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관련, 개괄, 증거 위조 등 중간 정리

道雨 2014. 3. 1. 12:52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관련, 개괄, 증거 위조 등 중간 정리

 

 

          유우성·유가려 남매 이야기

 

 

잠 못 드는 하루하루…얼굴 알려진 뒤 과외 알바도 잘려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검찰의 증거조작 의혹 해명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유씨는 이날 자신의 입장을 밝히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답답한 듯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유우성·유가려 남매 이야기

▶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의 피의자 유우성씨는 간첩으로 몰려 1년째 재판정에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죄를 입증하겠다고 나선 검찰과 국정원이 증거조작을 했다는 중국 정부의 통보에 유씨는 크게 절망했습니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유씨의 가족들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씨와 유씨 가족들을 다시 만나보았습니다. 간첩임을 밝혀내려 한 게 아니라, 간첩을 만들려고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의자 유우성(34)씨는 요즘 인터넷 뉴스 검색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언론이 검찰의 증거 위조 의혹을 다루는 것에 크게 고무됐다.

지난해 초 ‘서울시청에 간첩이 근무하고 있었다’고 발표한 검찰의 말을 대서특필하던 언론들이 항소심 재판정에서 불거지고 있던 증거 위조 의혹에는 침묵으로 일관하자 크게 낙담했던 유씨였다.

 

 

일부에서는 ‘국가정보원이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문서여도 내용만 맞으면 괜찮다’는 설명으로 사건의 본질을 희석하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국정원이 입수했다고 하는 출입경기록이 유씨의 실제 여권기록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도하는 언론은 적다.

 

 

“(서울시에서 근무할 때) 탈북자가 아니고 (기초생활)수급자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지난 20일 밤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유씨가 화를 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 종편 프로그램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정리한다며 유씨가 서울시에서 탈북자를 관리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틀린 설명이었다.

탈북자 정보를 북에 건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유씨는 언론 보도 하나하나에 예민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저는 남한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건너왔는데, 국가기관이 이렇게 증거를 조작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저는 정말 북한이 싫어서 건너온 사람입니다. 검찰은 왜 저를 계속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20일 밤 자신의 서울 강동구 집에서 기자와 만난 유씨가 맥주를 벌컥 들이켜며 말했다. 유씨는 지난해 8월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뒤에도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까닭도 없이 두시간에 한번씩 깬다. 그동안 겪은 고통에 대한 후유증이다. 술을 들이켜면 조금 빨리 잠을 잘 수 있다. 수면제를 1년 가까이 먹어온 유씨는 이제 약에 의지한 잠을 줄이려 노력중이다.

 

 

조선족 동포가 사는 연길에도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알려지며, 남매 얼굴은 꽤 알려져버렸다
티브이에 나오는 유씨의 얼굴이 가족들은 반가우면서도 슬프다

유씨는 인터넷 뉴스 검색으로 매일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검찰 말 대서특필하던 언론이 증거조작 의혹에 침묵하는 데 크게 낙담하며 절망하고 있다


 

 

 

북한이 싫어 남한으로 넘어왔는데…

 

 

유우성씨는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나고 자란 재북 화교였다. 유씨는 “고조할아버지가 일제에 대항해 조선인들과 함께 싸웠던 한족 독립운동가였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후손들이 중국이 아닌 조선 땅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할아버지는 조선 반도에서 숨을 거뒀다. 자손들은 조선 땅에 정착했고 한국전쟁 이후 그곳은 북한이 되었다.

 

 

그러나 유씨는 커갈수록 북한 정권이 싫어졌다. 관리들은 여유롭게 사는데 서민들은 너무 가난했다. 부자 세습 독재정권이 계속되는 게 못마땅했다.

2001년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탈북 직전까지 회령시의 한 병원에서 준의사(의사보조. 3년제인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면 준의사 자격증을 받는다)로 근무했다고 한다. 치료약이 없어 죽는 주민이 너무 많았다. 의사들은 약을 빼돌려 생계 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고 싶어 의사가 되었지만 북한에서 의사로 사는 것이 점점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유씨는 재북 화교여서 중국을 다녀볼 기회가 남들에 비해 많았다. 두만강만 넘으면 입을 것 먹을 것이 넘쳐났고 병에 걸린 사람들도 병원에서 좋은 치료를 받는 것을 목격했다. 같은 하늘 아래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북한은 한심한 감옥 같은 곳이었어요. 아무리 의술이 높아도 의료설비와 의약품이 없으면 결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점점 북한 사회가 싫어졌어요.”

 

그러나 유씨는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한반도에서 한민족처럼 살아왔기에 중국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남한에서의 ‘제2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유씨는 2004년 3월 북한을 나와 중국-라오스-베트남-타이를 거쳐 한달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살아남기 위해 막노동, 보따리상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고생 끝에 2007년 연세대학교 중문학과에 편입했고, 2011년 6월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동생 유가려(27)씨를 데려와 함께 살고 싶었다. 동생은 아버지 유아무개씨와 함께 2011년 7월 북한을 완전히 나와, 중국 국적 취득을 위해 연길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유우성씨는 평소 자신과 연락하고 지내던 국정원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동생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니까, 선생님(국정원 관계자)은 ‘한국에 데려오면 잘 도와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데려온 건데, 마치 제가 북한 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데려온 것처럼 국정원과 검찰은 주장했어요.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유씨는 국정원을 믿었다. 2012년 10월30일 동생을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시켰다. 국정원에 자진신고했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경기도 합동신문센터(탈북자 신원 등을 확인하는 기관)에서 동생이 몇개월 머물다 조사가 끝나면 곧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유씨는 기대했다. 동생은 바로 합동신문센터로 보내졌다.

 

 

그러나 동생은 풀려나지 않았다. 2013년 1월10일 아침 국정원 수사관들이 유우성씨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눈을 가린 채 승합차에 태워졌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서울구치소에 입감됐고 파란색 수형복을 입게 됐다. 동생을 한국에 데려오면 도와주겠다던 국정원 관계자는 더이상 유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국정원의 설명은 황당했다. 동생 유가려씨가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유가려씨는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했다’며 기존 국정원에서의 진술을 뒤집었다.

국정원 수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검찰 공소장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도 여럿 확인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진행한 중국 현지 조사가 큰 역할을 했다. 탈북자 간첩사건에서 중국 현지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결국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지난해 8월22일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통상적인 절차로 보였다.

 

 

그렇게 끝나는 듯했던 이 사건은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1일 유씨가 북한과 중국을 오갈 때 기록된 출입경기록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기록에는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 용정시 삼합변방검사참(중국-북한 국경지대의 중국 쪽 세관)을 통해 북한 회령시에서 나온 뒤, 한시간도 안 돼 오전 11시16분 다시 북으로 들어갔다가 2006년 6월10일 오후 3시17분 역시 삼합검사참을 통해 북에서 나온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이후 다시 북한에 간 적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씨는 이 출입경기록이 가짜라고 확신했다.

유씨는 연길로 돌아간 동생에게 위임장을 보내 자신의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아 오게 했다. 놀랍게도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과 달랐다. 중국 공안이 보관중인 유씨의 실제 여권기록은 유씨가 발급받아온 출입경기록과만 내용이 일치했다.

법정에서 위조 공방이 오갔다.

