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쇼크(코펜하겐 쇼크) :
“합성 비타민 많이 먹으면 일찍 죽는다.”
- “비타민 A, E, 베타카로틴 함께 먹으면 사망률 5% 증가” 코펜하겐 쇼크 지구촌 강타
-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병원 젤라코비치 박사팀 23만 명 대상 3년 3개월간 분석
- 따로 복용할 경우엔 비타민A는 16%, 비타민E는 4%, 베타카로틴은 7% 사망률 높아져
- 합성 비타민, 천연 비타민과 체내에서 효능 달라… 야채·과일 등 음식 통해 비타민 섭취해야
- 직접적 메커니즘은 구명 못 해… 비타민 C는 사망률에 큰 영향 안 끼쳐
서양 의학계에 지난 3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인체에 유해한 활성산소를 막아주고 신체의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이유로 ‘생명의 묘약’이라 불렸던 비타민A, 비타민E, 베타카로틴이 건강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망률을 5% 이상 증가시킨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비타민의 효능에 대한 기존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 서양 의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이 연구는 놀랄 만한 내용으로 인해 ‘코펜하겐 쇼크’라고까지 불렸다.
연구 주체는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병원 연구소의 고란 젤라코비치(Goran Bjelakovic) 박사팀.
이 연구소는 덴마크 코레인 그룹(Cochrane Hepato-Biliary Group)이 지원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연구팀은 무려 23만 2,606명(44.5%는 여성)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기존의 학술논문 68건을 통계학적 방식으로 재분석해 그 결과를 ‘미국 의학협회보(JAMA·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07년 3월 1일자(현지시각 2월 28일)에 게재했다.
제목은 ‘항산화 비타민 보조제와 사망률에 관한 통계적 분석(Mortality in Randomized Trials of Antioxidant Supplements for Primary and Second Prevention;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이다.
미국 의학협회보는 1883년 창간, 1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이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비타민A, C, E, 베타카로틴을 함께 복용했을 경우엔 ‘보수적으로 잡아도’ 평균 5% 이상 사망률이 높아진다.”며, “이를 따로따로 먹었을 경우, 비타민A는 16%, 비타민E가 4%, 베타카로틴이 7% 사망률을 높인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하지만 “비타민C의 경우엔 사망률 증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망률에 영향을 끼친 직접적 메커니즘은 아직 구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대부분의 비타민 보충제는 이번에 논란이 된 비타민 A, C, E, 베타카로틴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을 함유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종합 비타민은 대부분 화학적 방법으로 제조되고 있다.
세포 재생을 촉진시켜 얼굴 주름을 펴준다고 알려진 ‘레티놀’은 비타민A의 화학명이며, 노화를 막아주고 정력을 증강시킨다고 알려진 ‘토코페롤’은 비타민E의 화학명이다. 베타카로틴은 사람의 몸속에서 비타민A로 전환되는 물질이다.
코펜하겐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매일 또는 이따금씩 평균 2년 7개월간 비타민 보충제를 복용한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향후 평균 3년 3개월간 신체의 변화 상황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대상자의 평균 복용량은 비타민A가 2만219IU, 비타민E는 569IU였으며, 베타카로틴은 17.8㎎이었다.
여기서 IU(International Unit)란 비타민 효과를 측정하는 국제 단위로, ㎎으로 표시하기 어려운 미량의 영양소를 따질 때 사용한다. IU의 절대량은 영양소마다 차이가 있는데, 비타민 A 1IU는 0.3μg이며, 비타민 E 1 IU는 0.667㎎이다. 베타카로틴 1 IU는 0.6μg이다. 참고로 1μg은 1000분의 1㎎이다.
연구팀의 크리스티안 글루드(Christian Gluud) 박사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도 충격적이었다”며,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비타민 보충제를 먹지 말고,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보충제를 먹지도 말라”고 권했다.
