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재수사가 아니라 검찰이 수사받아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원관실 장진수 주무관이 최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털남>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사건 전말은 이제껏 알려진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청와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은 물론, 민정수석실과 검찰의 조직적인 은폐 의혹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재수사에 나설 것이 아니라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청와대 역시 은폐 조작의 ‘본부’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단순히 현 검찰이 재수사하는 수준에서 처리할 사안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장 주무관에게 문제의 민간인 사찰 관련 컴퓨터 자료 파기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현 주미 대사관 근무)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김아무개 비서관을 찾아가 했다는 얘기는 이 사건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최 행정관이 김 비서관에게 “내가 연루되면 민정수석실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자 김 비서관이 현장에서 검찰 관계자에게 전화해 “사건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었느냐”고 질책했다는 게 장 주무관의 전언이다.
이 전화가 위력을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최 행정관은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장 주무관에 대한 검찰의 5차 신문 조서에는, 최 행정관이 장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전해준 사실과 함께 두 사람이 통화한 내역을 장 주무관에게 캐묻는 대목이 등장한다. 하지만 검찰은 이 조서를 법원에 내지 않았다.
장 주무관은 또 사찰자료 삭제 직전인 2010년 7월4일 밤, 최 행정관과 그의 직속 상관인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등 4명이 서울 방이동에서 일원동으로 이동하며 전화로 자신에게 삭제 지시를 내렸다며, 이들이 당시 은폐대책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당시 지원관실로 압수수색을 나온 검찰이 사건 실체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업무분장표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나, ‘BH 지시사항’이라는 메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사람들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것도 단순히 수사가 미진했거나 검찰이 무능했던 탓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제 이 사건은 청와대와 검찰의 누가, 어떻게 은폐·조작을 기획·지시하고 실행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금의 검찰 수뇌부가 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검찰개혁 차원에서라도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 2012. 3. 9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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