지난 17일 중국 정부는 한국 재판부에 공문을 보내 ‘한국 검찰이 제출한 3건의 문서는 모두 위조’라고 통보했다. 간첩사건이 간첩조작사건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김아무개씨 보도의 진실

 

 

중국 연길시에 남아 있는 유우성씨의 가족들은 매일 한국 언론의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연길시에서는 한국 텔레비전을 보는 가구가 많다. 유씨는 중국 연길 지역에서도 얼굴이 꽤 알려져버렸다. 가족들은 매일같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유씨의 얼굴이 반가우면서도 슬프다.

 

“저와 우리 오빠를 괴롭힌 국정원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수하면 좋을까요. 이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고 저희 가족만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어요.”

24일 저녁 연길시에서 만난 유가려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국정원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무리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를 갖다 내어도, 검찰은 또다른 반박 자료를 제출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유가려씨는 지난 몇달 동안 화룡시 공안국과 삼합변방검사참 등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중국에서 조사된 것들을 한국 재판부가 믿지 않을까봐 중국 공안의 설명이 담긴 영상물도 제출했다.

검찰은 유가려씨가 공안과의 친분을 이용해 허위 영상물을 제작한 것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유가려씨는 공안국에 잡혀갈까 두려우면서도 어렵게 구해온 증거들을 계속 허위라고 하는 검찰의 입장이 전해질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유씨의 아버지는 요즘 암투병중이다. 베이징의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수술을 계속 미루고 있다고 했다. 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음 편하게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가려씨는 오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찾으러 다니느라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다, 최근에야 조그만 판매점의 직원이 되었다고 한다.

 

 

부녀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 때문이었다. 동아일보는 이날 아침 한 탈북 여성 김아무개씨의 증언을 보도했다.

김씨는 “유우성씨의 아버지가 ‘아들이 보위부 남파 간첩으로 한국에 가 있다’고 내게 말한 적 있다. 자신들도 화교 신분을 속이고 남한으로 갈 것인데 내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고 인터뷰했다. “간첩 노릇을 한 것이 중요하지 언제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어갔는지 따지는 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도 했다.

 

 

유가려씨와 아버지 유씨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2010년께 회령시에서 유가려씨 가족과 얼마간 같이 지냈다. 교화소(북한의 교도소)를 나온 지 얼마 안 돼 오갈 곳이 없어진 김씨를 한 지인이 함께 살면 어떻겠느냐고 소개했다고 한다.

유씨 어머니가 2006년 세상을 떠난 뒤 유씨 가정에는 어머니 노릇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생활 성향이 잘 맞지 않아 김씨는 유씨 가족과 크게 싸운 뒤 보름 만에 헤어지게 됐다고 한다.

 

 

“가려가 ‘오빠가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했지요. 하지만 (내가) 보위부 남파 간첩으로 갔다고 말했다니요. 우리와 헤어질 때 무척 안 좋게 헤어졌지만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나요.” 아버지 유씨가 격앙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보름밖에 같이 살지 않은 여자에게 아들의 비밀을 다 말해주고 함께 남한에 가자고 하는 게 말이 돼요? 아들이 남한에서 보위부 간첩일을 하는데 가족들이 뭣하러 남한에 가서 함께 살 궁리를 합니까?”

 

 

원심 재판정에서 김씨는 이미 동아일보 기자에게 했던 증언을 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신원을 알기 어려운 탈북자의 일방적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이러한 내용들을 기사에 싣지 않고 김씨를 ‘객관적인 제3의 증언자’로 포장했다.

 

 

유우성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탈북자들은 또 있다. 정순옥(가명·32)씨는 원심 재판정에 나와 유우성씨를 2007년 북한 회령시에서 봤다고 증언했다.

정씨의 말이 맞다면, 2006년 6월 이후 북한에 다시 들어온 적 없다는 유씨의 주장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정씨는 1998년 유씨를 처음 길에서 본 뒤, 무려 10년 만에 회령시 길에서 우연히 유씨를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정씨는 유우성씨와 한 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 회령시 옆 유선시에서 살았다. 말 한번 섞어본 적 없고 같은 도시에 살지도 않는 어떤 여성이 10년 동안 길에서 두번 본 남성을 기억해내는 것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 행동일까. 검찰은 정씨를 재판부에 중요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다.

 

재판정에 나온 정씨는 교화소를 다녀온 남편의 출감 연도가 2005년 9월인지 2006년 9월인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오직 10년 동안 길에서 두번 본 유우성씨의 모습만 정확하게 기억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말을 비중있게 판단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검찰이 찾아서 법정에 증인으로 내세우는지 모르겠어요.”

유우성씨는 자신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위증을 하는 증인들을 내세우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 탈북자들은 남한으로 오기까지의 경력과 삶이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어, 정체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우성씨에게 불리한 자료들은 적극 재판부에 제출한 반면, 공소장 작성에 불리한 참고 증언들은 정식 조서로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중국 연길시에서 만난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도중 과거의 아픔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다. 허재현 기자

 

 

 

 

공소유지에 불리한 수사물들은 고의로 누락?

 

 

유우성씨의 친구 위덕만(가명·32)씨는 회령시에서 어렸을 때부터 유씨와 함께 자라왔다. 그는 2004년 11월 북한을 완전히 나온 화교였다.

위씨는 유씨가 지난해 국정원에 붙잡혀간 뒤 국정원 수사관의 연락을 받았다. 유씨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위씨가 말한 내용은 어찌 된 일인지 정식 조서로 작성되지 않았다.

 

기자를 만난 위씨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성이는 제 ‘불알친구’거든요. 간첩을 할 애가 아니에요. 북한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친구예요. 제가 2011년 7월 유우성 아버지와 유가려가 아예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왔다고 수사관에게 분명히 말해줬어요. 그때 제가 연길에서 식당을 할 때였기 때문에 잘 알거든요. 그런데 제가 해준 얘기는 나중에 보니 정식 조서로 남겨져 있지 않더라고요. 왜 저는 법정에 나가 증언할 기회도 주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북한에 남아 있던 유가려씨 부녀는 2011년 7월 중국으로 완전히 이사를 나왔지만, 검찰은 계속 북한에 거점을 마련해 유씨 부녀가 북한을 드나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우성씨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서아무개씨라는 탈북자가 있어요. 2007년 회령시에서 저와 위덕만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봤다고 국정원 수사관에게 진술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국정원은 위덕만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에서 식당을 하느라 북한에 들어간 적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2007년에 회령시에서 서씨가 저와 위덕만을 봤다고 한 진술은 거짓말이란 것을 국정원이 확인한 것이지요. 그런데 왜 수사기관이 서씨의 주장만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씨는 7년이나 아편을 해온 사람이란 것도 국정원이 알고 있어요.” 서씨는 원심 재판정에 출석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았다.

 

 

유우성씨는 2006년 당시 베이징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유씨가 수두를 앓던 2006년 5월27일에서 6월10일 사이 유씨의 여자친구는 베이징과 창춘 등에서 그를 간호했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씨가 2006년 5월27일에서 6월10일 사이 북한에 들어가 보위부에서 간첩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씨는 국정원에서 조사받을 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유씨 여자친구의 존재를 수사관에게 설명했다. 유씨의 여자친구는 국정원 수사관의 전화를 받았고 자세한 경위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검찰이 재판부에 낸 수사목록에는 이 진술이 빠져 있었다.

