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육군 5163 부대'라는 명의로 이탈리아 전산보안업체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다. 국정원의 "샀지만 해킹 안 했다"라는 해명. 과거 모 연예인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와 다름없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SBS
18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의 '작전; 설계된 게임…5163부대의 위험한 충성'편은 지난 '선관위 디도스 사건'편에 이어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할 선거관련, 조직적인 방해와 조작 의혹을 살펴 보았다.
제목에 들어 있는 '5163'이라는 숫자는 공교롭게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짜와 시간(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 51.6%를 연상하게도 한다. 5163부대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의 해킹전문회사 '해킹팀'과의 거래에서 사용한 이름이었다.
국정원 임과장의 의문의 마티즈 죽음
2015년 7월 18일 국정원 임과장의 의문의 마티즈 차량안에서의 죽음. 그는 20년간 사이버안보 관련 업무를 했다. 그가 죽은 시점은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사실이 알려지고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 SBS
누리꾼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국정원 임모 과장의 의문의 죽음. 임과장은 2015년 7월 18일을 빨간색 마티즈 차량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임과장은 20년간 국정원에서 사이버안보 관련 일을 했다. 2015년 7월 19일 경찰은 임과장이 자살을 한 것으로 발표한다. 그러나 임과장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가족과 지인은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임과장의 사망에 의심의 눈초리가 가는 이유는 그가 죽기 얼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때문이다. 2015년 7월 5일, 이탈리아 해킹팀의 내부 기밀자료들이 해킹으로 유출되면서,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나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도 있었다. 국가정보원이 5163부대라는 이름으로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해 도감청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가정보원이 해킹팀으로부터 8억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RCS라는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난다. 국정원은 대북업무용이라는 변명을 했지만, 비난 여론은 거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과장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신경민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당시 이사건과 관련 "임과장이 RCS에 관련된 모든일을 주도적으로 해왔고, 임과장이 모든 책임을 졌기 때문에 임과장이 사망함으로써 상당한 부분을 알 수 없게 됐다는 보고가 국정원으로부터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하며, 임과장이 썼던 메일명이 '데블엔젤1004'라고 밝혔다.
경찰이 공개한 임씨의 유서에는 "내국인,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라고 강조하듯 적혀 있다. 오히려 국정원에 대한 사찰이 의심이 가게 만드는 대목이다. 유출된 해킹프로그램 구매내역에 따르면 19대 총선 두달전에 국정원은 RCS를 6억원에 구입했다. 그런데 대선을 2주 앞둔 시점에서 국정원은 30개 회선의 해킹프로그램을 추가 구입하는 메일을 보낸다.
또, 2014년 지방선거를 석달 앞둔 시기에 오간 해킹팀의 출장 프로그램을 보면 국정원 5163부대의 주된 관심사는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에 대한 원격공격이었다. 특히 '6월에 안드로이드 공격이 필요하다'라고까지 적고 있다.
국정원은 "임과장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 정황이 없고, 임과장에게 불법적 지시를 내린적도 없다. 35개국 97개기관에서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적이 없다. 무엇때문에 우리국민을 사찰하겠느냐"고 그알을 통해 항변했다. 임과장이 유서에서 말한 "업무에 대한 욕심한 부족한 판단이 부른 실수"가 과연 선거와 무관한 것이었을까 의문이 진하게 남는다.
최장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발생한 의문의 두 사건들
-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
5년전 18대 대선에서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의 댓글 조작사건이 터진다. 셀프감금 논란까지 있었고, 당시 민주통합당은 국정원 여직원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국정원 여직원은 야당 당직자들을 감금 및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한다. 3일만에 문이 열리고 김씨는 임의제출의 형태로 경찰에 노트북 등을 넘긴다.
선거가 코앞에 있는 시점에서 대선 최대 이슈가 된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선거 3일을 앞두고 있은 대선후보토론회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과 관련된 여성인권침해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문재인 당시 후보를 몰아부친다. 그리고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다는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박후보가 이 발언을 한 당일 밤 11시, 경찰은 갑자기 이례적인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대선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지지후보 댓글을 김씨가 게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사안이기 때문에 빨리 분석결과를 알린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2월 19일, 댓글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박근혜로 결정된다.
