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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검찰, 내 친구 70번 불러 나도 엮으려 했다"

道雨 2012. 7. 11. 11:22

 

 

 

  이해찬 "검찰, 내 친구 70번 불러 나도 엮으려 했다"

 

"검찰, 이런 짓 계속하면 그냥 안 두겠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10일 검찰이 올 봄까지 자신도 저축은행 비리 혐의로 엮으려 했다고 주장하며 박지원 원내대표 비리 연루 의혹을 흘리는 검찰을 맹비난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 워크숍에서 "우리당 의원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자들에게 흘려 마치 피의사실인 것처럼 만드는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며 "작년에 제 친구가 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이 됐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상세히 밝히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저축은행 관련한 수사는 친구가 시인을 해 이틀 만에 끝났는데 이후로 ‘이해찬에게 2억원 줬다고 불어라’라며 한 1주일을 계속해서 아침마다 불러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 ‘2억이 아니면 1억이라도 줬다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1주일을 버텼다. 큰 죄도 없고 걸릴 것도 없지만 ‘이해찬은 돈 줘도 안 받는 사람이다. 준적도 없다’고 하자 한 달 동안을 ‘그럼 5천만원이라도 줬다고 하라’고 하자 제 친구가 ‘소설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3천만원, 1천만원 그것도 안 되니까 ‘5백만원 후원금 냈다’고만 하라고 했다고 한다"며 "이런 짓을 작년부터 금년 봄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끝끝내 안 줬다고 하니 그렇다면 민주당 다른 의원 아무에게나 줬다고 하라고 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1년을 수사했다. 1심이 끝났는데도 계속 불러서 수사했다. 아침에 불러 오후 7시까지 의자에 앉아있어 친구는 허리 디스크가 걸렸다. 불러내기를 무려 70회, 이것이 검찰이 하는 수법"이라며 "이 이야기는 검찰 수사과정에 입회한 변호사가 저에게 직접 해준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말 너무 힘들고 몸이 아프니 귀찮아서라도 그냥 후원금 냈다고 얘기할까봐 걱정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제 친구가 끝까지 아니라고 하니 결국은 포기했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검찰이 하는 짓"이라며 "한명숙 총리 재판과 똑같다. 피의자를 불러다 다른 건으로 약점을 잡아 놓고 ‘줬다고 얘기하라, 그럼 그건 봐주겠다’는 식이다. 똑같은 건을 두 번 반복해서 특수1부가 깨지고, 특수2부가 깨진 것 아닌가. 특수3부 중 1,2부가 그렇게 날아갔으면 이제 정신을 차려하는데 안 되니까 3부에서 새로운 공작을 또 시작하고 있다"며 박지원 원내대표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를 맹비난했다. 

그는 검찰에 대해 "이제 국회가 시작됐다. 검찰이 정말 해야 할 것은 안하고 안해야 될 짓만 계속 한다면 속된 말로 그냥 안 두겠다. 전 단호한 사람이다. 검찰에게 약점이 단 한 점도 없는 사람이다. 25년 정치했어도 정치자금법, 선거법 한번 걸린 적 없는 사람"이라며 "이번 국회가 검찰이 생각하듯이 그냥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국회가 아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은 국회다. 다시 한번 검찰이 스스로 자정하지 않는다면 국민으로부터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강력경고했다.
박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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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한민국 최대의 암적 존재는 검찰"

 

[김대중 평전 '새벽'·35] 노벨상 수상 '방해' 공작의 진실은?

 

 

김대중은 끊임없이 집권 세력의 공작에 시달렸다. 감옥에 있을 때가 오히려 자유스러울 정도였다. 그 앞잡이가 다름 아닌 검찰과 정보부(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였다. 그들은 권력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렸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리하여 바쳤다. 그래서 지킨 것이 기득권이었다. 검찰이 역대 정권에 바쳤던, 그래서 사랑받았던 가장 손쉬운 대중 요리는 '김대중'이었다. 오랜 세월에도 부패하지 않았다. 재료신선했고, 메뉴는 다양했다.

그런 김대중이 권력을 쥐고 처음으로 검찰과 안기부의 업무 보고를 받았다. 김대중을 사지(死地)로 몰아갔던 당사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지, 어떤 요리를 내놓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검찰과 안기부는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권력을 향해 납작 엎드렸다. '김대중' 같은 요리를 더 이상 만들 수 없었다.

4월 9일 법무부 업무 보고 때 대통령 김대중은 이렇게 당부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범죄도 수사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치인도 순식간에 구속할 수 있습니다. 일본 검찰이 다나카 총리를 구속한 사례를 보십시오. 검찰이 바로 서면 아무도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의 목적에 따라 표적 수사를 많이 했습니다. 나도 당해봐서 압니다. 1989년 용공 조작 당시,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서경원 씨를 사흘간 잠 안 재우고 고문까지 해서 나에게 주지도 않은 1만 달러를 줬다고 허위 자백하게 했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섭니다. 이것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정권은 학연, 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인사 문제를 깨끗이 할 것이고 권력을 위해 검찰권 행사를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검찰이 변할 것이라고 믿었다.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사회에서는 검찰이 과거와 같은 음험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변하지 않았다. 개혁하는 시늉만 냈다. 대통령이 굳게 믿었던 검찰총장 김태정은 '옷 로비'라는 해괴한 스캔들에 휘말려 전전긍긍했다. '남편의 혐의를 벗기려 고위직 인사 부인들에게 옷 로비를 벌였다'는 사건은 실체 규명을 떠나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고위 관리 부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옷을 얻어 입고 키득거렸다'는 상상만으로도 서민들은 분노했다. 적어도 '국민의 정부'라 명명한 정권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건이었다. 김태정 총장은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어서 1999년 6월 또 하나의 해괴한 사건이 터졌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진형구는 간부들과 오찬을 하면서 폭탄주를 마셨다. 대낮에 대취해서 집무실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엉뚱한 자랑을 했다. '1998년 11월에 있었던 조폐공사 파업은 실은 검찰이 유도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파업 유도 사건'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김대중의 검찰이었다. 검찰은 그렇게 새 시대를 맞았다고 해서, 또 간곡한 설득이나 호소로 바뀔 무리가 아니었다. 이후에도 검찰은 구설수를 양산해서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대통령 김대중은 결국 검찰 개혁을 끌어내지 못했다.

검찰은 시퍼런 권력 앞에서는 색색의 옷을 입고 칼춤을 추다가, 권력에서 쉰내가 나면 망나니로 돌변하여 권력을 벴다. 대통령 노무현이 퇴임한 후 검찰의 칼끝이 봉하 마을을 향하자 김대중은 우리나라가 검찰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그리고 끝내 '노 대통령의 자살'이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 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 기밀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겨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권력이 시키는 대로 요리를 해서 바쳤다. 김대중은 탄식했다.

"이 나라의 최대의 암적 존재는 검찰이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고 영남 지역 중심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