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국정제 강행, 보수정권 무덤된다
120년 전 민초들의 울부짖음
지금부터 121년 전 동학농민혁명이 한창일 때, 민초들 사이에서는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라는 가사의 노래가 널리 불려졌다.
노래의 뜻은 단순하다. 어딘가를 향해 바삐 나가야 하는데, 미적거리다가 병신년이 되면 못 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보세는 갑오년(1894년)을, 을미적은 을미년(1895년)을, 병신은 병신년(1896년)을 뜻한다.
나라와 겨레의 운명이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격변의 시기에, 동학농민군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민초들의 절절한 바람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을미년인 1895년이 되자 온 나라가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민초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고 외세의 침략도 더 거세졌다.
그 정점은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을미사변이었다. 한 나라의 주권이 외세에 의해 유린당하는 사태가 이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들고 일어났다. 을미의병은 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되는 독립운동의 신호탄이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되찾는 데 피와 땀을 흘렸다.
되풀이된 비극의 역사
▲ 지청천 후손(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 광화문 1인시위 | |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된 2015년, 대한민국에서는 또 하나의 사변이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가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역사를 국가의 역사로 공식화하기 위해 역사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일본 낭인들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항간에는 을미오적 또는 국정(國定)오적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을미년인 2015년에 역사쿠데타를 주도한 다섯 명을,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참여한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에 빗댄 것이다. 을미오적은 누구나 짐작하듯이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교육부장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다.
이들 오적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절대다수 전문가, 그리고 국민의 ⅔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제를 알량한 권력을 앞세워 밀어붙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갑오년인 지난해는 끔찍했다.
세월호 침몰 등 계속되는 대형 사고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한편으로 이미 우리 경제의 숨겨진 뇌관이 된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그런 가운데서도 박근혜 정부는 민생을 외면했다.
아니 겉으로는 민생 타령을 하면서, 실제로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농단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통한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 뉴라이트를 앞세운 공영방송 장악 등,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올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경제는 날로 악화되고, 정권이 밀어붙이는 노동개악으로 노동자들은 언제 길거리로 나앉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동북아의 국제정세도 오리무중인데, 강대국의 영향 아래 한국의 외교는 방향을 잃은 지 오래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한 세기 전에 겪었던 우리 겨레의 불행, 곧 제2의 국치가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마치 친일독재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만이 정권의 유일한 사명인 양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단지 역사교육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에 피와 땀으로 이루어온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평화통일운동의 역사를 온통 부정하고, 다시 역사의 시곗바늘을 친일과 독재가 횡행하던 시기로 되돌리려는 한다는 점에서, 친일독재 세력의 후예에 의한 역사쿠데타이다.
박근혜 정부는 왜 역사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는가
박근혜 정부는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을 통째로 장악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교육만을 시키겠다고 한다. 이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버금가는 역사쿠데타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박정희처럼 총칼을 앞세운 정변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신 역사반란을 통해 역사를 박정희 1인 독재시대로 돌리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화의 명분으로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에 비추어 국가 정체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역사는 국가가 인정하는 하나로 가르쳐야만 한다고 강변하다.
하나의 국가정체성이란 군국주의 일본이나 나치 독일, 아니면 옛 소련이나 현재의 북한같은 전체주의에 어울리는 것이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도 다양성과 창의성을 특징으로 하는 지식정보사회에 돌입했다.
이미 다양성과 다원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국가 정체성이란 독재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국정화 고시 강행을 전후해 많은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서 국정제 반대를 외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색깔론으로 매도하면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복권시키려는 것이다. 박정희 하면 늘 따라다니는 친일파와 독재자라는 비판을 지우고 싶은 것이다. 국정제를 강행하는 이면에 박정희 미화라는 검은 속내가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 학생들도 알고 있다.
국정화의 총대를 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아버지인 김용주의 친일행적, 이승만 정권 부역행적을 세탁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 전체를 이념대결의 장으로 몰고 감으로써,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을 위축시켜,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정권의 승리를 확고하게 하려는 것이다.
