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6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 앞서 출정한 증인들은 하나같이 기계였다. 윤전추 이영선에 이어 최순실까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것은 기억이 솔솔 나고 확연한데, 불리한 것은 기억도 나지 않으며, 업무상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고, 재판 및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없다가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이날 5차 변론기일 오후 증언대에 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오후 내내 5시간의 마라톤 증인 신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상대 거액 모금과 개별 기업의 ‘숙원 과제’ 해결에 깊숙하게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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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안종범 페이스북 |
우선 안 전 수석은 지난해 7월25일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독대를 위한 ‘말씀 자료’에 삼성 경영권 승계문제의 임기 내 해결 언급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중요한 모티브다.
실상 삼성이 최순실이란 아주머니와 정유라란 승마선수에게 특별히 말을 사주고 돈을 줄 일이 없다.
더구나 삼성이 “정유라의 승마실력이 뛰어나서 우수 선수지원 차원의 지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은 삼성 정도의 정보수집 능력이라면 정유라가 고3 재학 중 부모를 떠나 남자와 동거하며 임신하는 등 불성실한 선수라는 것 쯤은 쉽게 파악하고도 남을 것이다.
또 이런 선수에게 삼성이 거액의 지원으로 말을 사주고 “운동을 다시해라”라고 권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하나로도 삼성의 정유라 지원은 ‘경영권 승계’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날 안 전 수석은 헌재에서 “당시 말씀 자료에 ‘기업 이해도가 높은 이 정부 임기 내에 승계문제 해결을 희망한다’고 기재된 것이 기억나느냐”는 소추위원의 질문을 받고 “기억한다.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작성해서 그대로 올린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이 자료에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배경’이라는 제목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관련 내용, 그룹 주축인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 및 지분구조 단순화란 구절 등이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내용이 논의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날 안 전 수석은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면에 대해 “SK 측이 사면 확정 전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다”며 이 사면이 특혜였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날 대통령이 "국민감정이 좋지 않으니 사면 정당성을 확보할만한 것을 SK에서 받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며 “이에 SK이노베이션 김창근 회장의 제안을 받고 자료를 준비했다”고 증언했다.
또 김 회장으로부터 최 회장 사면 당일인 2015년 8월 13일 받은 ‘감사합니다. 하늘같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란 문자에 대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받은 문자”라고 검찰에서 진술한 사실도 인정했다.
더구나 이날 안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문제와 관련하여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30+30 60억’, CJ ‘30억+30억 60억’ 등 기업별 구체적인 출연금 액수를 지정해 모금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만나 ‘대기업 회장들과 공감대를 형성했고 전경련이 모금했다’고 해명하기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말해, 증거인멸이나 부인과정도 협의했음을 말해, 모든 공모관계에 박 대통령이 있음을 확인했다.
안 전 수석은 이날 박 대통령 지시로 황창규 KT 회장에게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지인을 채용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인정했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 설립 전 재단 이름과 임원 명단을 미리 알려줬으며, 재단 임원으로 내정된 사람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은 업무수첩에 기재된 내용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적은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결국, 안 전 수석은 이날 국회 측 탄핵사유에 대해 상당부분 인정하므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는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기업 현안에 특혜를 주는 대신 돈을 받아내는 전형적 권력형 비리, 이를 은폐하려는 증거인멸시도, 특정기업의 인사개입, 공적기관이라고 하면서 뒤로는 조직까지 구성하고 인사를 내정한 실질적 경영…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이날 언 전 수석은 인정한 것으로, 헌재도 결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