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동탑보호소 혜일스님
- 국보 34호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문화재 지킴이
*** 아래의 글은 2006년 1월 1일자 경남여성불교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국보 34호 술정리 동탑보호소 혜일스님
사라진 문화재를 찾아내다
- 소중한 문화유산 보존계승 동탑지킴이
2003년 2월 19일.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경남 창녕군 술정리 동삼층석탑의 사리용기 등 유물이 결국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됐다.
중앙박물관은 "수장고를 샅샅이 점검한 결과, 검은 천으로 싸여있는 나무 상자에 들어 있던 문제의 유물을 찾아냈다."며 이를 공개했다.
'창녕의 석가탑'을 지키는 비구니 혜일스님의 오랜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날이었다.
혜일스님은 '1965년 사리 용구가 발견됐다'는 기록을 보고 이 행방을 문화재청과 박물관에 문의했다. 문화재청은 "66년 발간된 보고서 <고고미술>에 관련 기록이있다."는 짤막한 답변을 보냈고, 중앙박물관은 '유물리스트에 없는 문화재'라는 답변만 했다.
하지만 <고고미술>에는 발견 기록만 있을 뿐 보관 기록은 없었다.
"38년 전의 일이라 자세히 알 수 없다"며 혜일스님의 숱한 문의와 해결책을 미루어 오던 문화재청은, 당시 동아일보 기자가 이에 대한 본격 취재에 들어가자, "1966년 이 유물이 덕수궁 미술관에 넘어갔다는 문서가 있다."며 뒤늦게 기록을 내밀었다.
덕수궁 미술관의 유물은 69년 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으므로 이 유물은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관련 기록을 찾은 것은 불과 하루 만의 일이다.
중앙박물관의 태도도 문화재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물관은 처음 "69년 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된 유물은 일제강점기의 유물일 뿐"이라며, "당시 문화재 관리국으로부터 이 문화재를 넘겼다는 문서를 받은 바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보도가 나간 뒤 하루 만에 박물관은 관련 문화재를 찾아냈다.
박물관은 "이들 문화재가 69년 당시 관련 서류 없이 넘어와 소장 유물 목록에 등록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렇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은 34년 전 문화재 관리국의 실수인 셈이다.
신문에 보도된 뒤 하루면 찾아낼 수 있는 문화재가 38년간 묻혀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고, 외국으로 간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보다 국가기관 어느 곳에 '잠자고 있는' 발굴 문화재를 제대로 대접해주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 혜일스님은 스스로 동탑지킴이라 부르며 오늘도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에 그 정성과 열정을 쏟고 있다.
사리함을 찾습니다
원래 제주도에 살고 있던 혜일스님은, 수행차 창녕군 장마면 초곡리 왕걸음 마을 관음정사에서 잠시 머물던 중에, 부처님이 꿈 속에 나타나 혜일이라는 법명과 함께 동탑을 보호하라는 암시를 주셨다고 한다.
꿈에서 깨자마자 동탑에 도착한 스님.
하지만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있는 그대로 보존 계승되어야 하는데, 철 없는 어린이들이 탑에 올라가고 안내간판은 낙서하여 훼손되었고, 그야말로 인근 주민들의 쉼터로 국보탑에서 술먹고 노는 장소로 변한지 오래였다.
그 길로 곧장 스님은 이 술정리 동탑에 머물며 6년간이나 탑 주변을 청소하고 훼손을 막는 일을 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국보 제34호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함 등 유물이 사라진 것이다. 1965년에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행방이다.
불과 38년 전에 출토된 것인데도 유물의 행방을 알려주는 기록은, 창녕군지에 "1966년 당시 문화재 관리국에 의하여 해체수리시, 3층 탑신 상면의 방형 사리공에서 청동향로형 용기 등의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사리구가 들어있던 청동향로식의 용기는 중앙박물관으로 가져가고, 사리는 스테인레스 용기에 넣어 일자를 새겨 본 위치에 다시 넣어 두었다."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고미술> 제7권 제5호(1966년 5월 기록)에 "1965년 12월 24일 오후 4시경, 문화재 관리국에서 파견된 발굴단은 동탑의 3층탑신 중앙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유리재 담황색 사리병', 유리재 원형 소품', '오색구슬류 9개' 등과 사리병 안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과를 발견하여 새로운 용기인 스텐레스 안에 이 사리를 다시 안치하여 원위치로 복원시켰다."는 내용뿐이다.
