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수, 공무원, 학생, 노동자들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성이 드러난만큼 국가 최고 지도자의 사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집권 2년차에 공개 퇴진 주장이 연쇄적으로 나오는 것은 심상치 않은 기류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광우병 쇠고기 파동 당시 재협상 요구와 공기업 민영화 반대, 4대강 운하 반대 등 의제와 맞물려 이명박 대통령 퇴진 목소리는 말 그대로 정치적 구호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퇴진 주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면서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진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통해 사회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점점 확산되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과 개표기를 통한 부정 선거 문제가 제기되면서 퇴진 여론이 일었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이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는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각계 퇴진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퇴진 목소리는 도올 김용옥이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려면 물러나라"고 일갈하면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김용옥은 지난 3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며 "세월호 참변의 전 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며 사퇴를 주장했다. 김용옥의 주장은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논쟁을 일으켰다. 앞서 영화감독 박성미씨가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친노종북 좌파가 선동하고 있다는 공세가 나왔지만 예전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청와대도 세월호 참사 책임 문제가 대통령으로 번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지난 21일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한 번 도와주소.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제 삼는 것은 조금 뒤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라고 보낸 것은 상징적이다. 이후 KBS 길환영 사장이 해양경찰을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폭로되기도 했다.

교사 43인이 지난 14일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을 선언하자 교육 당국이 징계를 예고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교사 43인 징계 목소리가 나오자 교사 1만 5천여 명은 시국선언을 통해 박 대통령의 무한 책임을 요구했고 이어 해직 공무원 123명이 나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지난 15일 현장 노동자와 노조 간부 등 79명은 "탐욕의 자본 · 박근혜 퇴진, 세월호 몰살에 분노하는 노동자 행동"에 나서자고 제안했고 20일 노동자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퇴진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추모,실종자 신속구조수색,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석한 시민들이 '실종자를 구조하라! 아이들을 돌려달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도 지난 16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 시위를 열어 "위기시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대통령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만을 궁리하다가 생긴 비극이기에 당신의 퇴진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열린 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하며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19일에는 청년단체 회원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서 퇴진을 촉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 해체 등 조직 부처 개폐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퇴진 여론은 여전하다.

20일 서울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가 "대통령이 해경 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라며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고,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는 "사고의 원인과 해경의 해체와는 무관하다. 이번 사고에 해경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여러 가지 의혹을 남긴 것은 사실이나, 해경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다. 해경을 없앤다고 안전기능이 강화되지는 않는다"며 "세월호와 함께 물속에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하면서, 더욱 고민해야 할 일은 시민이 중심에 서는 생명의 대한민국이다. 이를 위해 무엇을 청산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동맹에 의한 반인간적 국가시스템이다. 이러한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반인간적인 국가시스템의 수장으로서 스스로 퇴진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오는 24일 열리는 집회에서도 대규모 참가가 예상되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특별법 제정과 특검을 즉각적으로 도입하고 전문가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기구를 만들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히지 않고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는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퇴진 여론에 힘으로 맞서고 있다. 교육부는 교사43인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갔고 지난 주말 집회 시위에서 백명이 넘는 시민을 연행했다. 강경 대응 기조로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전교조 하병수 대변인은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교사들의 퇴진 주장은 민원성 게시물로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집단행동을 한 근거가 되지 못하고 공익에 반하고 업무에 태만한 행위가 아니어서 공무 행위 상 법을 위반했다고 적용하기 힘들다"며 "내용적으로 문제 삼을 게 없고 해석의 여지를 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징계 역시 쉽지 않다. 지난 2009년 교사들의 시국선언 당시 교육부장관이 직접 나서 징계 의사를 밝혔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박근혜 대통령 퇴진 주장에 대한 징계는 장관이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분위기다. 징계를 반대하는 자발적인 서명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민교협 공동의장인 송주명 교수(한신대)는 "정확하게 어디가 잘못됐는지를 지적하는 국민의 의사 표현을 가로 막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 규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며 "직업 공무원들이 정치적 행동을 자제해야하는 것일 뿐 퇴진이라는 주장과 표현은 능히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박 대통령의 담화문을 봤지만 총체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정부 부실과 무능력, 무책임성을 보여줬는데 어떤 방향으로 대한민국이 재구조화되고 설계돼야 하는지 박약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보수 정치 최정점에 서 있고, 이 같은 시스템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정확히 깊게 생각하는 차원에서 퇴진 주장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