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펴낸 책을 이토록 꼼꼼하게 파헤쳐 보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천안함 수색·인양 및 어뢰수거의 책임을 맡았던 UDT대대장 권영대 당시 중령이 쓴 책(폭침, 어뢰를 찾다)은 천안함의 진실을 찾고 있는 저에게는 보배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철저히 감추며 속이고 있는 진실의 얼개를 맞추는 일은 마치 퍼즐과도 같습니다. 무수히 많은 퍼즐의 조각들을 펼쳐놓고 딱 들어맞는 문양부터 연결해 나가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거나 애매한 것들은 옆으로 밀쳐져 있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사고 순간부터 최종 단계까지 자신이 연관된 모든 작업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내용이야말로 퍼즐의 연결고리를 맞추어 나가는 데 있어 너무나도 고마운 정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언론보도를 통해 대부분의 내용들은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내부자의 기록은 기자들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그 기록들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분류해 내는 것이 주어진 과제인데 그것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조사와 분석 그리고 이미 알려진 내용과의 크로스체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나씩 진실의 퍼즐이 맞추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난 1편의 글(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① 거짓의 향연)에 이어 오늘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군함이 암초와 충돌했다고 결코 선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무언가 주장을 해야 할 때 ‘절대’ 혹은 ‘결코’와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와 다른 상황이 나타나거나 발견되었을 때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은 물론 ‘신중하지 못한 단정적 발언’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권영대 대령이 쓴 책의 첫머리 - 프롤로그에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하여 언급하면서 ‘결코’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각각 나옵니다. 하나는 ‘좌초’에 관하여 또 하나는 ‘내부폭발’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였습니다.
권 중령은 좌초에 대해 “시시각각 발표되는 내용을 보고 좌초는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왜냐하면 군함이 암초와 충돌했다고 결코 선체가 분리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권 중령의 이러한 판단은 이후 합조단이 천안함 사고 원인에서 ‘좌초’를 배제하면서 근거로 주장하는 논리와 일치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암초와 충돌했다고 ‘결코’ 선체가 분리되는 일이 없는지 지금부터 ‘팩트체크’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구글이미지에 들어가서 ‘좌초’라는 단어만 입력하면 좌초로 반토막 난 선박들을 무수히 많이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선박들이 모두 좌초로 반 토막이 난 선박들입니다. 수고하기에 따라서 수십, 수백 개의 사례들을 수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선박이 강철로 된 구조물이어서 매우 튼튼할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선박은 구조적으로 매우 약한 설비에 속합니다.
철판을 두껍게 하면 물론 튼튼하겠지만, 경제성이 문제겠지요. 따라서 선박은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으면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준에 맞추어 건조하게 됩니다. 그 최소 가이드라인은 각 나라별 선급협회(미국-ABS, 영국-Lloyd, 독일-DNV, 한국-KR 등)에서 규정으로 정합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문제제기가 되겠지요. 저것은 상선들 사진이고 군함의 경우는 다르지 않느냐. 전투를 해야 하는 군함은 아무래도 상선보다는 튼튼하니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군함이 반토막 나는 사진을.
이번 공판에서 이 부분을 질문했더니 권 중령이 무척 곤혹스러워 하더군요. 그러게 ‘결코’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상선과 군함이 다르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의외로 “상선이나 군함이나 선박은 다 비슷하다”라고 답변을 하더군요.
그러나 사실은 그것도 잘못된 답변입니다.
상선은 화물운송이 목적이기 때문에 선체 내부가 모두 텅 빈 창(倉)으로 되어 있어 구조적으로 약합니다. 그러나 군함은 전투가 목적이기 때문에 거주구를 제회하고 대부분 전투목적의 설비로 되어 있으며, 전투는 당연히 구조적 손상을 유발하므로 기본적으로 손상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군함이 상선보다 훨씬 튼튼합니다.
다만, 군함 가운데 LST등 수송 목적 혹은 유조보급선과 같이 상선과 기능이 유사한 함선의 경우에는 군함이나 상선이나 구조적으로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아무튼 군함이 비교적 상선보다 튼튼한 것은 사실이지만, 군함이라고 하여 암초에 충돌한다고 하여 ‘결코’ 분리되는 일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실(Fact)도 아닐 뿐만 아니라, 대단히 경솔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장이 갖는 비과학적, 비합리적 그리고 객관적이지 못한 판단으로 46명의 인명사고를 유발한 선박사고의 원인을 재단하는 경솔함과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이러한 독단적이고 단정적이며 배타적인 일방적 주장을 통해 국방부가 획정해 놓은 ‘그들의 결론’으로 귀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경험상 내부폭발이 선체를 두 동강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권 중령은 폭발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내부폭발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10년 넘게 함정근무를 한 경험상 내부폭발이 선체를 두 동강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선박을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저의 생각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저는 선박도 타 보았고, 군함도 타 보았고, 조선소에서 8년 동안 배를 13척 건조해 보았는데 제 견해는 ‘Non-sense!’입니다.
