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한겨레 기사를 검증한다 -1. ‘사고발생 7시20분설’, 2. ‘에어포켓’ 존재설 3. 암초 충돌설

道雨 2014. 5. 24. 15:52

 

 

한겨레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기사를 검증한다 - ①
제1편 - 서영지 기자의 ‘사고발생 7시20분설’검증에 대한 검증
신상철 | 2014-05-20 14:18: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겨레‘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기사를 검증한다 - ①
제1편 - 서영지 기자의 ‘사고발생 7시20분설’검증에 대한 검증


한겨레는 지난 5월12일 ‘세월호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이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침몰과 관련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거나 소문으로 떠도는 일부 내용들을 다루는 기획기사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대표적 루머들을 ‘팩트 체크’해봤다”며 ‘사실확인’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언론의 영향력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한겨레의 보도를 보고 많은 분들에 “한겨레의 분석내용이 맞느냐?”고 물어오셨는데, 지방출장등으로 미루던 중 이제야 차분히 들여다 볼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여 한겨레가 ‘팩트 체크’라는 타이틀을 건 만큼 사실관계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겨레의 보도내용을 검증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검증의 첫 번째 글로 서영지 기자의 <루머 ‘사고발생 7시20분설’>에 대해 분석과 함께 검증을 해 보겠습니다.


1. 서영지 기자의 보도내용 - 루머 ‘사고발생 7시20분설’

① 사고당일 오전 7시20분에 KBS 자막에 ‘구조신호’ ?
담당PD “송출실 진짜 화면 받아놔…의혹제기 답답”

안행부·소방청 “오전 8시께 침몰” | 해수부 “8시30분” 진도군 “8시25분” | 애초 불명확한 정보로 혼란 키워

세월호 사고 발생 시각을 둘러싼 각종 ‘설’과 의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와의 교신기록을 늑장 공개한 해경, 보고 기관마다 중구난방인 사고 발생 시각이 음모론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세월호 침몰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오전 한 포털사이트에 사고 발생 시각을 의심하는 글이 올라왔다. ‘선장은 7시20분에 구조 요청했다. 8시58분이 아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사고 발생 시각을 무려 1시간40분이나 앞당긴 근거는 사고 당일 오전 7시20분께 방송된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굿모닝 대한민국>의 자막이라고 했다. 포털사이트에 의혹을 제기한 이는 “7시20분께 이 프로그램에서 뉴스속보로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배가 구조신호를 보냈다는 뉴스를 분명히 봤다”고 주장했다. 당시 방송 장면이라고 ‘주장’하는 화면 사진은 온라인을 타고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본 이들은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의궤, 8일간의 축제>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방송 화면 위아래가 불투명하게 ‘블러’ 처리가 됐는데, 이를 두고 일부러 자막을 지운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굿모닝 대한민국> 제작진은 애초 ‘7시20분 사고’ 자막 자체가 없었고, 따라서 자막을 일부러 지운 적도 없다고 했다. 박도환 피디는 “매일 2시간씩 방송을 하는데 자체 촬영분 말고 다른 업체에서 찍은 화면을 재가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화면을 16:9로 쓰지만, 어떤 곳은 4:3을 쓴다. 우리 화면에 맞게 다시 비율을 맞추고, 원본에 있던 불필요한 자막을 지운 것을 두고 이런 의혹이 일었다”고 했다. 박 피디는 “이걸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니 답답할 뿐이다. 송출실에서 당시 나간 진짜 화면도 받아놨다”고 했다.

한국방송이 운영하는 트위터 글을 갈무리한 사진도 ‘7시20분 사고설’을 부추겼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4시19분 한국방송 트위터에는 “오전 7시20분부터 침몰한 세월호 수중탐색이 재개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16일 오후 4시19분’이라는 시간이 의혹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는 4월17일 오전 8시59분에 올라온 내용이었다. 트위터의 시간표시 방식이 ‘로그인’을 하기 전에는 트위터 본사가 있는 미국 시각이 표시되지만, 로그인을 하면 한국 시각이 표시되는 탓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이런 의혹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데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급속하게 번지는 온라인의 특성도 있지만 애초부터 불명확한 정보로 혼란을 키운 정부의 책임도 크다. 당일 사고 발생 시각을 기록한 정부기관 보고서는 제각각이었다.

정부는 첫 사고 접수 시각이 4월16일 오전 8시52분이라고 밝혔지만,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공문에는 ‘오전 8시께 침몰중’이라고 나와 있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은 사고 당일 ‘항해경보(제14-155)’를 발령하며 사고 발생 시각을 ‘오전 8시30분’으로 적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한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는 ‘오전 8시25분’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이들 기관은 논란이 된 뒤에야 뒤늦게 착오라고 해명하고 수정하기에 바빴다.

해경 관계자는 “해경에서 작성한 상황보고서는 사고 접수 시각을 오전 8시58분으로 기재했다. 의혹을 깨끗하게 털기 위해서라도 기관마다 왜 다르게 보고가 됐는지,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각은 언제였는지를 수사를 통해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2. 쟁점의 본질

(1) 글 쓴 당사자에 대한 사실확인이 없다

서영지 기자는 ‘7시20분 사고설’의 진위문제를 다루며, ‘과연 KBS가 그러한 보도를 한 사실이 있는가’에 대한 KBS측의 해명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에 대한 취재는 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지요. 아고라에 글이 올라와 있고, 어떤 경로든 접촉도 가능했을 터인데 말이지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말문을 여신 그 분의 주장은 “그 방송을 듣고 인천에서 제주로 다니는 여객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내용이 구체적입니다. 그러한 표현은 쉽게 나올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 분을 만나든 통화를 하든 '7시20분 사고설'을 제기한 당사장 대한 취재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것입니다.