* 미국 비타민 시장 21조원 규모
코펜하겐팀의 연구 결과는 서양 의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논문 결과를 놓고 학계는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제약업계에선 즉각적으로 “말도 안된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USA 투데이, 보스턴 글로브, 로이터, 영국의 더 타임스 등 세계 유력 언론은 일제히 이 내용을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3월 7일자로 논문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결과는 2006년 5월의 미국 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발표와 상통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NIH는 “미국 성인이 매년 비타민 보충제 구입에 쓰는 금액이 무려 230억 달러(약 21조7120억 원)에 달한다”며 “그 비중이 너무 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장평가기구 스핀스(SPINS)는 “미국 비타민 보충제 시장이 2005년 한 해만 무려 18%의 성장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성인의 절반이 어떤 형태로든 비타민 보충제를 복용하고 있다”며 “미국과 캐나다, 유럽을 합쳐 보충제를 먹는 사람 은 8000만~1억60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코펜하겐 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이렇게 막대한 돈을 비타민에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에 관한 논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USA 투데이는 미국 소비자과학센터의 영양학자 데이비드 샤트의 말을 빌려 “코펜하겐팀의 통계적 접근은 일리가 있다(well accepted)”면서, “비타민이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도 흥미롭지만, 비타민이 긍정적 효능을 보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 또한 흥미롭다”고 비꼬았다.
보스턴 글로브지 2월 28일자는 연구에 참여했던 글루드 박사의 입을 빌려 “비타민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제약업계는 이같은 연구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미국 터프츠 대학(Tufts University) 식품영양학과의 앨리스 리히텐슈타인 교수의 입을 통해 “연구의 메시지는 간단하다”며 “비타민 보충제가 아니라 식품을 먹으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유럽 의학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연구 결과가 공개되자 영국심장재단(The British Heart Foundation)은 “비타민 보충제를 먹지 말고 식품을 통해 천연 비타민을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나섰다.
영국심장재단의 엘렌 메이슨 박사는 “항산화 비타민 보충제가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과학적 이유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영양학회도 가세했다.
학회의 프랭키 필립스 박사는 “여러 가지 제제를 조합해 화학적으로 만든 비타민 보충제는 결코 천연 비타민을 대체할 수 없다”며, “식품을 통해 비타민을 섭취할 것”을 권했다.
박사는 “비타민 보충제가 균형 잡힌 식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연구 결과를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였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의 성미경 교수는 “이런 방식의 연구는 기존의 수십 가지 유의미한 실험을 모아 다시 분석한 것”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하면 편견이 들어갈 여지가 없기 때문에 신뢰도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비타민 미네랄 사전’을 쓴 최현석 박사(전 삼성제일병원 내과 과장, 서울 현내과 원장)는 미국의학협회보(JAMA)에 대해 “학계에서 많이 인용하는 저널”이라며, “이 논문은 의과대학 교과서에 실어야 할 정도로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 국내에선 논란 불붙지 않아
연구 결과가 충격적인 만큼 ‘코펜하겐 쇼크’에 대한 반박도 잇따랐다.
앞장을 선 것은 제약 업계다.
업계가 운영하는 기관인 ‘건강보충제정보회(Health Supplements Information Service)’의 앤 워커 박사는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펜하겐 연구 결과는 ▲질병이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사람과 ▲심장병 등의 질병을 앓고 있던 사람에 대한 실험 결과를 뒤섞어 도출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며, “이 연구는 한마디로 무가치하다(worthless)”고 반박했다.
그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면서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보충제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며 “비타민 보충제는 식단이 불균형한 사람에게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데에 필수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리누스 폴링 연구소(Linus Pauling Institute)의 발츠 프라이 박사도 코펜하겐 연구 결과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프라이 박사는 “코펜하겐 연구에 포함된 일부 실험에서 비타민 보충제를 복용해 9% 가량 사망률이 낮아진 사례도 있었다”며 “이 연구 결과에 편견이 가미됐다”고 반박했다.
터프츠 대학 항산화연구소장 제프리 블룸버그 박사 역시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실험 결과에 이견을 보였다.
제프리 박사는 “항산화 물질이 이롭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왜 항산화 비타민 보충제는 해롭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항산화 물질이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설치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생명을 연장시켜 줬다”고 반박했다.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는 “비타민의 효능이 이미 입증된 상황에서 비타민과 사망률을 연계시키려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비타민이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은 한마디로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내에선 이 논문과 관련된 논란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며, “엄청난 비용문제로 인해 제대로 된 임상실험을 하기 어려운 우리 현실을 감안해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하더라도 과용하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1900년대 초반까지 학자들은 동물이 성장하는 데에는 5가지 요소, 즉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물, 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네덜란드의 병리학자 크리스티안 에이크만(Christiaan Eijkman?1858~1930)이었다.
동인도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1883년 말라리아에 걸려 귀국했던 그는 3년 뒤인 1886년, 동인도에서 만연했던 각기병의 원인을 구명하기 위해 자카르타로 날아갔다.
