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스크랩] 경주 쪽샘에서 1600년전 신라 기마 장군의 베일 벗어

道雨 2009. 6. 10. 11:20

 

베일 속 신라중장기병 1,600년만에 드러나다

 

 

1천 6백년 전 중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싸우던 신라 기마 장군의 갑옷이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 되었다.
비늘 식 갑옷인 '찰갑'으로 가슴 가리개인 흉갑과 등 가리개인 배갑말의 갑옷인 '마갑'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와 함께 말의 얼굴가리개와 안장틀, 재갈 등  마구류의 부속품도 완벽한 모습으로 다량 출토되었다.
특히 장수용 갑옷인 찰갑은 지금까지 부분 형태로만 출토되고 그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만 짐작할 뿐이어서 신라사의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5세기 전반 신라 장수가 입었던 찰갑과 말에게 덧씌웠던 마갑이 발견된 무덤.

사진 가운데 네모난 부분에는 마갑의 몸통 부분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장수의 찰갑을 펼쳐 깔았다.

왼쪽 아래 부채꼴 모양은 장수의 목가리개와 투구이다

 

 

C10호 목곽묘 전경

 

 

주곽내 마갑의 목·가슴부분과 투구, 목가리개 등 출토모습

 

  

문화재청(청장 이건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경주 황오동고분군(사적 제41호)내 쪽샘지구1)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중장기병(重裝騎兵, 중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싸우는 무사)의  말에  착용하는  각종  보호 장구들인  마구류(馬具類)와 사람이 착용하는 철제의 각종 보호 장구들인 갑주류(甲?類) 등 중요 유물을 공개했다.


이번에 보고되는 유적은 경주 쪽샘지구 내에 위치한 고분으로, 일제강점기 때 부여된 고분 호수인 53호분의 동쪽에서 확인된 주부곽식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 하나의 봉분 속에 2개의 덧널이 있는 무덤구조, ‘쪽샘지구 C10호묘’로 명명)이다.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땅을 판 후, 피장자(被葬者, 무덤의 주인공)가 묻히는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넣는 부(장)곽(副葬槨)을 따로 만들었다. 주곽의 크기는 묘광(墓壙,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판 구덩이) 440cm × 220cm, 목곽(木槨) 380cm × 160cm이며, 서쪽에 위치한 부곽은 묘광 260cm ×220cm, 목곽 210cm × 160cm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주곽에서는 마갑(馬甲, 전투에서 말의 보호를 위해 착용된 갑옷)과 찰갑(札甲, 무사가 착용한 비늘식 갑옷) 일체가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마갑은 목곽의 바닥에  서쪽에서 동쪽방향으로 목·가슴부분, 몸통부분(130cm×100cm), 엉덩이부분의 순으로 정연하게 깔려있다. 몸통부분 마갑 위에는 무덤의 피장자로 추정되는 장수의 갑옷인 찰갑으로 된 흉갑(胸甲, 가슴가리개, 60cm×50cm)과 배갑(背甲, 등가리개)을 펼쳐 깔았는데, 둘을 옆구리에서 여미게 만든 이른바 ‘양당식(?當式, 앞, 뒤 양부분으로 만들어 열 수 있도록 한 모습)’ 구조이다. 아마도 피장자의 주검은 이들 위에  안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갑옷의 북편에 환두대도(環頭大刀, 둥근고리자루긴칼, 84cm)와 녹각병도자(鹿角柄刀子, 작은 칼의 손잡이를 사슴뿔로 만들어 끼운 것)를 두었는데, 환두의 위치가 동쪽을 향한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머리 방향은 동쪽을 향한 것으로 파악된다.

머리맡에는 고배(高杯, 높은 다리 달린 잔), 장경호(長頸壺) 등의 토기류와 철모(鐵矛, 쇠로 만든 창), 철부(鐵斧, 쇠도끼) 등의 철기류가 매납되어 있다. 찰갑의 배갑 하단부에는 다리를 보호하는 대퇴갑(大腿甲) 등으로 추정되는 소찰(小札, 작은 철편)들이 연결되어 있다.

주검의 발치에서 무사들이 착용하는 만곡종장판주(彎曲縱長板?, 굽은 형태의 긴 철판을 세로로 연결하여 만든 투구)목가리개(頸甲), 찰갑의 부속류인 견갑(肩甲, 어깨를   보호하는 갑옷), 비갑(臂甲, 팔을 보호하는 갑옷) 등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소찰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다.


