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약물 복용은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시도되어져 왔으나 기록에 의하면 3세기 말경 고대 도시국가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도 선수들이 승리를 위하여 참깨를 많이 먹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버섯 종류를, 고대 로마의 투기사들은 그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혼합된 약물제제를 먹고 전차 경기에서는 말에게 꿀이 섞인 특별한 물을 마시게 했었다고 그리스 의학자 필로스트라(Phylostra)와 갈렌(Galen)은 적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비시니안(혹은 이디오피아) 당나귀 풀가루를 재배하여 기름에 끓여, 훈제한 장미 꽃잎가루와의 혼합액을 만들어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카페인, 알코올, 코카인 등 사용돼
스페인 역사가 Guterez는 잉카인들이 그들의 수도인 Cuzco에서 에쿠아도르의 Quito까지 1750km를 단 5일만에 달린다는 놀라운 주행능력을 기록하면서 이들의 능력은 그들이 달리며 씹는 코카(coca)잎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했다. 또 멕시코 아즈텍의 한 부족인 Tarahuama족은 선인장의 일종인 peyote를 써서 72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중앙아메리카나 서부아프리카의 어떤 부족들은 옛부터 콜라 에퀴미네타(cola accuminata)와 콜라 니티다(cola nitida) 그리고 어떤 종류의 버섯 등 야생식물의 성분 중에 있는 특수한 효능을 알고 그들이 행군이나 경주를 할 때 사용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분명한 도핑사례가 나타난 것은 19세기부터로 카페인(caffeine), 알코올(alcohol),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 rine), 코카인(cocaine), 스트리키닌(strych nine)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1950년대에 들면서 개발된 수많은 신약으로 도핑사례가 급증하였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빈번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참가한 덴마크 사이클 선수 Kurt Enemar Jensen이 암페타민 과다복용으로 사망함으로써 도핑에 의한 첫 희생자가 되었다.
1967년 재발족된 IOC 의무위원회(Medical Commission)의 주도 하에 처음으로 1968년 그레노빌 동계올림픽과 멕시코 하계올림픽에서 도핑검사가 실시될 때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사망하거나 혹은 약물의 부작용으로 경기도중 기절하거나 정신착란증세를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는 선수가 속출하였다.
이후 선수들에게 만연된 도핑을 막기 위해 1999년 4월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도핑에 관한 세계회의에서의 반도핑 선언을 토대로 1999년 11월 로잔에 본부를 둔 세계반도핑연맹(WADA, World Anti-Doping Agency)이 설립되었다. IOC의 활동과 조직을 기초로 만들어진 WADA는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의 약물에 대한 엄격한 검사와 관리 및 규제를 담당하는 약물금지기구이다.
세계반도핑연맹서 금지 약물 규제
WADA의 정의에 의하면
1) 선수의 체액(뇨, 혈액, 기타) 속에 금지약물 및 그의 대사물질이 존재하는 것
2) 금지약물 또는 금지방법의 사용 및 사용 시도
3) 규정에서 인정하고 있는 시료 채취에 관한 공식통보 이후에도 어쩔 수 없는 합당한 이유 없이 시료 제출을 거절,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것
4) 선수의 소재보고 요구 사항에 의한 선수 소재 보고 불이행
5) 도핑관리절차의 어떤 부분에든 부정 수단을 쓰거나, 부정 수단을 쓰려고 시도하는 것
6) “금지 약물”과 “금지 방법”의 소유(입수)
7) 금지약물이나 금지방법의 교환, 수송 등을 모두 도핑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WADA에서 규정하고 있는 금지 약물은 항시(IN- AND OUT-OF-COMPETI TION) 금지 약물과 금지된 방법, 경기참가 중(IN-COMPETITION) 금지 약물과 금지된 방법으로 나누고 있다.
항시 금지 약물은 동화제(S1. Anabolic agents), 호르몬 및 관련물질(S2. Hormones and related substances), 베타-2 촉진제(S3. Beta-2 agonists), 호르몬 길항제 및 조절제(S4. Hormone antagonists and modulators), 이뇨제 및 기타 은폐제(S5. Diuretics and other masking agents)이며, 항시 금지된 방법은 산소 운반의 촉진(M1. Enhancement of oxygen transfer), 화학적 및 물리적 조작(M2. Chemical and physical manipulation), 유전자 도핑(M3. Gene doping) 등이다.
