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오영수
나의 스무 두서넛 살 기억 저편에는 늘 물안개가 서려 있다
내 젊음을 잃어버린 그곳에는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이 파편으로 남아 있다
전태일의 꿈이 구둣발에 짓밟혀 육신의 불로 사라질 때 내 곁에는 소주병이 서럽게 통곡을 하고 있었다
병에선 밤새도록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언젠 지부터 친구들이 귀신도 모르게 하나씩 사라져 갔다
비굴한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에는 최루가스가 눈물을 감추기에 제격이었다
비겁을 합리화하는 데 있어 술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돈이 없을 때는 인생을 저당 잡혀 술을 마련하기도 했다
광화문 거리에 까맣게 깔린 전경의 둔탁한 군화 소리는 인사동 골목길마저 비틀거리게 했다
논산에서 강제 차출된 선배가 휘두르는 방패에선 찍기라는 이름의 별이 쏟아져 나왔다 이리저리 쫓기던 시민들은 그 별을 무서워했다
순했던 선배를 무엇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야수처럼 변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서로 몰랐다 마주 선 대열에선 적개심 가득한 증오가 언제 분출할지 모르는 용암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개처럼 질질 끌고 간 것은 시민이 아니라 민주의 순결이었다 그날은 민주가 집권당에 윤간을 당하던 날이기도 했다 길바닥에는 순결이 찢긴 핏자국이 선명했다
오늘처럼 찬바람이 불고 하늘마저 흐린 날이면 지금도 닭장차에 갇혀있을 그니가 못내 그리워 나는 기억 저편의 파편들로 조각 모음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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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2014 화답하라 촛불이여 1894 갑오년 동학의 마중물이 될 2014 갑오년 새해가 120년 만에 청마로 돌아왔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