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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열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에선 국정원이 극우·보수단체의 오프라인 활동을 총지휘한 정황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대선 여론조작에 나섰던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보수단체의 의견 광고에 개입하고 1인시위와 전단지 배포 계획까지 관여했다.
또 보수 인터넷 언론에 기사를 제공하고 지역 언론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비판하는 대학교수의 기고문 게재를 주선하기도 했다.
25일 재판과 <한겨레>가 입수한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재판 기록과 취재 내용 등을 종합하면,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었던 박아무개씨는 여러 보수단체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서울시 무상급식 반대 운동과 민주노동당 해체 활동 등에 개입해왔다. 이런 활동은 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한 해인 2009년 설립된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자유연합)을 통해서 이뤄졌다.
* 2011년 6월29일 '문화일보'와 같은해 8월2일치 '동아일보'에 게재된 자유주의진보연합의 광고. 국정원 심리전단 관계자는 자유주의진보연합 대표와 광고 문안을 서로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일보·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박씨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한달가량 앞둔 2011년 7월24일 자유연합 대표인 ㄱ씨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는 “깜빡하고 회사(국정원)에서 문안을 안 가져왔다. 내 기억력에 의지해서 대강 보낸다”며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문구를 ㄱ씨에게 전달했다. 박씨가 보낸 문구는 일부만 수정돼 ‘복지 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 명의의 광고로 같은 해 8월2일 <동아일보> 등에 실렸다.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의견 광고 문구를 제공해가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편에 서서 여론전을 주도해나간 것이다.
주민투표 직전인 2011년 8월20일에도 박씨는 ㄱ씨에게 “어디서 낯이 익은 전단이구료. 회사에서 작업할 때 ‘투표 거부는 비겁한 행동’이란 표현을 강하게 못해서 아쉬웠”다며 “첫 아스팔트 행산데 잘 하시오”라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국정원 직원이 보수단체들이 벌인 행사에 사용된 전단 내용을 검토해준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해체를 주장하는 신문 광고도 국정원을 거쳐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2011년 9월13일 ㄱ씨에게 ‘민노당 광고’라는 제목의 한글파일을 첨부한 전자우편을 보냈다.
이밖에도 박씨는 ㄱ씨에게 연평해전 9주년 광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지원을 위한 희망버스 비판 광고,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옹호 광고 등의 문구를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이 내용들은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의 광고로 실렸다. 국정원이 보수단체의 명의 뒤에 숨어 여론전을 벌인 셈이다.
<한겨레>는 국정원의 광고 지원 의혹 등에 대해 ㄱ씨에게 물었지만, ㄱ씨는 “오래된 일이라 모두 잊어버렸고 당시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관련한 답변을 거부했다.
국정원이 접근한 단체는 자유연합뿐만이 아니었다. 박씨는 또다른 보수단체인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 관계자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박씨는 학부모연합의 ㄴ씨에게 2011년 9월 전자우편을 보내 “김○○ 대표님과는 월~금까지 스티커 붙이기와 1인시위를 동화면세점 앞에서 낮시간대에 하고, 월요일 저녁에 대학생 20명 정도 모여 청계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하기로 얘기”했다며 “스티커 붙이기나 1인시위는 걱정할 게 없는데, 저녁 행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당시 학부모연합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는 상황이었다.
<한겨레>는 ㄴ씨에게 전화 연락을 했지만, ㄴ씨는 “다시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은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밖에도 박씨는 2012년 2월 ‘대한국인애국청년단’ 단장인 ㄷ씨에게보수단체들이 제작한 신문 배포와 관련한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전자우편에는 석촌역, 방이역, 오금역 등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에서 신문 배포 활동을 한 내역이 담겨 있었다. ㄷ씨는 <한겨레>와 만나 “신문을 나눠주는 일 등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때 잠시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 차원에서 단장을 맡았던 것일 뿐이다. 그때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ㄷ씨는 보수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받은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국정원이 보수단체뿐 아니라 언론사를 활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씨는 2011년 7월 한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 기자인 ㄹ씨에게 ‘대북 식량 지원은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전달했다. 이 내용은 그대로 ㅁ씨의 기사로 해당 인터넷 언론에 보도됐다.
이밖에도 박씨는 ㅁ씨에게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에서 나온 보도 자료를 전달하며 취재를 부탁하는 등, 보수단체의 입장이 언론에 실릴 수 있게 주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7월23일에도, 박씨는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의 기고글을 한 지역 일간지에 실을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조 교수의 기고글은 국정원의 댓글 활동을 정당한 국정원의 책무라며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글을 쓴 뒤 강원도 지역 기관에 있던 인물에게 연락해, 어디에 게재하면 좋을지 찾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라며, “기고문 자체는 내가 쓴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보수단체 지원 정황 등과 관련해 “국정원 업무에 대해서 일일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정환봉 서영지 최원형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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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관리한 보수단체 보니
자유연합, 우리법연구회 판사명단 전격 공개
학부모연합, 학생인권조례 반대·전교조 고발
2011년 6월부터 2년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소속의 박아무개씨가 가장 많은 전자우편을 주고받은 인물은 ‘자유주의진보연합’(자유연합) 관계자다. 2009년 7월16일 창립한 이 단체는 보수단체인 뉴라이트에서 탈퇴한 이들로 구성됐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취임 넉달 뒤 만들어진 이 단체는, 30~40대가 주축인 젊은 보수우파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자유연합, 심리전단 활동시기와 겹쳐
학부모연합 대표, 총선때 여당서 활동
이 단체가 주목을 받은 것은, 설립한 지 한 달 만에 ‘우리법연구회’ 소속 회원이라며, 129명의 판사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우리법연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사법부 개혁 활동을 벌이면서 만들어진 개혁적 판사들의 모임이다. 자유연합은 2009년 8월 배우 김민선씨가 광우병 관련 발언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자, 이 사건에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를 배제해야 하다고 주장하며 명단을 공개했다.