(2) 정부 관청의 공문서에 대한 사실 확인이 없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정부에서 공식 발표한 “8시 52분 최초사고 접수”입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구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의혹과 실체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고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해경이 안행부와 해수부에 보고한 내용의 공문, 해양조사원과 진도군청의 공문 역시 관청의 공문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며 더우기“뒤늦게 착오라 해명하고 수정하기에 바빴다”는 한마디로 끝내버릴 사안은 아닌 것입니다.

(3) 단원고 학교 상황판에 기록된 8시10분 상황에 대한 취재가 없다

단원고 교무실 상황판에는 “08:10 제주해경 -> 배와 연락 안 됨. 학교로 전화연락”이라는 내용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경기도 교육청에서도 통화사실에 대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공개가 되자 당국은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아 연락을 했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일까요?

아무 문제없이 배가 잘 달리고 있는데, 제주해경이 무엇하러 단원고에까지 전화를 해서 배와 연락이 안된다는 말을 했을까요? 배와 연락이 안되면 청해진 해운에 전화를 하는 것이 상식이지 무엇하러 승객인 단원고에 전화를 하느냐 말이지요. 세월호에 문제가 발생했고, 그것을 해경은 인지하고 있었고, 그 시간은 8시10분 이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로 저 상황을 취재해야 하는 것이지요.


3. 추가적인 취재요청

세월호 참사에서 <사고시간> 문제 대해 한겨레 서영지 기자께서 이왕지사 관심을 갖게 되셨으니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취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1) 아고라 하늘티 -“해장국집 영수증 올려봅니다.”

하늘티님은 사고날 아침, 전날 밤 술을 많이 드신 아버지와 마주할 기분이 아니어서 친구와 함께 집에서 10분 거리인 근처의 해장국집으로 갑니다. 해장국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테미블을 정리하던 주인 아주머니가 TV를 켰는데,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흰배를 보았고, 밑에는 자막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는 친구와 함께 그 장면을 보았으며, “거의 기울지 않고 서있는 배를 찍은 영상을 보며, 그 시각 저렇게 방송사에서 나와 영상까지 찍어 뉴스를 보도할 정도면 전원 구출하고 고작해야 구출과정에서 부상자 몇이면 끝날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첫째, 서영지 기자께서는 아고라 하늘티님을 무슨 방법으로든 연락을 취해서 목격한 내용과 함께 07:33:58로 기록된 영수증(사진)의 사실관계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당일 방송에 나온 배를 찍은 영상이 세월호가 맞는지, 아니면 자료화면인지, 만약 세월호가 맞다면 그 장면을 누가 찍었는지, 해경인지 언론사인지 등을 취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2) KBS 화면에 BLIND 처리된 부분에 대한 사실확인

아래의 화면을 잘 보시면 화면 좌측상단 날짜와 시간이 기록된 부분 아래에 뉴스속보로 떠 있었을 자막이 블라인드 처리된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실관계와 그 내용에 대해 취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2) 해경 123호의 접근경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저도 열심히 관련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만, 잡히질 않고 있어 공개적으로 오픈합니다. 해경 123정은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였고, 시간은 9시30분경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내진입을 지시받았고 충분히 진입이 가능했음에도 “배가 기울어 들어갈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해경 123호가 어디에 있다가? 언제? 누구로부터? 출동을 지시받아 현장으로 달려갔는가 입니다. 해경이 공식적으로 사고를 인지한 시간이 8시52분이라고 했고, 해경 123호는 인근 경비지역을 순찰하고 있던 중 8시57~8분경에 목포해경으로부터 출동지시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만,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였는지 여부는 도착시간과 거리를 통해 명령을 받은 시간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해 보건데, 복수의 증언에 의해 7시30분 이전에 세월호에 문제가 발생한 상황은 사실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반면, 정부나 해경의 8시 52분 최초신고는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도 비참한 현실이지만,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가와 정부기관이 거짓말을 많이 했을까요, 국민이 거짓말을 많이 했을까요.

검증이라는 것은 거짓말을 잘하는 집단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이 국가기관의 발표에 대해 한겨레가 면돗날과 같은 분석으로 검증해 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고, 마찬가지로 제가 한겨레의 보도내용을 검증하는 이유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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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기사를 검증한다 - ②
     제2편 - 세월호 ‘에어포켓’존재설
신상철 | 2014-05-21 13:59: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겨레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기사를 검증한다 - ②
제2편 - 세월호 ‘에어포켓’존재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제가 첫 번째로 썼던 글이 < Air Pocket -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 였습니다. 에어포켓(Air Pocket) 형성가능성과 함께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Diving Bell)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그 글은 아고라에서 하루만에 5만명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실제 세월호 구조업무에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던 기록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5월 12일자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이라는 기사의 두 번째 타이틀로 <세월호 ‘에어포켓’ 존재설>을 다루면서 ‘에어포켓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리는 기획기사를 내 보낸 바 있습니다. 저는 그 기사내용에 대한 시시비비와는 별개로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저에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여, 오늘은 박기용 기자의 기사에 대해 검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한겨레 박기용 기자의 기사 - 세월호 ‘에어포켓’존재설

