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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09 년의 문화유산- 잇단 금석문 발견?

道雨 2009. 12. 22. 15:32

 

2009 년의 문화유산- 잇단 금석문 발견

 

 

 

 

 

 

 

2009년 문화유산계에서 단연 화제가 된 인물은 선화공주였다. 마를 캐던 백제 왕자가 신라의 서울 경주로 잠입해 갖은 중상모략전을 펼친 끝에 아내로 삼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새해 벽두인 1월18일, 문화재청은 익산 미륵사지 서탑지(西塔址) 발굴성과를 공개했다. 금제(金製) 사리기(舍利器)를 비롯한 사리공양품 목록에는 이 탑을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세웠는지를 적은 금판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금판에 나타난 사람은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沙宅績德)의 따님'이었다.

 

이 금판 사리봉안기에 의해 미륵사 서탑은 백제 무왕시대인 639년에 만든 것으로 드러나 삼국유사에 적힌 미륵사 창건기와 합치됐지만, 창건 주체는 선화공주를 지목한 삼국유사와는 달랐던 것이다.

이 발견은 선화공주를 문화상징인물로 내건 익산 현지와 삼국유사를 토대로 한 연구성과를 제출한 관련 학계를 혼란 상태로 빠뜨렸다. 학계는 크고 작은 미륵사 학술대회를 여러 차례 열어 선화공주와의 연관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이는 2009년이 금석문 발견의 해가 될 것을 예고한 전주곡이었다.
5월11일 오후 5시 무렵 경북 포항시 흥해읍 중성리. 주민 생활개선사업을 위한 도로 개설 작업장에서 구들과 비슷한 형태의 평평 넓적한 돌덩이 하나가 발견됐다. 이 마을 주민 김헌도(47)씨는 정원석에나 쓸 요량으로 이 돌을 집안으로 옮겨다 놓고는 수돗물로 흙을 씻어내려 가다가 그 표면에서 심상치 않은 글씨가 잔뜩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출현한 포항 중성리비는 정밀 판독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신라 금석문 중에서도 연대가 가장 오래된 영일 냉수리비(503년)보다도 빠른 신라 최고비(最古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부정형 화강암(최대길이 104㎝, 최대너비 49㎝, 두께 12~13㎝, 무게 115kg)을 이용해 한 면에만 글자를 음각한 중성리비는 공교롭게도 1989년 냉수리비가 발견된 지점에서 동쪽으로 불과 8㎞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글자 200여 자는 12행에 걸쳐 새겼으며, 한 행에는 최대 20자 내외가 확인됐다. 비문 시작 지점인 맨 위쪽 일부가 결실되긴 했지만, 글자는 대부분 판독 가능했다. 왕의 교시를 의미하는 '敎(교)', 신라 6부 중 하나인 '사탁부(沙喙部)', 촌락 이름일 '고리촌'(古利村), 관직 중 하나인 '도사(道使)', '사인(使人)', 신라 17관등 중 6번째인 '아간지(阿干支)', '간지'(干支) 같은 글자가 확인됐다. 이를 통해 냉수리비나 524년 법흥왕 시대에 만든 울진 봉평비처럼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신라 왕실이나 신라 조정이 결정한 판결문이나 법령을 새긴 것으로 추정됐다.

문헌기록과 금석문에 이어 제3의 사료로 주목받기 시작한 목간(木簡)이나 죽간(竹簡)은 종래에는 삼국시대 것만 주로 발견됐지만 2009년에는 고려시대 것도 나왔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충남 태안군 마도 인근 해저 침몰 고려시대 선박을 발굴한 결과 개경에 거점을 마련한 당시 권력자가 해남을 비롯한 지금의 호남 지방에 소유한 개인의 장원(농장)에서 거둬 들인 세금 물품을 적은 목간과 죽간 64점이 확인됐다.

어떤 죽간에는 "대장군 김순영댁상 전출 조 일석"(大將軍金純永宅上田出租壹石)이라 해서 "대장군 김순영 댁에 전출 벼 1섬을 올린다"는 문구가 확인됐다. 더구나 이 마도 지역에서는 이들 죽간이나 목간에 적힌 물품까지 침몰 선박 주변에서 고스란히 수습됐다.

국내에 목간 붐을 일으킨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는 2009년 조사에서도 신라시대 목간 31점이 추가로 출토됐다.

또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기슭 관룡산(해발 739.7m) 정상 부근 용선대에 있는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은 지금까지 제작 연대를 몰랐지만, 이 불상의 팔각형 좌대(座臺) 한쪽 측면에서 '開元十../月卄日(?)../成內..'라는 명문을 판독함으로써 722년 무렵에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2009년 문화유산계는 금석문 발견의 성과가 두드러졌지만, 공룡에 관한 의미있는 소식도 많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익룡 발자국 화석(길이 35.4㎝, 폭 17.3㎝)이 경북 군위에서 발견됐고, 경남 남해군 창선면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작은 아기공룡 발자국화석(길이 1.27cm, 폭 1.06cm)이 나타났다.

경남 고성에서는 뿔이 있는 공룡 화석이 국내 처음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이 화석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공룡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한국의 백악기 공룡 해안(Korean Cretaceous Dinosaur Coast)'에 대해 한국이 신청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은 좌절됐다. 그 실사를 담당한 WHC 자문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등재불가' 판정을 하는 바람에 한국은 6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개최된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신청 자체를 철회한 것이다.

반면 이 회의를 통해 한국은 9번째 세계유산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조선왕릉'(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에 대한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등재가 확정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불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에 이어 9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09.12.16>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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