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뒷배는 'EB', 그 위에 'MB'?

道雨 2012. 3. 8. 13:47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뒷배는 'EB', 그 위에 'MB'?

[기자의 눈] 연평도 포격을 기대하지 마라

현 정부 들어 갖가지 문제점과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쏟아졌지만,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은 그 중에서도 제일 앞에 세울만한 사안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내용의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권력이 민간인에게 불법적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가해 직장을 잃게 만든 것은 군사 독재 시절의 만행을 방불케했다.

 

둘째, 검찰의 수사가 착수됐는데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버젓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떼서 삭제하고 청와대 행정관은 실무자에게 '대포폰'까지 쥐어줬다.

백번을 양보해, 어느 정권에서건 권력 남용 시비는 있었다 치더라도 이들처럼 조직적으로 범죄 은폐에 성공한 사례를 찾긴 힘들다.

게다가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지난한 법적, 사회적 투쟁으로 맞서 진실을 드러냈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대상이 광범위했다는 정황은 뚜렷했다.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의원 등이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 수첩에 등장했다.

한 때 실세 소리를 듣던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에게 각을 세웠다는 것.

국정원이나 검찰 같은 큰 조직보다 포항인맥이 틀어쥐고 있는 소수 정예부대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들을 들쑤시기에 적합한 조직이었던 것이다.

포항 출신의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MBC PD수첩 캡처

 

"이영호 만큼만 하라"던 MB가 바로 뒷배다

포항 출신인 최종석 전 행정관의 증거인멸 지시 사실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2010년 7월) 압수수색을 받을 때 업무분장표가 딱 있었거든요. 이것은 EB), 민정 이렇게 딱 두개가 있고 업무별로 이것은 양쪽 다 보고 두 개 다 동그라미가 있고 요거는 민정에게만, 요거는 EB한테만 하고 그 시점에 새로 했던 적이 있거든요. 왜냐면 EB는 손 떼라 그만! 민정에서 하겠다라고 위에서 지시가 있었는데 그래서 OOO과장이 다시 그걸 만든 거에요. 근데 오히려 EB에게 더 가 있더라구요"라고 털어놓았다. 여기서 EB는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의 애칭이다.

포항 옆 구룡포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이영호 전 비서관은 2009년 10월 경제금융비서관실에서 고성을 지르고 소란을 피워 물의를 빚었었다. 정책실장이 말려도 막무가내였던 그에게는 구두 경고가 내려갔을 뿐이다.

그 즈음 민정수석실에서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보를 문제제기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장 전 주무관의 폭로대로 'EB'는 건재했다. 그럴 수밖에.

경제금융비서관실 사태 이후 "엘리트보다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들 이 비서관만큼만 하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최종석 전 행정관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EB'가 쓰던 것이다"면서 대포폰을 쥐어주고 "검찰, 민정과 이야기가 다 됐으니 컴퓨터를 한강에 버리던가 망치로 부숴라"고 대담하게 지시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EB', 나아가 대통령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래밭에 머리 파묻은 타조 흉내내는 청와대


장진수 전 주무관의 구체적 폭로가 지금 나와서 그렇지, 이런 상황은 지난 2010년 9월, 10월 경 다 드러났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검찰 수사 시에는 "검찰이 수사 중이니 뭐라 말하기 힘들다"고, 검찰 기소 후 재판에 들어갔을 때는 "재판이 진행 중이니 머라 말할 수 없다"고, 1심이 끝난 이후에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모래밭에 머리 파묻은 타조 흉내를 냈었다.

 

그 와중에 이영호 전 비서관은 사표를 내고 표표히 떠났고, 최종석 전 행정관에 대해선 "민정에서 들여다봤지만 문제가 없었다. 징계 논의 조차 없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로 원대복귀한 최 전 행정관은 '꽃보직' 중 하나인 주미대사관 노무관으로 나갔다.

2012년에도 청와대 입장은 똑같다.

박정하 대변인은 7일 "사건에 대해 새로운 게 나오면 검찰이 판단할 일이지 청와대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코멘트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증거 은폐 지시의 공모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정수석실이나 고용노동비서관실의 진용도 대부분 바뀐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있고, 이영호 전 비서관을 제외하면 아직 대부분의 인사들이 어디에선가 국록을 먹고 있다.

2010년 당시, 검찰의 수사가 부실하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 수첩에 다른 사찰 정황이 드러나면서 청와대는 상당히 구석에 몰렸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져 이 사안은 휩쓸려 갔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것이다. 이번엔 총선이 북한 대포 노릇을 할까?

 

/윤태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