 부곽에는 마주(馬?, 말 얼굴가리개)와 마구 부속품인 안교(鞍橋, 안장틀), 등자(?子, 발을 걸어 말에 타는 도구), 비(?, 재갈), 행엽(杏葉, 말의 치레거리) 등과 함께 대호 (大壺), 유개사이부호(有蓋四耳附壺, 뚜껑이 있고 4개의 손잡이가 어깨부분에 있는 항아리), 단경호(短頸壺) 호류(壺類)가 출토되었는데, 출토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연대는 고배 등 토기의 형식으로 보아 5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갑, 마주, 갑옷 및 관련 부속구들이 단편적으로 소량씩만 출토되었다. 다만, 마갑의 경우, 실물로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예가 지난 1992년도에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조사된 함안 마갑총(馬甲塚)에서 있었지만 이번 출토품은 그보다 훨씬 양호하고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갑옷의 경우, 지금까지 판갑(板甲, 삼각형이나 장방형의 큰 철판으로 만든 갑옷)종종 출토되어 그 원형을 파악하는데 어렵지 않았지만 찰갑의 경우, 일부 부속구만이 출토되어 그 존재만이 확인될 뿐, 그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3호분, 쌍영총, 삼실총, 개마총 등) 등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쪽샘유적 목곽묘(C10호묘)에서와 같이 한 개의 고분에서 마갑, 마주 등의 마구류 일체와 찰갑과 그 부속구 일체인 갑옷류가 함께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이번 발굴을 통해 고분벽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삼국시대 중장기병의 모습을 실물자료를 토대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4~5세기, 신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중장기병대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을 한 장수의 완연한 모습이 약 1,600년 만에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향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완전한 형태의 마구류, 갑주류 등을 보존처리하여 공개할 예정이며, 그 결과는 이 방면의 조사연구 및 복원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박종익, 박윤정 2009.6.2>

 

 경주 쪽샘지구는 경주시 황오동 361번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4~6세기대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의 집단묘역으로 알려진 곳으로, 다양한 고고학적인 증거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1600년전 신라 기마 장군 베일 벗어 -쪽샘지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시 황오동 361번지 일대에 밀집한 4-6세기 무렵

신라 지배층 공동묘지인 쪽샘지구의 주.부곽식 목곽묘를 발굴한 결과

갑옷류와 마구류를 발견했다고 2일 발표했다.

사진은 주곽내 마갑의 목?가슴부분과 투구, 목가리개 등 출토모습

 

 

 

 

 

경주 쪽샘지구서 완벽한 갑옷 세트 출토

1천600년 전, 중무장한 말을 타고 갑옷을 걸친 채 군대를 호령하던 신라 장군이 무덤을 박차고 나왔다.

경주시 황오동 361번지 일대에 밀집한 4-6세기 무렵 신라 지배층 공동묘지인 '쪽샘지구' 한 고분에서 장수가 착용한 갑옷은 물론이고, 그가 타던 말에 장착한 각종 갑옷류와 마구류(馬具類)가 온전한 세트를 갖춘 채 출토된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유적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쪽샘지구 현장에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쪽샘지구 C10호묘'라고 명명한 신라시대 주ㆍ부곽식 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를 발굴한 결과 이들 갑옷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주ㆍ부곽식 무덤이란 시신을 직접 매장하는 공간인 주곽(主郭) 외에도 그를 위해 각종 저승용 물품을 넣어주는 일종의 창고와 같은 시설인 부곽(副郭)이라는 별도 구덩이를 마련한 무덤을 말한다.

조사 결과 무덤 주인공이 묻힌 주곽에서는 말이 착용한 갑옷인 마갑(馬甲)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는 이런 말을 탄 장군이 입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찰갑(札甲.비늘식 갑옷)이 놓인 상태로 발견됐다.