 

 

유씨의 변호를 맡은 김용민 변호사는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하는 수사목록에는 지금까지 수사가 이뤄졌던 모든 것들이 정리돼 있어야 한다. 유가려씨가 국정원에서 2012년 11월과 12월(국정원에서 허위 자백하기로 결심하기 전) 진술한 것들이 수사목록에 다 빠져 있어서, 우리가 중간에 항의한 적 있다. 검찰이 실수라며 그때야 수사목록에 추가했다. 공소유지에 불리한 수사물들을 고의로 누락했다면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한 ‘유우성씨에게 유리한 증언들’ 중 수사목록에 빠져 있는 것들이 5건 정도 된다고 유씨는 설명했다. 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들만 선별해 수사목록이 작성됐는지 유씨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유씨와 친척관계에 있는 또다른 탈북자는 국정원에 여권을 1년 전 빼앗긴 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유씨가 붙잡혀간 뒤 국정원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이 탈북자는 유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취지로 증언했다고 한다.

이 증언 뒤 국정원 수사관으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겁을 먹고 여권을 돌려달라는 말도 못하고 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유우성씨의 이모 조인군(55)씨는 중국 지린성 쓰핑시에 살고 있다. 2006년 5월27일 이후 열흘간 유씨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이다. 유씨는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이모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확인을 요청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정원은 조사를 하지 않았다.

 

조인군씨는 26일 <한겨레>와 만나 분통을 터뜨렸다. “가강이(유우성씨가 북한에서 사용하던 이름)가 어머니 장례 치르고 나서 우리 집에 와서 열흘간(2006년 5월말에서 6월초) 머물렀어요. 가강이가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며 많이 울었어요. 가강이가 저와 함께 있던 기간에 북한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가강이가 그때 우리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을 본 이웃집 사람들 두명의 확인서까지 법원에 제출했는데 대체 왜 한국 검찰은 아직도 그때 가강이가 북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조인군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기자에게 언제쯤이면 조카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검찰이 무죄 판결에 항소해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몇년간 더 힘들 수도 있다’고 답하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가강이는 한국이 자신을 받아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데 취직했다며 참 감사해했어요. 그런데 어찌 한국은 누명을 씌워 사람을 괴롭힙니까. 정말 한국에 실망했어요.”

 

 

검찰과 국정원은 ‘그날’ 이후 유씨의 행적 증명해줄 증인은 조사하지 않거나 무시한 채, 북한서 유씨 봤다는 탈북자들만 법정에서 증인으로 내세운다

2007년 국정원의 부탁을 받고 북한 첩보활동하는 탈북자에게 정보요원 활동을 제의받았다. 국정원에 잘 보여야 했지만 유씨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려씨가 티브이 보다 놀라는 이유

 

 

유우성씨의 어머니 조아무개씨는 2006년 5월22일 숨졌다. 남한에 머물고 있던 아들과 몰래 전화통화를 하다가 보위부의 기습단속에 걸렸다는 게 유씨의 말이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던 조씨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멎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이 일로 유씨는 보위부 요원이 될 게 아니라 보위부를 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검찰은 유씨와 그의 친구들, 친척들의 일관된 진술은 무시하고 유가려씨가 국정원에서 고문받아 허위 자백한 것으로 보이는 진술에만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유씨가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했다고 볼 수 없는 여러 증거들이 확보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간첩으로 보일 만한 증거들만 꿰어맞추어 공소장을 작성했다면, 이것은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간첩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유씨는 이러한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결과를 미리 만들어놓고 수사를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제가 간첩이 아니라는 진술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모두 무시하고, 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악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진술만 검찰은 받아들이고 있어요. 재판부는 동생이 국정원에서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유씨는 2007년 국정원의 부탁을 받고 북한 첩보활동을 하는 탈북자로부터 함께 정보요원 활동을 하자고 제의받은 적이 있다.

유씨는 거절했다. 북한과 접촉도 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에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허위 정보를 건네주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유씨의 판단이었다.

 

“혹시 그때 국정원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제가 이렇게 간첩으로 몰리지 않았을까요.” 유씨는 대체 자신이 왜 간첩으로 의심을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저는 남한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제발 좀 저를 평범한 한국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텔레비전 뉴스에 자주 얼굴이 나오면서 이제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생계를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학부모가 유씨의 얼굴을 알아차려 더이상 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였던 서울시 공무원 일자리도 잃고, 1년 동안 재판정에 오가느라 유씨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동생 유가려씨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괴롭혔던 국정원 수사관들이 가끔 집회 현장에 나타나 텔레비전 뉴스 카메라에 잡힌다. 텔레비전을 보던 유가려씨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이런 날은 제대로 잠을 이루기 어렵다.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조작을 밝히는 게 국익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억울한 사람의 한을 그대로 묻어두는 게 국익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유가려씨는 조국으로 삼고 싶어 건너왔던 한국 사회가 자신의 기대와 다른 것이 슬프다.

 

 

중국 연길/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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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공문서 '도장 위조' 사실상 확인

 

 

‘간첩사건’ 문서 감정…“중국기관 도장, 검찰-변호인쪽 서로 달라”
검찰, 이인철 영사 소환조사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된 국가정보원·검찰 쪽 문서와 피고인 유우성(34)씨 변호인 쪽 문서에 찍힌 중국 발급기관의 도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 14일 변호인 쪽이 제출한 문서가 ‘진본’이라고 밝힌 바 있어, 국정원·검찰이 제출한 문서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검찰 진상조사팀을 총괄 지휘하는 윤갑근(50)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28일 “오후 2시10분께 ‘두 도장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감정 결과를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과 변호인 쪽에서 낸 두 문서는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세관)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데, 변호인 쪽 문서(‘정황설명서’)에는 ‘변호인이 확보한 유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이 맞다’고 확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반면, 국정원·검찰 쪽 문서(‘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에는 ‘변호인이 확보한 출입경기록은 착오’라는 정반대의 내용이 적혀 있다.

 

애초 변호인 쪽이 지난해 11월26일자 ‘정황설명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자, 검찰은 지난해 12월13일자 날인이 찍힌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를 뒤늦게 재판부에 제출했다.

중국의 같은 기관에서 보름여 만에 상반되는 내용의 공문서를 발급한 것이어서, 둘 중 하나는 위조된 것이 분명했다.

 

 

두 문서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삼합변방검사참’이라는 직인이 찍혀 있다.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는 지난 24일 이들 문서를 건네받아 각각의 문서에 찍힌 중국 기관의 도장을 대조했고, 도장이 서로 다르다는 감정 결과를 이날 내놨다. 두 도장의 활자체가 미세하게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이 문서를 포함해 검찰이 제출한 3건의 중국 공문서가 모두 위조됐고, 변호인이 제출한 문서가 진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감정 결과는 국정원·검찰이 낸 문서들이 위조됐다는 중국 쪽 설명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국정원이 중국 기관의 도장을 직접 날조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검찰은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3건의 중국 공문서 취득·전달 과정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 이인철 중국 선양주재 총영사관 영사를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실체적인 내용에서 조사와 수사에서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사실상 수사로 전환됐음을 내비쳤다.

 

 

김원철 김선식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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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위안 내고 8분만에 ...  중국 공안국 위조도장이 뚝딱

 

 

<한겨레>가 제작한 위조 화룡시 공안국·공증처 도장.