②‘에어포켓’ 존재?
차수벽 충분찮은 로로선 ‘에어포켓’ 가능성 적어

뱃머리 떠있어 수색 우선순위 | 사실은 평형수 안 채운 공간

세월호 사고 초기, 실종자 가족들과 온 국민을 애타게 만들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에어포켓’(선체 내 공기층 )의 존재를 두고 벌어진 ‘희망 고문’이었다. 선박이 침몰하더라도 뒤집힌 선체 격실 등에 물이 들이차지 않은 빈 공간이 일부 생길 수 있다. 이곳에 선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공기가 남아 있을 수 있는데, 이게 에어포켓이다. 바다 밑으로 급속히 가라앉은 세월호 선체 안에도 이런 공간이 생겼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리고, 배 안에 갇힌 생존자들이 에어포켓에 모여 있을 것이라는 기대 가 사고 초기 상황을 지배했다.

세월호 침몰 직후 언론과 전문가 등은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봤다. 세월호 뱃머리 일부가 사고 발생 3일째인 18일 낮까지도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선체를 물 위로 띄우는 부력의 존재는 선체 내 공기층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게다가 지난해 선박 전복 사고로 대서양 바다 밑에 갇혔던 선원이 3일 만에 구조됐다는 외국 사례가 반 복 보도되면서 에어포켓의 존재는 ‘기정사실’이 됐다. 일부 매체는 에어포켓 안에 33명이 생존해 있다는 식의 ‘확인할 수 없는 구 체적 보도’까지 쏟아냈다.

에어포켓에 대한 믿음은 한시가 급한 수색·구조의 ‘우선순위’까지 바꿔놓았다. 공기가 차 있는 뱃머리 쪽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으니 이곳부터 수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부 민간 전문가들은 사고 다음날인 17일부터 언론 인터뷰에서 “뱃머리 쪽에 배에 남아 있던 공기가 차 있다.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여기부터 수색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러다 보니 초기 수색·구조 작업의 초점은 ‘에어포켓 보호’에 맞춰진 측면이 크다. 특히 사고 초기에 객실 유리창을 깨고 선체 내부로 서둘러 진입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견은 ‘에어포켓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의견과 섞이며 힘을 얻지 못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에어포켓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적의 공격을 가정하고 건조되는 군 함이나 2만t 이상 초대형 크루즈 선박 등에는 바닷물 유입을 막는 ‘차수벽’이 충분히 설치돼 있다. 이는 사고 발생시 에어포켓 형 성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세월호 같은 연안여객선은 차수벽이 충분치 않다. 특히 배 뒤쪽 램프형 출입구를 통해 차량이 직접 진 입하는 세월호 같은 로로선은 바닷물이 한번 들어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침몰 초기에 에어포켓이 일부 형성됐 더라도 금세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에어포켓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부른 ‘세월호 뱃머리’는 원래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채워져야 할 공 간이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세월호는 평형수를 권고 기준의 4분의 1 정도만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평형수가 부족한 사실을 몰랐던 상황에서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이유를 에어포켓에서 찾게 된 셈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사고 8일째인 지난달 23일 “구조팀이 3·4층 다인실을 집중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은 발견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색작업을 지휘한 해군 고위 간부는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에어포켓은) 우현 쪽으로 옮겨갔을 텐데 밀폐 공간에 온갖 부유물이 뒤엉켜 있어 공기가 분산되거나 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때도 에어포켓의 존재가 논란이 돼 실종자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당시 천안함은 배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가라앉은데다 희생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이 모두 비슷해 에어포켓이 애초부터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2. 한겨레 박기용 기자의 기사의 위험성

한겨레신문 박기용 기자가 쓴 기사의 위험성은 <구조팀이 수색했으나 에어포켓은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침몰후 8일이 지난 시점의 수색> 결과를 예로 들면서 말이지요. 그러면 침몰 후 첫 날은? 둘째 날은? 세째 날은? 그것에 대해 현재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시 어느 누구도 구조를 위해 그 공간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8일째 되는 날 수색해보니 에어포켓이 없더라. 그러니 처음부터 구조하겠다고 부지런 떨거나, 독촉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그런 식으로 쓰다니요. 그리고 <침몰하는 배에는 에어포켓이 없으니 인명구조를 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하고 바로 인양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향후 해난구조에 관한 인식에 상당히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선박이 침몰하면 반드시 에어포켓이 형성됩니다. 배가 크든 작든 그렇습니다. 그것이 선박공학입니다. 그것이 궁금하면, 설겆이 할 때 그릇을 물통에 왕창 쏟아 넣고 물을 부어도 그 중에 반드시 에어포켓이 존재할 것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실험으로는 맥주잔 바닥에 종이를 붙이고 맥주잔을 뒤집어 물속으로 밀어넣어도 물이 종이에 닿지 않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에어포켓입니다.