이 중 장수용 갑옷인 찰갑은 가슴 가리개인 흉갑(胸甲)과 등 가리개인 배갑(背甲)을 펼쳐 깔았으며, 이 둘은 옆구리에서 여미게 한 이른바 '양당식'(양<衣+兩>當式) 구조로 밝혀졌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부곽에서는 말 얼굴 가리개인 마주(馬�)를 비롯해 안교(안장틀)ㆍ등자(�子.발받침)ㆍ재갈(�)ㆍ행엽(杏葉) 등과 같은 마구(馬具) 부속품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연구소 지병목 소장은 "마갑과 마주를 비롯한 마구류 일체와 찰갑과 그 부속구 일체인 갑옷류가 함께 출토된 전례는 없다"면서 "이번 발굴을 통해 베일 속의 신라 중장기병(重裝騎兵)이 1천600년만에 그 완전한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확인된 각종 갑옷류, 특히 마갑은 지금까지 발굴조사에서는 대부분 일부분이 발견될 뿐이었으며, 다만 지난 1992년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한 함안 마갑총(馬甲塚)이란 고분에서 온전한 형태의 마갑이 출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쪽샘지구 출토품은 마갑총 마갑보다 상태가 훨씬 양호하고 더욱 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나아가 사람이 착용한 갑옷의 경우, 지금까지 판갑(板甲.쇠로 만든 갑옷)은 종종 출토됨으로써 그 원형을 파악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으나 찰갑은 일부 부속구 형태로만 출토되고, 그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3호분ㆍ쌍영총ㆍ삼실총ㆍ개마총 등) 등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주곽에서는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자루 갖춤 긴칼)와 녹각병도자(鹿角柄刀子.사슴뿔모양 자루갖춤 작은칼)가 발견되고, 나아가 "환두대도 자루 부분이 동쪽으로 향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 묻힌 사람은 머리를 동쪽에 두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연구소는 추정했다.

더불어 주곽의 시신 머리 쪽에서는 고배(高杯.굽다리접시)와 장경호(長頸壺.목긴 항아리) 등의 토기와 창, 도끼 등의 철기류가 나왔고, 부곽에서는 대호(大壺.큰항아리)와 유개사이부호(有蓋四耳附壺. 덮개를 갖추고 네 귀가 달린 항아리) 등의 토기류가 수습됐다.

무덤 축조 연대를 연구소는 "고배 등의 토기 형식으로 보아 5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쪽샘지구 C10호묘는 동-서 방향으로 주곽(440×220㎝)을 파고 그 안에 목곽(木槨.380×160㎝)을 안치했으며, 그 서쪽에는 부곽(260×220㎝) 구덩이를 마련하고 그 안에다가 다시 목곽(210×160㎝)을 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지병목소장이

2일 경주 쪽샘지구 신라시대 마갑(馬甲) 및 찰갑(札甲) 발굴성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발굴된 갑옷류는 그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여러 종류를 망라한다

 

 

이건무 문화재청청장 2일 직접 주재한 경주 쪽샘지구 발굴설명회를 통해 공개된 신라시대 마갑 유물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쪽샘지구 발굴조사단인 경주연구소가 '쪽샘 C10호묘'라고 명명한 이 고신라 고분은 이미 오래 전에 봉분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시신 등을 매장하기 위해 판 구덩이인 묘광(墓壙)만 남아있었다.
이 시대 신라고분
이 으레 그렇듯이 이 고분 또한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 마련하고 시신 머리는 동쪽에 두되, 그 한쪽 끝에는 토기와 같은 부장품만을 매장하기 위한 구덩이를 별도로 팠다.

그래서 시신을 매장하는 공간을 주곽(主槨)이라 하고, 부장품을 넣어 두는 곳을 부곽(副槨)이라 해서 이런 무덤 양식을 고고학계에서는 주ㆍ부곽식 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라고 부른다.

목곽묘라고 이름을 붙이는 까닭은 주곽 안에 목곽(木槨)이라는 덧널, 혹은 나무 상자를 별도로 설치하기 때문이다.

C10호묘에서 마갑은 주곽(440×220㎝) 바닥에 질서정연하게 깔린 채 발견됐다. 그 모양은 흡사 담요나 장판을 연상케 했다. 이 마갑은 명칭 그대로 말이 착용한 갑옷을 말한다.

한데 이 마갑 위에는 또 다른 갑옷이 발견됐다. 찰갑(札甲)이라고 하는 비늘식 갑옷이었다. 찰갑은 가슴 가리개인 흉갑(胸甲)과 등 가리개인 배갑(背甲)이 모두 발견됐다.

