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원세훈, 국정원법은 위반. 선거법은 무죄"
집행유예 선고, 원세훈 재수감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법원이 11일 지난 대선때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댓글공작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라고 인정하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라며 집행유예를 선고, 야당의 반발 등 파장을 예고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 이범균)는 이날 오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국정원 심리전단의 불법 댓글에 대해 "국정원 직원이라는 신분을 감춘 채 일반국민으로 가장,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리고 반대 정치인과 정당 비방 글을 올린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건전한 여론 조성에 국가기관이 몰래 개입한 것으로, 정당한 직무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며 국정원법 위반임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원세훈 전 원장의 책임 여부와 관련해서도 "원세훈이 심리전단 직원의 구체적인 활동 방법까지 모두 알지 못했을 것 같긴 하지만, 취임 당시 심리전단이 인터넷상 토론글, 댓글 작성하는 방법으로 사이버심리전한다는 보고를 받고, 심리전 결과 보고 받은 것도 인정된다"며 "원세훈의 지시 강조말씀은 업무 지시에 해당한다"며 국정원법 위반을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검사는 국정원이 사이버상에서 국정을 홍보하는 것은 정치관여이고, 선거시는 국정홍보가 정치행위이므로,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는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하나, 우리 대법원은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능동적, 계획적으로 인정되는 지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이 사건도 평상시에 반복된 국정원 사이버 활동이 선거시가가 됐다고 해서 당연히 선거운동이라고 하거나, 다루는 내용이 선거쟁점이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선거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무죄를 판시했다.
이에 따라 이틀전 비리 혐의로 1년2개월간이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감한 원 전 원장은 재수감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원 전 원장은 판결후 기자들과 만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는 너무나도 옳은 판단"이라고 반색하면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 역시 북한의 비난에 대응한 것"이라고 항소 방침을 밝혔다.
법원 판결에 대해 SNS 등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혐의는 유죄를 인정하고, 공직선거법 부분에 대해서 무죄라고 한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눈치보기 한 것인데, 결국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과 다를바 없는 정치적 판결을 한 셈"이라고 비난했다.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도 "대선 당시 국정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에 관여하라고 지시했는데, 그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면 과연 어떤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인가요?"라고 반문한 뒤, "모든 공무원들이 선거시기에 정치에 관여해도 선거법 위반 적용 안할 건가요?"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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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원세훈만 처벌하고 정권 정통성은 살려준 판결"
김진태 "윤석열이 책임져야", 하태경 "야당 억지 입증돼"
조국 서울대 교수는 11일 법원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에 대해 "원세훈 개인은 처벌하되 정권의 정통성은 살려주는 판결"이라고 법원을 질타했다.
조 교수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법원, 원세훈의 국정원법 위반은 인정하면서도 선거법 위반은 불인정. 선거개입을 위해 불법업무지시를 했는데도?"라고 반문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원세훈 선거법 무죄판결 소식을 접하니, 원세훈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말라고 윤석열 검사를 찍어내는 등 철저수사를 방해한 자들이 환호작약할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반면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원세훈 선거법 무죄. 제가 작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겁니다"라며, "댓글 댓글 1년동안 생난리를 쳤던 야당, 상관을 속여가며 무리하게 기소한 윤석열검사.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건가요?"라고 법원 판결에 반색했다.
같은당 하태경 의원 역시 "원세훈, 국정원법은 위반이지만 선거법은 위반 아니다. 제가 주장해왔던 것처럼 법원도 정확히 판단했군요"라며 "그동안 야당이 얼마나 억지를 부렸는지 입증이 된 겁니다"라고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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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선거법 무죄는 궤변" 현직 판사 게시글 논란
김동진 부장판사 '법치주의는 죽었다' 신랄 비판, 대법원 직권으로 게시글 삭제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현직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일선 판사가 다른 판사의 사건 심리 결과를 두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이번 게시글은 비판 수위가 매우 높은 편이어서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7시께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게시했다.
김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며 "서울중앙지법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이다. '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비유한다.
김 부장판사는 "집행유예 선고 후 어이가 없어서 판결문을 정독했다"며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정말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이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며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로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이것은 궤변이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인가, 아니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인가"라고 묻고서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이밖에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본다"며, "현 정권은 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고군분투한 소수의 양심적인 검사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꿋꿋이 수사했던 전임 검찰총장은 사생활 스캔들을 꼬투리로 축출됐다"며, "모든 법조인이 공포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못했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대선에서 여당과 야당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며, "나를 좌익판사라 매도하지 말라. 다만 판사로서 법치주의 몰락에 관해 말하고자 할 뿐"이라고 글을 마쳤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정치에 관여한 점은 인정되지만,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의 글을 직권으로 삭제한 상태다.
앞서 김 부장판사는 횡성에서 2개월 미만으로 사육한 소는 횡성한우가 아니라고 판결한 2심 재판장으로서 자신의 판단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을 정면 비판해 2012년 서면 경고를 받은 바 있다.
han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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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봉사하는 정보기관 용납.. 선거개입 근절 기회 잃어"
시민사회·법조계 등 비판 쏟아져
"그동안의 선거법 판례와 배치, 국정원에게만 관대한 잣대"
"朴정부 정통성에 불똥 고려 의심, 사법부에 대한 불신 깊어질 것"
* 지난 2012년 대선에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선거 개입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가운데) 전 국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앞으로도 정부기관의 교묘한 선거개입이 용인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
"사법부가 여전히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 전형적인 눈치보기, 절충형 판결이다."(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1심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핵심인물 3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시민사회와 학계, 법조계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재판부가 불법 정치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선거운동이 아니라는 법리적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했지만, 결국 실체적 판단을 피한 형식논리로 '민주주의가 아닌 권력에 봉사하는 정보기관'을 용납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의 대부분은 "선거운동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특정 후보를 지지ㆍ비방하는) 댓글을 단 행위를 선거운동이라고 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국민들이 납득하겠나"며, "법원 판결에 동의하는 국민들은 진보진영은 물론, 중도진영에서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 사이에서 퍼져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기관의 선거운동은 오히려 엄격히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거 시점에 권력기관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되는 행위를 한다면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다"며 "원 전 원장 등의 지시에 의도나 목적이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한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추상적 위험만 야기했더라도 처벌하는 게 그 동안의 선거법 판례였는데, 국정원에게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댔다"며 "국정원의 댓글 활동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판단하는 게 우선이었으나 이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성공한 쿠데타는 죄가 아니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점도 비판 대상이다. 선거 국면에서 도대체 왜, 국정원 직원들이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퍼뜨리는 '위험한' 행위를 했는지를 참작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소한 국정원 이종명 전 3차장이나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암묵적인 지시는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정태호 경희대 교수는 "이런 부분(댓글의 내용과 지시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을 유예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상명하복이라는 국정원 구조상 당연한 사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비겁한' 판결"이라고 쏘아붙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 타협한 판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거법 위반까지 유죄 판단을 할 경우,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이 도마에 오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김종서 배재대 공무원법학과 교수는 "선거법 위반을 인정하면 대선 자체의 효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이를 피하기 위한 판결"이라며, "박 대통령이 '사법부 판단을 지켜보자'고 언급했을 때 재판부로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도 "원 전 원장 등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해 버리면, 이명박 전 대통령, 박 대통령한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가 악행이었던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을 엄단하고 근절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고위 법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선거는 나라의 근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고, 정보당국이 이에 개입했던 불행했던 역사를 이번에야말로 끊어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국면에서 특정 후보 지지 또는 비난 글을 온라인에 게재, 사실상 선거에 영향을 미친 행위를 한 데 대해 결국 누구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게 됐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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