각기병은 팔다리가 붓고 손발의 감각에 이상이 생기는 병으로, 갑자기 발병해 구토를 일으키다 심하면 1~3일 만에 사망하는, 당시로선 매우 심각한 질병이었다.
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에이크만은 특이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백미를 먹는 사람은 각기병에 걸리지만, 현미를 먹는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연구를 거듭한 그는 쌀겨에 있는 어떤 특이한 물질이 부족하면 각기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의 건강 증진에 큰 기여를 한 것이었다.
* 풍크 박사가 ‘비타민’ 이름 붙여
‘생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학자, 프레드릭 홉킨스(1861~1947)도 유사한 연구를 했다.
홉킨스는 정규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독학으로 학업에 정진,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 병원을 거쳐 케임브리지대학 생화학 교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홉킨스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려진 5가지 요소 외에 또 다른 어떤 요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구명한 공로로 에이크만과 홉킨스는 192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이 발견한 물질에 비타민이란 이름을 붙인 사람은 폴란드의 생화학자 카시미르 풍크(Casimir Funk?884~1967)였다.
그는 특정 지역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무더기로 빠지고, 남들보다 쉽게 이가 빠지며, 다른 사람보다 더 쪼글쪼글한 피부를 갖게 되는 이유에 의문을 품었다. 원인을 찾아 헤매던 풍크는 1912년 그 까닭을 찾아냈다. 그들의 식단에 특정한 영양소가 결핍돼 있던 것이었다.
그는 이 특이한 물질을 ‘비타민(vitamine)'’이라고 불렀다. 비타민은 라틴어로 ‘생명’을 뜻하는 말인 비타(vita)와 유기물을 뜻하는 아민(amine)을 합쳐 만든 합성어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이란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자들은 비타민이라 해서 모두 다 아민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결과 비타민(vita+amine)에서 아민의 마지막 철자인 ‘e’가 빠지고, 오늘날과 같은 모습인 비타민(vitamin)으로 바뀌게 됐다.
비타민은 발견된 순서에 따라 A, B, C, D 등의 이름이 붙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비타민 K처럼 기능을 나타내는 단어의 첫 철자를 딴 이름이 붙기도 했다.
비타민 K는 혈액 응고에 필수적인 물질로, K는 ‘응고’를 뜻하는 독일어 코아굴라치온(Koagulation)의 머리글자다.
비타민의 발견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비타민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주는 작은 요정’, ‘장수를 보장하는 신비의 물질’, 심지어 ‘죽은 사람도 깨어나게 만드는 기적’이라고까지 불리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인기는 ▲세포 감염을 막아주고(비타민A)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주며(비타민C) ▲동맥경화증을 억제해주고(비타민E) ▲에너지를 생산해주는(비타민C) 등, 비타민의 여러 가지 효능이 드러나면서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는 ‘생명의 물질’을 뜻하는 비타민이란 명칭도 한 몫을 했다.
미국에서만 한 해 21조원 규모의 시장을 이루며, 비타민의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게 된 계기는 ‘활성산소에 맞서 싸운다’는 비타민의 항산화 효능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활성산소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물질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의 중심엔 양자와 중성자가 있고, 2개의 전자가 짝을 이뤄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분자 중에는 전자 하나가 부족해서 불안정한 성질을 갖게 된 것이 있다. 활성산소는 이런 구조적 문제로 인해 불안정해진 물질을 말한다.
활성산소는 성질이 불안하기 때문에 모자란 전자 하나를 찾아 짝을 이룰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활성산소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체 내부의 유기적 결합을 파괴하면서까지 다른 분자를 공격해 부족한 전자 하나를 빼앗아오기 때문이다.
활성산소에게 전자 하나를 빼앗긴 다른 분자는, 또 다른 활성산소가 돼서 다른 분자의 전자를 약탈하러 다닌다. 이런 과정은 체내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유기체 속의 물질이 연속적으로 산화, 결국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 활성산소 억제하는 것이 관건
활성산소는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 류머티즘, 치매,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의 주범으로 파악되고 있다. 활성산소는 또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며 노화를 진행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활성산소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음식을 먹거나 숨을 쉬는 과정을 통해 인체는 자연스럽게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며, 활성산소의 파괴적 힘은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역설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활성산소가 체내에서 우위를 점령할 때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생화학자 배리 핼리웰은 “사람의 몸은 평균 연간 1.7㎏에 달하는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며, “흡연, 대기오염, 화학물질, 약물과용, 과도한 운동, 감염, 스트레스 등은 활성산소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활성산소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족한 전자 하나를 채워주는 것이다. 전자를 공급받은 활성산소는 안정 상태를 되찾아 더 이상의 ‘약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묘약’으로 알려진 항산화제는 바로 이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활성산소가 간절하게 원하는 전자를 제공해줄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항산화제는 전자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활성산소를 애타게 쫓아다니기 때문에, 활성산소와 항산화제가 만나면 유기체 내부의 파괴 작용이 멈추게 된다.
