셔먼 의원의 MBC 라디오 인터뷰는 우리말 더빙으로 처리돼(https://youtu.be/isJvODjEeHA?feature=shared) 브래드 셔먼 의원이 말하는 영어 원문은 들리지 않는다. 원고도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의원은 브래드 셔먼 의원의 영어 원문 인터뷰 전체본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한 번 보라. 특히 여기, 이렇게 말한다. 'We have our own INTEL capacity'(우리는 우리만의 정보 수집 능력이 있다). '미국이 다 알고 있다'는 건데, 사실 '우리가 다 도청하고 있다'고 얘기한 것과 비슷한 거다."
김 의원이 내민 서류에는 해당 부분이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맥락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부분의 질문·답변 내용 전체를 김 의원이 확보하고 있었던 영어 원문과 MBC의 한국어 번역본으로 함께 싣는다. 브래드 셔먼 의원의 발언 영어 원문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Q. So there have been also allegations that former Defense Minister Kim Yong Hyun tried to provoke a local war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just one week before the Declaration of Martial Law and he allegedly ordered to strike the origin of the filth balloons coming from North Korea but the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refused to do so. So what do you think of this move by the South Korean military?
(질문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요. 이번 비상계엄 선포 일주일 전에 남북 간 국지전 유도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북한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지만 합참의장이 이를 거부했다는 건데요. 한국군 당국의 이런 움직임 어떻게 보십니까?)
A. Well, this clearly deserves to be investigated. I don't know if there was this attempt. We have tens of thousands of troops on at the DMZ. We are prepared to have those troops fight and die if there is unprovoked aggression from North Korea.
Obviously the United States doesn't want to see those troops dying in a war created by a false false flag operation. That being said, I have no idea whether these charges are partially true or untrue or completely true. They deserve to be investigated.
I'll also say that we have our own INTEL capacity. And if there was an incident caused by the South Korean military striking a location in South Korea, the United States would know that that wasn't a result of North Korean aggression and would have hopefully publicized that and made it clear to the people of both your country and mine that North Korea had not acted in it an aggressive action of that kind at that time.
That doesn't mean North Korea doesn't do some other bad things. But if there was an attempt to make it look like this origin point location in South Korea was attacked by North Korea, the United States would have known the truth and hopefully would have publicized it.
(답변 : 글쎄요. 이건 분명히 조사해 볼 일입니다. 이런 시도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군은 DMZ에 수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고 이 병력은 싸우다가 희생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없을 때 위장 작전으로 발발한 전쟁으로 병력이 죽는 것을 미국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혐의가 부분적으로 사실인지 거짓인지 완전한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사해야 합니다.
미국 역시 미국만의 정보 수집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대한민국 국군이 남한 내 한 장소를 공격해서 사건이 발생했다 해도 미국은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또 이를 공개하여 북한이 당시 그러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국과 미국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렸을 겁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대한민국의 어느 장소가 북한에 의해 공격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미국은 진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이를 공개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 브래드 셔먼 의원 발언 영어 원문을 어떻게 확보했나.
"밝히지는 않겠다."
-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까지 지낸 최종건 연세대학교 교수는 해당 브래드 셔먼 의원 인터뷰를 두고 "일반론적인 얘기였다", "인터뷰만 보고 이 사람이 뭔가 알고 있었을 거라고 하는 건 기각돼야 할 증거"라고 정반대로 해석했다.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보라. 진행자의 질문은 아주 일반적이었지만, 브래드 셔먼 의원의 답변도 그러한가. 질문 이상의 답이 있지 않나. 이건 통상적인 정치인의 표현이 아니다. 외교적인 단어 선택이 아니다. 저는 지난달 브래드 셔먼 의원을 워싱턴 D.C. 의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여야 의원단이 미국에 단체 방문했을 때다. 브래드 셔먼 의원이 15선이고, 아태(아시아태평양)소위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한국에 지대한 관심이 있고,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하원 의원이 이 정도 수준의 고급 정보를 취급할 수는 없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그분이 한국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분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에 많은 한인 유권자가 있고, 그로부터 많은 후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엄 이후인 7일(미국 시각 6일) 브래드 셔먼 의원이 미 하원 본회의에서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하는 연설도 한 것이다. 그때 말은 어땠나.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한 전 세계의 노력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 정도가 정치인의 말이다.
