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년 된 '한글 비석' 보물 됐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서라벌고교 인근에 있는 한글 영비. 비석이 오래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모형비를 만들었다(上).
내용은 ‘신령한 비라 쓰러뜨리는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다’. 이를 글(한문)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라고 쓰여 있다.
현존하는 한글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돌비석이 세운 지 470여 년 만에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 됐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한글 영비(靈碑)'다.
하계동 주공아파트단지 인근의 서라벌고등학교에서 차도를 건너 불암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이 비석이 서 있다.
조선 중종 31년(1536년)에 세운 이 비석은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고,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문화재청의 심의를 거쳐 최근 보물 1524호로 승격됐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은 높이 142㎝, 폭 63㎝, 두께 18㎝ 규모다.
한글 영비는 조선 전기의 유일한 한글 비석으로 중세 국어와 서체 연구에 귀중한 가치를 지닌 점을 인정받았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했지만 당시 양반들은 한글을 천시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한글로 비석을 새기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한글 비석은 현재 3점이 남아 있으며, 한글 영비를 제외한 나머지 2점은 모두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
◆부모의 묘를 지키기 위해 세워
비석의 왼쪽에 한글로 두 줄짜리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신령한 비라 쓰러뜨리는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다. 이를 글(한문)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는 내용이다.
비석을 세운 묵재(默齋) 이문건(1494~1567) 공이 사람들에 의해 비석이 훼손되지 않도록 경고한 것이다.
비석의 오른쪽엔 비슷한 내용의 경고문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비석 앞뒤에는 묘주의 이름과 일대기가 다른 비석처럼 모두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당시 선비였던 이윤탁과 고령 신(申)씨 사이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문건 공은 집안이 연산군 때 일어난 기묘사화에 휘말려 몰락하면서 평생을 학문에만 정진했다.
이문건 공이 7세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묘는 원래 태릉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1535년 당시 조정에서 능을 만들기 위해 묘지가 속한 땅을 강제로 수용했다. 이 공은 할 수 없이 아버지 묘를 그해 정월에 숨진 어머니의 묘가 있는 현재의 노원구 하계동에 합장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 없길 바라는 염원에서 경고문을 남긴 것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합장 묘를 세우고 어떻게 묘비를 만들었는지를 '묵재일기(1535년 11월 1일~1537년 6월 3일)'에 기록했다.
이 경고문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92년 중계동과 하계동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비석이 있는 자리에 큰 길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경고문 때문에 인부들이 겁을 먹고 손을 대지 않으려 했다. 결국 비석을 그대로 두고 길을 내면서 왕복 6차로가 비석 앞에서 갑자기 2차로로 줄어드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그 바람에 교통사고가 잇따르자 98년 비석과 묘소를 15m 뒤로 옮겼다. 이때도 인부들이 손대길 꺼려 어렵게 공사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주변을 명소로 가꿀 계획
노원구 문화재 가운데 보물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노근 노원구청장은 "구민 모두에게 경사로운 일"이라며 "한글 사랑과 효 정신이 깃든 한글 비석 주변을 노원구의 명소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노원구는 비석과 묘소 주변을 새로 단장하고 길을 정비할 예정이다. 우선 한글 비석을 비각에 두고 비슷한 크기의 모형을 묘소 앞에 세웠다. 비석의 훼손을 막으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비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비문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손상돼 아주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글자를 읽기 어렵다.
◆보물 어떻게 지정하나=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 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장이 직권으로 지정하거나, 시.도지사의 신청을 받아 지정할 수 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려면 우선 문화재위원 같은 전문가가 현장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한다. 문화재청은 인터넷과 관보를 통해 '문화재 지정 방침'을 발표하고, 한 달간 지역주민 같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는다. 문화재위원회에서 보고서 내용과 지역주민 의견 등을 심의해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 <중앙일보 /주정완.최정동기자 200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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