경기 중 금지 약물은 흥분제(S6. Stimulants), 환각제(S7. Narcotics), 카나비노이드(S8. Cannabinoids), 부신피질호르몬(S9. Glucocorticosteroids)이며, 특정 운동종목에서 금지되는 약물은 양궁이나 근대5종 등에서의 알코올(P1. Alcohol)과 양궁, 사격, 체조, 레슬링, 스키 등에서의 베타 차단제(P2. Beta-blockers)이다.
마황·반하·마전자 등 한약 처방시 주의
이들 가운데 한약과 관련하여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흥분제이다.
WADA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제표준(Interna tional standards)’에서의 금지목록(Prohibited list)에 의하면 흥분제는 암페타민을 비롯한 40여종의 비특정 흥분제와 아드레날린, 에페드린, 스트리키닌 등이 포함된 특정 흥분제가 있다.
최근 카페인을 비롯한 몇 가지 약물은 모니터링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금지약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흥분제 가운데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은 감기약이나 고초열에 처방되어 올림픽이나 국제대회 때마다 자주 문제를 일으켜 왔다. 경기력 향상에 대한 근거는 없으나 피로 지연과 호전적 심리상태를 유발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제제는 상처 치유를 지연시키기 때문에 치료를 어렵게 만들고 부상의 정도에 따라서는 영구 불구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한약 가운데 흔히 처방될 수 있는 마황(Ephedra sinica Stapf, E. Equaisetina Bge, E.)이나 반하(Pinellia ternata Breit)에 많이 들어 있으며, 그 외에 심엽황화염(Sida cordifola L.)에도 에페드린이 함유되어 있다.
또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통증 치료에 활용되는 마전자(Strychnos nux-vomica L.)나 여송과(Strychnos Ignatil Berg) 등에도 스트리키닌(strychnine)이 들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 중 마황은 땀을 나게 하고 체온을 저하시키며 기침을 멎게 하고 이뇨 작용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어 한의학에서는 주로 외감성 감기나 천식, 부종 등에 처방되며 사상체질의 태음인 처방에 주로 활용되지만 고혈압 환자나 허약자들에게는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약물이다.
반하는 한의학에서의 비생리적인 체액인 습담성분에 의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위장관의 질병이나 구토 등에 많이 쓰이지만 맛이 매우 맵고 독성이 있어 중독증상을 나타내므로 처방시 제형에 주의를 요한다.
또한 마전자는 염좌, 타박상, 골절 등을 치료할 때나 인후통 등에 소염, 해독시킬 목적으로 다른 약물과 배합하여 활용되며 이 역시 대량 복용시 마비나 경련 등의 중독증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흔히 마약이라고 불리는 환각 진통제는 양귀비 유도체로서 몰핀(morphine), 페치딘(pethidine), 헤로인, 코데인(codein) 등을 함유한 약제를 일컫는다. 심한 통증에 사용되거나 기침을 멎게 하고 지사제의 역할도 하지만 과량사용시 혼미, 호흡부전, 저혈압 및 근육 경직 등이 나타난다.
한약재 가운데 양귀비과에 속하는 앵속각(Papaveris Fructus)과 백약자(Stephania Cepharanthra Hayata), 백굴채(Chelidonium majus L.) 외에도 여춘화과실(Papaver rhoeas L.) 등에 codein과 morphine이 들어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마전자(Strychnos nux-vomica L.)에는 cannabinol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 해독, 진통, 진해 등의 작용이 있어서 활용되고 있는 백굴채를 제외하고는 앵속각과 마전자는 요즘 한의원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약물이며 그 외의 약물들은 국내에서는 거의 처방되지 않고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1927년 시카고대학 교수인 프레드 코호가 황소의 고환에서 추출한 후 아세톨과 벤젠으로 처리하여 테스토스테론의 한 형태로 최초 개발한 이후 여러 종류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류가 합성되어 사용되었다. 한때 세계 2차 대전 이후 유태인들을 위한 ‘기적의 약물(miracle drug)’로 각광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은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남성성기 기능저하증, 재생불량성 빈혈, 왜소증, 유방암 등의 치료에 제한적으로 처방된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운동 선수에게 처음 쓰인 것은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구소련 선수들에 의해 알려진 뒤 1954년 비엔나 세계 선수권 역도대회에서 소련 팀닥터에 의해 밝혀졌다. 서구에는 1958년 스테로이드인 다이아나볼이 만들어진 이후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특히 비대한 근육을 요하는 단거리 종목이나 힘을 쓰는 무산소성 종목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올바른 한약 복용으로 경기력 향상에 기여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매우 흔하며 선수들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경미한 부작용은 약물 복용을 중단함으로써 증세가 줄거나 정상화될 수 있지만 장기적이거나 과량 복용은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 장애는 물론 간기능 저하로 인한 간자반병, 간경화 등의 악성 종양과 혈압 상승과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C)의 증가로 인한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이 나타나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한약 중에 고우난낭(Cow testicle)의 testosterone, 해구신(Otariae testis st pennis)의 androsterone 등 동물의 고환을 제외하고는 동물성 스테로이드를 함유하고 있는 한약재는 거의 없는 편이며 그나마 처방되지 않고 있다.