그렇다면 사리함은 어디로 갔는가?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식으로 스님은 석탑에서 발굴된 사리함을 찾기 위해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수차레 방문하였으나 행방이 묘연하다는 말을 듣고, 한 문화재 연구가의 집요한 추적과 창녕향토사연구소와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와 함께 <문화재 찾기 운동>에 나섰다.
유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무도 그 행방을 모른다. 발굴한 사람은 있어도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단체나 개인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창녕군청에 민원으로 유물의 행방을 정식으로 제기하였으나 그 어느 누구도 반응이 없었다. 창녕군도 문화재청도 국립중앙박물관도 관심이 없었다. 담당 공무원들이 본질적으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정립되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행방을 알 수 없는 그 자취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혜일스님의 노력으로 2003년 2월 19일,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동탑 유물이 발견된 것이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본 유물이 다행히 중앙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서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이다.
창녕군민조차 그러한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서류를 들이대며,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수 차례 문의하며 동분서주하였지만, 당시 냉담하던 관련 공무원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서 발견되자, 가히 '수장고에서의 발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니, 한 나라의 문화재에 관한 최후의 보루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국보 34호를 지켜라
- 동탑보호소
이후 2001년 8월, 창녕군청에서 '국보 34호 관리자'로 임명된 혜일스님은, 툭하면 창녕군청에 찾아가서 탑을 보호 관리하는데 신경을 안쓴다고 떼를 쓰니, 군청에서는 아예 스님을 문화재청에 문화재 모니터로 추천을 해 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오호라~ 됐다 싶어서 연수 세미나에가서 문화재청장 앞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국보 34호인 동탑을 저렇게 망가뜨릴 심산이냐!'고 난리를 치자, 놀란 문화재청에서는 이듬해 창녕군에다가 문화재관리예산을 자그마치 6억원을 책정하여 내려보냈다. 그것도 오직 술정리 동탑 관리 전용예산으로
말이다.
군청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도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스님이 못마땅해서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연수를 보냈더니 도리어 거액의 예산을 따 가지고 돌아오니 그럴 수 밖에. 지금은 군청에만 가면 칙사 대접을 받는다.
이에 2002년 10월, 당시 김종규 창녕군수는 스님에게 동탑을 더 잘 보호하라고 탑 옆에 조그마한 집을 사서 주었다. 나중에 철거 대상이지만 스님은 그래도 좋다고 덜렁 거기에다가 간판을 내걸었다. 이름하여 '동탑보호소', 생전 처음 보는 간판, 동탑보호소가 생긴 것이다.
혜일스님의 바램은 인양사 복원
동탑이 있는 이곳은 서기 8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에 인양사가 있었으나 없어지고 탑지에 탑만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은 가람은 없어지고 탑만 있는 이곳에 국보 34호 동탑과 가람 복원으로 그 옛날 인양사의 사찰에 걸맞도록 위상이 갖추어진 가람을 조성하여, 모든 불자들의 참배 도량이 되길 스님은 오늘도 축원하고 있다.
1998년 11월 7일 제1회 동탑제를 시작으로, 매년 11월 7일에는 한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동탑제)를 열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이 석탑 만을 지키며 시간이 되면 예불을 올리고 독경을 하는 혜일스님은 지난 2005년 12월 8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지난 번 석가탄신일을 맞아 이웃과 지역을 위해 그동안 신도들의 작은 정성으로 모아진 성금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 선뜻 성금을 전달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한층 더뜻있는 동탑지킴이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제2의 경주라 불리는 창녕에 1,200년 전 살아있던 탑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스님의 모습은 이제 스님이기 이전에 문화재지킴이로서 국민 모두에게 문화재를 보호하는 마음을 가져다주는 문화재 위원이었다.
* 술정리 동삼층석탑 출토 청동제 잔형 사리용구
# 주 : 현재 동탑이 있는 곳이 인양사터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이다.
'탑금당치성문기비'에 인양사 명칭이 나오며,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술정리 동탑이 있는 곳보다는 이 비석이 있는 곳이 인양사터가 아닌가 추측해본다.
탑금당치성문기비와 술정리 동탑은 직선거리로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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