신생 단체가 사법연수원 기수와 직위, 출신 학교와 지역 및 가입 시기까지 적혀 있는 비공개 명단을 입수한 것을 두고 자료의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다.
당시 자유연합은 “신뢰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며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유연합과 국정원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판사 명단의 출처가 국정원이 아니냐는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연합이 활발하게 활동한 2009년 7월부터 2013년 2월까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 시기와 거의 겹친다.
박씨가 전자우편을 주고받은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은, 서울시 교육청의 학생 인권조례에 반대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을 고발하는 활동을 벌여온 보수단체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반대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에 글을 올리거나 집회를 한 것이, 정치·집단 행위 금지 등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며,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지난달 전교조 인터넷 홈페이지와 조영선 전교조 조직국장 집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김순희 상임대표는 2012년 5월, 전교조 교사들에게 ‘종북세력이 이끄는 전교조를 탈퇴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인물로, 지난 4·13 총선 때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소속 외부위원 6명 가운데 1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영지 정환봉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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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부 후원 받으려…어버이연합, ‘위장단체’ 활용 의혹
*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의동 쌍린빌딩에 위치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 채 닫혀 있다. 창문에는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보수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전경련 ‘우회 지원’ 의혹 벧엘재단
CJ 후원 받아 탈북청소년 행사
추선희 인맥 설립 ‘비전코리아’
전 어버이 회장 ‘실천본부’ 등도
나눔행사 주최…정부 지원 받아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부터 1억2000만원의 돈을 ‘우회지원’받아 관제데모에 사용한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어버이연합이 자신과 가깝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선교재단과 나눔단체 등을 동원해, 대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온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어버이연합이 사실상 ‘위장 단체’를 두고 외부 자금을 확보해, 관제데모를 진행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한겨레>의 취재 결과, 어버이연합은 2013년 9월13일 사무실에서 ‘벧엘복음선교복지재단’(선교재단)이 주관하고 대기업인 씨제이(CJ)가 후원한 ‘탈북청소년 초청 희망나눔 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다음날인 14일에 진행된 어버이연합 ‘한부모 가정 초청 희망나눔 행사’ 역시 선교재단이 주관하고 씨제이가 후원했다.
9월13일 행사 당시 영상을 보면,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저분들(탈북단체)이 5월2일 촛불부터 움직이신 분들이다”라고 단체를 소개했다.
‘5월2일 촛불’은 그해 서울 시청광장에서 대선개입 의혹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버이연합은 당시 광화문 청계광장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맞불집회’를 개최했다.
선교재단은 추 사무총장이 “전경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재단으로 신청했다”고 밝힌 단체로,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의 돈을 우회지원 받기 위해 활용한 창구였다.
어버이연합이 선교재단 외에 다른 단체를 활용한 정황도 발견된다. 어버이연합은 행정자치부에 ‘희망나눔’이라는 봉사단체로 별도 등록해,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10년엔 서울시로부터 무상급식 등의 명목으로 11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추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11년 서울시에서 ‘희망나눔의 대표냐, 급식 예산을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어버이연합이라고 하니까 그 뒤 연락이 없더라”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추 사무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아무개씨가 대표로 있는 탈북자단체 ‘비전코리아’가, 행정자치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응모해, 3500만원의 예산을 책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전코리아는 관제데모 의혹이 제기된 뒤 “내부 사정”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다. 2015년 2월 ‘탈북어르신 설맞이 나눔행사’에, 비전코리아는 공기업인 지역난방공사와 함께 후원단체로 참여하기도 했다.
과거 어버이연합 회장을 지낸 인사가 대표로 올라 있는 단체가 어버이연합과 행사를 같이 해온 것도 눈에 띈다. 박찬성 어버이연합 고문이 대표로 있는 ‘사랑의실천국민운동본부’(운동본부)는 2014년과 2015년 어버이연합과 함께 ‘설맞이 사랑의 희망나눔 행사’를 주최했다. 운동본부는 ‘이웃사랑 대행진’이란 사업으로 행정자치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2014년 6400만원, 2015년 4000만원을 받았고, 올해도 4000만원을 받을 예정이다. 운동본부는 최근까지 기업의 후원을 받아 명절 나눔행사를 진행해왔다.
행정자치부 등록 현황을 보면, 박 고문이 대표로 이름을 올린 비영리 단체만 3개인데, 이 단체들 역시 어버이연합의 ‘우회지원 창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현재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만 맡고 있다고 주장한 박 고문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어버이연합과 같이 행사를 주최한 게 아니고 후원, 협찬만 했다”며 “나는 어버이연합을 떠난 지 몇 년이 됐다. 자금 지원도 없고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승준 고한솔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