우리가 흔히 먹는 비타민은 효과적으로 활성산소를 억제할 수 있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이다.
* 기존 실험 뒤집을 새 결과 잇따라
이번에 논란이 된 베타카로틴은 저항력을 높여주고 노화를 막아준다는 이유로 큰 인기를 누려온 대표적 항산화제다.
특히 1970년대 중·후반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을 낮춰준다는 실험결과가 잇달아 발표되면서, 베타카로틴은 특히 흡연자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흡연자들 간엔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된 채소인 ‘당근 먹기’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약 20년 뒤인 1992년, 미국 국립암센터(US National Cancer Institute)가 내놓은 연구 결과는 베타카로틴에 대한 기존 학설을 180도 뒤집어 버렸다.
미국 국립암센터는 폐암에 걸린 환자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1만8000명의 환자를 2개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만 베타카로틴을 복용하게 한 것이었다.
6년 뒤 결과를 분석한 연구진은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느껴야 했다. 베타카로틴을 복용한 그룹의 폐암 진행률이 무려 28%나 높아졌으며, 사망률은 17%나 늘어난 것이었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문제는 거기 있었다. 효과적인 항산화제로 알려진 베타카로틴 보충제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충격적 결과를 맞은 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베타카로틴이 흡연자의 암 발생률을 억제해 주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일반인의 암 발생률 역시 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암센터의 연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보통 사람은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복용할 필요가 없으며, 특히 흡연자는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먹어선 안된다”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발표로 나타났다.
‘코펜하겐 연구’에서 논란이 된 비타민 E (토코페롤)의 경우도 유사한 사례다.
“신체 저항력을 키워주고 정력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지면서, 비타민 E는 2000년대 초반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의 배경엔 2가지 실험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990년대 8만7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이다.
당시 연구진은 실험 대상을 8년 간 관찰한 뒤, “비타민 E를 복용한 상위 20%의 여성이, 비타민 E를 복용하지 않은 하위 20%의 여성에 비해 41%나 심장질환 발생률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뉴잉글랜드 약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vol. 328)에 실렸다.
3만90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실험의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연구진은 ‘비타민 E가 심장병 발생률을 낮춰준다’는 결론을 도출, 앞선 실험과 마찬가지로 뉴잉글랜드 약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vol. 328)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하버드대학 연구팀도 가세했다.
연구팀은 심장 질환이 생기는 주요 원인이 ‘활성산소가 혈액 내에서 지방과 단백질을 운반하는 저밀도지단백(LDL?ight Density Lipoprotein)을 파괴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비타민 E가 가진 항산화 능력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실험실에 시험관을 갖추고 비타민 E를 투입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비타민 E가 활성산소에 대항해, LDL의 파괴를 막아준 것이었다.
일련의 실험결과는 비타민 E의 비약적인 판매고로 이어졌다. 매일 비타민 E를 먹는 사람 수가 폭증, 23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성인이 ‘신비의 명약’에 열광했다.
하지만 2005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영국 여성건강연구소가 45세 이상 여성 4만 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연구진은 비타민 E를 복용해온 여성 4만 명을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2년간 관찰한 뒤, 그 결과를 미국 의학협회보에 게재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비타민 E가 심혈관 질환은 물론 암을 억제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논란이 들끓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영국 국립 심장폐혈액연구소(The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ion)였다.
국립연구소가 “기존에 알려진 바와 달리, 비타민 E 보충제는 심장병이나 뇌졸중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국심장재단(The British Heart Foundation)도 가세한 것이었다. 재단은 “심장질환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담배를 끊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길밖에 없다”라며 여성건강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타민 E의 효능을 부정한 것이었다.
상황은 급변했다. 하버드대학 연구팀도 새로운 연구 결과에 지지를 표했다. 하버드 연구팀은 이렇게 발표했다.
“비타민에 관한 연구는 오랜 시간을 갖고 꾸준히 그 효과를 추적해야 한다. 여성건강연구소의 연구는 지금까지의 연구 중 가장 완벽하고, 가장 오랜 기간 이뤄진 연구다.”
