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원인데…"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ISD와 사법주권 문제, 현실로 나타나다
11월 22일, 론스타가 결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해외 투자가가 한국 정부에 ISD를 제기한 첫 사례다. 10년간 지속된 론스타 문제가 왜 생겼는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 공학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듯한 대선에서 론스타와 ISD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지난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펴낸 이 분야 전문가다. <편집자 주>
미국의 자동차 번호판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주마다 번호판의 디자인과 문구가 다르다. 내가 살던 일리노이 주는 링컨의 고향인 이유로 "링컨의 땅(Land of Lincoln)"이다. 미연방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 주는 "론스타의 주(Lone Star State)"이다. 1845년에 26번째 주로 미연방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별개의 독립 국가였던 텍사스 공화국의 국기에 담겨 있던 별 모양의 상징이었던 론스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론스타는 텍사스 주의 상징이다.
이 텍사스 주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이며 최근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한 '먹튀' 자본 론스타의 고향이기도 하다. 외환위기를 틈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꽤 많이 챙겨서 작년 말에 떠난 걸로 알고 있는데, 2조 4000억 원 정도를 덜 챙겼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장을 보자는데 정부는 안 보여준다. 궁금하면 500원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알 것 없단다. 2조 4000억 원은 소송에서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씩 부담해야 하는 액수인데도 여전히 비공개이다. 그렇다면 지난번 중재의향서의 경우처럼 론스타가 먼저 보여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결국, 중재의향서에 기초하여 판단을 해보면 내용은 이렇다.
한국과 벨기에가 1976년에 맺은 투자협정에 의하면 벨기에 회사는 한국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으로 인한 수익금에 대해서 세금을 물렸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벨기에에 있는 론스타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라서 한국에 있는 론스타 코리아를 국내 고정사업장으로 판단하고 이에 과세를 했다고 한다.
한데, 문제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하면 페이퍼 컴퍼니는 협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 없다.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협정 적용 배제 조항을 두었어야 하는데, 협정 체결 시 이를 간과하였고, 2006년 개정 시에도 역시 간과하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과세는 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법리적으로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두 번째의 주장은 이른바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자본 성격에 대해서 제때에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함으로써 매각이 지연되었고, 이로 인해서 론스타는 더 비싼 값에 외환은행을 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최초에 론스타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금융자본이라고 인정해 주고서는, 왜 툭하면 자본의 성격에 대해 시비를 걸고 론스타 코리아의 대표를 구속하는 등 괴롭히면서 매각을 지연시켰냐는 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론스타는 제때에 외환은행을 팔지 못하여 더 많은 매각 이윤을 얻지 못하였고, 이는 간접적으로 재산을 빼앗아 가는 행위와 마찬가지이므로 간접수용이라는 주장이다.
법적으로 볼 때 이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비밀행정으로 발생한 문제의 성격이 크다. 결국, 금융당국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러운 행정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인데, 이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ISD 소송에서 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득을 보았을 텐데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뉴시스 |
ICSID와 한국 사법부 판결이 충돌한다면?
패소하면 억울하더라도 2조 4000억 원만 물어주면 끝인가? 아니다. 사법주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2012년 1월 금융당국은 최종적으로 론스타가 금융자본이라고 판정을 해줌으로써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했다. 이에 국회의원과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은 2012년 7월 헌법재판소에 금융당국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역시 2012년 7월에, 참여연대는 서울중앙지법에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에도 부당한 이익을 챙겨간 것에 대해 환수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건 모두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에 제소한 이번 ISD 사건의 내용 또한 론스타의 자본 성격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같은 내용에 대해서 국제중재재판소와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비슷한 시기에 판단을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심사는 사실관계와 근거법에 대한 해석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법적 해석의 영역과 중복된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 우리의 은행법 하에서 론스타 자본의 성격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국제투자중재재판소가 판단하게 된다. 이 투자중재재판소가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면 우리 정부는 ICSID 협약에 의거하여 국내 사법 절차를 통해 배상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내사법 절차는 투자중재재판의 결과를 재차 심사하는 별도의 절차가 아니다. 국내법상의 배상 집행절차일 뿐이다.
3인의 패널이 진행하는 국제투자중재재판은 항소도 불가능하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 무효 신청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심사하는 국제투자중재재판소와 대한민국의 사법부의 판단이 충돌할 경우에는 어느 쪽의 판단이 우선할 것인가?
즉, 국제투자중재재판소는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고 배상명령을 내렸는데,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론스타에 불리한 판단을 내릴 경우,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판단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국 사법부의 판단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FTA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ISD와 사법주권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동일한 근거법을 가지고 국내의 사법부와 3인의 국제투자중재재판소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때, 국내 사법부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중재재판부의 배상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혹시,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무리한 판단에 대해 별도로 국내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이 부분에서 사법부의 법리적 고민이 시작된다.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보상 명령의 근거는 대한민국이 1966년에 가입한 ICSID 협약이다. 중재기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을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해외투자가 전무하던 사실은 차치하고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시절에 우리는 ICSID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러한 ICSID 협약은 국제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에 의해 국내법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국내법적 성격을 지닌 조약으로 인한 중재재판소의 판단이 헌법적 기준에서 국내법을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의 발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 헌법재판소. ⓒ뉴시스 |
미국 연방대법원과 메데인 사건
이 점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의미 있는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200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메데인 사건(Medellin vs. Texas)이라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1993년, 18세의 멕시코 국적의 소년 메데인이 텍사스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소년의 혐의는 입증되었고 소년은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을 언도받았다.
