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예술가 양지
“그는 신라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동국대 장충식 교수는 “양지는 젊은 시절에 분명 서역을 오랫동안 여행하였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불교미술에 대한 수련을 쌓은 인물일 가능성이 짙다”고 추정하면서 “신라 일세(一世)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라 인도 서역적 조각 유풍을 지닌 국제적 인물로서 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라의 전불(前佛)시대 7처 가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영묘사의 장륙상을 비롯하여, 같은 절의 사천왕상, 전각 및 탑의 기와, 사천왕사의 탑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 삼존과 좌우 금강신,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 글씨, 석장사의 삼천불 전탑 등등이 그것이다. 이 목록으로 미루어 양지는 조소, 서예, 기와공예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불교미술사의 보고(寶庫)라고 일컬어지는 『삼국유사』 탑상편에도 이처럼 세세하게 작품 목록이 열거된 예술가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 뿐 아니다. 몇몇 학자들은, 분황사 모전석탑의 인왕상, 문무왕 화장터로 추정되는 능지탑의 소조상, 금속공예의 극치로 꼽히는 감은사 동서 쌍탑의 사리구에까지 양지의 손길이 미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양지는 당대 최고를 넘어, 한국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다. 영묘사 장륙상의 경우, 양지가 선정(禪定)에 들어 삼매경에서 보았던 부처의 모습을 법식으로 하여 장륙상을 소조(塑造)할 때, 서라벌의 선남선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나르며 풍요(風謠)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대목은 영묘사 장륙상이 단순한 손끝 재간이 아니라 종교적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해 주면서, 동시에 그의 작품활동이 일반 대중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다는 구체적 정황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품의 탄생 과정을 말해 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사천왕사 탑 팔부신중 조각들과 경주 동국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석장사 터 출토 탑상문전(塔像紋塼)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대 미술사가들의 말을 빌릴 것 없이, 『삼국유사』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조에서 당나라 황제 대종이 했다는 찬탄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는 신라 조각품 ‘만불산’을 두고 ’신라의 재간은 하늘의 솜씨이지 사람의 재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양지의 작품이 당나라의 양식과도 구분되는 '중앙아시아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든가(문명대), '그의 뛰어난 조각 기법은 곧 서역적 수법에 능통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든가(장충식), '양지가 서역풍의 조각을 상당히 만든 조각가로서 명성이 높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강우방)는 발언들에서 보이듯, 양지의 작품에 서역풍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감은사 동서 쌍탑의 사리함을 양지가 만들었는지 여부의 논란은 양지의 작품활동 시기 문제로 이어진다. ‘양지사석’조는 “양지의 행적이 선덕여왕 대에만 드러났다”고 말하고 있는데, 선덕여왕 대와 감은사 탑 사리구가 만들어지는 신문왕 대와는 약 50년의 시차가 있다. 양지가 영묘사 장륙상을 만들던 선덕여왕 때의 나이를 서른으로 친다면, 감은사탑 사리구 조각은 양지의 나이 일흔이나 여든에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다소 무리한 추정이다. 그렇다면 감은사 탑 사리구가 양지의 제자나 또는 양지의 작풍(作風)에 익숙한 다른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일 양지의 작풍을 따르는 일단의 예인들이 있어 감은사탑 사리함 조각을 만들었다면 그들이 하나의 유파를 이루었다든지 아니면 양지의 작풍이 하나의 흐름으로 성립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연은 양지의 전기로 추정되는 그 글을 읽고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양지사석’조 첫머리에 “그의 조상과 고향이 자세치 않다(未詳祖考鄕邑)”라고 쓰고 있음을 볼 때, 일연은 양지의 소종래(所從來)에 대하여 일부러 말을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양지가 신라 사람이었다면 그의 출신 또는 국적과 관련하여 일연이 그렇게 얼버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 <김태식/서울디지탈대학 교수>
'역사, 인물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좀벌레다 (박제가) (0) | 2007.10.26 |
---|---|
[스크랩] 고대의 ‘신분증’ 부절(符節) (0) | 2007.10.13 |
[스크랩] 왜 `평양` 기생이 유명해졌을까 (0) | 2007.10.03 |
[스크랩] 세종대왕은 과학적 풍수가 (0) | 2007.10.03 |
[스크랩] 조선 후기 왕들, 청나라로부터 받은 시호 철저히 숨겼다 (0) | 2007.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