* 음식 섭취 땐 신체가 알아서 비타민 양 조절
하버드 팀의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 비타민 E는 시험관 연구에서 분명히 심장질환을 억제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복용한 사람들을 12년간 추적한 결과, 몸속에 투여된 비타민 E는 심장질환을 억제하지 못했다.
실험실과 현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일까?
의문에 빠진 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마찬가지였다.
비타민 E가 활성산소를 억제한다는 증거를 발견하긴 했지만, 이것은 모두 실험실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평소 비타민 E 결핍증을 앓던 사람을 제외하면, 비타민 E는 인체 내에서 활성산소를 억제하지 못했다.(미국 의학협회보 285호)
나아가 핀란드 연구팀은 비타민 E가 치매를 억제하지도 못한다고 발표했으며, 존스홉킨스 의학연구소 같은 일부 연구소에선 “비타민 E가 오히려 심장질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험실에선 활성산소와 잘 싸우던 비타민 E가, 왜 사람의 몸속에선 싸우지 못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그 원인에 대해 “실험실의 단일한 메커니즘과 인체의 다양한 메커니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 터프츠대학 생화학자 안젤로 아치 박사는 “비타민 E는 자연 상태에서 8가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며, “각각 다른 형태의 비타민 E는 모두 항산화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시험관 안에서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박사는 “자연 상태에는 수십만 가지의 항산화 요소가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몸은 음식물에 들어 있는 수많은 항산화 물질 중 필요한 요소만을 골라 쓰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폴 코츠 박사는 “어떤 특정한 요소를 가진 자연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과, 그 식품의 특정 요소를 추출해 만든 기능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과일이나 야채가 어떤 요소로 구성돼 있든 간에, 그 요소를 기술적으로 뽑아 정제한 것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타민 A, 비타민 E, 베타카로틴이 사망률을 5% 높인다’는 충격적 결론을 도출한 코펜하겐 연구팀은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인위적으로 조제된 합성 비타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이 결과를 과일이나 야채에 들어있는 천연 비타민에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비타민의 여러 가지 긍정적 작용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음식을 통해 천연 비타민을 섭취했을 때의 얘기라는 것이다.
숙명여대 성미경 교수는 “천연 식품을 통해서는 비타민을 과도하게 섭취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품을 통해 비타민A의 하루 권장량인 750μg을 섭취하려면 약 3㎏의 치즈를 먹어야 한다. 상한섭취량인 3000μg을 천연 식품으로 섭취하려면 말린 버섯 2㎏ 또는 간 10㎏, 아니면 해바라기 기름 1ℓ를 먹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메스꺼움을 일으키거나 신물이 나오도록 해서 인체의 메커니즘 스스로가 ‘상한섭취량’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중요한 것은 합성 비타민이냐 천연 비타민이냐가 아니라 몸으로 들어오는 비타민의 절대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논문을 작성한 코펜하겐 연구팀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합성된 비타민은 사망률을 증가(antioxidant supplements significantly increase mortality)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결론적으로 과일이나 채소 같은 천연 식품을 통해 비타민을 섭취하라”고 권했다.
* 코펜하겐 연구팀 글루드 박사 e-mail 인터뷰
“결과는 우리에게도 충격적… 비타민 환상은 제약업체가 만든 것”
“의사가 처방하지 않는 한 비타민제 복용할 필요 없어”
“제약업계와 관계없는 독립적 기관의 연구에 주목해야”
‘비타민이 사망률을 높인다’는 충격적 연구 결과를 발표한 코펜하겐 연구팀의 크리스티안 글루드(Christian Gluud) 박사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음식을 통해 비타민을 섭취해야 한다.”며, “의사가 의학적 필요에 의해 권하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비타민이든 복용할 필요가 없다(no need to take vitamins in any form)”고 말했다.