일본 자민당 정권처럼 보수정권의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의 역사관을 오른쪽으로 이끌 필요가 있는데,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중시하는 기존의 검정 역사교과서와 이들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역사교육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니까, 있지도 않은 종북 좌편향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 대한 근거 없는 좌편향 공세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복인 대통령, 국무총리, 교육부장관에다가 집권여당의 실세들이 총동원되어, 기존의 검정 교과서가 얼마나 좌편향인지를 거듭거듭 외치지만, 그 근거는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체사상 이야기이다.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친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주체사상을 교과서에 집어넣으라고 요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이고, 검정을 실시한 것은 박근혜 정부이다.
2013년 한국사 교과서 검정 주관기관이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되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임기가 계속되었는데, 검정 확정 이전에 청와대에서도 교과서의 내용을 확인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를 뺀, 기존의 검정교과서는 중도우파 내지는 우파의 역사인식에 충실한 교과서라는 사실도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현행 검정교과서는 모두 주체사상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최근 확정한 2015 교육과정에도 주체사상을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주요 학습요소로 꼽았다.
이 모든 사실이 박근혜 정부의 검정교과서 비판이 아무 근거 없는 낙인찍기 내지는 누워 침뱉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보수라고 쓰고 극우라고 읽어야 할 세력이 말하는 종북 좌편향이란 속빈 강정과 같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갖고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하는 건 억울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그런 교과서가 나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정권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인식을 뒤집어엎으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앞으로 나올 국정교과서의 모습이 충분히 예상되는 걸 어쩌겠는가? 당장 이들이 기존의 검정교과서 가운데 유일하게 제대로 된 교과서라고 평가한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이유가,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독재를 미화한 불량 교과서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 교육부는 최근 발표된 2015 역사과 교육과정과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집필기준(안)에서 독립운동사의 왜곡·폄하 등 뉴라이트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게다가 전광석화처럼 2009 교육과정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꿈으로써, 뉴라이트의 오랜 숙원인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주장에도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예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대한민국이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에 수립되었다고 쓰라는 지침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가 '1948년 건국'을 관철시키려는 이유는, 친일독재의 역사를 정당화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데 있다. '1948년 건국'을 내세워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현행 헌법 전문의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구절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부정하려는 속내와 직결되어 있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 사이의 대한민국 '건국'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1945년 8월 이전의 독립운동과 그 이후의 건국운동을 의도적으로 분리하고, 건국운동의 요체를 반공에서 찾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친일파에게 건국의 주체라는 지위를 부여하려는 것이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의 속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제를 밀어붙일 경우,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부각시키는, 역으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국정교과서가 나오는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기어이 국정제를 밀어붙일 태세이다. 교육부장관 이름으로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내겠다고 고시한데다가, 집필진 구성도 마무리 단계라고 하니, 일단 국정화는 되돌릴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국정교과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아니 싸움은 이제부터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학계와 시민사회는 계속 손을 잡고 국정제가 철폐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박근혜 정부의 역사쿠데타를 원인무효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되찾을 것이다.
이미 네 차례의 범국민대회를 통해 확인된 강력하고도 폭넓은 국정제 반대의 의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한편, 사회의 모든 방면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오는 14일 민중총궐기의 일환으로 열리는 '역사쿠데타 저지! 세월호 진상규명! 민주민생수호 범시민대회'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제를 강행하면서 케케묵은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국정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국정제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두 배 가깝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 국정제 문제가 최대의 선거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제 찬반을 기준으로 지지 정당을 결정하겠다는 비율이 생각 밖으로 높게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대통령은 5년이라는 정해진 기간 동안에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아니 국민의 뜻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대통령을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일을 국가의 일이라고 착각한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제 강행은 보수정권의 무덤이 될 것이다.
▲ 민주민생수호 범시민대회가 11월 14일(토) 13시 30분에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다. | |
ⓒ 한국교과서국정화저지네크워크 |
○ 편집ㅣ장지혜 기자 |
[ 이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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