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평화어머니회 등이 참여한 ‘백만명 1인 등불 국민운동’ 회원들이 8일 낮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펼침막을 들고 서울 세종로 광화문네거리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이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만들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평화어머니회 등이 참여한 ‘백만명 1인 등불 국민운동’ 회원들이 8일 낮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펼침막을 들고 서울 세종로 광화문네거리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이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만들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테러방지법을 힘으로 밀어붙인 정부·여당이, 이번엔 북한의 해킹 우려 등을 내세워 사이버테러방지법의 국회 처리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개인의 신상·통신·금융 정보 수집에 이어, 메신저·이메일 등 인터넷 영역까지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실제 사이버테러 예방에는 실효성이 없이, 국정원이 온라인상에서도 무소불위의 정보 접근권을 갖게 돼, 국민의 사생활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8일 긴급 국가사이버안전대책회의를 열어, 북한에 의한 국내 주요 인사의 스마트폰 해킹 사실을 공개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온라인 테러를 막을 방패도 준비해야 한다”며,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사이버테러방지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한 뒤 당정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당정청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테러방지법안(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대표 발의)이 실제로는 사이버테러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사이버테러 위협에 취약한 보안 생태계를 구축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생활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정원을 감시·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정보인권연구소의 이은우 변호사는 “국회에 계류된 법대로 국정원이 포털이나 통신사 같은 주요 전산망을 통제하게 되면, 국정원이 이곳을 경유하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직접 수집할 수 있게 되는데, 국정원이 어떤 정보를 수집해 어떻게 활용하는지 통제할 방법에 대해선 현재 법안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결국 정부와 국정원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정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이버테러방지법안은 ‘사이버테러’를 “외국이나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미치지 아니하는 한반도 내의 집단, 해킹·범죄조직 및 이들과 연계되거나 후원을 받는 자 등”이 “국가 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해킹·컴퓨터바이러스·서비스방해·전자기파 등 전자적 수단에 의하여 정보통신망을 공격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사이버공격의 특성상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공격을 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사이버공격이 발생했을 때, 단박에 ‘테러’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보안전문가는 “이 때문에 어노니머스 같은 고급 해커들은 자신들(누가)이 왜(목적) 해킹을 했는지 의도적으로 모습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이버공격에 대해, 국정원이 사이버테러라고 규정만 하면, 민간 인터넷 영역의 다양한 정보를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은 민간 영역의 보안관리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정보통신기반보호법’상 정보통신기반시설 관리자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주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이 ‘책임기관’에 포함돼 국정원의 지휘를 받게 된다. 여기에는 케이티(KT), 에스케이티(SKT) 같은 통신사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은 물론, 카카오톡 같은 에스엔에스(SNS), 대형 쇼핑몰과 금융사, 언론사 등이 포함된다.

 

 

사이버공격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국정원은 이들 책임기관의 조사 결과를 통보받거나 직접 조사할 수 있으며, 책임기관은 국정원이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면 따라야 한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바이러스나 디도스 공격을 빌미로 국정원이 영장 없이 서버 등을 조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한 보안전문가는 “무수히 일어나는 디도스 공격을 조사하겠다며 포털에 서버 기록을 요구해도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영장 없이 24시간 상시적으로 인터넷을 감시하는 길이 열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정원장 소속으로 설치되는 국가사이버안전센터가 “사이버테러 관련 정보의 수집·분석·전파”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각각의 책임기관들은 보안관제센터를 구축하거나, 공공기관 또는 전문업체에 보안관제센터를 위탁·운영해야 한다. 또한 책임기관은 전산망이나 소프트웨어의 취약점 정보 등을 국정원과 공유해야 한다. 이 경우, 각각의 전산망이 거점 보안관제센터를 중심으로 통합되게 된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한 보안전문가는 “결국 국정원이 민간 인터넷망에 대한 루트 권한(최고관리자 권한)을 갖겠다는 것”이라며,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을 운영하며 해외는 물론 자국민의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던 것처럼, 국정원도 똑같이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국정원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되는 보안관제센터의 설립을 놓고서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안전문가 이준행씨는 “보안관제센터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백도어(뒷문)를 만든다는 것인데, 거점 보안관제센터의 관제 서버가 뚫린다면, 그 업체가 관리하는 모든 전산망이 뚫리게 된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