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와의 접촉은 쉽지 않았고, 취재는 조심스러웠다. <한겨레21>은 지난 한 달여에 걸친 고된 취재 결과를 제1158호에서 공개한다.
이번 취재를 통해 <한겨레21>은 국가정보원이 우파단체 대표를 ‘하청업체’ 사장처럼 내세워 ‘알파팀’이라는 우파 청년들의 모임을 만들고, 이들에게 매일매일 구체적인 지침을 주면서 전방위적 여론전을 벌여왔음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2009년 자체 조직 내에 심리전단을 독립편제로 만들어 2012년 12월 대선 개입에 나서기 전부터 우파단체들을 직접 지원하며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을 조작해왔다. 알파팀의 실체가 조금 더 일찍 폭로됐더라면, 국정원의 2012년 말 대선 개입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겨레21>은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온 국정원의 헌법 파괴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추가로 추적해 보도할 계획이다.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살며시 비껴나 여전히 성역으로 군림하는 국정원의 실체에 대한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린다.
취재 김완·정환봉·하어영 기자, 편집 김선식·오승훈 기자, 디자인 장광석
국가정보원이 2011년 심리전단을 꾸려 대선에 개입해 여론 조작을 시도하기 전인 2008년께부터, 보수 민간단체 뒤에 숨어, 사이버공간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거의 모든 국정 현안에 대해 전방위적 ‘여론전’을 펼쳐온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이 민간 조직을 앞세워 공격 대상으로 삼은 조직이나 단체는, 법원·민주당 등 야당, 문화방송(MBC) 등 언론기관, 민주노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정권에 비판적인 노조를 망라했다.
여론 조작 내용에는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준 ‘용산 참사’ 등 정치 현안부터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까지 대상과 주제를 가리지 않았다.
국정원이 보수 민간단체를 활용해 여론 조작에 나서는 방식은 교묘했다.
국정원의 현직 요원은 ‘MASTER’(마스터)로 불리는 보수단체 인사를 중간에 끼고, 여론 조작에 동원된 민간인들로 구성된 ‘알파(alpha)팀’을 꾸리도록 했다. 국정원 요원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지사장’ 격인 마스터를 내세운 점이 눈에 띈다.
국정원 요원은 마스터를 통해 여론 대응 관련 지침을 하달했고, 국정원의 알파팀 활동 평가 등을 수시로 전달하며, 적극 활동을 독려했다.
알파팀의 실적에 따라 ‘고료’(원고료)로 불리는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는 등, 국정원 예산을 쓴 흔적도 확인됐다.
또 ‘교장’이라 불린 국정원장이 알파팀의 활동 실적을 직접 보고받은 정황도 확인됐다.
“알파팀 지시자는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 소속” 추정
<한겨레21>이 단독 입수한 알파팀 내부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명박 정권을 빈사 상태로 몰고 간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정국’ 직후, 보수 인사인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전 <미래한국> <조갑제닷컴> 기자)를 중심으로 알파팀을 꾸렸다.
알파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은 “알파팀에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다음 아고라 등 주요 포털 사이트와 조·중·동 등 보수신문 독자면 등에 댓글을 달고, 기획 기고를 하게 하는 등, 여론 조작을 수행”했다.
알파팀은 김성욱 대표를 중심으로 보수 인터넷 매체 기자 등 5~6명(20대 3명, 30대 3명)이 상시 팀원으로 활동했고, 상황에 따라 10명 안팎의 보수단체 쪽 인사가 보강됐다.
<한겨레21>이 확보한 알파팀 내부에서 오간 50여 건의 전자우편 내용을 살펴보면, 알파팀의 활동 기간은 ‘광우병 촛불집회’ 직후인 2008년 12월부터, 알파팀 멤버를 주축으로 한 법인단체가 세워질 무렵인 2010년 2월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알파팀 멤버는 국정원을 ‘학교’라고 부르며, 주간 단위로 ‘자신들이 작성한 글을 캡처해 실적을 보고’하고, 조회 수 등을 기준으로 한 성과를 ‘실적’으로 계산해 차등적으로 돈을 지급받았다.
알파팀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우리에게 일을 줬던 이들은 국정원 사람들이었다. 011-×××-1905 번호로 통화하거나, jim##@naver.com을 통해 실적을 전자우편으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가 알파팀에 여론 조작을 지시했다고 지목한 인물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다. 김씨는 국내 정보 파트인 국정원 2차장 산하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김씨의 신원은 한 봉사단체 회원 명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1월 현재 이 봉사단체의 회원 명단에는 김씨 이름 옆 직업란에 국정원의 전신 ‘중앙정보부’라고 적혀 있다. 회원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011-×××-1905’로 같았다.
알파팀이 주요하게 수행한 일은, 이명박 정권의 정국 운영에 부담을 주는 거의 모든 현안에 개입해,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국정원이 선거 등 중요 정치적 국면에서만 여론 조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알파팀의 존재를 통해, 2008년 12월 이후엔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실시간 거의 모든 사회 현안에 여론 공작을 수행해왔음이 최초로 확인됐다.