주로 고혈압, 협심증, 부정맥, 심근경색 등의 치료제로 사용되어 오던 베타 차단제는 불안 해소와 진정 효과로 사격이나 양궁 등 장시간 정확한 조준이 필요한 종목에 사용되었으나 그 외에 경기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없었다. 한약재 중에도 우황청심환 등 불안 해소나 진정 작용의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은 많지만 베타 차단제와는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며 피로감, 우울증, 기관지 경련 및 성생활 장애 등의 부작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운동선수들이 즐겨 복용하는 우황청심환은 한의학에서 뇌졸중으로 인한 인사불성, 정신혼미, 언어장애, 구안와사, 수족부전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응급처치용 처방으로서 그 외에도 불안, 초조, 정신질환, 몽유 등의 증상에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30가지 이상의 약재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고유의 처방으로 도핑 금지 약물에 해당하는 성분은 전혀 없으므로 안심하고 복용해도 된다.
전문가의 일반적 한약 처방은 도핑과 무관
흔히 날씬한 체형을 원하는 체조, 발레 등의 종목이나 권투, 레슬링, 유도, 태권도 등 빠른 시간 내의 체중감량을 목표로 하는 종목에 흔히 사용되는 이뇨제는 근육 경련, 저혈압, 급격한 탈수와 전해질의 불균형으로 사망에 이르게도 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한약재 가운데 택사, 목통, 차전자, 저령, 왕불류행, 백복령 등 이뇨 작용을 하는 약물은 많이 있지만 이뇨제처럼 사구체에 직접 작용하여 급격하게 뇨를 생성시키고 배설시키는 강력한 약제는 없으며 완만한 작용만큼 부작용도 거의 없는 편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함께 복용하거나 최근 문제가 된 적혈구 생성 호르몬인 조혈촉진 호르몬(Erythropoietin) 등이 포함되어 있는 펩티드 호르몬과 유사 약물은 화학적 합성에 의한 것으로 한약재 중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 밖에 사용이 제한된 약물 가운데 정해진 규칙을 따라 신고하면 외용약으로 사용하거나 비강을 통한 흡입 또는 국소 및 관절강내 주사로 허용되고 있는 코티코스테로이드는 주로 항염증 치료에 사용되어 왔으며, 우신(Bos taurus domesticus Gmelin)이나 자하거(Homo sapiens L.) 등이 보고에 의하면 코티손(cortisone)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자하거는 사람의 태반으로 제조하는 문제점 때문에 최근에는 동물로 대치되고 있는 실정이며 그 추출액을 이용한 여러 가지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다. 자하거에는 각종 호르몬 및 그 전구체 외에도 각종 효소, 면역 글로불린, 혈액응고인자 및 다당류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한약재에도 도핑 성분이 들어있어 주의를 요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로 처방되는 한약재는 백굴채, 자하거, 마황, 반하, 마자인, 해구신, 앵속각, 마전자 등 몇 가지에 해당하므로 의도적으로 투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
특히 약물 반감기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마황의 ephedrine도 12㎎ 한번 복용의 경우 3~6시간이면 절반은 소변으로 빠져 나가 도핑과 무관해지며 체내에서의 완전 소실도 반감기의 10배 정도이므로 최대 60시간이면 더 이상 체내에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감기가 가장 긴 마자인의 cannabinol이 4일 정도이므로 일반적으로 보름 정도 복용한 경우라도 시합 전 최소 일주일 정도만 한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동안의 우리나라에서의 한약에 대한 도핑 연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시행된(박종세, 1987) 이래 최근 엘리트 선수들의 한약 섭취 실태와 도핑 안정성 검증(김종규 등, 2009)까지 몇몇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나 정확한 기전을 밝히기 위해 아직도 산지나 제형에 따른 도핑 대상 약물의 함량을 비롯하여 복용 허용량이나 용량에 따른 반감기 변화 등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