[토요판] 커버스토리

                            도장 위조 해보니

<한겨레>는 지난해 말부터 검찰과 유우성씨의 주장 중 어느 쪽이 더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하는 취재를 해왔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보여준 여러 모순들과 화룡시 공안국 관계자가 ‘검찰 문서는 위조’라고 답변한 사항을 보도한 바 있다.(<한겨레> 2013년 12월7일치 11면, 12월21일치 10면 참조)

<한겨레>는 24~26일 다시 중국을 방문해 미처 다 살피지 못한 사실관계 검증을 시도했다.

 

 

25일 다시 찾은 화룡시 공안국 진런주 출입경관리대대장은 이전과는 달리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한국에서 걸려온 여러 전화들에 시달린 듯 보였다.

“조금 전 당신들이 전화한 것이오?” 대대 관계자가 날카롭게 기자에게 쏘아붙였다. 진런주 대대장은 책상만 바라볼 뿐 기자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공안국 전체가 언론의 취재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화룡시 공증처도 무척 예민한 분위기였다. 기자가 방문하자 공증처 관계자는 “당장 나가라”고 호통쳤다.

검찰은 화룡시 공증처의 도장을 받아 국정원으로부터 입수한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기록에 찍힌 공증처의 도장을 보여주자, 공증처 관계자는 “대체 몇번을 설명해야 이 도장이 가짜라는 것을 받아들이겠냐”고 말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법적으로 한글과 한문이 병행된 공증도장을 써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연길 시내의 한 도장집에서 출입경기록에 찍힌 화룡시 공안국·공증처 도장 문양 보이며 도장을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똑같은 모양의 도장이 나왔다

유우성씨는 북한 한번 갈 수 있는 ‘을 통행증’만 갖고 있었지만, 검찰은 이 통행증으로도 북한에
여러번 왕래할 수 있다고 주장, 중국 공무원의 대답은 달랐다

 

 

 

출입경기록에 찍힌 화룡시 공안국과 공증처의 도장들은 모두 위조 의심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위조의 주체로 의심을 사고 있다.

중국에서 공안국 등 도장의 위조가 얼마나 쉽게 벌어지는지 확인해보았다. 연길 시내의 한 도장집을 들렀다.

 

출입경기록에 찍힌 화룡시 공안국과 공증처 도장의 문양을 보여주며 그대로 도장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도장가게 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도장 하나당 300위안(한화 약 5만2000원)을 내라’고 말했다. 보통 100위안(한화 약 1만7000원)에 도장을 만들 수 있지만 3배의 가격을 불렀다. 지불하겠다고 말하자 8분 만에 공안국과 공증처의 위조 도장이 제조되어 나왔다. 중국에 살고 있는 한 현지인은 “중국에서 도장 위조는 흔하게 벌어진다. 대학졸업장도 돈만 주면 위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을 오갈 수 있는 통행증에는 갑과 을 두 종류의 통행증이 있다. 갑 통행증은 무역업을 하는 이들에게 발급되고 1년에 여러번 왕래할 수 있지만, 을 통행증은 친척 방문용이라 한번만 통행이 허락된다.

그러나 검찰은 중국 길림성 집안(지안)시 변방검사참(출입경관리소)에서 2005년까지 일한 전직 공무원 임아무개(조선족)씨의 증언을 토대로 ‘을 통행증으로도 여러번 북한 방문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우성씨는 을 통행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2006년 5월27일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뒤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검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한겨레>는 집안시를 찾아 출입경접대대청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을 통행증으로는 여러번 통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통행증은 출입국 관리소에 바로 반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씨의 검찰 진술과는 다른 설명이었다.

 

검찰은 임씨를 28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 요청했으나 임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임씨의 이름도, 출입경 관련 기관 재직증명서도 검찰은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연길/허재현 성연철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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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조작 실체…검찰쪽 나머지 2건도 위조 가능성 커져

 

비슷하지만 다른 도장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는 28일 유우성(34)씨 변호인이 제출한 ‘중국 삼합변방검사참 정황설명서’(왼쪽)와 검찰이 제출한 ‘중국 삼합변방검사참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오른쪽)에 찍힌 도장이 서로 다르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 정부는 변호인이 제출한 공문서가 진본이고 검찰이 제출한 공문서는 위조됐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관인 다르다” 감정결과 파장

국정원이 직접 위조했는지, 위조된 문서 입수한건지, 두가지 가능성으로 압축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국가정보원·검찰과 피고인 유우성(34)씨 변호인 쪽이 중국의 같은 기관에서 각각 발급받은 공문서의 도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28일 확인되면서, 국정원이 문서 조작에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그동안 국정원과 검찰 일각에서는 ‘두 문서의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위조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두 문서 모두 발급 과정은 정상적이었을 수도 있다’는 궁색한 반론을 펴왔다. 하지만 도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런 주장은 근거를 잃었다.

 

두 문서 가운데 국정원·검찰 쪽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판단을 고려하면, 이제 남은 가능성은 ‘국정원이 직접 문서를 조작했느냐’ 아니면 ‘브로커 등을 통해 위조된 문서를 입수했느냐’로 압축된다.

 

 

이번 사건에서 중국 정부가 위조됐다고 판단한 공문서는 모두 세 종류다.

먼저 국정원·검찰은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시기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다며 유씨의 ‘출입경기록’(1)과 이를 발급해준 사실이 있다는 ‘사실조회서’(2) 등 두 건의 문서를 재판부에 냈다. 이는 중국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유씨 변호인 쪽은 국정원·검찰과 내용이 다른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재판부에 냈다. 이는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발급된 것이다. 이때 변호인은 국정원·검찰이 제시한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왜 잘못됐는지를 설명한 ‘정황설명서’를 삼합변방검사참(세관)에서 발급받아 함께 제출했다.

그러자 국정원·검찰도 변호인 쪽의 주장이 틀렸다는 내용의 답변서(3)를 삼합변방검사참에서 발급받았다면서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번에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가 ‘도장’의 동일성 여부를 가린 문서는 삼합변방검사참에서 발급받았다는 검찰 쪽 문서(3)와 변호인 쪽 문서였다. 그런데 두 문서의 도장이 다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미 중국 정부가 국정원·검찰 쪽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밝힌 터라, 국정원·검찰 쪽 문서에 찍힌 도장이 위조됐을 가능성이 한층 커진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공조를 통해 공식적으로 받은 중국의 실제 도장과 비교한 뒤 위조라고 결론 내야 한다. 우리도 내심 (위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 공표할 순 없다”고 말했다.

검찰도 일단 국정원·검찰이 낸 문서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사법공조를 통해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의 도장을 제공받아 두 문서에 찍힌 도장과 비교·대조한 뒤 최종 결론을 내겠다는 얘기다. 국정원은 이날도 “두 가지 문건에 사용된 관인이 다르다는 것과 문건의 진위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는 주장을 계속 폈다.

 

국정원·검찰이 제출한 삼합변방검사참 발급 답변서(3)가 위조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머지 두 건의 중국 문서도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답변서는 국정원·검찰이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급받아 먼저 낸 유씨의 출입경기록(1)과 이를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조회서(2)의 내용에 들어맞게 작성돼 있다. ‘출입경기록→사실확인서→답변서’의 내용이 순차적으로 연동돼 있다는 점에서 어느 한 문서가 위조됐다면 3개 모두 위조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검찰이 애초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위조해 항소심 재판부에 낸 뒤 변호인 쪽에서 진위를 따지자, 위조된 출입경기록에 부합하는 ‘맞춤형 문서’를 잇따라 생산했을 개연성이 짙다.