그런데 며칠 뒤 진행된 12일 MBC 라디오 인터뷰를 보라. 원론적으로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정치적 수사였다면 크게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미국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식의 서술이 이어졌다. 며칠 사이 말이 이렇게 달라졌다면, 중간에 뭔가 인풋(input: 투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에 메시지를 주고 싶은 미국으로서는, 최근 의회에서 공개 연설을 한 지한파 의원이 아주 자연스러운 선택지였을 수 있다."
"브래드 셔먼 발언, 미국 도청 가능성… '롯데리아' 회동 웃을 일 아냐"
- 그 추측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미국이 그렇게 움직인 의도는 뭐였다고 보나.
"미국으로서는 한국 계엄 세력의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 세계에 분명히 표시하고 싶은 유인이 있었다고 본다. 미국은 과거 중남미 등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오해와 의심을 산 전력이 있다. 이번 한국 계엄 건에서는 미국이 함께 의논하거나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맞아 보이지만, 그간 한국과의 특수 관계를 생각했을 때 미국 나름대로 '우린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미지 작업이 필요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정말 정보를 통해 계엄 모의를 알고 있었다면, 왜 진작 막지 않았냐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미국이 설령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계엄을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있을까? 계엄을 알고 있었다는 건 사실상 도청을 시인하는 건데, 첩보를 토대로 공개적인 행동을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는 미국이 끊임없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고 본다. 계엄이 실제로 일어나기 한참 전인 8월부터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김민석·김병주 의원 같은 분들이 나서 계엄 의혹이 있다고 공개적이고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어떻게 그랬을 수 있었을까? 언론도 굉장히 비판하지 않았나. 거기다 지금 와서 보면 이번 계엄은 정말 소수의 군인들 몇몇만이 모여 작당을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걸 미리 알 정도였다면, 저는 경로가 두 가지뿐이라고 본다. 실제 계엄을 모의한 소수 군인 중 내부 고발자가 있었거나, 아니면 미국 정보. 그런데 만일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면, 훨씬 심각한 제보 내용이 벌써 나왔을 것이다. 그게 아닌 걸 보면, 저는 민주당 의원들의 계엄론 근거가 미국 측 정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하지만 현재 민주당이나 과거 민주당 정부 시절 인사들은 대부분 브래드 셔먼 의원 인터뷰 등 미국 측 정보로 추정되는 제보들에 대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수권 경험이 있고 집권을 준비하는 정당으로서 민주당이 조심스러울 수 있다고 본다. 외교는 늘 상대가 있고, 예민한 분야다. 지금은 특히 수습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김병주·박선원 의원 같은 분들은 계속해서 의혹 제기를 하고 있지 않나. 두 갈래가 있다고 본다. 김병주 의원은 16일 언론(CBS 라디오)에서 '미국 쪽에서 많은 정보들이 나오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주목할 부분이라고 봤다."
- 그렇다면 12월 3일 밤, 미국이 계엄에 관한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비상사태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일상에서 작동하던 내밀한 구조가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가령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는 유일하게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알고 로비를 벌였던 삼성의 정보 장악력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번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는 미국의 정보 장악력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는 건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미국이 계엄을 중단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우리를 일상적으로 도청하고 있었다는 데 대한 문제 제기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드러나 버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도 미국의 안보실 도청 사건이 있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이번에 전·현직 군 장성들이 경기도 안산시의 롯데리아에 모여 계엄을 모의했다는 것도 단순히 웃고 희화화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롯데리아가 역설적으로 가장 도청이 어려운 장소였을 수 있는 것이다. 거리상으로도 용산에서 먼 곳이었다. 용산 주변 식당은 도처에서 도청이 되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과거 여의도 주변 식당들에 도청이 이뤄졌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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