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지역 답사 사진 - 첫째 (2008. 5. 11)
* 2002년 가을에 상주 지역 답사를 다녀와서 답사기를 썼는데,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없어서 애석해하던 차에, 이번에 두번째로 상주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비록 휴대폰으로 찍은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찍은 사진 중에서 1차 답사기에 관련된 곳의 사진들은 '상주지역 답사기' 중간에 삽입하였다.
1차에 갔던 곳을 생략한 곳도 있고, 1차에 가지 못했던 곳이 추가된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이번(2차답사)에 다닌 순서대로 사진을 올려본다.
* 능청스럽게 철책 밖에까지 목을 길게 늘어뜨린 비석의 거북머리. 예전에는 거북 목 위로 철책이 이어져 있었는데, 이번에 와 보니 다행스럽게도(?) 철책을 잘라놓았다.
* 왕산공원 안에 있는 복룡동 석불좌상. 보물 제119호인데 많이 훼손되었다.
책에는 앙산공원이라고 소개되어있는데, 이번에 와서 확인해보니 '왕산공원'이었다.
* 왕산공원 안에 있는 나무의 뿌리가 마치 벤치처럼 되어있다. 살아있는 나무의 뿌리이다.
* 왕산공원 안에 있는 장지연선생기념비.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사설을 쓴 위암 장지연 선생의 기념비이다. 이곳 상주에서 출생하였다.
* 위암 장지연 선생의 약력을 새겨 넣었다.
* 남산공원 안에 있던 석각천인상이 새로 건립된 상주박물관으로 옮겨졌음을 안내하고 있다.
* 복룡동 당간지주. 특별한 문양이나 조각이 없이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왕산공원 안에 있는 복룡동석불좌상은 이 근처의 사찰 건물에 있던 것이다.
* 육지의 이순신으로 불리웠다는 정기룡장군의 신도비각과 묘소.
* 정기룡장군의 신도비. 퉁방울 같은 눈과 주먹코, 벌린 입의 이빨과 여의주 등이 인상적이다.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지었다.
* 사벌왕릉 인근에 당당하게 서 있는 화달리삼층석탑. 보물 제117호.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몸돌과 지붕돌은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기단부가 1층이면서 낮아 전형적인 이중기단의 석탑에 비하면 안정감이 약간 부족한 편이다.
*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전(傳)사벌왕릉.
* 일단의 가족답사객들이 왕릉을 돌아보고 있다.
* 정기룡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사당 충의사.
* 잘 정돈된 느낌의 충의사 안마당.
* 정기룡 장군의 유품으로서, 임금의 교서, 칼 등이 일괄하여 보물 제6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에 보이는 칼은 정기룡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직접 썼던 칼이다. 정기룡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두 번 역임하였다.
* 충의사 사당 안에 모셔진 정기룡 장군의 영정.
* 상주박물관의 야외전경 모습. 2007년 11월 2일 개관하였는데, 여유있게 넓은 야외공간에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 좋았다.
상주시내의 남산공원 안에 있었던 석각천인상은 상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상주박물관의 대표 유물이 되었다.
* 상주박물관 야외전시 공간의 석물들.
* 상주박물관 야외전시물인 비석.
* 박물관의 오른편에 건립된 전통의례관. 각종 전통의식(혼례 등)을 이런 곳에서 치루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박물관이 도심지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민들의 접근성은 좋지 못하지만, 여유있는 공간에 여유로운 모습의 한적한 공간에 있으며, 가까운 곳에 경천대 유원지가 있어 가족 나들이삼아 찾기에는 좋을 것 같다.
*** 정기룡 장군에 대하여
- 정기룡(鄭起龍, 1562년 ~ 1622년)은 조선 시대의 장군이다.
- 생애
정기룡 장군은 1562에서 1622년 까지 살았다. 자는 매헌이다.
원래는 1586년에 무과에 합격하고 신립의 아래에 있었으나 임진왜란이 터지자 별장이 된다. 거창 싸움에서 왜군을 이기고 금산 전투에서 조경을 구출한 뒤 곤양의 수성장이 되어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또한 상주성을 얻는데 성공하고 계속하여 여러 공을 세우게 되어 '바다의 이순신과 육지의 정기룡' 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또한 제 2차 조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정유재란 때에 고령에서 적 장수를 생포하고 병마절도사가 된고 성주, 합천, 초계, 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하는데에 성공한다.
광해군 때에는 3도 수군통제사와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오른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에 그의 묘가 있으며 경북 기념물 제 13호이다. 또한 현재 금남면 중평리 상촌 마을에 사당인 경충사가 있고. 중평리 당산골 진양 정씨 사당 아래쪽 100m지점이 정기룡 장군의 생가가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밭이 되어 있고, 생가 뒤쪽에 있던 대밭이 약간 남아 있다.
- 일화
전설에 따르면 정기룡 장군의 어머니는 홍역에 걸려 출산 중 죽게 되는데, 가족이 염을 하던중 그의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기가 있는 것을 보고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살기가 느껴지더니 사흘 후 어머니는 사망하고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정기룡이라고 한다.
정기룡은 태어날 때부터 우렁찬 울음 소리를 내고 하늘엔 무지개가 떠 마을 사람들은 영웅이 탄생한 것이라 믿었다. 정기룡은 어려서 부터 비범하고 용감하였으며, 진주성 싸움에서 강씨 부인을 잃는 슬픔에도 용감히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강씨 부인을 잃은 후 다시 결혼하게 되는데 그의 부인 또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며 나이가 들수록 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어느새 노처녀가 되고 정기룡 장군을 만나고 나서야 정기룡 장군과 결혼하겠다고 하였다. 정기룡 장군은 전란 중의 상황과 그의 옛 부인을 떠올리며 고민했지만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의 부인(권씨)은 말을 키우고 있었는데 날쌔고 힘이 세어 정기룡 장군이 타고 다녔다고 하며, 이 말이 장군이 공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기룡 장군의 본명은 정무수로 정기룡이 된 사연은 이렇다. 정무수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게 되는데, 그 당시 임금인 선조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종각에서 용이 자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종각에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 했더니 정무수였다고 한다. 그가 무과 시험에서 무용이 출중하여 선조가 기룡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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