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은 청와대”라는데 이 대통령은 무관한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엊그제 “불법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한 기자회견 내용이, 예상대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이미 지난 2010년 입수한 원충연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의 수첩을 보면, 지원관실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나 세력들의 동향을 사찰해 상부에 보고해온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 전 비서관을 앞세워 파문 확산을 막아보려는 정권 핵심부의 시도가 하루도 못 가 들통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첩에는 김근태 전 의원 등 야당 인사는 물론 남경필·이혜훈 의원 등 정권에 비판적인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친박 정치인과 와이티엔(YTN), 민주노총 등 언론계, 노동계,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사찰 정황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모두 불법이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동향 보고 수신자’로 경찰청, 국정원, 사회수석실 등을 지정하고 있어 사찰 정보가 관련 부처로 공유됐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이 전 비서관이 주장하듯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씨 한 사람에 대해서만 ‘공기업 임원으로 착각해’ 실수로 불법사찰을 했다면 증거인멸죄까지 감수하며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있는 자료를 없애려 그렇게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 전 조사관 수첩에 적혀 있는 내용은 아마도 2008년부터 2년여 동안 이들이 수집해온 불법사찰 자료의 빙산의 일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민정수석실이 사찰이나 증거인멸과 무관하다”는 그의 주장도 그동안 장진수 전 주무관이 공개한 녹음내용에 비춰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궤변이다.
어제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공개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 장 전 주무관의 통화 내용은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민정수석실이 주도해서 장 전 주무관의 형량이 벌금형이 되도록 조율을 시도했고 재판 과정도 면밀하게 살펴본 사실을 당사자들이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이란 조직을 꾸몄고 누구에게 보고를 해왔을까.
불법사찰 문제를 초기부터 제기해온 정태근 의원(무소속)은 어제 방송에서 “권력 핵심에선 불법사찰이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까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은 “몸통은 박영준 전 차관과 이상득 의원으로 이어지는 영포라인과 청와대”라며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 표명을 요구했다.
이것이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이다. 이 대통령이 답변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2012. 3. 22 한겨레 사설 ]
********************************************************************************************************
청와대도 헉!…“낮술 먹고 기자회견한 거 아냐” |
|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격앙된 표정으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폭로 내용을 반박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민간인 사찰 의혹 확산]
이영호 회견 뒤 의혹 시선 더 쏠리자, 청와대 관계자들 “비서관 수준이…”
이영호(48)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적반하장 기자회견’ 뒤 청와대 분위기가 더 얼어붙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이 모순에 가득 찬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오히려 의혹의 불씨를 지피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궁색한 청와대가 더욱 구석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21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비서관 문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따로 할 말이 없다”며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는 애초 오는 26~27일 진행되는 핵안보정상회의 관련 내용을 설명하려 했지만, 언론의 질문은 민간인 사찰 사건에 집중됐다. 하지만 최 수석의 입에서 모른다는 말 이외의 다른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2010년 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자체 조사 결과 ‘이 전 비서관은 무관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장진수 전 주무관의 잇단 폭로와 이영호 전 비서관의 자인으로 당시 청와대의 자체 조사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었음이 확인된 상황이다.
이 전 비서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민간인 사찰 관련 자료의 삭제를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장 전 주무관의 입에선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이든 해명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청와대는 함구하고 있다.
|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 20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다가 카메라와 부딪쳐 바닥에 쓰러져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청와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은 이 전 비서관이 텔레비전으로 생방송 된 기자회견에서 자기모순에 가득한 얘기를 하면서 야당을 공격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민간인 사찰 문제를 야당의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면서 야당 대표와 생방송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이 전 비서관의 언행이 오히려 민심을 들끓게 했다는 평가가 청와대 안에서도 나온다.