대부분의 사형 확정 판결이 그렇듯이 소년의 변호인은 다양한 절차상의 문제점을 들어 항소하였다. 그중 하나가, 메데인은 멕시코 국적을 가진 멕시코 시민인데, 멕시코 대사관에 소년의 체포에 관해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69년 체결한 비엔나 협약에 의하면, (미국을 포함한) 협약 가입국은 자국에서 외국인의 체포나 구금 시 지체 없이 자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에 그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데, 메데인이 체포되었음에도 그러한 사실이 주미 멕시코 대사관에 고지되지 않아서 텍사스 주가 비엔나 협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소년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그런데, 몇 년 후인 2003년 멕시코 정부가 메데인과 그 외에 미국에 수감되어 있는 51명의 자국민에 대한 수감 내용을 고지하지 않음을 들어 UN 산하의 국제재판소(ICJ)에 미국을 제소하였다. 이듬해, ICJ는 멕시코의 손을 들어주고 메데인을 비롯한 다른 멕시코 확정범들에 대한 판결과 형량에 관해 미국 법원이 재고할 것을 명령하였다.
사안이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번지자,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국제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따를 의무가 있으니, 사법부는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2008년 연방대법원은 국제재판소의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비록 미국이 ICJ 가입국이기는 하지만, 국회에서 ICJ의 효력에 관한 상세한 연방법을 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이것은 국제법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이다. 국제조약에 관한 미국 사법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향성 때문이다. 강대국의 오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국의 사법 체제를 보호하려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법정에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체결 당시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고 발효되었다.
그런데, 헌법 제60조 1항에 의하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2조 4000억 소송을 가능하게 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ISD 소송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음으로 인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어떠한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의 사법주권까지 무력화할 수 있는 ISD 소송을 바라보며, 이제 우리의 사법적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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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투자금 내놓으라는 격
[연속 기고 - 론스타 ②] ISD, FTA 등장 후 급증하다
11월 22일, 론스타가 결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해외 투자가가 한국 정부에 ISD를 제기한 첫 사례다. 10년간 지속된 론스타 문제가 왜 생겼는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 공학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듯한 대선에서 론스타와 ISD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지난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주>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인데…"
약법삼장(約法三章). "살인하면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죄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말이다. 진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진나라 수도를 점령한 후 수립한 법이념이다. 과연 정말로 법이 세 개만 있었을까마는, 적어도 법의 단순화를 통하여 사회의 개혁과 안정을 이루려 했던 당시의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그에 비해, 복잡한 현대사회라지만 요즘은 법이 너무 많다. 내국법뿐만 아니라 외국과 맺은 협정도 넘쳐난다. 투자협정(BIT)은 무엇이고, 자유무역협정(FTA)은 무엇이며 요즘 뜨거운 이슈인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도대체 무엇인가?
'돌아온 장고' 론스타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국민에게 ISD 학습을 강제하는 느낌이다. ISD(Investor-State Dispute)는 말 그대로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소송(중재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 소송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유로 소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을 제기할 수 있게 만든 법적 제도이다. 개인이 타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 국제법 하에서 타당한가 하는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유럽인권재판소의 경우처럼 개인이 인권 침해를 사유로 국가를 제소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과 투자가 동일한 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ISD는 1960년대부터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구 식민지 자본을 국유화하면서 발생한 자본의 위기감이 그 역사적 배경이다. 안전한 식민지에 마음 놓고 투자했는데 어느 날 이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그동안 투자했던 설비와 자본을 모두 국유화해버리니 위기감을 느낀 자본이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식민지 지배에 실패한 점령국이 떠나면서 식민지 국가에 자신들이 그동안 식민 지배를 통하여 착취한 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도리어 그간 투자한 금액에 대하여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점령군이 35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본국으로 도망가면서 그동안 식민지 조선에 투자한 금액을 보전해주길 기대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ISD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점점 그 면모를 달리하게 되었다. 군사력을 앞세운 식민지 투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초국적 성격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국경 없는 자본은 전 세계를 떠돌며 투자할 만한 곳을 찾아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가 만만한 투자 대상을 찾으면 거기에서 최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이내 또 다른 투자 대상을 찾아 떠난다. 한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원금을 까먹거나 이윤 창출이 제대로 안 되면 자본이 투자 유치국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국가 간의 전통적 외교 방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간접수용과 같은 새로운 법적 개념을 통하여 법적으로 해결하게 된 것이다.
