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0일, 극명하게 오버랩된 두 가지의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현재 최순실 게이트의 도화선이 된 JTBC폭로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두고 “태블릿은 조작되었다”라는 발표와 함께 조작 진상조사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그리고 또 하나는 거의 같은 시간 박영수 특검팀에서 “최순실의 또 다른 태블릿PC를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를 통해 입수했다”는 특검의 발표가 있었다.
10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를 대표로, 김기수 변호사, 도태우 변호사,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를 집행위원으로 하는 ‘태블릿PC조작진상규명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그리고 이들은 이날 발족식에서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물증으로 제시된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며, 검찰, 특검, 법원에 태블릿 PC 관련 검증을 촉구했다. 또 “앞으로 국회 공청회를 여는 한편 각 언론사 방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JTBC 징계 심의 요청 등 활동을 전개할 계획”임을 알렸다.
반면 서초동 특검팀를 취재하는 경향신문 기자는 특검 소식통을 인용, 특검이 제2의 최순실 태블릿PC를 입수했다는 특종을 터뜨렸다.
이 특종 후 전 언론의 취재경쟁이 붙었으며,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PC의 존재와 입수경위, 태블릿 안의 내용까지 상세하게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이 브리핑을 통해 이 태블릿은 장시호씨가 이모 최순실에게 받아 맡아온 것, 그 안의 내용은 삼성과 주고 받은 이메일, 대통령 발언 수정록 등이 있음도 알려졌다.
따라서 이제 “태블릿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최순실의 주장은 그의 조카 장시호에 의해 깨졌으며, 결국 지금까지의 모든 연막들이 특검의 가차없는 수사로 밝혀지고 있다.
한편, 이런 개가를 올린 특검은 이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거나 관리하고 차별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비서관 등 4명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 이들은 11일 영장 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여부가 결정되게 되었다
특검은 또 앞서 구속된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에 이은 두 번째로 남궁곤 입학처장을 10일 구속했다. 남 처장은 전 날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10일 영장 실질심사를 받았으나 법원은 구속사유가 인정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따라서 특검은 이화여대 입학비리 수사 칼날을 김경숙 학장과 최경희 전 총장을 향해 겨눴으며, 이들도 소환조사 후 구속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배제를 헌법 위반 사건으로 보고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매서운 칼날을 겨누고 있으며, 그 외 김영재 의원과 얽힌 ‘비리’에서도 상당한 구속자가 예견되는 등 특검수사는 갈수록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
더구나 최순실과 삼성연계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를 변수다. 따라서 특검은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거의 확실한 물증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일 입수된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은 이를 풀어 낼 열쇠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특검의 이 같은 수사개가는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있으므로, 국민들은 과연 박영수 특검은 어떤 경로로 임명되었고, 박근혜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또 왜 하필 박영수 특검을 임명해 가지고 이처럼 발가벗겨지는가라는 의문이 생길법도 하다. 하여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이는 사람에 대한 믿음의 차이,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는 기준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된 뒤 지난 11월 29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 후보로 조승식 전 대검찰청 형사부장(충남홍성, 사법연수원 9기)과 박영수 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제주, 사법연수원 10기)을 선정했다.
선정 후 민주당 기동민 대변인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 아니고, 지역적 오해를 피하는 것을 고려했다. 한 분은 제주(박영수), 한 분은 충남(조승식) 출신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곧바로 하루 뒤인 30일, 박근혜 대통령은 박영수 후보자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사흘의 시간이 있으므로 숙고할 것 같았으나 의외의 신속 임명이었다.
그러면 왜 청와대는 박영수 후보를 선택했을까?
많은 설이 나돌지만 일단 충남 홍성 출신으로 더민주에서 추천한 조승식 변호사와 비교했을 때 제주출신의 국민의당 추천이라면 좀 더 유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으며, 이 외의 인사가 추천될 수 없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란 설이 유력하다.(추천 후 곧바로 더민주=조승식 추천, 국민의당=박영수 추천인 것이 알려졌었다)
그러나 더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면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온다. 우선 검찰 쪽 반응이다. 당시 검찰 쪽은 두 후보 모두에게 후한 평가를 했다.