 

검찰 진상조사팀은 국정원·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두 건의 문서에 대해서도 중국과의 사법공조를 통해 화룡시 공안국으로부터 도장 제출을 협조받아 진위를 가릴 예정이다.

 

 

김정필 김원철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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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위조' 궁지 몰린 국정원 '오락가락 변명' 급급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왼쪽에서 넷째)가 2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첩사건’ 조작 의혹 증폭

“공문서, 선양영사관서 받았다”→“비공식 입수”
도장 위조엔 “중국 여러개 도장 쓴다”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로 제출된 중국 공문서들이 위조됐을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있지만, 이 공문서들을 입수해 제출한 국정원은 잇따라 말을 바꿔가며 변명에 급급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달 14일 “검찰이 법원에 낸 중국 공문서 3건은 모두 위조됐다”는 중국 정부의 사실조회 회신서를 공개할 때만해도, 국정원은 문서를 입수한 절차와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정원은 당일 보도 참고자료를 내어 “서울고법에 제출한 (피고인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 내용은 중국 선양주재 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것으로 사실과 부합하며, 항소심 재판에서 출입 내용이 사실임을 자세히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양 총영사관이라는 외교 경로를 통해 문서들을 입수했다는 주장이었다.

 

사흘 뒤 민주당 의원들이 국정원을 항의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관계자와의 면담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리며 “국정원 쪽은 ‘위조되지 않았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확신하면 중국 정부 쪽에 왜 맞받아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외교적 마찰 등을 고려해 참고 있다’는 변명을 했다”고 전했다.

 

 

 

증거로 제출한 중국 공문서들 위조 가능성 점점 커지는데도 “문서 내용 맞다” 주장 고수
공문서 도장 위조 의혹에 “찍는힘 따라 달라져” 황당 해명, 감정 결과 ‘불복’ 태도

 

 

그런데 지난달 18일과 21일 국정원의 주장과 상반된 내용이 국회에서 터져나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유우성(34)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 관련 중국 공문서 2건에 대해 “선양 영사관이 (중국 쪽에) 정식으로 발급 요청한 것은 아니라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문서들을 입수했다는 뜻이었다.

 

조백상 선양 총영사의 답변에선 국정원에서 파견 나간 이인철 영사의 존재가 공개되며, 문서들의 ‘입수·공증·전달’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국정원은 말을 바꿨다. 국정원은 지난달 25일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 진상조사팀에 낸 자체 조사보고서에서 ‘국정원 현지 요원이 비공식으로 얻은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철 영사도 문서를 전달하기만 했고, 문서 입수는 다른 직원이 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문서의 내용은 맞다. 위조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의 문서감정 결과를 통해, 국정원이 입수한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세관) 발급 문서의 도장이 사실상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자, 국정원은 아예 ‘문서감정 결과를 못 믿겠다’는 취지로 둘러댔다.

 

대검은 삼합변방검사참이 발급한 변호인 쪽 문서와 국정원·검찰 쪽 문서에 찍힌 도장이 다르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는데, 앞서 중국 정부는 변호인 쪽 문서가 ‘진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중국은 관공서 안에서도 복수의 인장을 사용하거나, 같은 인장도 찍을 때 힘의 강약·인주 상태 등에 따라 글자 굵기 등이 달라져, 정밀 감정시 완벽하게 일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삼합변방검사참이 실제 관인을 여러 개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말을 않고, 중국의 다른 성들을 예로 들었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사는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의 문서감정 결과는 ‘팩트’의 영역이다. 국정원이 제시한 여러 불일치 가능성까지 전부 염두에 두고 감정한 결과물로 보면 된다. 문서감정 결과조차 못 믿겠다는 건 앞으로 나올 수사 결과도 못 믿겠다고 우기는 꼴밖에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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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과 국정원이 국보법 위반했다”

 

 

유우성씨의 변호를 맡은 김용민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유씨 사건을 맡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중국을 네 번 다녀왔고, 양승봉 변호사(법무법인 율)는 두 번 다녀왔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변호사들이 직접 발로 뛰며, 검찰 주장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아야 했다. 공안 검사가 낸 증거를 다시 검증했다.

그렇게 해서 밝힌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정원이 증거로 제출한, 북한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알고 보니 중국에서 찍었고, 여동생 유가려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예를 들어 가려씨는 오빠에게 넘겨받은 탈북자 정보를 북한으로 넘기기 위해 중국의 한 슈퍼에서 USB를 샀다고 증언했지만, 변호사들이 직접 가본 슈퍼마켓에서는 USB를 아예 팔지 않았다)도 ‘현장검증’으로 확인했다.

두 사람을 비롯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이 무료 변론을 맡았고 1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냈다.

1심에서 완패한 검사는 2심에서 출입경 기록을 새 증거로 냈다. 변호인들은 이번에도 직접 검증을 했다.

현재 중국에 있는 유씨 동생 유가려씨와 중국 변호사 등의 도움을 얻어 직접 떼어본 서류는 검찰이 낸 내용과 달랐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검찰 서류가 조작되었다고 지적했지만, 검찰은 오히려 변호인이 낸 서류가 조작되었다고 맞불을 놓았다.

진실게임 양상으로 가버리자 김용민·양승봉 변호사는 중국 정부에 직접 무엇이 맞는지 사실 조회를 해보자고 신청을 했다.

두 변호사를 2월18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유우성씨의 변호인 김용민(왼쪽)·양승봉(오른쪽) 변호사는 “검찰이 낸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이라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시사IN 신선영
유우성씨의 변호인 김용민(왼쪽)·양승봉(오른쪽) 변호사는 “검찰이 낸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이라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검찰은 중국 대사관의 회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용민(김)
:사실 조회 신청은 우리도 했지만, 검찰도 했다. 검찰도 중국 정부에 공식으로 질문을 한 것이다. 그래 놓고 답변이 맘에 안 든다면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떼 부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명확하게 우리가 낸 서류 내용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럼 똑같은 양식으로 글자 하나가 다른 검찰 내용은 틀렸다는 말이다.

양승봉(양):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계속 이렇게 버티면서 여론의 반전도 꾀하려 할 것이다. 벌써부터 ‘북·중 경계 지역은 정보전이 치열하다’ ‘국익을 위해 대공수사 부분은 수면 위에서 논의하면 안 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지 않나.

출입경 기록은 사실상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 증거로 보인다.

:맞다. 1심에서는 여동생 증언이 핵심이었는데 다 깨졌다. 국정원이 여동생을 6개월 동안 합동신문센터에서 구금한 다음 협박·폭행 등을 하면서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친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합동신문센터의 반인권적인 부분은 보도(<시사IN> 제296호 ‘그곳은 탈북자의 감옥’ 참조)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결국 여동생의 증언이 흔들리면서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나머지는 다 정황 증거였다. 수사기관이 유우성씨가 북한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기간에 북한에서 유씨를 봤다는 탈북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대부분 황당했다. 한 증인은 유씨와 10년 전에 한 번 본 사이인데도, 2007년에 북한에서 스쳐 지나가는 유우성씨를 봤다고 증언했다. 기억하는 이유가 남한 스타일 머리 모양이라고 했는데, 정작 2007년 당시 유씨 사진을 보여주니 “이렇게 살찐 모습은 본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또 다른 증인도 유씨를 북한에서 2011년과 2012년에 봤다고 증언했지만, 빙두(북한에 널리 퍼진 마약)를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1심 재판부가 신빙성이 없다고 다 배척했다.