글루드 박사는 실험 결과에 대해, “관찰 대상을 무작위로 추출해 임상을 거쳐 비타민 복용 효과를 측정했다”며, “실제로 비타민을 복용한 그룹과, 플라시보(실제로 비타민을 복용하진 않았지만 ‘비타민을 복용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야기되는 심리적 효과를 살피는 임상 기법) 그룹의 2개 집단으로 대상을 나눠 관찰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타민 복용 그룹의 사망률은 플라시보 그룹에 비해 평균 5% 가량 높았다”며 구체적으로 “비타민 E 복용 그룹은 4%, 베타카로틴 복용 그룹은 7%, 비타민 A 복용 그룹은 16%나 사망률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사는 “천연 비타민의 효능에 대해서는 이번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글루드 박사는 “최근 20~25년간 비타민 관련 업계는 ‘비타민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는 잘못된 환상을 퍼뜨렸다”며, “그 결과 각 나라의 연구기관, 심지어 국가 공인기관들까지 비타민 부작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루드 박사는 코펜하겐팀의 연구 결과에 대해, “비타민 제조업계로부터 조종당하지 않고(without control)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연구기관의 독립적 연구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번 결과에 대해 “기존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글루드 박사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사망률이 평균 5% 가량 높아졌다면, 최대로 계산할 경우 사망률이 몇 퍼센트까지 늘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사망률 최대치는 이번에 파악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비타민과 사망률에 관한 연구가 수차 시도된 바 있으며, 그 연구 결과가 공개되지 않은 실험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글루드 박사는 “이런 연구의 대부분은 비타민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거나 아니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경우”라고 말했다.
글루드 박사는 끝으로 독자들을 향해, “비타민은 신선한 과일과 야채 등 올바른 식생활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의사가 의학적 필요에 의해 처방해 주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비타민이든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안 글루드 박사는 덴마크 코레인 그룹(Cochrane Hepato-Biliary Group)이 지원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인 코펜하겐대학 병원 임상연구소 연구원이다.
글루드 박사는 비타민의 효능에 관한 연구를 비롯,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항산화제 연구 전문가다.
/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
@ 비타민에 관한 오해와 진실
Q. 천연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은 뭐가 다른가?
A. 과일이나 야채처럼 천연 식품에서 추출해낸 비타민을 천연 비타민이라 한다.
하지만 이런 비타민은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천연상태에서 비타민을 추출해낸 뒤 유전자를 조작, 인위적으로 양을 늘린 비타민 역시 천연 비타민이라 한다.
죽은 동물의 사체나 식물에서 비타민을 뽑아, 유전자를 조작한 것도 천연 비타민이라 부른다.
반면 합성 비타민이란 말 그대로 화학반응을 거쳐 생긴 원소를 모아 만든, 순수하게 화학적 작용을 거쳐 만들어낸 비타민을 말한다.
Q. 비타민 하루 권장량은?
A. 관찰 대상 집단의 97~98%에 해당하는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비타민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분량을 말하는데, 취약집단에서는 유달리 민감한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최근엔 비타민 종류별·대상별로 하루 권장량을 세분화하고 있다.
Q. 빈 속에 비타민을 먹으면 안되나?
A. 그렇다. 위벽을 자극해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Q. 지용성 비타민과 수용성 비타민은 어떻게 다른가?
A. 비타민은 크게 수용성과 지용성으로 나뉜다.
지용성 비타민은 간이나 지방 조직에 저장되지만, 수용성 비타민은 배설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용성 비타민도 다량 섭취하면 부작용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 수용성 비타민인 비타민 C의 경우, 하루 성인 남녀 상한섭취량은 2000㎎이다.
/ 자문 | 성미경 숙명여대 교수
***** 결론
비타민은 우리 몸에 여러가지로 좋은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인공으로 합성된 비타민은 오히려 몸에 해롭다.
천연의 채소와 과일 등, 음식을 통해 비타민을 섭취해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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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 비타민 보충제 과다 섭취하면 '백내장' 온다
18일 스웨덴 캐롤린스카연구소 연구팀이 '미임상영양학저널'에 밝힌 2만4600명 가량을 대상으로 8년 이상에 걸쳐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사당 1000 밀리그램 가량 비타민 C 보충제를 정기적으로 혹은 자주 섭취한 사람들이 섭취하지 않은 사람들 보다 노화로 인한 백내장 수술을 받을 위험이 25% 가량 높다.
연구결과 단지 비타민 C 보충제만을 섭취하고 있었던 1225명중에는 13% 가량이 연구기간중 백내장 수술을 받은 반면, 어떤 보충제도 사용하지 않은 9974명중에는 878명인 9% 가량이, 멀티비타민만을 사용한 2259명중에는 단 252명인 11% 가량만이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또한 이 같은 과도한 비타민 C를 10년 이상 섭취했거나 65세 이상 혹은 호르몬대체요법이나 스테로이드 약물을 병행하고 있을 경우에는 심지어 이 같은 위험이 더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그러나 비타민 C 보충과 백내장 발병 위험간 이 같은 분명한 연관성은 과일이나 채소등으로 부터 천연 비타민 C를 섭취하는 것과는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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