18대 대선에서 댓글을 조작한 혐의를 받았던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맨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대선후보토론회에서 "(국정원의 댓글조작에 대해) 하나 어떤 증거가 없다고 나왔다"라고 단정해 말한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은 밤 11시 경찰은 이례적인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박 후보의 말과 마치 합을 맞춘 듯한 내용의 발표였다. ⓒ SBS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 12월 16일 토론회의 새누리 박근혜 후보 발언 이후 곧바로 밤 11시에 경찰은 중간수사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한다. ⓒ SBS
그렇게 묻힐 것 같던 사건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활동한 커뮤니티를 경찰이 압수수색하면서 반전된다. 바로 한 커뮤니티 운영자가 국정원 직원들이 73개의 아이디로 정치적인 의견과 선거개입으로 판단되는 게시글 작성하고 추천-반대활동을 한 정황을 파악했다며, 국정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을 고발한 것이다. 국정원의 댓글 조작 과정에는 민간인 조력자까지 있었다. 국정원으로부터 9천여만원이 민간인협조자에게 흘러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의욕적인 수사를 하던 권은희 의원(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갑자기 전보발령을 받게 된다. 경찰은 국가정보원법 위반으로 김씨 등 3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에서는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여직원 김씨의 노트북 등을 수사한 결과를 은폐하려했던 사실이 발견된다. 경찰 사이버분석실에서 3일동안 분석한 모습을 찍은 촬영본에 의하면, 국정원이 진행한 댓글,게시글,접속기록을 삭제한 것을 바로 잡아낸 것이다. 분석관들은 국정원 직원들이 공유한 아이디와 닉네임을 찾은 후 활동내역들을 파악해 갔다. 그리고, 국정원의 사이버 여론 공작활동과 여론조작을 하는 수법까지 파악했지만 은폐한 것이다. 검찰은 범죄혐의가 있는 심리전담요원들이 직접 게시한 글과 찬반 클릭행위가 무려 3500건이 넘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론공작 활동을 한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2년 2월에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4개팀 70여명으로 확대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경찰은 국정원의 댓글 조작 방법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를 은폐하려 한다. ⓒ SBS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원 전 원장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하지만 댓글사건 후 폭로된 내용은 원 전 원장의 말을 믿기 어렵게 한다. 심리전단이 보고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따르면,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은 국정원이 해야할 일이라며 국정원의 사이버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이런 원장님 말씀을 트윗으로 그대로 퍼나른 정황이 포착되기도 한다. 바로, 검찰이 국정원 개정으로 특정한 트위터에는 원장 지시사항의 오타까지 그대로 옮긴 것이 발견된 것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렇게 국정원의 트위터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이런 검찰의 수사의지에 여당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또,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수사에서 배제되고 밀려난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은 외압이 있었음을 국회에서 폭로한다. 4년이 지났지만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혐의는 확실한 결론을 내려지지 못한 상황이다. 원 전 원장은 <그알>팀과의 대면에서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댓글 자체를 단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들. 오타까지 그대로 트위터로 퍼 날랐다. ⓒ SBS
댓글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심리전단 직원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를 쓴 이가 국정원 직원임이 드러난다. 정치적인 글과 막말이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로 작성된다. 하지만, 좌익효수는 대공수사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원세훈 원장 기소당시 범죄내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댓글수사 도중 심리부소속이 아닌 직원은 총 4명으로, 댓글조작이 심리전단에서만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선거가 끝난 후 2013년 1월,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이 간첩혐의 체포된다. 재판이 시작되고 한 달 뒤 유우성 동생 유가려씨는 허위자백을 했다며 긴급기자회견을 한다. 그리고 재판과정을 통해 유씨가 간첩이라고 증거로 내놓은 국정원의 자료가 대부분 조작되거나 허위임이 밝혀진다. 항소심이 진행중인 당시, 국정원 직원과 공모해 증거를 조작한 민간인 협력자 김원하씨가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벌어진다. 탈북자 출신 김원하씨는 죄값을 치룬 후 현재 중국으로 추방된 상태다. <그알>은 중국에서 김원하를 만난다. 김원하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국정원 김 모 과장에게서 유우성씨가 제출한 서류를 가짜로 둔갑시킬 또다른 서류를 위조해줄 것을 부탁받았다고 했다.
국정원은 모든 책임을 김원하에게 떠넘기려 했고, 김원하는 검찰에 사실대로 진술하고 사문서 위조혐의로 징역형을 받는다. 국정원이 댓글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무리하게 간첩조작사건을 강행했다는 의혹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이 실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그알>은 실험한다. RCS가 악성메일 등을 통해 감염 시키면, 휴대폰이 작동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의문의 아이디가 양 변호사(고발한 커뮤니티 운영자의 변호인)가 접속하고 있는 서버에 몰래 접속해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복사해간다. 또 유우성의 휴대폰도 해킹당한 정황이 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여전히 전면부인하고 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말인가? ⓒ SBS
해킹팀 프로그램 구매시점과 유우성이 체포된 시점은 원세훈 재직시절에 집중 되었다. 국정원 최장수 재임을 자랑하는 원세훈 전 원장. 그가 국정원장이 되어 제일 먼저 한 일은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이라는 반대세력에 대해 '종북좌파'라는 낙인을 찍는 내용의 책을 광범위하게 유포한 것이다. 국정원 전 직원들은 <그알>과 인터뷰에서 "좌파라는 개념을 만들고, 블랙리스트와 같은 좌파명단을 만든다"고 말했다. 또, " '1% 좌파가 99%를 무너뜨린다'가 '원세훈 체제의 논리' 였다" 면서 "말로는 좌파척결이지만 근본적인 배경에는 정권 재창출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세훈 전 원장의 행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그것이 떠오르게 한다. 반대파는 무조건 좌익,좌파, 심지어는 빨갱이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것이다. 정권재창출이라는 명분아래 행해졌을 댓글 조작사건과 해킹들. 이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오히려 국정원을 돕는 모양새였다. 검찰의 수사도 윗선의 방해가 있었음이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의 폭로로 드러났다. 권력을 재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갖 더러운 짓도 서슴치 않아왔을 국정원 등의 추악한 민낯.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가 전반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했던 국정원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