문제는 에어포켓이 존재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어느 공간에 어느 정도의 에어포켓이 형성되는가의 문제이고, 그것이 얼마나 존재하다가 사라지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특히 어떤 곳은 인위적으로 빼지 않는 한 영구히 소멸되지 않는 에어포켓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박이고, 선박이 갖고 있는 구조적 특성입니다.

현대에 선체는 기본적으로 철(Steel)로 만들어집니다. 철과 철을 맞대어 용접으로 이어가며 선박의 형태가 완성됩니다. 용접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은 물이 새거나 침투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어느 구획, 어느 부분이 개방(Open)되어 있느냐인 것입니다. 출입문, Air Duct, Cable way, Speaker 등등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들의 존재여부에 달린 문제인 것입니다.


3. 에어포켓(Air Pocket)이 반드시 존재하는 과학적 근거

엄밀히 따지면 <에어포켓이 만들어진다>는 표현보다는 <해수가 유입되지 못하는 공간이 남아있게 된다>는 표현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형성된 공간을 에어포켓(Air Pocket)이라고 부른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선박이 물 위에 떠 있는 부력의 원리는 <유체 속에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잠긴 물체에 작용하는 부력의 크기는 물체가 밀어낸 유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와 같다>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로부터 비롯됩니다. 부력은 물체 주위의 유체가 물체에 미치는 압력의 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힘의 크기는 물체를 그 유체로 바꾸었을 때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와 같습니다.

부력이 중력보다 크면 물에 뜹니다. 선박의 부력은 <선박의 부피 내에 존재하는 공기가 가진 힘>입니다. 그런데, 사고로 선박에 해수가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선체의 중량이 늘어나고, 어느 순간 '중량 > 부력'이 되는 포인트에서 선박은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수함은 이 원리를 이용하여 수면 위로 떳다 가라앉았다 하며 운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박이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선박 내에 공기가 제로가 되느냐? 그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잠수함이 물 속으로 들어간다고 잠수함내 공기가 모두 사라졌다고 말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비록 중량이 부력보다 커지면서 물 속에 들어가긴 하지만, 선박을 물 위에 떠 있도록 했던 거의 대부분의 공기는 그대로 보유한 채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후 해수가 들어오는 만큼 선박은 더 빨리 해저로 가라앉게 되고 동시에 수압의 영향까지 더해져 선박내 공기가 존재하는 공간을 해수가 채우게 되겠지만, 해수가 더 이상 공기를 밀어내지 못하는 공간(에어포켓)은 선박 어디에든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 여부에 달린 것이고, 그 에어포켓에 존재하는 산소가 소진되기 전에 구조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인 것입니다.

박기용 기자도 그의 기사에서 언급을 했지만, 지난 해 대서양에 침몰한 배에 갇힌 20대 나이지리아 남성이 에어포켓 공간에서 탄산음료를 마시며 60시간을 버티다가 구조된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에어포켓의 존재와 생존가능성 여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것입니다.


4. 천안함의 경우 - Air Pocket은 급속히 사라진다

우리가 에어포켓의 존재여부를 고민하는 공간은 생존자들이 가장 많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것도 밀폐성 혹은 수밀성이 높은 공간이 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침실, 사무실, 작업실 등의 순서로 말이지요. 원초적으로 탁 트인 공간인 화물창 혹은 통상 승객이 접근할 수 없는 발라스트나 유류 탱크 등의 에어포켓은 거론할 이유도 없는 겁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인근 해역에 반파 침몰하고 정부와 군은 ‘에어포켓’의 존재가능성을 거론하며 69시간 정도는 생존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자 가족분들 뿐만아니라 전 국민이 애를 태우며 지켜보았습니다만, 저는 당시 <안타깝지만 5분 이내 전원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체의 구조적 특성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천안함 함미의 경우 길이가 37m입니다. 그것이 47m 해저에 가라앉은 것입니다.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순간의 TOD 영상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함미가 침몰할 당시 엔진 등으로 인해 중량이 무거운 앞쪽 부분이 먼저 물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수심 47m의 해저에 가라앉은 37m길이의 천안함 함미는 해저에서 바로 앉은 모습이거나 좌현 또는 우현으로 드러누운 형태로 안정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대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공간인 침실의 구조적 특성을 따져보면 왜 천안함의 경우 에어포켓 형성이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벽의 상부와 천정인 것이지요.

군함 침실의 천정에는 Air Duct(공기순환통로), 방송스피커, 전등시설 및 Cable way(전선통로) 등이 있 어 그곳을 통해 공기가 빠져나가고, 공기가 빠져나간 만큼 하부의 틈새로 들어온 해수가 공간을 채워버리기 때문에 침실 내의 대원들은 불과 5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저의 분석은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 후 시신에 대한 군의관 검안 결과 <전원 동시간대 익사>라 결론내린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5. 세월호는 '에어포켓'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세월호 침몰형태는 천안함과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서있던 자세 그대로 해저에 가라앉았던 천안함과는 달리, 세월호는 이미 과적으로 복원력을 상실한 상태에다가 갑판화물에 대한 고박의 부실까지 겹쳐 급속하게 좌현으로 기울었고, 선체가 옆으로 드러눕기 시작한 이후 좌현선미 램프(화물출입구)로 유입된 해수로 인해 불과 십수 분만에 전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선박이 배를 드러내고 완전히 전복되는 경우,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전복된 경우, 각 구획안에 존재하는 공기를 그대로 안고 바다속으로 들어가게 될 뿐만아니라 공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Air Duct, 전등, 스피커 등이 있는 천정이 바닥으로 변하고, 물이 침투하기 어려운 바닥과 벽이 천정으로 변함에 따라 Air Pocket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선내 승객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겨레는 인용한 그래픽과 함께 해수면 위로 선수가 떠 있는 것이 <평형수 공간에 공기유입 탓>이라고 적시했는데, 이것은 사실도 아닐 뿐더러 사실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표현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발라스트 탱크가 Full이 아닌 이상, 탱크 내에 해수를 제외한 공간에 공기가 차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공기유입>은 가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없던 공기가 새로 만들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물을 넣고 뺌에 따라 생기는 공기일 뿐입니다.

