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술4단체 "국정원 해킹, 민주주의에 도전 "
최근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개발 업체의 내부 문건이 폭로 전문저널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통해 폭로됐다.
그리고 이 내부 문건에는 국정원이 2012년 총선·대선 및 최근 6.4 지방선거 때까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이 업체와 거래한 정황이 포착돼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언론과 IT전문가들이 이 자료를 상세히 분석 중이지만, 자료 용량이 방대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문건 내용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노트북 ·데스크톱·스마트폰에 침투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스파이웨어(Remote Control System), 미끼 URL 등의 개발을 해킹 팀에 의뢰하고 거액을 지불했다.
처음 언론의 사실 관계 확인 요청이 쏟아지자, 국정원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취재를 피했다. 그러다 지난 14일 이병호 국정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20명분의 RCS를 구매했다"면서도, 구매 목적은 '연구 개발용'이며, 민간인 사찰은 없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복잡한 '국정원 해킹'...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그러나 문건의 내용들이 속속 그 이상의 사실들을 폭로하며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지난 17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발표에 따르면, 이 원장에 해명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58.2%)'가 '신뢰한다(31.4%)' 혹은 '잘 모름(10.4%)'보다 높게 나왔다. 국민 10명 중 6명꼴로 국정원의 해명을 불신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 가운데 국내 4대 교수 학술 단체가 "국정원 해킹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이 대북 정보 활동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었고,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면서도, "맛집과 지자체 축제 정보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유포하고,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을 해킹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추악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 한 의혹이 불거진 것이라는 점에서, 일회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미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내 정치에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알고 있"기에,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성명에 참여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약칭 민교협) 관계자는, "앞으로 교수 학술 단체 구성원들이 추후 협의를 통해 이후 행동 방향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교협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시국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아래는 4대 교수 학술 단체의 성명서 전문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필요해"
▲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데블엔젤(devilangel1004) 아이디와 주소가 같은 블로그(devilangel1004.blogspot.kr) 캡쳐 화면. | |
ⓒ 박정호 |
'국정원 해킹'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2012년 이탈리아의 한 해킹 프로그램 제작 업체로부터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찰할 수 있는 해킹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스파이웨어' 형태로 유포되는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저장된 개인 정보는 물론 통화 내역과 SNS를 통한 대화 내용까지 실시간으로 감청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이 버젓이, 그것도 조직적으로 자행되었을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의 도입이 대북 정보 활동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었고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프로그램을 맛집과 지자체 축제 정보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유포시키고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을 해킹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추악한 변명에 불과하다. 스파이웨어 형태로 해킹 프로그램을 유포시키는 과정에서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메르스 관련 사이트나 심지어 포르노 사이트까지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기관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나 사용하는 스미싱 수법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유포시키려 했던 정황이 속속들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국정원은 2012년 최초 구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카카오톡 외에 국내에서 사용되는 각종 보안 메신저 프로그램과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 갤럭시폰에 대한 해킹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해당 해킹 프로그램이 국내 백신 프로그램에 포착되었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문의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국정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도입과 활용이 대북·해외 정보활동과 연구용에 국한된 것이었다는 변명만 반복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무차별적으로 유포시키는 것이 대북 정보활동이요,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나 사용하는 교묘한 스미싱 수법이 연구대상이라는 얘기다. 국민의 막대한 세금을 그 용처조차 공개하지 않고 멋대로 사용하는 국가정보원이 내놓은 변명치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사건은 법적으로 대북·해외 정보활동에 전념하도록 되어 있는 국가정보원이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 한 의혹이 불거진 것이라는 점에서 일회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른바 '댓글'을 통해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알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해킹 프로그램 또한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민감한 정치 일정을 앞둔 시점에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두 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단일한 사건으로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완전한 후퇴와 권위주의로의 회귀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이다. 우리는 지난 2014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카카오톡 감청 사건을 기억한다. 인터넷 상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으로 시작된 검찰의 카카오톡 감청 사건은,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이었다.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 또한 전 국민을 무차별적인 사찰과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망령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인식은 고사하고 국가기관이 정권 보위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인식마저 결여한 작태가 지속되는 한 한국 민주주의에 미래는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눈과 귀, 입을 막으려는 시도들이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와 국민의 생존권에 대한 요구는 철저하게 짓밟으면서 그에 비례하여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개인의 휴대폰을 사찰, 감청하면서까지 폭력적으로 틀어막으려는 시도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피로써 쟁취한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를 근본부터 뒤집으려는 권위주의 세력의 조직적인 준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고사하고 지금까지의 성과나마 제대로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은 그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하고 관련자에게는 무거운 처벌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차제에 국정원과 검찰 등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직접적인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할 때에만이 이들 권력기관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고 이름뿐인 정치적 중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의 처리 과정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과 관련된 국가기관의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정권의 안위를 위해 이번 사건을 유야무야 처리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권이 눈앞의 안위에 매몰되어 이번 사건을 유야무야 처리한다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비록 지금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국민 대다수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는 사상 초유의 국정원 대국민 해킹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대통령이 나서 사과하라. 2. 정부는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해 국민을 상대로 비열한 적대행위를 자행해온 책임자를 가려내고 그들에게 응분의 처벌을 가하라. 3.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해체 등을 포함해 반국민적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조건을 마련하라.
2015년 7월 17일
교수학술 4단체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 학술단체협의회 / 전국교수노동조합 /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 하지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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