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SBS에 의해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블랙리스트 문건에 경향신문과 미디어오늘, 시사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한국일보 등 7개 언론사가 “좌파성향 언론사”로 등장해 파문이 거세질 전망이다. 해당 문건에는 언론사 이름과 해외취재 지원 등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지원 사업, 지원액과 지원여부가 적혀있었다. 문건에 등장하는 지원액은 2013년 예산기준이다.
블랙리스트 문건에서 미디어오늘은 ‘신문 및 잡지의 고품질 심층취재 지원’이 지원되지 않은 내용과, ‘뉴스콘텐츠 제작지원(기획취재지원-1차)’ 명목으로 1000만원이 지원된 사실이 기록됐다.
블랙리스트에는 교수·시인 같은 문화계 인사 48명, 영화사·극단 등 43개 단체를 포함해 91개의 이름이 등장한다. 문재인, 안철수 등 야당 정치인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렸거나 이들과 연관된 활동을 한 경우, 정권에서 불편할만한 사회문제에 입장을 밝혔다는 게 이유였다.
블랙리스트 존재는 지난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했고, 이후 한국일보가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을 적시한 문서표지를 공개한 바 있다. 언론사가 명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체부는 공식적으로 입을 닫았다.
문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관련자가) 특검에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을 이날 소환했다.
▲ SBS '8뉴스' 26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
문체부 산하 언론재단을 관리하는 문체부 미디어정책실 관계자 역시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외압 의혹에 대해선 “그런 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어 “(누군가) 언론재단을 통해 지원된 사업을 일부 정리한 것 같은데, 이 문건이 사실이면 지난해엔 취재지원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미디어오늘만 해도 선정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뒤 “특별할 것 없는 문서이고 일부 수치도 틀렸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27일 언론재단 측에 해당 문건에 대해 사실여부와 외압 의혹에 대해 물었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문체부에서) 수치가 틀리다고 한 부분은 지원 실적이 빠진 항목이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일보의 경우 2013년 3800만원, 2014년이 공백으로 돼있으나 실제로는 2014년에 1200만원이 지원됐고, 한겨레의 경우도 2014년 지원액 1300만원이 누락돼있다”고 밝혔다.
언론재단은 “재단에서는 좌파성향언론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고 (윗선의) 압박이나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문체부 블랙리스트엔 ‘미디액트’도 올라있었다.
미디액트는 독립영화 제작, 시민영상창작을 지원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공공영상미디어센터다. 해당 문건에는 미디액트에 대해 “새정치추진위원인 김혜준이 광화문에 만든 대표적 미디어센터. 학생대상으로 맑시즘 교육을 하는 영상교육기관 역할”이라고 적혀있다.
장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미디어교육 시설 및 단체 지원을 지난해에는 신청하지 않았는데 문체부에서 지원조건을 변경했기 때문”이라며 “문체부 산하의 미디어센터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해놨다”고 말했다.
미디액트 측은 이미 이명박 정부때인 2010년 ‘좌파색출 문건’에 이름이 오르며 ‘탄압’을 경험한 바 있다.
장 사무국장에 따르면 미디액트는 원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산하에 있었는데, 영진위 미디어센터 사업 위탁 운영주체가 교체되며 영진위 지원이 끊겼고, 이후 영진위 미디어센터는 뉴라이트 계열 단체가 운영하다 직영구조로 변경됐다. 정부가 직접 통제하기 쉽도록 제도를 바꾼 것이다.
해당 블랙리스트에는 영화 ‘남영동 1985’를 배급한 ‘엣나인필름’이 2013년에 3400만원을 지원받았다가 이후엔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한 사실 등도 나와 있다.
종합하면 이번 문체부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던 언론계·예술계 ‘좌파색출’ 시나리오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2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블랙리스트를 2014년 6월 확인했고, 해당 문건은 당시 모철민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 문체부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에 따르면 문건 작성주체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이다. 당시 정무수석은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합리적 의심을 한다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라고 답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언론계를 탄압하고 관리해온 정황에 비춰보면 ‘언론인 블랙리스트’ 또한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