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4

수원 화성(華城), 그 이름의 유래

수원 화성(華城), 그 이름의 유래   화성(華城)이라는 명칭은 중국 요임금의 ‘화봉삼축(華封三祝)’에서 나온 말이다. 즉 화(華)라고 하는 나라 사신이 요임금에게 부, 장수, 다 남자 세 가지를 축원했다. 요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 모두가 부유하게 잘 살고, 건강하게 오래 살며, 이로 인해 인구가 번성하길 기원했다. 스스로를 요 임금과 같은 성군이자 한 단계 높여 조선 성리학자들의 학문적 스승이라고 자부해온 호학군주 정조는, 요 임금 이야기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하여 정조는 아버지가 묻혀 계신 곳이 ‘화산(花山)이기에, 화봉삼축에서 화(華)와 발음이 같다는 점을 들어, 화성 (華城)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화산의 본래 이름은 ’곶산(串‘山)이었고, 묘를 이장하기 전에 화산..

문화, 문화재 2024.05.21

홍재 정조 이산

홍재 정조 이산 - ‘임금은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라고 자처한 제왕 # 홍재(弘齋) : “군자는 도량이 넓어야 한다!” 조선에서 임금은 제왕인 동시에 한 사람의 유학자였기 때문에, 호를 지어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선비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호학군주(好學君主)였던 정조는 스스로 다양한 호를 지어 자신의 뜻과 철학을 세상에 드러냈다. 홍재(弘齋),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홍우일인재(弘于一人齋) 등, 정조가 남긴 호는 다른 어떤 선비들의 호보다 독특하고 다채롭다. 정조는 임금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학자에서 찾았던 사람이다. 정조가 가장 먼저 사용한 호는 왕세손 시절 자신이 거처하던 동궁의 연침(燕寢, 침소 혹은 침전)에 이름붙인 ‘홍재(弘齋)’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