:아이폰 사진도 북한에서 찍었다고 조작했다가 변호인들에게 걸렸다. 그때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로 고발했어야 했나….

지난 1월 유씨가 검찰과 국정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이 우리가 낸 진짜 서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작된 기록을 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많다.

검찰이 문제가 된 출입경 기록을 제출한 게 지난해 11월이다. 조작된 걸 확인하고 지난해 12월6일 3회 공판 때 변호인이 반박 PPT(파워포인트) 자료를 비공개 법정에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검찰이 우리 주장을 재반박하면서 “수사 단계에서 피고인 유우성에게 이 내용의 자료(변호인이 제시한 출입경 기록)가 제시되면서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건 맞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다 그다음 4회 공판에서 말을 바꿨다. 검찰은 “조서상 국내 출입국 기록을 착오로 진술했다”라면서, 변호인이 낸 기록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 대사관에서 검찰 서류가 위조되었다는 회신이 오니까, 이번에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브리핑을 하면서 “수사 단계에서 변호인의 기록과 같은 ‘(출-입-)입-입’이라고 되어 있는 문서를 봤다”라고 했다. 또 말이 바뀐 거다. 우리로서는, 이미 제대로 된 문서를 알고서도 입맛에 맞게 서류를 바꿔 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건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죄다.

:검사의 거짓말은 이것만이 아니다.

분명히 1심 재판 때 검사와 국정원은 출입경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하려 하는데 못 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검찰 브리핑 때는 수사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그땐 우리가 가진 것처럼 ‘출-입-입-입’이라고 쓰여 있는 서류다 보니, 검찰 공소 사실에 맞지 않아서 제출하지 못했을 걸로 추측한다.

2심에서 문제의 서류 출처가 국정원이 아니냐고 변호인이 물었는데 검찰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번에 결국 국정원에서 받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조작된 서류인 걸 알면서도 검찰이 재판부에 냈을까?

:우리는 당연히 알았을 것으로 본다. 지금도 중국에서 명시적으로 위조라고 하는데도 검찰이나 국정원은 받아치고 있지 않나. 수사기관은 유·무죄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이미 간첩 찾았다고 요란하게 언론에 알리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무료 변론인데도 중국까지 가서 확인하는 등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뭔가.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진실을 파헤칠수록 이렇게 허술한 증거로 간첩을 만들수 있나 싶더라. 거기에 맞서 대응하다보니 더 사건에 빠져드는 것 같다.

:정작 1심에서 무죄가 났는데도 담당 검사들은 영전했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이시원 검사는 최근 영월지청장에서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으로 갔다. 공판을 담당한 이문성 검사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에서 창원지검 공안부장으로 승진했다.

증거 조작까지 하고, 한 나라의 정식 공문이 왔는데도 자기들이 끝까지 맞다고 기자회견하는 검찰을 보면서, 이 사건은 꼭 무죄를 받아야 한다는 결기도 생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검사들이 원동력인 거 같다.

 

[ 김은지 기자. 시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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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죽이기 시나리오?
[이슈추적] 검찰이 낸 증거 위조 의혹에 휩싸이며 조작 가능성 제기되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전모
공안몰이 연장선 해석

 

 

» ‘간첩사건 증거 위조’는 ‘국가정보원 주연, 검찰 조연’으로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 2월16일 이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영화 <변호인>에서 검찰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불온서적이라는 한 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제시한다. 저자가 소련에서 오래 살았다며 공산주의자가 쓴 책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 송우석은 이 연구소가 국가안전기획부와 주소지가 똑같은 곳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영국 외교부에 의뢰해 받은 문서를 꺼내 읽는다.

“E. H. 카는 영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며, 영국이 자랑스러워하는 학자다.”

이 영화가 다룬 부림사건(1981년) 재판 때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건에 실재했던 일에서 따온 장면이라고 한다.

빨갱이라는 ‘확신’을 ‘증거’라고 포장하는 공안 검찰에 맞서기 위해 변호사가 찾아낸 건 선진국의 권위가 아니다. ‘사실’이다.

증거는 사실이어야 한다. 설사 피고가 진짜 간첩이라 해도 말이다. 하물며 2014년이다.

 

 

 

세 가지 문서마다 각각 두 개 버전 존재

 

 

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2심 재판에 낸 ‘회심의 증거’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중국 정부가 밝히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탈북 화교 출신인 유우성(34)씨의 여동생을 폭행·회유·협박해 간첩으로 몰았던 국가정보원이 혐의를 억지로 입증하려고 증거를 위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위조 여부를 알고도 눈감았는지, 모르고 법정에 제출한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유씨가 어머니 장례 이후에도 북한을 드나들었는지 여부다.

검찰은 1심 때 없던 ‘새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이 증거로 내놓은 유씨의 북한-중국 출입경기록은 변호인단이 중국에서 떼온 기록과 달랐다.

 

재판부는 주한 중국대사관에 어느 게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고, 중국대사관 영사부는 지난 2월13일 이렇게 밝혔다.

“변호인이 제출한 문서(2건) 내용은 모두 사실이며 합법적인 정식 서류다. 검사 쪽이 제출한 문서(3건)는 모두 위조된 것이고, 위조 공문은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했다.”

검찰·국정원은 위조 사실을 부인했으나, 이후 공개된 사실은 위조 의혹을 뒷받침한다.

 

검찰이 제출한 문서는 크게 세 가지다. 세 가지 문서마다 각각 두 개의 버전이 존재하는 게 특징이다.

 

우선 북한-중국 출입경기록이다. 검찰은 지난해 6월20일 외교부와 중국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이하 선양영사관)을 통해 ‘지린성 공안청’에 기록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2심 첫 공판을 앞둔 9월 말, 국정원이 출입경기록을 보내왔으나, 발급처 표시가 없어 증거로 내지 못했다.


‘출-입-입-입’을 ‘출-입-출-입’으로 위조?

 

 

검찰은 10월 중순 국정원으로부터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는 출입경기록(문서①)을 2부 받게 된다.

하나(①-1)는 공안국 관인만 찍혀 있고, 다른 하나(①-2)는 공안국 관인과 공증처 관인이 찍혀 있다.

검찰은 10월24일 선양영사관에 “허룽시 공안국에 출입경기록(①-2)을 발급했다는 확인서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출입경기록을 공식 절차를 거쳐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선양영사관을 통해 중국 쪽의 확인서를 받는 사후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쪽 출입경기록은 유씨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 유씨는 2006년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돌아왔다. 여기엔 이견이 없다.

 

그런데 검찰 쪽 문서에는 유씨가 같은 날 오전 11시16분에 북한으로 다시 갔다가 6월10일 중국에 돌아온 것으로 돼 있다.

중국 정부가 맞다고 인정한 변호인단 제출 문서에는 두 번 모두 ‘중국으로 나왔다’고 돼 있다. 중국 정부는 흔히 나타나는 시스템 오류일 뿐, 북한을 드나든 사실이 없다는 변호인 쪽 문서가 맞다고 밝혔다.