생방송을 지켜본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 “낮술을 먹고 기자회견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인물이 비서관으로 일하며 청와대를 활개치고 다녔느냐는 말이 나올까 겁난다”며 “이 전 비서관은 어차피 검찰에 소환될 게 뻔한데 괜히 기자회견을 해서 총선 분위기까지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
********************************************************************************************************
참여정부 인사 퇴출…‘촛불배후’ 감시…다 쑤시고 다녔다 |
공직윤리지원관실 내부수첩 다시보니…
전 정부 행정관출신 공직서 몰아내기 개입
YTN노조 감시…김근태·이용득 이름도 적혀
이영호 “불법사찰 사례 전혀 없다” 거짓말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20일 기자회견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례는 전혀 없다”고 강변했다. 또 “하드디스크에 공무원 감찰에 대한 정부 부처의 중요 자료를 비롯하여 개인 신상 정보가 들어 있어서 외부에 유출될 경우 국정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서 하드디스크 삭제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종익씨를 불법사찰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지원관실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을 보면, 김근태(당시 열린우리당)·이혜훈(새누리당) 의원 등 정치인이나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들의 동향이 나와 있다. 엄연한 ‘민간인’이다.
또 이 전 비서관의 뜻대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하드디스크는 복구가 불가능해졌지만 원 전 조사관의 수첩에는 이들의 활동상이 상세히 적혀 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간부 솎아내기, 촛불집회 배후 캐기가 대표적인 ‘활동’이다.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전방위 사찰 활동을 벌일 당시 원충연 조사관이 작성한 수첩의 일부. 이 수첩은 검찰의 1차 수사 때 압수돼 수사기록에 들어 있다. 민주노총 정파와 인적 구성, 그리고 ‘다함께’ 조직이 촛불시위에 연루돼 있다는 내용(맨위 사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관련 정보와 박규환 전 소방검정공사 상임감사의 사직 의사를 적어놓은 구절(가운데 사진), 그리고 김종익씨 회사와 자택 주소가 적혀 있는 대목(맨 아래 사진). |
■ “버티면 총리실 20명이 다 턴다”
김종익씨 불법사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지원관실 원 전 조사관의 수첩에는 ‘박규환’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한다. 박씨의 이름 앞에 중요표시(※)를 해놓고 “09.1월 소방산업진흥법 시행(12.6 발효)/ 1월 초에 나가겠다./ 밀려서 나갔다는 얘기 ×/ 다음주 소방검정국장 강○○ 압박/ 예산승인”이라는 내용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박씨는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으로 2007년 7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한국소방검정공사 상임감사로 재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감사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소방검정공사는 소방방재청(방재청) 산하기관이었는데 청와대에 파견 나간 방재청 직원이 이기환 방재청 정책국장을 불러다 (나를 내보내라고) 얘기한 것 같더라”며 “정책국장이 2008년에 3번이나 찾아와 나갈 것을 종용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시 소방검정공사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 바뀌는 때였고, 내가 이 과정에서 할 역할이 있었다. 그래서 ‘이게 끝나는 2009년 1월에 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더럽고 치사했다”고 말했다. 원 전 조사관의 수첩에 나온 내용과 일치한다.
박씨는 “당시 이 국장 말고도 다른 방재청 관계자들이 나한테 ‘총리실에 20여명으로 새로 만들어진 팀이 있는데, 한 사람당 몇명씩 붙어서 한달만 (조사)하면 개인적인 것들도 다 나온다고 한다. 연금 받을 수 있을 때 나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전 감사의 사퇴를 종용했던 이기환 국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가 나가라 마라 할 입장이 안 된다. (감사) 임명은 기획재정부에서 한다”며 “4년이나 지난 일이고, 지금 와서 어떤 얘기를 했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했다.
■ YTN 노조가 ‘촛불’ 지원?