둘째, 선수쪽 발라스트 탱크 속의 잔존공기의 힘으로 인해 저렇게 선수가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느냐..라는 관점에서 따져본다해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선체의 일부가 가라앉지 않고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선박 전체에 존재하는 공기(에어포켓)의 총합에 의한 부력으로 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런데 왜? 선미가 떠 있지 않고 선수가 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선박에서 선수부분이 가장 가볍기 때문입니다. 선미쪽으로 갈수록 선실구획이 길게 존재하는 것은 물론, 선미쪽에 엔진, 발전기, 프로펠러, 샤프트, 라더 및 각종 기관설비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월호 내에 공기층이 선수부터 선미까지 균일하게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침몰후 선체의 일부가 남아 있게 된다면 선수부분이 떠있고 나머지는 가라앉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입니다.

넷째, 세월호의 1등항해사와 기관장을 심문하여 사실관계를 밝혀내거나, 혹은 선체를 인양한 후 발라스트 탱크 내부를 조사하거나, 아니면 세월호를 사고전 상황에서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 본다면 명명백백히 드러나겠지만, 선수쪽 보다는 선미쪽 발라스트 탱크가 더 많이 비어 있을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세월호는 규정보다 세 배에 달하는 화물을 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그 대부분의 중량화물이 화물창 내에 적재되었으며, 화물창의 구조는 선수보다 선미쪽이 더 넓고 크기 때문에 과적의 영향은 선수보다 선미쪽이 더 많이 받게 됨에 따라 흘수(Draft)와 트림(Trim)을 맞추기 위해서는 선수쪽보다는 선미쪽 발라스트 탱크를 더 비워야 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위의 이유 등으로 선수부분이 수면 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선수가 물 밖으로 나와 있다고 해서 그곳에 생존자가 더 많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논리 또한 사실과 전혀 맞지않는 논리인 것입니다. 생존자가 있을 확률이 높은 곳은 당연히 승객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선실이고, 그곳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지요.


6. 박기용 기자께 드리는 취재요청

한겨레 기획기사에 대한 저의 검증 <제1편 - 서영지 기자의 7시20분설>에서 제가 서영지 기자께 추가로 취재하시면 좋을 내용을 말씀드렸는데 마찬가지로 박기용 기자께도 취재요청의 형식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세월호 선수를 잡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취재

저는 사고 이틀 후 관련 글을 통해, 그리고 MBN 방송에 출연하여 <세월호의 선수를 잡으라>고 목이 터져라 주장했습니다. 세월호 선수를 잡아야 했던 이유는 ;

첫째, 선체가 완전히 뒤집어진 채 각도 그대로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수가 물위에 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미 갑판 끝 부분은 해저에 닿아 있는 상태였고, 비록 공기의 힘으로 떠있는 상태이지만 그나마 선수를 누가 잡아주고 있는 형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세월호가 전복된 상태와 각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그 각도와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선체 내부에 형성되어 있을 '에어포켓'때문입니다. 어떻든 침몰과 전복후 비교적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세월호가 자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내부의 에어포켓이 형성된 공간과 그곳에 생존자들이 피신해 있을 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수가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면 굴뚝과 선실의 구조적 문제로 세월호는 선체가 좌현 혹은 우현으로 90도 돌아눕게 되므로 기존의 에어포켓이 형성되었던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그나마 버티고 있을 생존자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선수를 잡는 것은 의외로 쉽습니다. (1)바지선 두척으로 선수의 좌우에 붙여좋고 와이어로 묶는 방법 (2)군함 두척이 선수 좌우로 붙어 세얼호 바우트러스터의 구멍을 이용 고박을 하는 방법 (3)기왕지사 현장에 출동한 3000톤급 크레인을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그 크레인을 이용하여 선수가 더 가라앉지 않도록 잡아 두는 방법 등 얼마든지 수립가능한 대책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선수를 잡지 않았고, 세월호 선수는 해저 바닥에 닿아 선체가 옆으로 드러눕게 방치함으로써 그나마 형성되었을 에어포켓의 상당부분이 소실되도로 하였다고 저는 분석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취재해 보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2) 세월호 선수가 수면 위에 머물고 있었던 낮과 밤 비교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되어 선수의 일부만 남기고 물에 잠긴 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세월호 선수의 낮과 밤의 사진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낮과 밤, 무려 12시간 가량 지났음에도 선수가 물 속으로 크게 가라앉지 않고 비슷한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간에 한 무리의 요원들이 보트를 타고 선수에 접근하여 뒤집어진 선수하부에 올라 불을 켜놓고 모종의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이 오래도록 노출되었고, 그 다음날 선수가 빠른 속도로 물 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제기에 대해 혹자들과 정부나 해경당국에서는 선체체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서였다거나 선수를 잡아두기 위해서였다는 등의 논리로 변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러한 주장은 전혀 설득력도 없고 실효도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선수를 잡기는 커녕, 그와는 상관없은 작업을 하였던 그 무리들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는 것은 일반인들이 하기엔 버거운 영역이어서 감히 박기용 기자께 정중히 요청드리오니 취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맺으며