권 중령의 주장에 대해 변호인이 물었습니다. “함정 생활을 하면서 내부폭발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그랬더니 그는 “없다. 그러나 그런 사례들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 군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을 보고 듣고 하겠지요. 군함 자체가 위험물을 가득 싣고 다니는 배니까요. 연료인 유류는 기본이고 폭탄과 화약을 싣고 다니는데 왜 사고가 없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이 보고 들은 내부폭발 사고에서 반파되지 않았다고 모든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단정 짓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이지요. 이 또한 ‘팩트체크’ 들어갑니다.
천안함 사고 2년 뒤인 2012년 1월 15일 인천 자월도 앞바다를 항해하던 두라3호가 갑자기 폭발하면서 선창 뚜껑이 하늘로 날아가고 선체가 반 토막 나 가라앉습니다. ‘유증기에 의한 내부폭발’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휘발유를 싣고 다니던 두라3호는 인천에서 모두 퍼 낸 후 선창내에 가득한 가스를 배출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런 작업을 ‘개스프리(Gas Free)’라고 합니다. 부두접안비와 시간을 아끼려고 항내에서 하지 않고 출항 후 그 작업을 하는데, 선창에 들어가던 선원이 갖고 있던 장비가 구조물에 부딪쳐 스파크가 발생하면서 폭발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만 이 사고로 무려 6명이 사망 혹은 실종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고를 보고 들었으면서 “내부폭발이 선체를 두 동강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상당한 설비구조물이 유체인 물 위에 떠 있는 특성을 가진 선박은 때로 타 선박과의 충돌로, 암초나 해저지반과의 접촉으로 혹은 엄청난 폭풍을 동반한 기상악화로 인해 얼마든지 파손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으며 그 손상의 형태 역시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단정적으로 획정하려는 것은 경험이 없거나 아니면 특수한 목적으로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검사의 질문 - “천안함 보셨습니까?”
무려 7년 동안 천안함 재판을 하면서 검찰측이나 국방부 할 것 없이 너무나 자주 사용하는 틀에 박힌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안함을 보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멘트는 국방부가 국민들을 설득하는 용도로도 매우 요긴하게 쓰이는데 이번 공판의 마지막 질문에서도 검사의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
검사 : 증인, 평택2함대에 있는 천안함 보았습니까?
증인 : 네. 보았습니다.
검사 : 어떻던가요?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좌초 후 충돌’일 수 있는가요?
증인 : 말도 안됩니다.
검사 : 왜 말이 안되는가요?
증인 :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국방부든 검찰이든 “천암함을 보았느냐?”라고 질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처참하다. 왕창 깨어졌다. 좌초 또는 충돌로 이렇게 될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폭발이다. 폭발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이 천안함을 본 사람들에게 가장 잘 먹힌다고 국방부는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반복적으로 이 방법을 애용합니다.
이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객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비참한 것으로 따지자면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가장 비참하지요. 그게 모두 어뢰 맞아서 생긴 폭발인가요?
이에 대해서도 국방부와 검찰 그리고 권 중령에게 제가 정답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선박의 사고원인은 손상의 모습 하나만으로 결정짓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망을 해도 원인이 모호할 때는 법의학자가 부검을 하듯이, 선체 또한 과학적인 모든 방법을 통한 조사와 분석으로 사고원인에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전제한 후, “천안함의 선체 손상은 암초충돌을 하든, 충돌을 하든, 폭발을 하든 언제든 저러한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폭발로 판단합니다.”라고 답변을 했다면 낙제는 면할 수 있었을 겁니다. ‘폭발’은 틀린 답이지만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요.
권영대 중령이 쓴 책의 프롤로그 첫 페이지 두 면을 분석한 것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지적해 나가면 십 수 편의 분석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 이유는,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그들이 정해놓은 결론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접근법을 무리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적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권 중령은 지난 2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왔을 때 그리고 이번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왔을 때 두 번에 걸쳐 같은 말을 반복하였습니다.
“만약 천안함 사건이 조작되었다면, 승조원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겪었는데, 왜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느냐?”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이분은 정말 스스로도 진실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심장이 매우 튼튼한 사람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지요.
“반드시 그리고 꼭 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신상철