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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받은 전세금 2년간 9조…정부는 땜질 대책만

道雨 2025. 1. 17. 17:42

못 받은 전세금 2년간 9조…정부는 땜질 대책만

 

작년에만 보증금 사고액 4조 5천억

전세사기 피해자도 2만 5천명 넘어

HUG 대위변제 12% 늘어 4조 육박

전세 보증금 손실 국민 세금으로 메워

세입자만 전세금 미반환 책임 독박

“임대인 반환 보증 의무화 도입 시급”

 

집값보다 전세 보증금이 많은 깡통전세나 전세 사기로 돌려받지 못한 전세 보증금이, 2023년과 2024년 2년간 9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세 사기 피해자도 지난해 12월 기준 2만 5000명이 넘는다. 국토교통부가 심사를 거쳐 전세 사기로 인정한 피해자가 이 정도다. 실제 전세금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세입자(임차인)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세 보증금 미반환과 전세 사기 대책은 겉돌고 있다.

정부는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을 낮추고 반환보증보험 보증료를 인상하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임차인을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임대인 반환보증 가입 의무화 등, 임차인에게만 불리한 여건을 개선하고, 임대인의 책임을 강화할 더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인천에서 2천채가 넘는 주택을 보유하며 전세 사기를 벌인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피해자의 1주기를 앞두고 2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2024.2.24. 연합뉴스

 

 

 

전세 보증 사고액 2년 연속 연간 4조 원대

 

16일 연합뉴스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 등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은 4조 4896억 원에 달했다. 사고 건수도 2만 941건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2023년 4조 3347억 원보다 1549억 원(3.6%)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2년간 깡통전세나 전세 사기로 인한 전세 보증 사고 금액은 9조 원에 육박했다. 피해자도 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도별 보증사고 규모를 보면, 2021년 5790억 원, 2022년 1조 1726억 원에서, 2023년부터는 4조 원대로 급증했다.

 

전세보증금 사고액이 갑자기 증가한 이유는, 집값과 전셋값이 최고치를 찍었던 2021년 전후로 맺어진 전세 계약 만기가 돌아온 2023년, 연립과 다세대, 단독, 다가구 주택을 중심으로 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기에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서 매매 차익을 챙기는 갭투자를 한 집주인과 투기꾼들이, 대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며 사고액이 늘어난 것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는 전세 사기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전세대출에 대한 규제를 풀고 전세 반환보증금 제도를 확대하며 투기성 갭투자를 유인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낮은 금리로 전세 자금을 대출하도록 했다. 

전세 반환보증금의 담보인정비율도 주택 유형에 따라 70~90%였던 것을, 2017년 100%로 상향 조정했다. 그 결과 전세 자금 대출이 급증했고, 수요자들이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었던 전세 자금은, 투기꾼과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됐다.

 

* 정부가 직전 계약보다 전셋값이 하락하는 '역전세' 상황에서 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세금 반환 목적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를 발표한 4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2023.7.4. 연합뉴스

 

 

 

주택도시보증공사 영업손실도 눈덩이

 

늘어난 전세보증금 사고액은 HUG 영업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HUG가 전세 보증사고를 당한 세입자에게 지난해 돌려준 대위변제액은 3조 9948억 원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다. 2023년 3조 5545억 원보다도 4403억 원(12.4%) 늘었다.

HUG의 대위변제액은 회수까지 2~3년 걸린다. 그것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다. 전세 사기꾼처럼 처음부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한 경우도 많다.

 

HUG 영업손실은 2023년 3조 9962억 원에 달했다. 작년 확정 수치는 나오지 않았으나 4조 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HUG는 전세와 임대보증 외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다양한 계약에 보증을 서준다.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HUG의 영업손실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공기업인 HUG의 영업손실은 결국 세금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HUG에 출자한 금액은 2021년부터 4년간 5조 4739억 원에 달한다. HUG에 대한 주택도시기금 출자만 해도 2021년 3900억 원, 2023년 3849억 원, 지난해 7000억 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주택도시기금은 청약저축 납입금과 건축 인허가,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때 매입하는 국민주택채권 판매액으로 조성한다. 국민 세금인 셈이다. 작년에는 한국도로공사 주식 4조 원이 현물 출자됐다.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HUG에 대한 대규모 자본 확충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부동산가격 급등기 전세 계약이 끝나면서 보증금 사고액은 줄고 있다.

전세 사고가 급증하자, 2023년 5월부터 전세가율을 100%에서 90%로 재조정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전세보증금 사고액은 지난해 8월 3496억 원에서 9월 3064억 원, 10월 2913억 원, 11월 2298억 원, 12월 2309억 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호철 경제정책국 간사와 김성달 사무총장 등이 27일 오전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실태분석 발표 기자회견 중 피켓을 들고 있다. [경실련]

 

 

 

임대인 반환보증 의무화 등 근본 대책 필요

 

하지만 전세보증금 미반환과 전세 사기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데도 정부는 땜질 대책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최근 HUG는 전세가율이 높은 전세일수록 전세 반환보증보험 보증료를 최대 4.5배 더 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전세가율이 높은 주택에서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하면 보증금을 회수하기 어려우므로, 보증료를 올려 손해율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현행 보증료율은 0.04%인데 개정 시에는 0.04~0.18%로 차등 적용될 것으로 경실련은 예측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보증금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오히려 임차인의 부담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실련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따로 가입하는 반환보증 제도를 통합하고, 임대인의 전세 반환보증 의무가입과 전세 반환보증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 등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보증금 미반환을 막는 책임을 임차인에게만 전가할 게 아니라, 임대인도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문한다.

경실련은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과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인해 세입자들의 고통은 어느 때보다 크다”며 “HUG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조치로 임차인에게 보증 부담을 전가시킬 게 아니라, 보증제도 개선을 통해 전세 제도 자체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박원 에디터jangbak6219@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