해난사고와 인명구조에 관한 문제를 놓고 근거도 없이 갑론을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위험성을 내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문제에 접근하는 것 조차도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칫, 수많은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거나, 구조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유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박기용 기자의 기사에 대해 제가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세월호에 대한 인양을 반대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그곳에 세월호를 그대로 두고 영구 보존하면서 그 일대를 <세월호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세월호 사건은 인류역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선박이 해난 사고를 당하는 경우야 선박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지만, 연안의 해난사고에서 선박이 물 속에 들어간 후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한 사례로서 세계 해난사에 극히 드문 사례로 손꼽힐 참사이기 때문입니다.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저질렀던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한 미친 국가가 얼마만큼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서 보존하며 교훈을 얻을 가치가 있다면, 세월호 참사야말로 <한 국가가 무능할 경우 얼마나 많은 생명이 억울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서 전세계인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는 이미 인양을 해야하는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선박입니다. 그 선박을 인양하는데 드는 비용이 그 선박의 가격을 훨씬 상회한다는 얘기가 있고 보면, 세월호를 인양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세월호는 보존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월호를 이용하여 참사가 시작된 원인으로부터 침몰과정 그리고 구조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검증과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선박이 복원성을 잃고 쓰러지게 되는지, 전복되는 과정에서 해수가 유입되는 형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에어포켓은 어느 구획에서 어떻게 형성이 되는지, 그곳에서 생존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 생존자를 어떻게 구조하여 수면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반복하며 완벽한 결과를 도출해 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모두를 이루어 내는 것이야말로 하늘나라에 간 어린생명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아있는 우리들이 검증해 내는 그 모든 과정이 <세월호 박물관>에 기록되고 전시되도록 할 때,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을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선박이 침몰한 이후 에어포켓이 존재했는지 여부, 그 에어포켓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선박은 대단히 큰 구조물입니다. 그런 구조물이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사고로 인해 급속하게 해수가 유입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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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기사를 검증한다 ③
제3편 - 잠수함 충돌설? 어뢰 격침설? 암초 충돌설?
신상철 | 2014-05-25 08:19:2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겨레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기사를 검증한다 ③
제3편 - 잠수함 충돌설? 어뢰 격침설? 암초 충돌설?


한겨레가 5월 12일 보도한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기사에 대한 검증 글을 올리자 그에 대해 말씀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주주가 되었을 때의 감동이 이제는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다며 한탄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울합니다. 만약 조선일보가 그런 보도를 했더라면 아마 저는 '검증의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할애하는 시간 조차도 아깝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검증의 글'을 쓰는 데에는 아직도 일말의 미련과도 같은 애증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겨레 최우리 기자는 두 꼭지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 중 첫 번째 기사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잠수함 충돌? 어뢰 격침? 암초에 좌초?

 

③ 잠수함 충돌? 어뢰 격침? 암초에 좌초?
선박 증축·과적·고박 불량 등 원인

김일성 생일·한-미훈련 시기 겹쳐 |‘외부 충격설’ 그럴듯하게 퍼져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던 사고 초기에는 ‘암초 충돌설’도 제기됐다. 평소에 다니지 않던 진도 맹골수도 항로에 들어선 세월호가 암초를 타고 넘다 침몰했다는 것이다. 생존자들 가운데 일부가 배가 기울기 전에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이런 주장을 받쳐주는 근거가 됐다. 일부 전문가들도 ‘암초설’에 힘을 실었다. 세월호 정도 크기의 배가 완전히 뒤집히면서 침몰하려면 선체에 큰 구멍이 뚫려야 하는데, 내부에서 구멍이 저절로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수십년간 진도 근처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온 지역 주민들은 사고 해역은 암초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들을 직접 구조한 서거차도 허학무(60) 이장은 “이 지역에 암초는 없다. 1만t 이상의 큰 배가 다녀도 암초에 걸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암초설이 수그러들자 ‘외부 충격설’의 또다른 버전이 등장했다. 북한 어뢰에 피격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침몰 전날인 4월15일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이라는 것이 ‘근거’로 제시됐다. 일부에서는 ‘국가정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덮기 위한 ‘의도적 침몰’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나돌았다.

이 와중에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설까지 제기됐다. 사고 당일인 4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이 비준되도록 하려던 ‘준비된 사건’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이었다. 침몰 시기가 한-미 해군 연합훈련 기간이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국방부는 잠수함 충돌설에 대해 “당시 해당 지역에서 작전이나 훈련은 없었다. 게다가 사고 해역은 수심이 얕아 잠수함이 활동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고 해역의 최대 수심은 47m에 불과하다.