ISD 탄생의 역사적 배경
론스타의 경우가 이러한 프레임의 전형적인 예이다. 론스타는 외환위기를 틈타 대한민국에 들어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수조 원의 이익을 내고 떠났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추가 이익 발생을 우리 정부가 가로막았다며 ISD를 제기한 것이다. 위의 전형에서 한 가지 예외는, 론스타의 경우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중요한 고비마다 한국을 방문해서 유사(類似) 외교적 작용을 했다는 점이다.
ISD는, 론스타 사건의 근거가 되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서와 같이, 기존의 양자 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에도 포함되어 있는 조항이다. 하지만, FTA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하게 되었다. 2011년 11월 발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BIT-FTA 체결 증가로 2000년 이후 ISD 제소가 급증했다고 분석한다. 자료에서 인용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2011년 세계투자보고서' 도표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1993년까지 그 존재가 미미하던 ISD 소송이 가시권에 들어온 시점은 1994년이며, 급증하기 시작한 때는 1996년이다. 바로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시점이다.
<그림 1. ISD 연간 발생 건수 및 누적 건수(1987-2010년)>
▲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11"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 관련 투요 분쟁 사례 및 시사점," 2011년 11월 21일, Vol 11, No. 30.에서 재인용. ⓒ대외경제정책연구원
NAFTA 제11조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 때문에 ISD 소송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ISD 소송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ICSID)로 몰리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개점한 이후 거의 휴업 상태에 있던 ICSID가 갑자기 바빠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제중재기관으로 ICSID, UNCITRAL, SCC, ICC 등이 있는데, 이 중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설립된 ICSID가 가장 대표적인 중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같은 보고서에서 인용한 UNCTAD 자료에 의하면 2010년 말 현재 ISD는 총 390건이며, 이 중 미국 투자자가 제소한 사건은 109건으로서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ISD 소송의 경우와 같이, 미국 투자자임에도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거하여 벨기에 투자자의 자격으로 옷만 갈아입은 소송까지 포함하면, 실제 미국 투자자가 제기한 ISD는 109건을 상회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국가 간의 무역기구인 WTO에도 없는 ISD를 미국은 왜 굳이 FTA에서 강조하고 발전시키려 하는가? 답은 미국의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미국은 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이다.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모든 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나라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난 것처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국적 자본주의의 특징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너무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 간의 전쟁도 민간 전투 용역업체에 맡긴다.
정부가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온 측면도 있다.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맡기고 정부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ISD이다. 미국의 자본은 월가를 중심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전 세계의 투자자치고 월가 자금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투자자는 드물다.
전통적으로 해외 투자는 국가가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국가가 보호하기에는 이미 덩치가 너무 커졌고 국적도 없어졌다. 해외 투자 자본은 스스로 보호막을 형성하였다. 그것이 ISD이다. 국가는 뒤에서 나머지 할 수 있는 안전망을 쳐주기만 할 뿐이다. 사실, 국가로서도 이게 더 수월한 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대해 국가의 이름으로 소송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전통적 우호국인 나토(NATO) 국가들을 제소한다면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한데, 개인이 따로 국가를 제소한다면 국가로서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게 되는 셈이다.
▲ 론스타 펀드 홈페이지. ⓒ론스타
'론스타 건은 한미FTA와 무관' 호도하는 정부
이러한 흐름 속에서 ISD는 발전해 왔고, 론스타가 근거로 삼은 BIT 내의 ISD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FTA의 ISD가 더 진화했다. 투자 개념을 확장하고 미국의 판례법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서 규정한 투자의 정의와 한미FTA에서 규정한 투자의 정의를 비교해 보면 알 일이고, 간접투자의 정의에 관해 한미FTA에 그대로 베껴 쓴 미국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알 일이다. 이렇듯, 진화한 ISD를 미국은 NAFTA를 통해 한미FTA를 위시한 여타 국가와 맺은 FTA에 집어넣었다.
결과는 지금까지 미국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본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확대해나갔고 견디다 못한 국가들은 ICSID 협약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볼리비아를 시작으로, 2010년 에콰도르 그리고 2012년에 베네수엘라까지 ICSID에서 탈퇴하였다. 너무 심하게 미국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 자본을 미국이 통제할 의사도, 힘도 없는 듯하다. 이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혼자서 뛰어다닌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미국과 FTA를 맺었다.
정부는 론스타 사건이 한미FTA와 무관한 한-벨기에 BIT에 근거했기 때문에 한미FTA의 ISD는 마치 안전한 것처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BIT의 ISD는 한미FTA의 ISD에 비하면 고전적이다. 좀 오래된 영화지만 <터미네이터>의 1편과 2편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의 차이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더 심각한 사실은, 한미FTA가 체결된 이후인 2012년에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제소된 론스타 사건의 판결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경우, 론스타가 한미FTA를 근거로 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인데 마냥 걱정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인가? 그동안 당연시되어왔던 비밀주의 정부 행정은 이제 ISD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보에 있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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