그런데 검찰 쪽에서 나온 말들은 “조승식은 김태촌을 잡은 검사로 김태촌이 조승식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거나 “조승식은 홍준표보다 훨씬 더 깡패 잡는 검사의 표상”이라거나 “앞만 보고 가는 사람으로 수사 부분에선 최고”, 또는 “후배 검사들에게 ‘골프치거나 룸살롱 가지 말라’고 훈계한 선배” 등이었다. 박근혜 측 입장에서 이는 곧 정치적 고려 없이 박근혜를 압박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박영수 후보자에 대해 “SK비자금 수사와 현대차 비자금 수사로 총수들을 구속하는 등 수사 능력을 인정받은 박영수”라는 칭찬 “수사도 잘하지만, 조직운영도 아주 잘했던 분으로 특검도 아주 잘 이끌 것” 등의 평가도 있었으므로, 이 또한 재벌총수를 구속할 수 있는 배짱이라면 박근혜에게 위협적 이란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두 사람 중 박근혜 대통령은 박영수 후보를 골랐다.
그런데 앞서 특검법 통과 전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으로 나선 유영하 변호사는 “편파적인 검찰수사”운운하면서 “중립적인 특검에 의해 수사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곧 야당 측에 진보 쪽에 치우친, 즉 두드러진 민변활동을 한 경력자, 선명한 반박근혜 색깔을 띤 후보자의 추천은 거부하겠다는 엄포였다.
당시 세간에서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적임자로 밀거나 심지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특검으로 추천하자는 여론이 돌았고, 채동욱 전 총장이나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서로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친 사례도 있었으므로 박근혜 측에서 그 같은 인사, 특히 채 전 총장은 받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른 박영수…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2일까지 숙고의 시간도 있었으며, 되돌려 보내고 다시 추천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으며 야당의 추천을 받은 다음 날 곧바로 박영수 특검을 임명했다. 그래서 다들 의아해 했다.
하지만, 청와대 선택 조건에 한가지가 숨겨져 있었다. 박영수 후보자가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2015년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일했다는 점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으로 합병되기 전 우리은행그룹 전 금융사를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였으며 전 주식을 국가가 100% 소유한 국영금융지주회사였다. 이 회사의 이사회 의장을 박근혜 정권 초기 박영수 변호사가 했다. 박근혜의 내락이 없으면 될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는 그래서 박 특검을 은연 중 ‘친박’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알았을 박지원은 박영수를 추천했다.
여기서 박근혜 쪽이 간과한 면, 박지원 쪽이 기대한 면은 ‘검사 박영수’에 대한 믿음이었다. 박근혜는 ‘느낌’ 박지원은 김대중 정권의 사정비서관으로의 ‘검사 박영수’를 직접 겪었다.
박 특검은 2001년 6월 ~ 2002년 2월까지 김대중 청와대의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을 하고, 2002년 2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으로 나간다. 이 시기인 2001년 박지원은 공보수석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2년 비서실장이 된다.
당시 청와대는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로 코너에 몰렸으며 세간은 이를 ‘3홍비리’라고 비판했다. 당시 이 사건들을 '검사 박영수'는 관통한다.
박 특검이 사정비서관이던 2001년 이용호 게이트로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인 김홍업씨가 특검에 의해 구속되었고, 박 특검이 서울지검 2차장인 2002년은 최규선 게이트가 불거져 김 전 대통령 3남인 김홍걸씨가 구속되었다. 이때 권력 최대의 심부에 박지원 비서실장이 있었다.
이때 박지원 실장은 사정비서관 박영수, 서울지검 2차장 박영수의 ‘검사 박영수’로의 면면을 확실하게 파악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지원은 박영수를 추천했는데, 박근혜와 그 측근들은 그냥 ‘인연이 있으니 우리 사람’이므로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을 없을 것으로 지례 짐작, 숙고의 시간도 없이 임명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즉 박근혜는 자기 정부에서 임명직을 했으니 ‘자기편’일 것이란 막연한 믿음, 박지원은 직접 청와대에서 ‘검사 박영수’를 겪은 믿음… 이 믿음의 차이가 오늘 박 특검에 의해 박근혜 정권의 심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라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박근혜라면 ‘검사 박영수’의 진면목을 못 알아볼 것”이란 박지원의 수가 얄팍한 박근혜의 수를 이긴 것이란 평가… 밤이 깊어도 느낌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