경찰은 포털사이트에 ‘세월호 침몰이 한-미 해군훈련에 참가한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 때문이다’, ‘한-미 해군 합동군사훈련 때문에 세월호가 사고 난 항로를 이용했다’는 등의 글을 퍼뜨린 이들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기 바라는 취지에서 글을 올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복합적이다. △선박 증축에 따른 복원성 부족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르는 화물 과적 △화물 고박(고정 결박) 불량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덜 채우는 대신 그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싣고, 물살이 유난히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격한 변침(항로 변경)까지 한 상황들이 겹치고 겹쳤다. 항해 중 맞닥뜨린 외부 요인이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보다 화물 과적으로 몇천만원의 화물 운송료 수입을 더 얻고자 한 탐욕이 사고를 부른 셈이다.

최우리 기자


2.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어야

우선, 최우리 기자의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 △선박 증축에 따른 복원성 부족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르는 화물 과적 △화물 고박(고정 결박) 불량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덜 채우는 대신 그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싣고, 물살이 유난히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격한 변침(항로 변경)까지 한 상황들이 겹치고 겹쳤다. 항해 중 맞닥뜨린 외부 요인이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보다 화물 과적으로 몇천만원의 화물 운송료 수입을 더 얻고자 한 탐욕이 사고를 부른 셈이다. - 라는 부분에 대해 저는 100% 동의합니다.

그것은 세월호 사고가 난 직후부터 제가 주장하였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사고 사흘 뒤인 4월19일 제가 서울역 광장에서 45분간 발언을 하였던 동영상(☞들으러가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최우리 기자께서 마무리지은 총론에 대해 이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남겨놓고 그 이외의 가능성 모두를 배제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세월호는 과적을 밥 먹듯이 해왔습니다. 상습적이었다는 얘깁니다. 저는 세월호가 4월에 사고가 안났으면 5월에 났고, 금년에 안났으면 내년에 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철없는 아이가 오토바이를 사서 헬멧도 쓰지 않고 매일 밤 시속 200키로 광란의 질주를 즐긴다면 사고 영순위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세월호가 전복되었을 때 반드시 언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 <증축 - 과적 - 고박불량 - 평형수> 문제입니다. 그것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입니다. 문제는 그 외의 사고 가능성은 없는가 입니다. 다시말해, 그러한 고질적인 문제점이 터져나오도록 역할한 보조적인 사고는 없었는지 여부입니다. 사고는 얼마든지 복합적일 수 있고, 마치 뇌관이 터져서 폭탄이 터지듯 소소한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를 둘러싼 증언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군산 앞바다에서의 Bottom Touch>에 관한 문제입니다. 생존자 분들 가운데 복수의 증언에 의하면, 군산 앞바다를 지날 때 무언가에 부딫는 느낌과 함께 방에 캔맥주가 굴렀다는 분도 계셨고, '찌지직' 하는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분, 배가 기울어 갑판에 올라가보니 15도 가량 기울더라는 등 무시하기엔 너무나 구체적인 증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Bottom Touch의 정황입니다. Bottom Touch란, 암초충돌이나 좌초사고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닌, 암초 혹은 어떤 물체에 부딛쳤지만 항해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정도의 접촉을 말합니다. 달리는 배가 그런 상황에 맞닦뜨릴 경우 선체 하부에 손상이 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선체하부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후 완전히 전복되는 과정을 담은 많은 영상들을 찾아 보았습니다만, 그러한 흔적이 보이는 부분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만약 Bottom Touch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부분인 <선미좌현하부의 선체외판>에 어떤 손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선체가 분해되거나 일방적으로 훼손 혹은 인양되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약간의 찢어짐 정도가 발생했다면, 설사 그것이 당장 세월호를 전복시킬만큼 위력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로인한 파공과 침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원력을 상실케 역할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최우리 기자가 언급한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해 제 소견을 피력해 볼까 합니다.

 

(1) 생존자 일부, 배가 기울기 전에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

배가 기울기 직전 ‘쾅’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분들은 모두 선수쪽에서 소리가 났다고 말합니다. 선수쪽을 보여주는 영상이나 사진들을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세월호 선수부분이 무언가 충돌한 흔적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소리는 갑판상부에 고박이 부실한 채 적재되었던 컨테이너 박스들이 배가 조금씩 기울어지자 좌현쪽으로 쏠리면서 난간에 부딛쳐 발생한 소리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것은 배가 쓰러진 후 갑판위 컨테이너 박스의 흐트러진 모습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왕지사 말나온 김에 세월호가 급속히 쓰러진 메카니즘에 대해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첫째, 세월호가 쓰러지게 되었던 근본적 배경은 <과적으로 인한 복원성 상실>이지만, 세월호를 좌현으로 한쪽으로 급속하게 쓰러지도록 직접적으로 역할한 것이 바로 저 고박되지 않은 컨테이너 박스들입니다. 갑판 위는 해무등으로 인해 미끄럽습니다. 배가 항해중에 혹은 변침중에 약간의 기울어짐 만으로도 고박되지 않은 화물들은 쏠림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좌우 균형이 깨어지고, 균형을 잃은만큼 화물이 더 쏠리는 악순환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급속히 선체를 기울게 한 것이지요. 그것은 물 위에 균형있게 떠있는 물체의 한쪽 끝에 동전 하나만 얹어봐도 알 수 있는 원리입니다.