원 전 조사관의 수첩에는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의 사장 선임을 반대하는 <와이티엔>(YTN) 노조의 투쟁 경과가 상세히 적혀 있다. 노조위원장이 구 사장과 타협해 노조 내부에서 반발이 일고, 비상대책위원회까지 출범하면서 노조위원장이 교체된 상황을 비롯해 “해고 6/ 정직 6/ 감봉 8명/ 경고 13”이라는 상세한 징계 내용까지 기록됐다. <와이티엔>의 ‘낙하산 사장’ 취임 저지 움직임을 마치 내부자처럼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선 와이티엔 사태의 ‘대안’으로 “계속 처벌→촛불에 투입된 자금/ YTN 조합비. 총액 1%(400×30만)=1억2천”이라는 내용도 있다. <와이티엔> 노조가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배후세력의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는 공직자들의 비위 첩보도 포함돼 있지만 철도·발전노조 등 공공기관 노조나 민주노총의 인적 구성 등 노동계 관련 정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함께’라는 사회운동조직이 “학생+노동계+진보”로 구성돼 있다거나, “촛불시위 연루”라고 쓰인 대목도 눈에 띈다.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의 주소와 그가 대표로 있던 케이비(KB)한마음 전화번호도 있다.
지원관실은 ‘촛불집회에 놀란 이명박 정권이 반정부 세력들을 억압하려고 비선으로 만든 정보기구’라는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김태규 박태우 기자 dokbul@hani.co.kr
********************************************************************************************************
정두언 "민간인 사찰은 빙산의 일각일뿐"
"얼마나 구린 내용 많으면 컴퓨터까지 파기하겠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22일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은폐 파문과 관련, "사실 민간인 사찰은 우연히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정치권 사찰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22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정 의원은 전날 <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불법사찰은 철부지 같은 자들이 소지역주의(영포라인)를 활용해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뒤 공권력을 사적으로 무단 사용한 국정 농단"이라며 배후로 박영준 전 차관 등 영포라인을 정조준했다.그는 "얼마나 구린 내용이 많았으면 검찰 수사를 앞두고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허겁지겁 하드디스크까지 파기했겠느냐"고 힐난하기도 했다.박영준 전 차관은 그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만들어지고, 그 일(불법사찰)이 있었을 때 난 야인이었다"며 "야인이었고 그래서 맘 달래느라 수염을 기른 채 국내외로 돌아다녔다"고 의혹을 일축했다.정두언 의원은 당내 쇄신파인 남경필, 정태근 의원 등과 함께 사찰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다. 이들 쇄신파는 4년전 18대 공천 과정 중 친이계의 친박계 학살 과정에 이상득 의원의 용퇴를 촉구하는 55인 선상반란의 주역들로 지목돼 이명박 정권 출범 후 권력 핵심부에서 전원 배제됐다.
**********************************************************************************************************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2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숨진) 김영철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이 지원관실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박영준 차관이 만들었다는 건 사기다, 지원관실 보고를 받은 건 노동부 업무협조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원관실 원충연 조사관의 수첩에서는 약칭 '2B'로 불렸던 이 전 비서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련 정보에서는 "한적 ○○○ 조사(연동)/빠르게 조사 2중 플레이/공공의료과 담당 사무관 대질/8.15자 사표를 5.30 제출/조종하는 놈 노조쪽은?/이세웅의 로비 코스/임명배경 성향"이라고 적혔다. 이세웅씨가 총재로 있던 대한적십자사 관련 정보인 셈이다. 여기에는 "2B 입장에서 조금 더 정확한 자료"라는 문구도 함께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이 전 비서관에게 보고를 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또 수첩에는 "오금동 2B"라는 표현도 나온다. 앞서 장진수 전 주무관은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보충서에서 "제가 지원관실에 근무하는 동안 이영호 비서관과 최종석 행정관, 진경락 과장, 김충곤 과장 등은 무슨 은밀한 대책 같은 것을 논의할 때 이영호 비서관의 자택이나 그 근처에서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비서관의 집이 있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근처인 오금동에서 이들 사이에 은밀한 회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 전 비서관이 업무 연관성도 없는 지원관실을 비선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관가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거물'을 등에 업은 이 전 비서관의 '농단'을 청와대 안에서 한동안 막지 못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지원관실 서무를 맡고 있던 장 전 주무관이 매달 특수활동비 280만원을 떼어내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이 비서관에게 200만원, 조재정 선임행정관에게 50만원, 최종석 행정관에게 30만원을 건넨 사실도, 이 전 비서관이 지원관실을 운영했다는 강력한 물증 가운데 하나다.
김태규 기자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