국정원, 조회 찬성수 올리기 비법 전수한 듯
국정원과 알파팀을 연결하는 인물은 마스터란 암호명으로 불린 김성욱 대표였다. 그가 알파팀이 결성된 직후인 2008년 12월30일 팀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1)학교 측은 지난 며칠간의 실적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2)오늘 내일 학교가 제시한 과제는 ‘31일 좌익 대규모 촛불 규탄, 성스러운 재야의 종소리 타종을 훼방놓을 거냐?’입니다. (3)내일 오후 6시까지 일주일간 실적을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보고 양식은 사전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 ▶캡쳐할 것, ▶릴레이식으로 보고할 것. 이상의 조건이 미필된 칼럼은 학교에서 카운팅하지 않겠다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음날 보낸 전자우편에는 “α(알파)팀 여러분, 30일 오후 학교 측 면담 결과를 공지합니다. α팀 활동은 (국정원) 실무자 A씨가 교장(국정원장)에게 직보하며, ○○○ ○○○과 ○○○ ○○들에게 보고됩니다. 모두 만족하고 있답니다. 학교 측은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으며, 2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마스터는 “○○○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직접 문의하라”며, 국정원이 새롭게 제안한 사업은 “청년 대학생 육성 등이다”라고 적었다.
국정원은 이들에게 게시물 작성을 요구하며 ‘다작이 아닌 실적’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마스터는 팀원들에게 “월 200건의 칼럼 게재”를 기준으로 제시하며 “집착할 필요 없다. 실적이 없을 당시 칼럼 게재 수에 집착했으나, (국정원 쪽에선) 가시적 성과를 더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마스터를 통해 게시글들의 ‘조회 수’와 ‘찬성 수’를 높이는 데 주력하란 구체적 지시도 내렸다.
국정원은 “● 단시간에 빠르게 조회 수와 찬성 수를 높이는 게 관건이다 ● 칼럼 게재 후 좌익의 악플이 달릴 때마다, 일을 하면서 틈틈이 들어와 채팅하듯 댓글을 달아준다 ● 칼럼 게재 후 로그아웃 상태에서 임시인터넷파일과 쿠키 삭제 후 F5를 눌러 조회 수 높인다. 같은 요령으로 다른 필명 사용하여 로긴한 후 찬성 클릭하여 찬성 수 높인다 ● 칼럼 게재 후 좌익 사이트 등에 아고라 게시물 주소를 옮겨서 클릭을 유도한다”는 구체적인 여론 조작 실행 매뉴얼을 알파팀에 고지했다.
이렇게 조작된 게시글들의 실적은 철저히 ‘릴레이식 보고’를 통해서만 전달됐다.
최종 보고는 마스터가 ‘학교’ 실무자에게 전달했다.
알파팀원인 ‘이○○-전○○-오○○-홍○○-김○○-김○○’을 거쳐, 김성욱 대표가 최종적으로 팀의 실적을 전달받아 국정원에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의 보고는 통상적으로 매주 수요일에 취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파팀 내부에서 오간 전자우편을 보면, 팀 운영에 적잖은 혼선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마스터가 알파팀에 전달한 2009년 1월1일 신년 전자우편을 보면 “실적 취합이 혼선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6시까지 취합합니다”라는 업무 지침이 하달됐다.
알파팀은 실적 향상을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해냈다. 1월1일 보낸 같은 전자우편에는 “조회 수를 올리는 비급을 발명해냈습니다. ○○○이 발명하신 이 비급은 노벨상 발명에 필적한다. 새로운 팀원 인사와 비급 전수를 위해 다음주 중 모임을 가질 필요. 구체적 시간은 다시 고지하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들은 ‘2009년 1월15일 저녁 7시15분 광화문 오피시아’ 건물에서 실제 모임을 열었다. 이 내용의 진위를 묻는 <한겨레21>에 김성욱 대표는 “그때 거기서 모인 것은 맞다. 거기에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펴낸 세이지코리아의 사무실이 있어 이용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게시글 1건당 2만5천~5만원, 조·중·동 투고는 20만원
이들이 여론 조작을 수행하며 국정원 등에서 ‘조회 수 조작’ 프로그램 등을 제공받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들이 주고받은 전자우편에 “조회 수 올리는 것은 적들이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는 특별히 걱정할 것 없이, 힘 조절을 해가면서 쓸 만한 칼럼을 적당히 Best(베스트)로 만들어주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향후 각 칼럼 조회 수는 각자 기본적으로 300회 클릭 이상으로 해놓아 베스트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중 자신 있는 칼럼은 500회 클릭 이상으로 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쟁점이 될 만한 칼럼이다 싶으면 1000회 이상 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도 눈에 띈다.
이들이 게시글 클릭 수를 마음대로 조작하며, 온라인 여론이 형성되는 각종 게시판의 여론을 좌지우지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내용이다.
알파팀은 2009년엔 “학교의 지시”로 ‘조·중·동 독자투고에도 도전’한다. ‘학교의 지시’는 국정원 쪽 요구 사항이라는 의미다.