 

결국 시스템 오류로 인해 ‘출-입-입-입’ 순으로 부자연스럽게 돼 있는 문서를 검찰과 국정원이 ‘출-입-출-입’으로 바꾼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그렇게 기록돼 있어야 유씨가 북한에 다녀온 게 되기 때문이다.

 

검찰이 발급처 표시가 없어 증거로 내지 못했다고 밝힌 문서에도 ‘출-입-입-입’의 순서로 적혀 있다.

국정원은 수사 과정에서도 ‘출-입-입-입’ 순서로 적힌 자료를 근거로 유씨를 추궁했다고 한다. 검찰은 1심 공소장에서 유씨가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넘어갔다고 주장했는데, 북한으로 나간 ‘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2심에서 ‘출-입-출-입’으로 순서가 바뀐 문서를 제출하면서, 두만강을 건너간 게 아니라 정식으로 출경했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이 진짜 기록을 확보하고도 꿰어맞춘 뒤 증거로 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검찰 쪽 문서는 유씨의 여권 기록과도 맞지 않는다. 예컨대 유씨의 여권 기록에는 2003년 9월15일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검찰 쪽 문서에는 거꾸로 돼 있다. 문제가 된 2006년 5월27일 기록뿐 아니라 유씨의 출입경기록 전체에 나타난 시스템 오류를 전부 ‘출-입’ 순서가 자연스럽게 되도록 바꾸다보니 여권 기록과 맞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유씨의 중국 여권을 갖고 있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여권 기록과 우리가 제출한 기록에 왜 차이가 나는지 우리도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서 양식과 도장에 찍힌 담당 부서 이름도 다르다.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이 발급한 변호인 쪽 문서에는 유씨의 생년월일, 호적, 주소지, 신분증 번호 등이 모두 적혀 있지만, 검찰 쪽 문서에는 생년월일만 나와 있다. 발급처가 왜 유씨와 아무 관계가 없는 허룽시 공안국인지도 의문이다.

 

 

공안몰이 거셀수록 ‘조작 유혹’도…

 

 

두 번째는 허룽시 공안국이 출입경기록을 발급했다는 확인서(문서②)다.

검찰이 선양영사관에 요청했고, 선양영사관이 지난해 11월27일 허룽시 공안국으로부터 받아 검찰에 보냈다. 이 문서 역시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고, 맞춤법이 틀린 대목이 있다.

 

이날 오전 9시20분에 수신된 문서(②-1)는 선양시 번호가 찍혀 있다. 오전 10시40분에 수신된 문서(②-2)는 발신번호가 허룽시 공안국이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이 처음에 팩스 발신번호를 잘못 찍어 보냈고, 문제가 될 수 있어 공식 팩스번호로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검찰은 번호가 잘못됐다는 ②-1 문서를 12월6일 재판부에 제출했다가, 이 문서와 같은 날 받은 ②-2 문서를 12월13일에 다시 증거로 제출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이 없다.

 

가장 큰 의혹은 선양영사관이 공식 절차를 밟아 중국 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문서②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혔다는 데서 나온다.

 

특히 외교부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문서가 재판에 제출된 것과 동일한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동일하다면 허룽시 공안국이 위조 문서를 보냈다는 얘기인데 설득력이 떨어지고, 동일하지 않다면 허룽시 공안국이 보낸 공문을 누군가 위조했거나 보내지도 않은 공문을 꾸몄다는 얘기가 된다.

변호인단은 누군가 공문을 위조해 선양시에서 팩스로 보냈다가, 발신번호가 잘못 기재된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다시 보낸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세 번째 문서는 국정원이 삼합세관으로부터 받았다는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문서③)다.

변호인단이 유씨의 출입경기록에 시스템 오류가 있다는 삼합세관의 정황설명서(11월26일 발급)를 제출한 뒤, 삼합세관으로부터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작업인의 입력 착오로 ‘출’과 ‘입’ 기록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정반대 내용의 답변서(12월13일 발급)를 받았다.

검찰의 ‘출-입-출-입’ 주장과 들어맞는 내용이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 답변서 역시 원본으로 추정되는 문서에는 영사의 인증이 없는데, 며칠 뒤 영사의 인증이 찍힌 답변서 사본이 제출됐다”며 위조 가능성을 제기했다.

 

위조 의혹이 숱하게 제기되자, 해당 기관들은 ‘폭탄 돌리기’를 했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받았다고 하고, 국정원은 선양영사관에서 받았다고 하고, 윤병세 외교장관은 “문서② 외에는 모르겠다”고 하고, 황교안 법무장관은 “문서 3건 모두 외교 경로를 거쳤다”고 했다.

 

의혹의 눈길은 국정원에 쏠린다.

문서①과 문서③은 국정원이 입수한 것이고, 선양영사관이 받았다는 문서②와 관련해서도 외교관이 외교 마찰을 빚을 공문서 위조에 관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2월21일 국회에 출석한 조백상 선양총영사는 문서①과 문서③에 대해 “(국정원 직원인) 이아무개 영사가 유관 정보기관이 획득한 문서에 대해 내용을 번역하고 사실을 확인한 개인 문서”라고 말했다. 이 영사에게 문서를 넘긴 인물도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된다.

 

 

» 유우성씨는 여동생에 대한 국정원의 강압 수사로 간첩으로 몰렸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희대의 외국 공문서 위조 사건으로 비화한 2심 재판은 언제 끝날까. 유씨가 지난 2월16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다.한겨레 신소영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된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2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죽이려고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냈다. 국정원이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유씨는 오세훈 시장 시절 특채됐지만, ‘간첩사건’이 터지자, 당시 보수·극우 단체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간첩사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대선 개입으로 위기에 몰린 국정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계속 ‘공안몰이’를 해온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공안몰이가 거세질수록 부실 수사나 ‘조작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야당 국조·특검 요구, 여당 국정원 감싸기

 

 

검찰은 ‘셀프 수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2월18일 대검 진상조사팀이 구성됐다. 위조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의 협조를 얻어 진상을 규명한다고 한다.

야당들은 국정조사와 특검, 국정원 수사권의 폐지·이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 걱정뿐이다.

“어떻게 해서 구했다는 걸 다 대놓고 얘기하는 자체가 국정원의 정보활동이 노출되는 거다. 아주 위험한 거다.”(김진태 의원, 2월19일, YTN) “국민적 관심이 없는 사건이에요, 솔직히.”(박민식 의원, 2월20일, CBS 라디오)

 

강압 수사와 증거 위조로 삶이 망가진 탈북 화교 남매는 고통이 끝나고 다시 만나 살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희 가족과 저를 그만 좀 괴롭혔으면 좋겠어요.”(유우성씨, 2월16일 기자회견)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란?

 

유우성씨는 탈북자다. 화교 출신으로 중국 국적을 가졌지만, 북한에서 살았다. 2004년 한국에 들어와 2011년 6월 탈북자 특채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이 됐다.

2012년 10월 탈북해 중국 옌지시에 살고 있는 여동생을 데려왔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로 보내진 여동생과 연락이 끊겼다.

유씨는 2013년 1월10일 체포돼 2월2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06년 5월 어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해 북한에 갔다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탈북자 수백 명의 정보를 넘기는 등 간첩 활동을 했다는 거였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는 여동생은 4월2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폭행·회유·협박을 당해 허위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여동생은 중국으로 추방됐다.

