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애국심만으로는 안 된다

道雨 2011. 11. 29. 18:43

 

 

 

           애국심만으로는 안 된다

 

 

·미 FTA는 독소 조항의 진열장이라 할 만큼 한국의 정책 주권을 위협한다. 100년 전 이완용의 논리가 한나라당의 논리와 비슷했다

 

 

 

 

한·미 FTA 때문에 한국은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한나라당은 맹목적으로 비준을 향해 돌진 중이다. 이들은 개방이냐 폐쇄냐, 개국이냐 쇄국이냐 하는 엉터리 이분법을 강요한다.

그러나 한·미 FTA 반대자 중에는 개방·개국 찬성자가 많다. 개방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강요하는 불평등한 협정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한나라당은 막연한 기대를 갖고 한·미 FTA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강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한국의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올라가리라 기대하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이런 일은 없고 그 대신 일거에 나라를 망칠 독소 조항과 불평등한 내용이 수두룩한 것이 한·미 FTA다.

한·미 FTA로 인해 농업·축산업·제약업은 존폐 기로에 설 것이다.

한국의 수출 주력 산업인 조선·철강·반도체는 미국이 이미 무관세이므로 한·미 FTA와는 상관이 없고, 다만 잠재적 수출 효과가 큰 분야가 두 개 있기는 한데 섬유와 자동차다.

섬유는 평균 관세가 10%나 되어 얼핏 보면 한·미 FTA로 이득이 클 것 같지만 ‘원산지 규정’이라는 복병이 기다린다.

‘원산지 규정’은 한마디로 복잡다기한 복마전으로서 ‘보호주의의 온상’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ISD 소송의 3분의 1을 미국이 제기

자동차는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2.5% 정도이므로 그나마 수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지만 미국이 지난해 말 재협상을 통해 관세 인하를 5년이나 유예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득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미국 수출이 30만 대, 현지 생산이 30만 대였는데 매년 현지 생산이 늘어날 것이니 5년 뒤에 관세를 인하한들 수출 효과가 뭐 그리 있겠는가.

미국은 그걸 내다보고 한·미 FTA를 비준한 것이다.

한·미 FTA는 독소 조항의 진열장이라 할 만큼 우리나라의 정책 주권을 위협한다.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역진 방지(ratchet) 장치, 미래 최혜국,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이 그것이다.

ISD는 원래 각국 간 투자협정에 들어 있던 것인데, 자유무역협정에 이것을 끌고 들어온 것은 미국이 1994년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시초다.

 

정부·한나라당은 한국이 80여 개국과 ISD를 맺고 있지만 한 번도 소송을 당한 적이 없다고 자만하는데, 그건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르다. ISD 소송의 3분의 1을 미국이 제기할 정도로 미국은 ISD를 애용하며 많은 나라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도대체 무역협정을 맺으면서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해준답시고 그 나라 법률 체계를 무시하고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로 달려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는 사법 주권의 침해다.

더구나 이번에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한·미 FTA 이행법안을 보면 이 협정은 미국 국내법의 하위에 있으며, 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 항상 국내법이 먼저라고 한다.

그에 반해 우리 국회가 이 협정을 통과시키면 바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

세상에 이런 불평등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45차례나 박수를 받은 걸 마냥 기뻐해서는 안 된다.

그뿐 아니라 ISD는 우리의 정책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다.

미국은 이 조항을 지렛대 삼아 거액의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송사에 휘말리고 책임이 돌아오는 걸 싫어하는 우리나라 관료들의 움츠림 때문에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정책과 제도가 미국식 시장만능주의로 기울 것이므로 우리나라는 미국식 정글자본주의, 1%대99%의 사회가 될 것이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쁜 경제 체질을 갖고 있다. 우리가 별 이득도 없는 허울 좋은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우리의 경제 체질을 악화시킬 이유는 없다.

100년 전 이완용의 논리도 지금 한나라당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는 친미파·친러파를 전전한 뒤 친일파가 되었는데, 그때마다 그의 논리는 세계 대세에 순응한다는 것이었다. 변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이완용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생각이 없었을 것이고 조국을 위한답시고 일본에 기댔을 것이다.

 

지금 애국심으로 충만한 한나라당도 나라를 위한다고 동분서주하지만 훗날 역사는 한·미 FTA를 망국적 불평등 협정으로 규정할 것이다.

 

 

[ 이정우, 경북대 교수, 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