국정원은 마스터를 통해 “아고라 게재 칼럼을 조·중·동 독자투고에 보내주기 바란다. 가급적 아고라 칼럼 모두를 독자투고로도 보내라”고 지시한다.
이에 대해 마스터는 ‘학교 측과 신년 조정 결과 및 기타 사항 공지’를 알리며 “톡자투고 채택시 보너스가 지급된다”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조·중·동에 독자투고가 성사된 뒤 국정원에서 지급받은 ‘특별 고료는 게시글당 20만원’이었다.
조·중·동 독자투고가 시작되며 일반 게시판 글의 고료 조정도 있었다.
2008년까지는 게시글 하나당 ‘20대는 2만5천원, 30대는 5만원’의 고료를 지급받았지만, 2009년부터는 ‘기여도’를 기준으로 변경했다.
알파팀이 20대 3명, 30대 3명을 상설 팀원으로, 월 200건 이상 칼럼 게재를 해온 점을 감안하면, 국정원은 이들에게 매월 최소 1천만원 이상 고료를 지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정원은 알파팀에 구체적으로 ‘깨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국정원은 알파팀에 개인별로 “메뉴에 정치/사회, 문화를 반드시 넣어 블로그를 만들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검토 결과, 다음 뉴스 블로그 이용자는 1000만 명, 아고라 이용자는 600만 명이라 여론 확산 정도에 차이”가 있다며 “아고라를 주로, 다음 뉴스 블로그를 부로 하던 전술에서 주부를 전환하라”고 활동 방향을 지시했다.
국정원은 알파팀에 여러 개의 블로그 개설을 지시한 뒤, 그 주소를 팀원들이 공유해 “팀원 상호 간 추천이 필수적”이라고 등을 떠밀거나 “맹렬한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격려했다.
<한겨레21> 확인 결과, 알파팀이 당시 개설한 블로그는 최소 9개 이상이고, 주로 다음 블로그에 글을 올린 뒤 이를 다음 블로그뉴스로 보내, 상호 추천으로 조회 수를 조정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은 ‘집중 게재 칼럼 주제’도 공지했다. 2009년 1월2일에는 ‘(1)김대중 헛소리 비판, (2)이외수 <경향신문> 헛소리 비판’을 주문했고, 8일에는 ‘당분간 MBC-민주당-민노당 비판에 집중’을, 16일에는 ‘홍준표 좌익들에게 모욕당한 칼럼 기존 주제에 추가’ 등의 주제가 제시됐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2월17일치 전자우편에서 확인된다.
마스터는 “학교 측 의견”이라는 전제를 깐 뒤 “1. 노노데모 소송 건 천지성 판사 집중 비판”을 지시한다.
천지성 판사는 천정배 전 국민의당 대표의 딸로, MBC
‘집중 게재 칼럼’ 협의 내용을 전한 전자우편을 보면, 알파팀에 대한 국정원의 압박 강도가 엄청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스터는 수차례 “학교 측 실무자들은 (상부의 높은 기대와 관심으로 인한 압박감으로) 조회 수가 낮은 것들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있다. 조회 수 컨트롤을 통한 (클릭 수) 1000번 이상 유지, 사후관리는 기본”이라며 팀원들의 ‘실적’을 질책한다.
또 “베스트(에 오르지 못하거나)와 1000클릭이 안 되는 글은 학교가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까지 전하며 팀원들에게 ‘최후통첩’도 내렸다.
천지성 판사 비판 지시가 내려오고 열흘 뒤에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김성욱 대표는 “이번달은 학교 측에서 게재 건수 부족을 이유로 고료를 상당폭 감액했다. 본인이 수령할 금액을 삭감하는 방법으로 지난달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조정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이해하기 바란다”고 적었다.
마스터는 또 “베스트와 1000클릭 건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더 이상 구구절절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학교 측은 이 문제로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며 난처한 처지를 호소했다. 국정원이 얼마 되지 않은 푼돈을 무기로 우익청년들을 압박해 정권 보위의 돌격대로 활용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알파팀 전자우편에선 2009년 2월12일 취임한 원세훈 국정원장의 동정이 확인되기도 했다. 원 원장의 취임 직후인 3월3일, 마스터는 알파팀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학교 쪽이 “새 원장 취임을 맞아 오늘 내일 알파팀 존재감을 부각시켜달라고 요청”했다며 “학교에서 게시물 독려 요청이 계속되고 있다”고 공지한다.
알파팀 관리자, “국정원 직원 만났고 일부 후원 받았다”
이런 의혹과 관련해 김성욱 대표는 <한겨레21>에 “2008년 말과 2009년에 걸친 수개월 동안 우익 청년들에게 글을 쓰라고 지시한 것은 맞다”고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또 국정원 연관성에 대해서는 “청년들과 함께 국정원 직원을 만나고 일부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국정원으로부터 매일 지침을 받고 공작을 벌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한겨레21> 취재가 시작된 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와 “통화를 했다”고 밝히며,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음달 미국으로 떠날 것”이라며 연락을 끊었다.
국정원 쪽은 우파 성향 청년들을 동원해 알파팀을 만들어 여론 조작에 나섰느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모든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