8월22일 유씨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검찰은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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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성 신분 세탁?…검찰 '물타기' 나섰나

"수사기관에 다 설명한 내용" 재탕…탈북자 비참한 삶 드러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위조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검찰 등 사정기관 발(發)로 사건 피의자 유우성 씨의 '정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정기관이 출처라는 점에서 유우성 씨를 둘러싼 의혹을 부풀리는 등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이 '물타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TV조선'은 4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인인 유우성 씨의 새로운 행적이 드러났다"며 "한국에서의 정착 사실을 숨기고 영국에서 망명을 신청한 것인데 왜 그랬는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 언론인 <세계일보>도 '4개국서 이중삼중 신분세탁…상황 따라 이름·생일·국적 바꿔', "'간첩혐의' 공무원 유우성 아리송한 정체"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대부분 "검찰 등에 따르면", "검찰 등 사정기관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세계일보>는 "유우성 씨가 2008년 영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당시 유 씨는 본인을 탈북자로 소개했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이름(조광일)'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신문은 "유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과 생일, 국적 등을 바꿔 사용했고, 이런 행적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의심을 사고 있다"며 "이 때문에 검찰이 법원에 증거로 제시한 문서에 실제 '오류'가 있었는지와 별개로 유 씨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유 씨가 서류 위변조를 통해 여러 차례 신분세탁을 하는 등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온 게 사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그를 의심치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며 '증거 위조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유 씨의 진짜 실체가 뭔지도 다시금 생각해 볼 여지도 많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 씨가 영국 망명 당시 가명을 썼고, 북한, 중국, 한국에서 사용한 이름이 바뀌었으며 생년 월일도 추후 바뀌었다는 점 등을 토대로 '간첩으로 의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사상 초유의 증거 조작 파문에 휩싸인 검찰, 국정원 등 사정 기관이 일부 정황상 근거를 토대로 유 씨를 여전히 '간첩'으로 보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러나 유 씨는 1심 재판에서 간첩죄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심에서는 국정원 측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위조 증거가 제출돼 정치 외교적 파장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유 씨는 <프레시안>에 메일을 보내 <세계일보> 등의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TV조선'에도 해명 메일을 보냈지만 현재 유 씨의 반박 내용은 보도되지 않고 있다. 


▲유우성 씨 ⓒ연합뉴스

▲유우성 씨 ⓒ연합뉴스



오히려 드러난 탈북자의 비참한 삶, 유우성을 비난할 수 있을까?


유 씨는 영국에 망명 신청은 했지만, 망명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며 탈북자 출신들의 비참한 삶을 그대로 증언했다. 


유 씨는 "(한국에서 대학에 재학 중이던) 2007년 8월경 북경에 있는 대학교 교환 학생으로 중국에 갔다가 주민등록번호상 탈북자인 것을 중국 출입국에서 알고 비자를 주지 않아 강제로 한국으로 출국 당했다"며 "이후 대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며 영어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하고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만 졸업할 수가 있어 영어를 배우고자 영국에 갔다 온 것"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한국에서는 영어 학원 등록금은 너무 비싸고 한 달 기초 생활 비용은 38만 원밖에 안 되어 학원 비용까지 충당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저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탈북 학생들이 다 똑같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그래서 저는 여러 탈북 선배 지인으로부터 영국에 난민으로 가서 영어공부를 6개월에서 1년씩 배우고 오는 탈북 청년들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싼값에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비교적 망명 절차가 잘 돼 있는 영국에 망명 신청을 하는 '편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유 씨는 "2008년 1월경 종로에 있는 영어 유학원에 등록하고 그동안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며 "막상 영국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 현지 탈북자 분과 함께 살며 월세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다. 난민(신청자)들을 상대로만 영어를 공짜를 가르쳐 주는 영어클래스가 있어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국에 다른 탈북자들과 똑같이 난민 신청하고 난민 영어 반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영국 정부로부터 생활비용은 얼마 받지 못했다. 세차장에서 일하는 등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영어를 공부를 6개월 동안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는 이번 간첩 사건과 별도로 지난 2009년, 2010년 국가보안법 등 수사를 받던 당시 수사 기관에 모두 진술했던 내용들이다. 유 씨는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공소시효 만료)을 받았다. 


<세계일보>가 유 씨와 관련해 유우성, 유가강, 유광일, 조광일 등, 네 개의 이름이 등장한다며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서도 유 씨는 반박했다.


유 씨는 "유가강이라는 이름은 제가 북한에서 쓰던 중국 이름이었다. 북한에서는 유가강만 쓴 것은 아니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유광일이라고도 불렸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바뀐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북한에서 쓰던 이름이 유광일이다. 중국식 이름 유가강은 발음상 힘들어 친한 분들은 유광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북한 정식 서류에는 모두 유가강으로 표기 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유 씨는 이어 "2004년 4월 대한민국에 입국하며 저는 북한에서 평상시 애용하던 유광일로 신고를 했다. 이러한 내용은 수사기관에서 2009년 ~2010년 조사받을 때 이미 다 말씀 드렸던 내용들"이라고 말했다. 


영국 망명 신청 당시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유 씨는 "유광일로 한국에서 살면서 영국 유학 시기 난민을 신청하며 한국에서 쓰던 이름과 똑같이 신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광일'로 신고해 영국에서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영어 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영국에 영어 배우러 간 탈북 청년은 제가 알고 있는 사람만 수십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아주 잠깐 6개월 동안만 사용했던 이름은 조광일이며 수사 기관 조사 당시 이러한 어려운 사정을 다 말씀드렸고 진술서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한국에 가족이 있고 돈이 있으면 그렇게 어렵게 영어유학을 가지 않았을 것이고 이름도 조광일로 난민을 신청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름은 유우성이다. 유우성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유 씨는 관련해 "2008년 말부터 2010년 7월까지 국정원, 경찰청,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2010년 3월경 가택수색도 당했고 전화도청도 수사기관에서 오랫동안 해온 것을 나중에 통보받았다"며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 힘들었고 저는 6개월 넘게 한 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도 받았다. 내 운명이 너무 안 좋다고 판단해 점집을 찾아다녔는데 이름이 안 좋다며 바꿔야 운수도 좋아지고 성공할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유우성으로 개명했다. 자신을 위장하고자 개명한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인 이름으로 살고 싶은 마음에 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생년월일이 다르게 기재돼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유 씨는 "생일은 1980년 10월 26일이고 음력으로 1980년 9월 18일이다. 2004년 4월 대한민국 입국 당시 합심센터 수사기관에서 '한국에서는 주로 음력생일을 많이 쓴다'고 해 음력 생일을 말했더니 그게 주민등록증에 기재됐다. 그렇게 살다 대학교 졸업 시기에 법원에 제대로 된 양력 생일 10월 26일로 정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씨는 "저는 남북한은 언젠가는 통일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북한에서 받은 준 의사자격증 등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북한의 공식 서류에 기재된 양력 생일 10월 26일로 통일하자는 생각에 생년월일을 바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TV조선' 기자에게 "저는 'TV조선' 채널을 즐겨 보는 시청자로 항상 있는 사실 그대로 방송하는 공정한 방송사라고 믿고 있다"며 "저의 사건에 관심 가져주신 것에 고맙게 생각하나 사실은 왜곡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보도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 서어리, 박세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