시신은 그 흔적이 완전히 없어지긴 했지만, 환두대도
(環頭大刀)라고 하는 둥근 자루 갖춤 큰 쇠칼 방향을 보건대, 이들 갑옷 위에 동쪽으로 머리를 둔 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환두대도에서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시신 오른쪽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무덤 주인공은 왼손잡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평소엔 오른손에 칼을 쥐었으니,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때는 반대편 왼손으로 뽑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신 발치 쪽에서는 목가리개와 투구가 발견됐다.
이로 보아 주곽에는 시신과 함께 마갑, 그리고 이 사람이 생전에 착용하던 갑옷을 함께 매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나머지 마구(馬具)류는 부곽에서 발견됐다. 당시 전투용 말 또한 요즘 군인들이 철모를 쓰듯이 마주(馬胄)라고 하는 철판 얼굴 가리래를 썼는데 이것이 부곽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아가 부곽에서는 말 안장인 안교(鞍橋), 발걸이인 등자, 재갈, 말 치렛거리 일종인 행엽(杏葉)이라는 다른 마구류가 함께 발견됐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마갑과 마구류, 그리고 사람이 착용한 갑옷이 한꺼번에 발견됐으니, 경주문화재연구소가 흥분하지 않을 리 없었던 것이다.

지병목 소장은 "고고학도라면 누구나 이런 발굴을 꿈꾸는데 오늘 그런 성과를 공개할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감격스럽다"는 감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건무 청장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을 바로 이곳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제 앞으로 남은 문제는 유물 수거와 보존처리.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자문회의 등을 거쳐야겠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에서 직접 (보존처리를) 할 생각"이라면서 "보존처리에 얼마나 많은 시일을 소요할 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신라 기마병 혹은 기마장군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런 작업을 통해 고구려 고분벽화에 더러 보이는 기마병보다 더욱 생생한 신라 기마병(기마장군)을 복원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09.6.2>

 

 

※ 쪽샘지구 정비계획

 

고분공원은 쪽샘지구뿐만 아니라 인근의 대릉원, 노동ㆍ노서고분군을 포함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1단계로는 2010년까지 발굴현장의 투과형 펜스 사이로 관람로를 정비한 뒤

2단계로 2015년까지 대릉원 동측 담을 철거하고 그동안 발굴된 지역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발굴이 완료되면 관람로와 현장체험시설, 쉼터 등을 갖춘 공원을 2차로 만들게 된다.

또 2015년까지 가장 이슈가 되는 고분을 지정해 현장체험 시설을 만들고 발굴이 완료된 뒤에는 발굴의 단계적 과정을 보여주는 현장체험관이 건립된다.

   이와 함께 쪽샘지구 외각에는 발굴과정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신라고분을 포함한 한반도 고분에 대한 정보를 한자리에 모은 고분홍보관을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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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벽화 속의 마갑과 쪽샘지구에서 출토된 마갑

 

 

 

            같은 시기 마갑을 쓴 말을 탄 고구려 장수의 모습. 중국 지안(集安)현 서안12호 고분 벽화

고구려 쌍영총의 벽화

 

지금까지 국내에서 마갑ㆍ마구ㆍ갑옷 및 관련 부속구는 단편적으로 소량씩 출토됐었다. 또 마갑의 경우 지난 1992년 경남 함안 마갑총에서 실물로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예가 발굴되긴 했으나 이번 출토품은 그보다 훨씬 양호하고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문화재연구소 박종익 실장은 "5세기께 무사(장수급)의 철제 갑주류와 마구류가 완벽한 세트로 발굴된 예는 동아시아에서도 거의 유례가 없다"며 "중국 진시황 병마총에서 무사들의 보호장구가 발견됐으나 이는 철제가 아니라 가죽류였다"고 밝혔다.

또 "철제 보호장구를 무사와 말에게 완벽한 세트로 착장하게 한 것으로 볼 때 막강했던 신라의 당시 경제 능력과 앞선 철제기술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헤럴드경제/이영란 기자 200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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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만에 밝혀진 ´철갑기병´의 실체

 

삼국시대 중장기병의 모습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고분벽화에서나 볼 수 있던 삼국시대 중장기병(重裝騎兵)의 모습이 최근 경북 경주에서 발견된 실물자료를 토대로 1600년 만에 완벽하게 재현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4~5세기, 신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중장기병대 장수가 실제 착용했던 철제 보호 장구인 ‘갑주류(甲冑類)’와 자신의 말에 부착했던 ‘마구류(馬具類)’ 등 최근 경주 황오동고분군(사적 제41호)내 쪽샘지구에서 발굴한 중요 유물을 2일 언론에 공개했다.