둘째, 선체가 어느 정도 기울고 난 이후 선체 전체를 물속으로 끌어당긴 것은 바로 좌현램프 쪽으로 유입된 해수가 화물창을 채우면서 작용했을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국제해사규정에서는 카페리선의 램프에 대해 철저하게 수밀(Water Tight)를 요구하지만 국내 연안 해운선사들이 그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세월호 역시 램프부분의 패킹이 없거나 부실했을 것으로 판단되며, 그 부분 역시 세월호 선체검증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셋째, 물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하는 세월호가 급속히 뒤집어지도록 작용한 것은, 선실로 유입된 해수입니다. 선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출입구는 배가 쓰러진 후 해수가 선실로 유입되는 통로역할을 합니다. 어차피 과적으로 인해 선체하부 발라스트 탱크의 상당부분이 비어있었을 상황인데 상부 구조물인 선실에 해수유입으로 하중이 늘어나니 180도 전복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2) 세월호 정도 크기의 배가 완전히 뒤집히려면 선체에 큰 구멍이 뚫려야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물론 선체에 구멍이 뚫리는 부위가 중요하겠지만, 옆구리에 미사일을 맞지 않는 한, 선박사고에서의 파공은 대부분 선체하부에 발생한다고 보았을 때, 선체하부에 큰 구멍이 뚫리면 서 있던 모습 그대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배가 바닥을 드러내며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우는 부력보다 중력이 커지는 상황, 즉 상부는 무겁고 하부가 빈 상황일 때가 가장 유력합니다.

 

(3) 주민이, 사고 해역은 암초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선박이 사고에 이르는 과정에 반드시 최종 사고지점에 암초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지점에 훨씬 못미치는 이전 어디에선가 파공이 발생하는 접촉이 있었다 하더라도 상당 시간 마치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운항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세월호가 군산 앞바다를 지나는 지점에서 Bottom Touch가 있었다면, 진도근해에 올 때까지는 별 무리없이 달려왔다는 의미가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4) 북한 어뢰에 피격 당했을 가능성..

이 부분은, 사실 비중있게 언급이 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진지하게 주장했다기 보다 <천안함이 어뢰공격이라면서? 이번에도 북한 어뢰라고 하지 그래.> 수준의, 말하자면 비꼬는 수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령도는 가깝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이 먹히기도 했지만, 진도 앞바다까지 와서 한방에 쏘고 사라지기엔 거리가 좀 멀지 않습니까?

참고로 2010년 국방부가 발표한 미상의 물체가 NLL을 넘어와 초계함에 어뢰를 쏘고 사라졌다는 브리핑을 분석해 보면, 그 미상의 물체는 어뢰를 쏜 후 백령도 인근을 1시간 30분이나 어슬렁거립니다. 그러다가 도망을 가는데 최고시속 110km로 사라집니다. 한때 '세떼'라고 했다가 다시 감사원 감사에서 '잠수함'으로 번복된 기가막힌 사건의 이야깁니다.

 

 

 

(5)‘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덮기 위한 ‘의도적 침몰’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

‘의도적 침몰’ 여부와 상관없이, 기자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보편적 시각에서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라는 전제를 미리 깔아버리는 것은 기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였던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기 이해 통킹만 조작사건을 일으켰던 미국이 그랬고, 우리나라 역시 2010년 백령도 서안에서의 해상교통사고를 살인사건으로 둔갑시켰지요. 세월호 참사가 국정원의 위기를 덮기 위해 의도된 사건이라는 주장은, 그 사실관계를 떠나 그러한 불신이 나오도록 만든 국가정보기관의 반복된 조작과 거짓 그리고 선거부정개입 등을 질타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6) “수심이 얕아 잠수함이 활동할 수 없는 곳”. 사고 해역의 최대 수심은 47m에 불과.

잠수함과의 충돌 여부와 상관없이, 사고해역의 수심이 47m라면 그 정도에서는 잠수함들이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천안함 사건 당시 여러 경로로 언급이 된 바 있습니다. 특히 전직 잠수함장이었다는 분들의 증언 역시 '우리 서해안이야말로 잠수함들의 놀이터'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안함이 반파 침몰된 지점의 수심이 47m 입니다. 참고로, 천안함 침몰 사고 발생 불과 1시간 20분 후에 나온 <YTN 뉴스>와 <이투데이> 보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내용은 천안함이 <미상의 물체와 충돌후 침몰했다>는 보도입니다.

 

 

 

(7) 경찰은,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이다” 글 퍼뜨린 이들을 입건 조사

이 사안은, 기자가 뉴스로 소개할 내용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집중 취재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사고의 원인이 100% 밝혀진 것도 아닌데, 사고원인과 관련 다양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이 국민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국가와 조사기관이 무언가 속 시원하게 낱낱히 밝혀주고, 상황마다 국민에게 알려준다면 이런저런 얘기들도 많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비밀에 붙이고, 거짓말하고, 감추고, 왜곡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온갖 ‘설(說) ’들이 난무하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정부와 관계기관의 책임입니다.

국민은 어떤 분석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언론의 자유이며 표현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민행복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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