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주술정치의 종막과 개혁의 서막

道雨 2025. 1. 17. 09:07

주술정치의 종막과 개혁의 서막

 

 

 

 

 

윤석열 대통령은 손바닥 주술로 왕이 될 수 있다는 망상에서 친위쿠데타를 자행했다.

그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탄핵 남발, 예산 폭거, 입법 독재를 남발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고 단정하고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면서 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의 광기 어린 책동은 민주시민의 저지로 무산되었고, 김건희 연출에 윤석열 주연의 무속정치도 막을 내렸다. 무도한 왕 노릇의 끝에 철조망과 철창 내 유폐가 기다렸던 셈이다.

 

대통령 부부의 괴기스러운 행적이 장차 어떻게 끝맺게 될까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결국은 아무도 그려내지 못한 모습으로 결말지어지고 있다.

이는 박정희 18년 압제가 10·26 사태로 결말 났을 때만큼이나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종막이다.

역사를 우롱한 데 따른 엄정한 업보다.

 

 

윤석열은 우익 세력의 시대착오적 맹목성에 의지해, 집권 내내 한국 사회를 헤집고 분열시킨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 12월12일 담화에서도 계엄령은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었을 뿐인데,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펼쳤다.

또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다”고 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를 희생양 삼아 지지자들을 동원하려는 비열한 술책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지도자로서 현실과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은커녕 정상적인 사리분별력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은 윤석열의 탄핵과 파면을 지연·저지시키기 위해 갖은 억지를 부리고 있다. 애초 지도자 역량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자를 교묘히 치장해 대통령으로 세웠으면, 그로 인해 초래된 지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의 수습에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군색한 변명으로 감싸면서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의 광기를 끌어다 극우 세력을 충동질하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 행태이다. 소속 의원들이 44명이나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해, 후안무치한 모습으로 탄핵 반대 시위대를 부추겼다.

전광훈 목사 등 우익집단 집회엔 국민의힘 의원 10여명이 동참했는데, 연설에 나선 윤상현 의원은 “저와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여, ‘성전’이라는 자극적인 말로 선동했다.

또 김민전 의원은 이른바 ‘백골단’을 국회로 불러들여 공포심을 자아내면서, 폭력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듯이 부추겼다. 참으로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소행이다.

이들의 행태는 극우 세력의 맹목적 도발을 부추겨 민주 시민단체들과 충돌을 유발함으로써, 1945년 해방 직후 좌우 대립으로 야기됐던 바와 같은 내전 상태를 재현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전쟁과 독재 시기 조장된 분열과 갈등이, 살인 학살의 야만적인 테러행위로 비화했던 비극의 상흔이 지금껏 아물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계엄군이라는 그 단어만으로도 모두의 뇌리를 짓누르는 공포심을 유발한다.

지금 아스팔트 우익들이 성조기, 때로는 유대인 깃발을 흔들면서 외치는 구호들은, 지난날 야만의 색깔과 다르지 않다.

일부 정치인들의 망발은 자칫 옛날 파국의 역사를 또 초래할 개탄스러운 짓이다.

 

이번 12·3 내란 파동에서 예전과 같은 듯 다른 점들이 더 의미 있게 부각되면서, 반세기의 역사 변화를 실감한다.

우선 지금 군인들은 1980년 5월 광주에 나타난 살기등등한 공수부대와 다르다. 이번에 출동했던 계엄군의 어느 부대장은 동원 당시 잘못된 판단을 반성하면서 “부대와 부대원들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 특기할 일은, 2030 세대 여성들이 주축을 이뤄, 케이팝 공연의 팬덤 응원봉을 흔들면서 축제처럼 펼친 시위·집회의 의미이다.

지난날은 대학생들이 대학 교정을 거점으로 반독재 민주화 집회를 열었고, 여론 형성과 저항 수단으로 거리 시위를 감행했다. 반독재 운동은 학생운동 주동자들의 감옥행을 각오한 희생과 헌신으로 추진됐다. 지금 대학에는 그때와 같은 운동권이 없다.

 

 

이번 세상을 뒤흔든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는, 세상에 처음인 새로운 문명 양식이다. 2030 청년세대는 민주화 세례를 받은 열린 사회의식으로, 영역의 장벽을 넘나들면서 민중운동 지평을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그들은 민주화 시대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성장했고, 관습에 속박되지 않으며, 가부장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초래한 억눌린 사고가 아닌, 개방과 평등의 열린 가치관이 상식인 세대이다.

한류 문화를 세상에 전파하여 글로벌 문화로 창조한 주체들이지만, 그렇다고 민족, 사회,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에 교조적으로 얽매이지도 않는다.

기성세대와 같지 않은 공정과 정의의 가치관은, 때로는 2020년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나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남북단일팀’ 같은 이슈를 두고 논란을 불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면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무기로 하는 새로운 세대에는, 세계가 그들의 활동 영역이고, 글로벌 문화가 그들의 사회의식 배경이다.

 

이에 반해 반세기 전의 냉전과 군사문화 향수에 젖어 권위주의 회귀를 획책하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청년들에게 더불어 공존하기 어려운 구시대 잔재일 뿐이다.

태극기 부대 같은 극우 집단과 보수언론의 역성에 의지해 존립하는 정치는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030 청년들이 앞장서 수구 잔재 집단의 계엄 선포 같은 역사 반동을, 첨단의 글로벌 문화로 유쾌하게 압도해버리는 혁명을 전개한 것이다.

 

지금의 파동을 개혁의 역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인들의 이해에 따라 미봉책으로 때우고 정권 장악에만 몰입한다면, 이는 미래 역사까지 끌어다 배신하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1987년 6월 항쟁 이래로 미뤄 왔던 체제 정비를 마무리할 때이다. 곧 미완의 개혁 숙제를 ‘2025년 개혁’으로 완성해야 한다. 이는 청년세대 미래를 위한 설계이다.

 

이번 기회에 미흡한 제도와 헌법 조항들을 정돈하여, 명실상부한 새출발을 기약해야 한다.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