경주 쪽샘지구는 경주시 황오동 361번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4~6세기대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의 집단묘역으로 알려진 곳이며, 다양한 고고학적인 증거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돼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갑, 마주, 갑옷 및 관련 부속구들이 단편적으로 소량씩만 출토됐다. 이 가운데 마갑은 실물로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예가 1992년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조사된 함안 마갑총(馬甲塚)에서 발굴됐지만 이번 출토품은 그보다 훨씬 양호하고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갑옷의 경우, 지금까지 삼각형이나 장방형의 큰 철판으로 만든 판갑(板甲)은 종종 출토돼 그 원형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찰갑은 일부 부속구만이 출토돼 존재만 확인될 뿐, 그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3호분, 쌍영총, 삼실총, 개마총 등) 등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쪽샘유적 목곽묘(C10호묘)에서와 같이 한 개의 고분에서 마갑, 마주 등의 마구류 일체와 찰갑은 물론 그 부속구 일체인 갑옷류까지 함께 출토된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든 일이다. 또한 이번 발굴을 통해 삼국시대 중장기병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신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중장기병대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을 한 장수의 완연한 모습이 약 1600년 만에 되살아날 것”이라며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완전한 형태의 마구류, 갑주류 등은 보존처리해 공개할 예정인데, 그 결과는 이 방면의 조사연구 및 복원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유적 발굴 현장에서는…

한편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보고된 유적은 쪽샘지구 내에 위치한 고분으로, 일제강점기 때 부여된 고분 호수인 53호분의 동쪽에서 확인된 ‘주부곽식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하나의 봉분 속에 2개의 덧널이 있는 무덤구조·쪽샘지구 C10호묘)’다.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땅을 판 후 피장자(被葬者·무덤의 주인공)가 묻히는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넣는 부(장)곽(副葬槨)으로 따로 만들어졌다.

주곽의 크기는 묘광(墓壙·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판 구덩이) 440cm×220cm, 목곽(木槨) 380cm×160cm이며, 서쪽에 위치한 부곽은 묘광 260cm×220cm, 목곽 210cm×160cm의 규모다.

주곽에서는 마갑(馬甲·전투에서 말 보호를 위해 부착한 갑옷)과 찰갑(札甲·무사가 착용한 비늘식 갑옷) 일체가 완전한 형태로 출토됐다. 마갑은 목곽의 바닥에 서쪽에서 동쪽방향으로 목·가슴부분, 몸통부분(130cm×100cm), 엉덩이 부분의 순으로 정연하게 깔려있다.

몸통부분 마갑 위에는 무덤의 피장자로 추정되는 장수의 갑옷인 찰갑으로 된 흉갑(胸甲·가슴가리개·60cm×50cm)과 배갑(背甲·등가리개)을 펼쳐 깔았는데, 둘을 옆구리에서 여미게 만든 이른바 ‘양당식(裲當式·앞뒤 양부분으로 만들어 열 수 있도록 한 모습)’ 구조다.

아마도 피장자의 주검은 이들 위에 안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갑옷의 북편에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자루긴칼·84cm)와 녹각병도자(鹿角柄刀子·작은 칼의 손잡이를 사슴뿔로 만들어 끼운 것)를 뒀는데, 환두의 위치가 동쪽을 향한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머리 방향은 동쪽을 향한 것으로 파악된다.

머리맡에는 고배(高杯·높은 다리 달린 잔), 장경호(長頸壺) 등의 토기류와 철모(鐵矛·쇠로 만든 창), 철부(鐵斧·쇠도끼) 등의 철기류가 있다. 찰갑의 배갑 하단부에는 다리를 보호하는 대퇴갑(大腿甲) 등으로 추정되는 소찰(小札·작은 철편)들이 연결돼 있다.

주검의 발치에서 무사들이 착용하는 만곡종장판주(彎曲縱長板冑·굽은 형태의 긴 철판을 세로로 연결해 만든 투구)와 목가리개(頸甲), 찰갑의 부속류인 견갑(肩甲·어깨를 보호하는 갑옷), 비갑(臂甲·팔을 보호하는 갑옷) 등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소찰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부곽에는 마주(馬冑·말 얼굴가리개)와 마구 부속품인 안교(鞍橋·안장틀), 등자(鐙子·발을 걸어 말에 타는 도구), 비(轡·재갈), 행엽(杏葉·말의 치레거리) 등과 함께 대호(大壺), 유개사이부호(有蓋四耳附壺·뚜껑이 있고 4개의 손잡이가 어깨부분에 있는 항아리), 단경호(短頸壺) 등 호류(壺類)가 출토됐는데, 출토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연대는 고배 등 토기의 형식으로 보아 5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된다.

 

**********************************************[데일리안 대구경북 = 박정우 기자 2009.6.3]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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